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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wlee
원판불변의 법칙- 이민살이 20년의 회한
ywlee

 ‘O Canada! Our home and native land! True patriot love…’ 한인 행사에서 애국가와 캐나다 국가를 부를 때 나는 가끔 정체성에 혼란을 느낀다. 애국가를 부를 때 나는 한국인이란 사실을 재확인하는 한편, 평소에도 한국인이라는 생각을 한번도 잊은 적 없이 간직하고 산다. 그러나 ‘오 캐나다’를 부를 땐 묘한 생각이 든다. ‘나의 조국 캐나다~’. 캐나다는 과연 나의 조국인가.

 

 캐나다시민권을 취득했으니 나는 국적상 캐나다 시민이다. 외국에 나가 무슨 불의의 일을 당할 경우 나를 구해줄 국가는 캐나다이다. 태어난 조국은 한국이지만 내가 캐나다 밖에서 무슨 일을 당하면 현실적인 도움을 줄 나라는 조국 한국이 아니라 ‘양부모’격인 캐나다이다. 이를 테면 나의 신분은 ‘한국계 캐나다인’이다.

 

0…“못난 조국이 싫었다. 끝없이 부패하고 모든 가치관이 뒤죽박죽된 한국사회에서 나는 더 이상 희망을 찾을 수 없었다. 이런 나라를 사랑하라고 자식들에게 강요할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모든 것 뿌리치고 도피하듯 이민 보따리를 쌌다. 앞으로 어떤 고난이 닥칠지라도 새 세상에 다시 태어난 기분으로 열심히 살아갈 것이다. 십 수 년 후 나의 이민일기에는 어떤 내용들이 담길까. 나 스스로 선택한 길이기에 후회하는 일은 없으리라. ”      

 

 위 글은 지금부터 20년 전인 2000년 7월 5일, 캐나다 땅에 이민봇짐을 푼 후 한달 정도가 지난 어느 날 한인언론에 썼던 글이다. ‘제5계절’이라는 칼럼이었는데, 지금 다시 읽어보니 스스로 무안하기도 하고 한편으론 그때의 각오와 정신이 오늘날 별로 실천되지 않고 있음에 입맛이 씁쓸해지기도 한다.

 

 이민초기만 해도 나는 의욕과 투지에 불 타 있었다. 모든 정착업무를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스스로 해결하겠다며 서류봉투를 들고 관공서를 들락거렸다. 정착할 곳을 찾을 때는, 한국이 싫어 떠나왔는데 외국에 와서까지 한국인과 부딪치기는 싫다며 일부러 한국인이 없는 시골 외곽을 찾아 들었다.

 

 24시간 문을 여는 주유소에서 야간근무도 해보고, 대형 화훼단지에서 하루종일 선 채 꽃다발을 만들어보기도 했으며, 가게나 직장을 찾겠다고 이곳저곳 들개처럼 쏘다니기도 했다. 그런 나를 보고 어느 한인 어르신께서 “한국에서 잘 살던 사람이 왜 외국에 와서 이 고생이냐”며 혀를 차던 모습이 선하다.

 

0…강산도 변한다는 10년 세월을 두 번씩이나 흘려보내고 이제와 뒤를 돌아보니 모든 게 그저 회한 뿐이다. 이민 결행의 가장 큰 동기였던 자식들 교육은 자연스럽게 해결됐으나 그에 따른 대가도 만만찮았다. 한국에서는 꽤 인정받던 영어실력(명색이 영문과 출신이다!)이 이민초기의 절반 이하로 추락해갔다. 20년 가까이 한국신문 만드는 일에 종사하다보니 영어 쓸 일이 별로 없었다. 영어를 정복해보자던 초창기 다짐은 흘러가는 세월 따라 푸시시 사라져 버렸다.

 

 사실, 영어를 사용하는 국가에서 영어적응에 소홀했다는 점이 가장 큰 아쉬움으로 남아 있다. 우선 당장 편하다고 한국말로 해버릇 한 것이 실수였다. 살아가는데 불편은 없으나 가장 큰 이민목표가 무너져버렸으니 뼈아픈 실책이 아닐 수 없다. 처음엔 이민 온지 수십년 됐다는 선배들이 영어를 못하는 모습을 보고 이상하게 생각했는데 이제 내가 그런 모양이 됐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이민 실패작이라는 자괴감이 든다.             

 

 웬만하면 한국인과 거리를 두고 살자던 다짐도 이제서 돌이켜보면 얼마나 허황된 생각이었는지 쓴웃음이 난다. 된장국에 열무김치 등 순한국식 음식을 먹고 한인성당에 다니며 골프도 한인들과 어울려 쳐야 마음이 편한 나같은 토종 한국인이 동족사회를 멀리하겠다고 다짐했었으니 얼마나 우스운가. 세월이 흐를수록 나의 생활은 한국보다 더 한국적으로 고착화돼가는 느낌이다.      

 

 요즘 저녁시간엔 ‘6시 내고향’이라는 한국 프로그램을 시청하면서 식사를 한다. 정겨운 고향산천 풍광들이 그림처럼 펼쳐지고 먹을거리도 풍성하며 무엇보다 사람들의 인정이 넘친다. 그런 모습을 보노라면 마음이 참 편안해진다. 그러면서 아내에게 “언젠가는 고향에 돌아가 채소 가꾸며 살고 싶다”고 타령한다. 현실성 없는 소리를 자꾸 하니 아내는 이젠 대꾸도 안한다. “꿈 좀 깨시고 가끔 한국에 나가 향수나 달래다 오세요.” 한다.

 

 나의 향수병은 지난해 가족들과 함께 갔던 고국의 인상들이 너무 좋았기에 더욱 도지게 된 것 같다. 짧은 일정 속에 아쉬움만 잔뜩 안고 왔기에 더더욱 그런 것 같다. 그래서 몸은 타국에 있으나 마음은 언제나 고향 언덕을 헤매고 있다.

 

0…대개 이민생활의 성공기준은 경제적으로 얼마나 안정된 기반을 갖추었고 자식들 교육은 제대로 시켰느냐로 모아질 것이다. 그런 면에서 우리는 절반의 성공은 거두었다고 자평한다. 비즈니스 대신 직장생활을 택한 탓에 큰 굴곡은 없었으나 필요한 곳에 팍팍 쓸 수 없어 경제적으로는 풍족하질 않다. 하지만 가족들 건강하게 잘 지내고 자식들도 제 갈길 잘 가고 있으니 이것으로 자족할 일 아닌가 한다.

 

 세월은 덧없이 흐르고 나도 이제 서서히 ‘구포(구시대 동포)’ 대열에 들어서고 있다. 그러나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나의 원판은 변함없는 한국인. 이게 바로 원판불변의 법칙이 아닐까.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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