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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우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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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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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1-18
윈터 블루스-겨울 우울증 이겨내기

 

‘…오늘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나타샤를 사랑은 하고 눈은 푹푹 날리고/나는 혼자 쓸쓸히 앉어 소주를 마신다/소주를 마시며 생각한다/나타샤와 나는 눈이 푹푹 쌓이는 밤/흰 당나귀 타고 산골로 가자/출출이 우는 깊은 산골로 가 마가리에 살자…’  (백석 시 ‘나와 나타샤와…’)

 

 

 

 


 새벽녘에 잠이 깨어 보니 유리창이 희뿌연하다. 커튼을 제치니 가로등 아래로 흰눈이 퍼붓고 있다. 아, 또 눈이구나. 올해는 겨울 턱을 톡톡히 하는구나. 그런데 참 우울하다. 추위도 그렇지만 웬 눈이 그리 퍼붓는지, 하늘이 희뿌연해지면 겁니 난다. 아침마다 차 위에 쌓인 눈을 털라치면 한숨이 난다. 백색 공포증이란 말이 실감난다. 


 나는 사람이 덜 된 탓인지 날씨에 무척 민감하다. 날이 화창하면 기분도 좋고 몸 컨디션도 가뿐하다. 하지만 하늘이 우중충하고 눈이나 비가 내리면 심신이 착 가라앉는다. 아무 의욕도 나질 않고 그저 우울해지기만 한다.     


0…겨울은 슬픈 계절이다. 정신의학적으로도SAD(Seasonal Affective Disorder)란 말이 있다. 전문용어로 계절성 정동장애(情動障碍)라 하는데, 북미에서는 윈터 블루스(winter blues), 즉 겨울철 우울증이란 말이 흔히 쓰인다. 요즘같은 계절엔 SAD 란 말이 딱 어울린다. 


 겨울 중에도 1월은 가장 우울한 달이다. 특히 지난 15일(월)은 블루 먼데이(Blue Monday)였다. 1월 셋째 주 월요일은 1년중 가장 우울한 날이란 뜻이다. 그것은 들떴던 연말연시 휴가도 지나고 연말에 흥청대며 쓴 빚은 늘고, 날씨는 춥고 하늘은 회색빛이다. 새해 결심도 스르르 녹아버릴 시점이 이때다. 블루 먼데이란 말은 영국 카디프대학의 평생교육원 교사 클리프 아날(Cliff Arnall)이 2005년에 만든 말이다. 이날은 우울한 기분을 전환하기 위해 아름다운 꽃을 주고 받으면 좋다고 한다.   


 겨울 우울증에 걸리면 심신이 피곤하고 불안 초조하다. 아무리 잠을 자도 늘 무기력하고 일이 손에 안 잡힌다. 대개 남자보다 여자에게 많으며, 노인보다 젊은층이 더 많이 앓는다. 심한 경우 자살까지도 생각한다. 


 겨울에 우울한 것은 햇볕이 부족한 이유가 가장 크다. 낮이 짧아 생체의 시계바늘을 조절하는 태양빛이 적어지고 감정을 전달하는 신경물질도 감소한다. 이는 추운 북쪽일수록 더하다. 미국 뉴욕의 겨울 우울증 환자가 플로리다보다 10배나 된다는 통계도 있다. 남유럽에 비해 북유럽 사람들이 말수가 적고 침울해 보이는 것도 일조량이 적고 날씨가 춥기 때문이다. 


 북유럽 국가들이 복지제도가 잘 돼있지만 자살율이 높은 것도 음산한 겨울날씨 영향이 크다. 예술가 중에는 여름철에 메시아를 작곡한 헨델과 여름 햇살 아래 농부를 그린 반 고호 등이 심한 겨울 우울증으로 고생했다. 반면, 카리브해 국가들 국민이 빈곤하긴 하지만 행복지수가 높은 것은 대체로 온화한 날씨 덕분이다.  


 0…겨울 우울증은 일조량이 적어지는 늦가을에 시작돼 봄이 되면 사라진다. 그래서 계절성 감정장애라 한다. 그러나 나름대로의 해소책을 찾지 않으면 심각한 상황으로 발전할 수 있다. 무엇보다 빛이 부족해서 생기는 병이니 이를 예방하려면 추운날이라도 틈나는 대로 햇빛 아래 산보를 하는 게 좋다. 집안 조명도 가급적 환하게 해둘 일이다. 
 전문가들은 겨울 우울증 극복방법으로 다음 사항을 권한다. 1.낮에는 가급적 집 밖에 있을 것. 2.가능한 밝은 곳에 있을 것. 3.날씨가 좋으면 밖에 나가 햇볕을 쪼일 것. 4.집에서도 조명을 밝게 할 것. 5.규칙적인 생활을 할 것. 6.운동을 꾸준히 할 것. 7.가급적 혼자 있지 말 것. 8.여유가 있으면 따뜻한 곳으로 여행을 갈 것... 


 아름답던 옛날을 회상하는 것도 정신건강에 도움이 된다. 현실이 힘들 때 포근하고 정다웠던 옛시절을 떠올리면 기분이 사르르 녹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꿈결 같던 연애시절을 떠올리거나 어릴 때 뛰놀던 고향 풍경을 반추한다. 시골 논에서 썰매 타던 향수, 연 날리던 정경, 동무들과 눈싸움 하던 생각… 그러면 백색 공포도 사라지고 하얀 눈이 정겹게 보인다. 옛날 노래를 흥얼거려도 기분이 풀린다.    

 
 충분한 단백질을 섭취하고 비타민 D 를 복용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 저녁엔 술 대신 물이나 가벼운 음료를 마시는 것이 좋으며 하루 7∼8시간 수면을 취하는 것은 몸의 면역시스템을 회복시키는 데 중요하다. 또 평소의 페이스를 유지하되 무리하지 않는다. 겨울은 휴식과 회복의 시간이며 바빠질 새해를 앞두고 준비하는 시기이므로 강도 높은 일은 피해야 한다. 


 경제적, 시간적으로 여유가 있다면 따뜻한 남쪽나라로 피한(避寒)여행을 떠나는 것도 좋겠다. 실제로 토론토의 많은 한인들이 지금 플로리다 등 남쪽나라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아직은 한참 일해야 하는 나같은 사람은 그저 언젠가는 가리라는 상상만 하면서 스스로를 극복하는 수밖에… 


 지금은 겨울의 중간, 아직 추위가 지나려면 멀었다. 요즘 같은 때, 나름대로 겨울 우울증을 극복할 지혜가 필요하다 하겠다. ‘우수도 경칩도 머언 날씨에 그렇게 차거운 계절인데도/봄은 우리 고은 핏줄을 타고 오기에/호흡은 가뻐도 이토록 뜨거운가?/손에 손을 쥐고 볼에 볼을 문지르고 의지한 채 체온을 길이 간직하고픈 것은/꽃피는 봄을 기다리는 탓이리라...’ (신석정 ‘대춘부’)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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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1-15
나는 낙오자(?)-비트코인 광풍(狂風)

 

 "주변 친구들이 쉽게 큰 돈을 벌었다는 말에 나도 시작했다”, “한번 빠지면 새벽 2~3시까지 시세를 확인한다”, "숫자가 정말 미친 듯이 변한다", “눈 뜨자마자 잠들 때까지 머리 속은 온통 그 생각으로 가득하다”, “다른 돈벌이는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다”, “시장 분석도 필요 없다. 그저 돈을 넣고 바라보기만 하면 된다” 

 

 

 


 요즘 한국에선 사람들이 모이는 자리마다 비트코인(bitcoin)이 주요 화제라고 한다. 이전에는 자녀 얘기와 주식투자, 부동산 얘기를 했지만 요즘은 단연 비트코인이다. 이에 관심을 갖지 않는 사람은 별종이란 소리까지 듣는다고 한다. 그래서 한번 비트코인 중독에 빠지면 마약보다도 무섭다. 심지어 “이렇게 쉽게 돈을 벌 수 있는데 굳이 사람들과 부딪치며 회사를 다녀야 하는지…” 하는 상황에까지 이르렀다. 


 영어사전에도 공식 단어로 등재돼 있는 이 괴물같은 존재에 대해 나는 개념조차 모른다. 다음은 <위키백과> 사전에 나오는 설명이다. “비트코인(bitcoin)은 블록체인 기술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온라인 암호화폐(cryptocurrency)다. 화폐단위는 BTC로 표시한다. 2008년 사토시 나카모토라는 가명을 쓰는 프로그래머가 개발해 2009년 프로그램 소스를 배포했다. 중앙은행 없이 전 세계에서 P2P 방식으로 개인들 간에 자유롭게 금융거래를 할 수 있게 설계돼 있다. 거래장부는 블록체인 기술을 바탕으로 세계 여러 사용자들 서버에 분산 저장하기 때문에 해킹이 불가능하다…”


 나는 이런 설명을 아무리 해독하려 해도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다. 블록체인, 채굴, 전기료, 소스 코드, 알트코인, 이더리움, 리플, 라이트코인, 에이코인, 대시, 퀀텀… 무슨 외계언어처럼으로만 들린다.


0…대한민국은 지금 열풍을 넘어 광풍(狂風)이라는 지적이 나올 만큼 가상화폐 시장에 이미 150만 명 이상이 유입됐다. 인터넷에는 단기간에 280억 원을 번 23세 청년 이야기, 수억 원을 벌고 직장마저 그만둔 직장인, 순식간에 학자금 대출을 상환했다는 취업준비생의 사연 등, 연일 가상화폐 투자 수익을 인증하는 글이 오르고 있다. 


 회사에선 직원들이 업무는 뒷전인 채 비트코인 시세만 들여다 본다. 개중에는 “이러다 망가지는 건 한순간이라고 느껴진다"는 사람도 있긴 하다. 그러나 특히 미래가 불안한 젊은층이 가상화폐 투자에 목을 매달고 이를 유일한 탈출구로 여기는 풍조가 급속히 확산되고 있다. 


 2009년 처음 거래된 1비트코인의 가격은 단 1달러였다. 그러던 것이 매년 급상승해 2017년 한해 동안 1300% 이상이 올라 무려 1200여 달러에 달했다. 가상화폐 시장 점유율과 거래량 순서로 보면 일본, 미국, 그리고 한국이다. 당초 비트코인에 열광하는 투자자들은 중국에 많았다. 중국 위안화 가치가 약세를 보였기 때문이다. 그러다 부작용이 속출하자 중국 정부가 비트코인 거래에 제동을 걸면서 열풍은 한국으로 이동했다. 


 비트코인은 왜 급등하는가. 거래가 편하고 익명성이 보장된다는 인식 때문이다. 이에 따라 주식이나 금 대신 비트코인에 투자하는 사람이 급속히 늘고 있다. 그동안 공식 화폐로 인정하지 않던 미국, 일본 등에서 이를 정식 화폐로 인정하려는 움직임이 있는 것도 값이 치솟는 이유다.


0…비트코인 열풍은 전 세계를 달구고 있지만 한국이 유독 심하다. 왜 그럴까. 그것은 한국인들의 고질적인 ‘한탕주의’적 투기성향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비트코인 시장이 지나치게 과열됐다고 거듭 경고한다. 미국의 전직 고위관료는 "비트코인은 나무가 하늘을 향해 계속 자랄 것이라고 믿는 투기꾼들을 위한 자산이다. 모든 투기꾼은 자신의 손을 다 태우고 나서야 교훈을 얻을 것이다.”라고 했다.  


 실제로 부작용도 속출하고 있다. 국내 한 거래소가 해킹으로 수십억의 고객 돈을 도난당했고 각종 투자사기와 가짜 코인을 이용한 다단계 사기도 성행하고 있다. 그러나 제도적 안전장치가 없어 피해자들은 구제방법이 없다. 


 하지만 여러 위험에도 불구하고 투자 열기는 사그라지지 않고 있다. 한국 당국은 그동안 어떻게 대처할지 몰라 우왕좌왕하다 최근에서야 가상통화 거래소 폐쇄 등 대안을 추진하겠다는 방침을 밝히고 나섰지만 현재의 광풍을 잠재울지는 미지수다. 


0…정말 세상이 바뀌고 있는가. 그러나 이건 분명 아니다. 불과 수시간 만에 몇 배, 심지어 몇십 배나 가치가 뛴다니, 과연 타당한 일인가. 내가 바보이고 순진해서 그런지 모른다. 지금은 비트코인 사는 사람들 보고 미쳤다고 하지만 수년 후엔 그런 얼토당토 않은 생각을 한 나같은 사람이 바로 미친 자라고 비웃음 당할 지도 모른다. 


 남들은 순식간에 돈을 벌어 떵떵거리고 사는데 아직도 이런 소리나 늘어놓는 나.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용어조차 따라잡을 수 없는 나는 정말 시대의 낙오자가 아닐까. 돈에 미쳐 날뛰는 세상에 문학이니, 철학이니, 역사니 인문학이니 하는 비현실적인 소리나 늘어놓는 나는 한물 간 사람인가.


 하지만 이건 정말 아니다. 한창 일할 젊은들이 컴퓨터 앞에서 가짜 돈놀이 하느라 눈에 불을 켜는 세상이 정상일 수는 없다. 열심히 일해 살 궁리는 않고 막연한 환상에 사로잡혀 머리를 싸매고 있는 이들에게 무슨 미래와 희망이 있는가. 인간이 만든 로보트에 의해 인간의 일자리를 빼앗긴 채 허망한 한탕주의에 빠져드는 이 기막힌 현실 앞에 우리가 설 자리는 어딜까.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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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1-04
새해 결심-조금만 변해 보자

 

‘마음, 마음, 마음이여 알 수가 없구나/너그러울 때는 온 세상을 다 받아들이다가도/한번 옹졸해지면 바늘 하나 꽂을 자리가 없구나…’ –법정스님

 

 

 

 


 참으로 알 수 없는 것이 사람의 마음이다. 법정스님의 말씀대로 어느 땐 온 세상을 다 품을 것처럼 너그러워지다가도, 또 어느 땐 내가 미워죽겠을 정도로 옹졸해지니 참으로 오묘하다. 그래서 철석같은 결심과 뼈저린 후회를 반복하게 되는 것이 사람인가 한다. 더욱이, 때론 나 자신도 내 마음을 모르겠는데 하물며 남의 숨겨진 마음을 어찌 알까. 


 0…새해 벽두엔 많은 사람들이 새로운 결심들을 한다. 새해엔 신앙생활을 좀더 착실히 하겠다거나, 술과 담배를 줄이거나 아예 끊겠다거나, 열심히 운동해 살을 빼겠다든가 등등… 하지만 늘 그렇듯 새해 결심은 작심삼일(作心三日)로 끝나기 쉽다. 통계자료에 따르면, 많은 이들이 새해 첫주 안에 4분의 1이 신년 결심을 포기한다. 왜 그럴까.


 학설에 따르면, 새해 결심을 이루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인간의 뇌가 현재의 정서적 만족도를 높일 수 있는 방식으로 굴러가기 때문이라고 한다. 즉, 새해 소원을 빌고 결심을 할 때 느끼는 행복감과 만족감이 미래에도 동일하게 지속될 것이라고 예측한다. 하지만 실제 소망과 결심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다 보면 실천 자체는 행복감을 주지 않는 경우가 많으며, 그래서 중간에 이를 미루고 당장 더 큰 행복과 만족감을 주는 일을 먼저 하게 되는 것이다.


 오타와 칼턴대학교의 저명한 심리학자 팀 파이킬에 따르면, 사람들은 흔히 그동안 이루지 못한 일이나 목표를 새해 소망으로 비는 경향이 크다. 그 이유는 이러한 소망이 가져다 주는 순간의 심리적 만족감 때문이다. 즉 매번 실천해왔던 일, 잘 해왔던 일들로는 만족감을 느낄 수 없기에 그동안 해보지 못한 것, 해보고 싶은 것들을 상상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럼 어떻게 하면 새해 목표를 잘 실천할 수 있을까. 이에 대해 학자들은 현실적인 목표를 잡고 새로운 습관을 받아들이는 감정 훈련이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피터 허먼 토론토대학교 교수는 "현실적인 목표를 세우고, 과도한 변화는 기대하지 말라"고 충고한다. 이를테면 한 주에 살을 500 그램 빼겠다고 결심하면 십중팔구 실패하지만, 한 달에 500 그램 뺀다고 하면 1년에 6킬로그램은  뺄 수 있다는 것이다. “체중 감소는 몸에 좋지만 인생을 변화시키는 것은 아님을 자각해야 한다. 그래야 작은 실패에 낙담하지 않고 목표를 이룰 수 있다."


 결심이란 이처럼 구체적일수록 달성할 가능성이 크다. ‘운동을 더 많이 하겠다' 보다 '일주일에 세 번 5킬로미터를 걷겠다'는 결심이 바로 그런 것이다. 

위의 파이킬 교수는 또 "새해 결심을 새로운 습관으로 만들려면 감정적 훈련이 필요하다. 새 결심과 연관된 나쁜 기억은 없애고 좋은 감정을 불어넣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0…나는 새해 결심으로 이런 것들을 생각해보았다. 즉, 한번 변해보자는 것이다. 특히 내적(內的)으로… 나의 마음이 나도 모르게 수시로 변하는 것을 생각하면 나 스스로 얼마든지 변할 수가 있을 것 같다. 그 구체적인 실천강령으로는, 어떤 상황에서도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적극적으로 행동할 것, 어느 누구에게든지 좋은 말만 할 것, 작은 일에 너무 연연하지 말 것... 그러면 결국 그 아름다운 과실이 나에게 되돌아올 것이다. 이것만 제대로 실천해도 나는 아마 많이 달라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돌이켜보면, 하찮은 작은 일에 안달하고 화를 내고 남에 대해 좋지 않은 말과 생각들을 많이도 해왔다. 그러다 결국 나만 괴로워 하고 스스로 지쳐버리는 일상이 되풀이 돼왔다. 이제 새해를 맞아 조금만 생각을 변화시켜 보기로 한다. 그것이 또 작심삼일로 끝날지언정…  

   


 “매양 추위 속에 해는 가고 또 오는 거지만/새해는 그런 대로 따스하게 맞을 일이다.//얼음장 밑에서도 고기가 숨쉬고/파릇한 미나리싹이 봄날을 꿈꾸듯/새해는 참고 꿈도 좀 가지고 맞을 일이다.//오늘 아침, 따뜻한 한 잔 술과 한그릇 국을 앞에 하였거든/그것만으로도 푸지고 고마운 것이라 생각하라.//세상은 험난하고 각박하다지만/그러나 세상은 살 만한 곳.//한 살 나이를 더한 만큼/좀 더 착하고 슬기로울 것을 생각하라.//아무리 매운 추위 속에 한 해가 가고 또 올지라도/어린것들 잇몸에 돋아나는 고운 이빨을 보듯/새해는 그렇게 맞을 일이다.” -김종길 ‘설날 아침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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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2-20
먼저 인간이 되자

 

 

 

 

 한 사람의 외형적 성공과 인간성(인격)이 일치되면 참으로 좋으련만 세상은 그렇지 않은 경우가 더 많다. 베스트셀러 작가의 작품을 읽고 감명을 받아 꼭 그 저자를 만나고 싶은데, 막상 그를 만나 보면 그 경박한 언행에 실망을 느끼는 경우가 그런 예가 될 것이다. 작품을 보아선 고상한 인격의 소유자라 상상했는데 실제로 대하는 모습은 다른 것이다. 이런 사례는 일상에서 흔히 겪는 일이다.    

 
 최근 한 문인선배와 만나 저녁을 함께 했는데 이런 이야기를 하셨다. 두어달여 전, 토론토의 문인협회 행사에 초청받아온 한국의 어느 시인이 문학강연을 하면서 동포들을 향해 일장 훈수를 하더라는 것이다. 이민자들은 문학도 좋지만 모국 생각만 하지 말고 이민사회에 적응할 생각이나 하라고… 이 말을 하시면서 그 선배님은 고개를 저었다. 


 사람이 어느 정도 지위에 올라서면 자신의 과거는 까마득히 잊은 채 마치 사람들의 머리 위에 올라선 것 같은 착각을 하게 된다. 자신이 어려울 때 상황은 애써 잊어버리는 것이다. 정치인이 선거에 당선되기 위해 표를 구걸하다시피 할 때는 허리를 굽신대지만 막상 당선이 되고 나면 하루아침에 태도가 돌변해 유권자들 머리 위에 군림하려 든다. 이름 없던 문인이 어느날 자기의 작품이 지상에 실리기 시작하면서부터 갑자기 유명작가나 된 듯 으스대는 모습도 흔히 본다. 모임엘 가면 “나를 몰라 보다니…” 이런 식이다.          


0…연말을 맞아 여기저기서 송년행사가 열리고 있다. 개중에는 크게 내키지 않지만 주최자의 안면을 보아 어쩔 수 없이 참석하는 경우도 많다. 그런데 이런 행사장에서 자주 느끼는 것이 있다. 조연(助演) 역할에 그쳐야 할 사람이 마치 자신이 주인공인양 행세하는 것이다. 짤막한  조언(助言)을 부탁했더니 자신의 정치적 주장을 장황하게 늘어놓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모임의 성격과는 동떨어진 주제로 발언을 독점하려 드는 사람도 있다. 은은한 배경음악이나 들려주면 좋으련만 자신이 직접 콘서트를 하려 드니 본말(本末)이 전도되는 것이다. 


 자신의 직분을 잊은 사람도 많다. 봉사하라고 단체장을 시켜놓았더니 자기가 잘나서 그런 줄 알고 목에 힘이나 주고 행사장의 상석(上席)이나 기웃거리는 사람도 있다. 이런 사람들이 진정으로 자기를 희생해가며 봉사를 할 것인가. 


 특히 공인(公人)으로서의 처신이 도저히 신뢰가 안 가는 사람이 있다. 공관 등 공직자들은 평소 동포들의 대우만 받아서 그런지 거드름을 피우는 것이 몸에 밴 사람이 많은데, 거기에다 인격수양마저 덜 된 사람은 일반인들이 인사를 건네면 받는둥 마는둥 무시해버리는 경우도 많다. 


 무대에서의 일장 연설과 무대 뒷편에서의 행실이 전혀 다른 위선자, 남의 의견을 경청하지 않고 아무리 옳은 소리를 해도 인정하지 않는 독선자, 자기 말만 늘어놓는 궤변가… 말없는 사람을 무시하면 안된다. 침묵한다고 자기 의견이나 주관이 없는 것이 아니다. 다만 남의 말을 존중해서 말을 아낄 따름이다.     


 말은 그럴듯하게 하면서 행동은 전혀 다르게 하는 이중인격자, 노약자를 배려할 줄 모르고 길게 줄을 선 가운데에 끼여들어 먼저 식사를 하려는 얌체족… 앞으로 이런 사람들이 없어져야 사회가 정상으로 돌아갈 것이다.


 일요 예배 때는 성심을 다해 기도하며 그렇게 진지할 수가 없는데, 교회에서 한발짝만 벗어나면 태도가 달라지는 사람, 성전 안에서는 자기 자리를 차지한 채 옷가지와 핸드백을 올려놓고 자리에 좀 앉아도 되겠느냐고 부탁하면 눈쌀을 찌푸리는 사람, 이런 사람들은 십자가에 기도하기 전에 먼저 사람이 되어야 한다. 


 아무리 위대한 일을 성취할지라도 먼저 인간이 되지 않고서는 결코 존경받을 수 없다. 한인사회에 잘 알려진 사람들 중에도 그런 부류가 많다. 최근 어느 행사장에서 만난 모 인사의 안하무인적인 태도는 참 어이가 없었다. ‘나는 유명인사다…’ 라는 오만함이 선했다. 


0…올해도 여러 다양한 인간상을 만났다. 개중에는 자기가 필요할 때는 간과 쓸개라도 빼줄 듯이 접근하던 사람도 더 이상 이용가치가 없다고 생각되는 순간 태도가 돌변함을 느낄 수 있었다. 이런 세태 속에서도 겸손하기 그지 없는 분을 만나면 참사람을 본듯 반갑다. 본보의 최장기 필진 중 한 분인 C시인이 그런 분이다. 이 분은 여러해 동안 한번도 변함이 없다. 영문학 박사인데 그런 이야기는 입밖에 꺼내지도 않고 절대로 자신을 내세우지도 않는다. 누구는 자신의 글이 어느 문예지에 당선됐다고 알리지 못해 안달인 사람도 있는 반면, 이런 사람도 있다.                 


 무릇 혼자서 이루는 일은 없다. 누군가 조연이 있기에 주인공이 될 수 있었다. 돈 많은 재벌도, 학식 높은 교수도, 유력한 정치인도, 모두가 그를 도와준 대상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런데 어려울 땐 겸손하던 사람도 성공을 하면 목이 뻣뻣해지는 경우를 흔히 본다. 이런 사람은 사람을 인격체로 보는 것이 아니라 이용만 하려는 사람이다. 


 자기의 분수를 모르고, 본연의 역할을 잊은채, 오만하게 행동하는 사람은 새해를 맞아 먼저 인간이 되어야 할 것이다.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이고 사람은 배울수록 겸손에 이르는 법이다.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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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2-15
다윗과 골리앗-거인과 싸우는 법

 

 지금부터 3,000여 년 전, 사울왕이 다스리던 이스라엘 왕국과 그의 최대 강적 팔레스타인 군대가 예루살렘 인근 쉐펠라 골짜기에서 대치중이었다. 그러나 양쪽 군대는 주둔한 상태에서 상대방을 바라보며 아무것도 하지 않고 교착상태에 들어갔다. 이 상태를 벗어나기 위해 팔레스타인은 가장 강한 전사를 골짜기 아래로 내려 보낸다. 그가 이스라엘 병사들에게 외쳤다. "너희 중 가장 강한 자를 보내면 우리 둘이 결투를 벌여 이 전쟁의 승부를 내겠다." 

 

 

 


 1 대 1 결투는 고대의 전통적 전쟁방식 중 하나였다. 대단위 전투를 벌여 많은 희생자를 내는 대신 단 둘이 결판을 내는 것이다. 그런데 팔레스타인 군대가 보낸 전사는 키가 2미터 5센티나 되는, 말 그대로 ‘거인’이었다. 게다가 머리부터 발끝까지 어마어마한 청동 갑옷을 입고 칼과 투창을 들고 있었다. 그 모습이 얼마나 무서운지 이스라엘 병사 중 아무도 나서는 이가 없었다. 그러다 결국 한 명의 자원자가 나타났는데, 그는 어린 양치기 소년이었다. 소년은 사울왕에게 말했다. “제가 싸우겠습니다." 


 사울왕이 말했다. "넌 그와 겨룰 수 없다. 말도 안돼. 넌 꼬마이고 저쪽은 막강한 전사야." 하지만 소년은 완강히 말했다. “임금님은 이해를 못하십니다. 저는 양을 치면서 사자와 늑대로부터 양을 지켜왔어요. 전 할 수 있어요." 사울왕은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나서는 이가 없었으니까. 그래서 답했다. “좋다." 그리고 소년을 보며 “하지만 갑옷을 입어야 한다. 지금 차림으로는 나갈 수 없어.” 이에 소년이 말한다. “아니에요. 난 이런 거 입어 본 적이 없어요.” 


 소년은 대신 허리를 숙여 바닥에 있던 돌 다섯개를 주워 가방에 넣고 거인을 만나러 갔다. 거인이 보고 외쳤다. “와라. 너의 살점을 하늘의 새와 들의 짐승에게 먹이로 줄테니." 그는 자신과 싸우려고 오는 도전자를 이렇게 조롱했다. 소년이 다가오자 거인은 그가 나무지팡이를 들고 있는 걸 보았다. 거인은 모욕을 당한 기분이었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막대기를 들고 오다니, 내가 개처럼 보이나?" 


 이때 소년은 주머니에서 돌을 꺼내 물매(sling, 새총의 일종)에 끼우고 빙빙 돌리다 날려 보냈다. 돌은 정확하게 거인의 두 눈 사이, 즉,  그의 가장 취약한 부분을 맞췄다. 거인은 그 자리에 쓰러졌고 소년은 달려가 그의 검을 꺼내 쓰러진 거인의 목을 베어 버린다. 이 광경을 본 팔레스타인인들은 그 길로 도망쳐 버렸다… 많은 이들이 알 듯, 거인의 이름은 골리앗(Goliath), 양치기 소년은 다윗(David)이다. 


0…저명한 영국계 캐네디언 저술가 말콤 글래드웰(Malcolm Gladwell.54)은 2013년에 발표한 베스트셀러 <다윗과 골리앗>(강자를 이기는 약자의 기술) 머리말 ‘거인과 싸우는 법’에서 “약자가 지닌 결핍이 강자를 이기는 기술이 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즉, 다윗은 잃을 게 없었다. 그리고 잃을 게 없었기 때문에 승리의 가능성은 오히려 더 커졌다는 것이다.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다윗과 골리앗’이라는 표현은 불가능해 보였던 승리, 또는 약한 쪽이 훨씬 강한 쪽을 이길 때 사용된다. 그런데 사람들은 왜 다윗을 약자라고 생각할까? 그것은 다윗이 어린 소년에 불과했고 골리앗은 거대하고 강한 거인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게다가 골리앗은 경험 많은 전사였음에 반해 다윗은 한낱 양치기 목동에 지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바꿔 생각하면, 다윗을 약자로 보는 가장 큰 이유는 골리앗은 당시 최신 무기를 갖추고 무시무시한 갑옷을 입은데다 칼과 투창을 가진 데 반해 다윗이 가진 것은 물매 뿐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이 바로 다윗이 가진 최대의 강점이었다. 다윗은 평소 물매를 써서 사자와 늑대로부터 양떼를 지켜왔기 때문이다. 그게 자신의 장기였으며, 따라서 다윗은 거대한 골리앗에 맞설 자신이 있었다. 다윗은 골리앗을 향해 정조준하고 돌을 날릴 때 골리앗의 가장 취약한 부분을 정확히 맞출 수 있다는 확신이 있었던 것이다. 


0…투견(鬪犬) 경기에서 ‘언더독(Underdog)’은 싸움에 져서 밑에 깔린 개를, ‘탑독(Topdog)’은 위에서 이기고 있는 개를 뜻한다. 언더독 효과는 절대 강자가 존재할 때 상대적 약자가 강자를 이겨주기를 바라며 응원하는 현상이다. 스포츠에서 약자를 응원하거나 선거 투표장에서 약한 후보에게 동정표가 몰리는 것이 바로 이 효과다. 


 지금 온타리오주 정치에서 다윗이요, 언더독 격인 조성훈(Stan Cho) 후보가 뛰고 있다. 상대방은 골리앗에 비유될 만한 인물이다. 내리 4선에 지명도도 높은 노장… 그러나 다윗의 ‘결핍’이 오히려 승리요인이 될 수 있다. 자신의 장점에 확신을 갖고, 이를 악물고 뛰어야 하는 이유다. 


 조성훈 후보 외에도 연방의원에 도전하는 1.5세 신윤주(Nelly)씨가 리치몬드힐 지역구 경선에 도전한다. 신 후보 역시 아직은 정치판에서 다윗에 불과하다. 그러나 약점은 때로 강력한 무기가 된다. 자신이 지금 약자로 존재한다는 것은 문을 열어 기회를 만들고, 자신을 가르치고 일깨우며, 그런 처지가 아니었다면 생각할 수 없었던 것을 가능하게 만들 수 있다. 험난한 정치판에서 젊은 한인들의 활약을 기대한다.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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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2-09
고대, 해병대, 호남향우회

 

 

 학연, 지연, 혈연 등 연고(緣故)에 유난히 애착심이 강한 한국인의 인맥 중에서도 가장 잘 뭉치기로 유명한 3대 집단이 있으니 바로 고려대 교우회, 해병대 전우회, 호남향우회가 그것이다. 이들의 동류(同類)의식은 아주 끈끈해서 세계 어딜 가나 커넥션을 맺고 살아가고 있다. 세간에서는 이들을 한국의 3대 마피아라 부르기도 한다. 나는 이 중에 두 집단(학연, 군대)에 속해 있다. 혹자는 충청도 출신인 나의 말씨가 꼭 호남 같다고 3개 집단에 다 속하는 것 아니냐고 농담을 하기도 한다. 또 누군가는 말한다. 마음만 먹으면 웬만한 단체장 정도는 쉽게 꿰찰 수 있겠다고. 결속력 강한 이들 집단에서 강력히 밀어주면 되니까.   


 이들 집단의 공통적인 특징은, 꾸밈없이 소탈하고 단순 소박하면서도 자기 색깔과 주관이 비교적 뚜렷하고 의협심도 강한 편이라는 것이다. 주변에 이들 출신 사람을 보면 대개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이들 세 조직 가운데서도 특히 고대 교우회는 결속력 강하기로 유명하다. 언젠가 서울대, 고려대, 연세대가 각각 동문회보를 발송한 적이 있는데, 동문회비 납부율이 서울대 동창회는 23%, 연세대 는 19%였다. 그런데 고대 교우회는 납부율이 93%에 달했다. 고대는 동창회 이름도 흔히 쓰는 동문회가 아닌 ‘교우회’라 부른다. 토론토에도 예외없이 고대 교우회가 ‘득세’하고 있다. 고대 교우회는 송년행사도 규모가 크기로 유명하다. 부부 합해 150불짜리 뱅큇홀에서 송년행사를 하는 동창회는 아마 없을 것이다. 


0…지난주 고대 송년행사에서는 가슴 뭉클한 장면이 있었다. 80대 후반의 노 선배님이 벌써 수년째 사재(私財)를 들여 교우 자녀들에게 수천 달러의 장학금을 희사하고 계신다. 선배님은 “저는 오직 후배와 자녀들이 잘 되는 것을 바랄 뿐”이라며 겸손해 하셨다. 이런 일은 결코 쉬운 게 아니다. 후배들에 대한 사랑이 얼마나 깊으면 이렇게 하실까. 선배님의 뒤를 이어 앞으로는 후배 교우가 이 일을 이어갈 계획이다. 비즈니스계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여자 후배인데, 아무리 사업이 잘 된다 해도 역시 교우회 사랑이 깊지 않으면 절대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이날은 특히 병석에 계신 80객의 여자 선배님이 휠체어에 의지하신 채 행사에 참석하셨다. 선배님께서는 “후배님들 모두 건강하시고 화목하라”는 말씀을 전하시고 먼저 자리를 뜨셨다. 같은 학과, 같은 학번의 부부교우이신데, 아내의 휠체어를 미시는 남자 선배님은 수년 전의 당당했던 풍채가 어디 가고 허약하신 모습이 뚜렷했다. 이런 모습을 보면서 무심한 세월이 흘러가고 있음을 실감한다.  


 아무튼, 이런 끈끈한 모습은 고대 행사에서만 볼 수 있는 장면이 아닐까 한다. 이해관계로 얽히고 설킨 요즘 세상에 이처럼 순수한 단체가 아직도 존재한다는 사실이 신기할 정도이며, 이런 단체에 소속돼 있다는 사실에 새삼 긍지와 자부심이 솟아 오른다.


0…그런데 이상하게 올해 행사에서는 왠지 허전한 마음이 들었다. 참석자 수도 전보다 많이 줄었고 분위기도 크게 흥겹지가 않았다. 특히 연세 드신 선배님들과 젊은 교우들 모습이 눈에 띄게 줄었다. 이런 모습을 보며 내가 어느새 중간 학번 이상의 시니어 그룹에 들어가기 시작했구나 하는 느낌이 들었다. 또한 이제까지는 송년파티 전에 이미 차기회장을 선임해 인사를 드리는 것이 관례였는데, 이번엔 차기회장이 정해지지 않아 현장에서 인물을 구하느라 애를 먹었다. 이에 한 선배님은 혀를 차며 아쉽다는 말씀을 하셨다. “대(大) 고대가 어쩌다 이렇게 됐나…”             


 이런 현상은 이민사회 어딜 가나 흔히 보는 모습들이다. 특히 결속력 강하기로 유명한 집단에서도 분위기가 예전 같지가 않은 것이다. 그동안 고대, 해병대, 향우회 등은 서로 밀어주고 당겨주고 하며 철통같은 단결력을 과시했다. 그러나 이젠 많이 달라졌다. 정서도 전 같이 끈끈하지가 않다. 그것은 대(代)를 이을 젊은이들 참가가 저조한 것이 가장 큰 이유다. 


 젊은층 중에는 기성세대들과 어울리는 것을 고리타분하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한번 모임에 참석해보고선 다음부터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 경우가 많다. 대다수의 한인단체 모임이 노년층 위주로 이루어지는 것은 그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젊은층은 한창 일을 해야 하기 때문에 시간적 여유가 없는 것이 가장 큰 이유다. 


 나의 경우 2년 전 선배님들의 강권으로 어쩔수 없이 맡았던 향우회장 자리를 지금쯤은 누군가가 이어서 맡아줘야 하는데 선뜻 나서는 사람이 없다. 이러다 보니 전에 회장을 했던 분들 가운데 다시 물색을 해야 할 판이다. 대개 은퇴한 어르신들이 시간 여유가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기성세대가 다시 전면에 나서면 젊은층은 또 외면을 하는 악순환이 거듭되고 있다.           


 다른 한인단체 중에도 순수한 봉사나 친목단체의 경우 회장 자리를 서로 고사하는 바람에 리더 구하기가 쉽지 않다. 개중에는 대(代)가 끊길 상황에 이른 단체도 있다. 캐나다 한인사회 발전에 크게 기여해온 파독동우회 같은 단체는 회원들의 고령화로 회원 수가 갈수록 줄어드는데다 더 이상 젊은피 수혈도 안돼 언제까지 존속할 수 있을지 걱정이다. 


 서로 밀고 당겨주며 발전해온 한인사회가 갈수록 시드는 느낌이다.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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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1-30
걸을 수만 있다면…

 
걸을 수만 있다면…

 

 

 

“걸을 수만 있다면, 
더 큰 복은 바라지 않겠습니다.”
누군가는 지금 그렇게 기도를 합니다. 

 

“설 수만 있다면, 
더 큰 복은 바라지 않겠습니다.” 
누군가는 지금 그렇게 기도를 합니다. 

 

“들을 수만 있다면, 
더 큰 복은 바라지 않겠습니다.” 
누군가는 지금 그렇게 기도를 합니다. 

 

“말할 수만 있다면, 
더 큰 복은 바라지 않겠습니다.” 
누군가는 지금 그렇게 기도를 합니다. 

 

“볼 수만 있다면, 
더 큰 복은 바라지 않겠습니다.” 
누군가는 지금 그렇게 기도를 합니다. 

 

“살 수만 있다면, 
더 큰 복은 바라지 않겠습니다.” 
누군가는 지금 그렇게 기도를 합니다. 


  
놀랍게도 누군가의 간절한 소원을 
나는 다 이루고 살았습니다. 

 

놀랍게도 누군가가 
간절히 기다리는 기적이 
내게는 날마다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부자 되지 못해도, 
빼어난 외모 아니어도, 
지혜롭지 못해도, 
내 삶에 날마다 감사하겠습니다. 

 

날마다 누군가의 소원을 이루고, 
날마다 기적이 일어나는 나의 하루를, 
나의 삶을 사랑하겠습니다. 

 

사랑합니다. 
내 삶, 
내 인생, 
나•••••••. 

 

어떻게 해야 행복해지는지 
고민하지 않겠습니다. 
내가 얼마나 행복한 사람인지 
날마다 깨닫겠습니다. 

 

나의 하루는 기적입니다. 
나는 행복한 사람입니다. 
나는 행복한 사람입니다. 

 


-‘언더우드의 기도 낙서장‘ 중-

 

 

 

 

 지난 주일 미사 때 보좌신부님께서 들려주신 위의 시는 새삼 나의 요즘 삶을 뒤돌아 보게 했다.   생각해 보면 이 나이토록 크게 가진 것도, 이룬 것도 없지만, 그렇다고 크게 부족한 것도 없는데 언제나 부족한 듯 허기지고, 무언가를 찾아 헤매는 나의 일상을 준엄하게 꾸짖는 듯했다. 


0…위의 시를 남기신 언더우드 목사(Horace Grant Underwood, 1859~1916)는 영국 런던에서 태어나 13세 때 미국으로 이주했다. 1884년 조선 최초의 장로교 선교사로 임명돼 이듬해부터 30여년 이상을 한국에 머물며 선교활동을 펼쳤다. 


 그는 선교 뿐 아니라 연희전문학교(연세대 전신)를 설립해 초대 교장을 지내는 등 한국의 교육, 문화, 사회 등 각 분야에 기여했다. 원두우(元杜尤) 라는 한국 이름까지 가지셨던 그 분은 일제에 의해 반일인사로 낙인찍힐 정도로 한국민의 편에 섰다가 건강 악화로 미국으로 돌아간 후 세상을 떠났다. 그의 시신은 조선으로 옮겨져 양화진 외인묘지에 안장됐고, 그 후에도 언더우드가문은 조선에 남아 3대에 걸쳐 의료선교와 학교 설립 등으로 선교와 교육 발전에 헌신했다.


 언더우드 목사는 당시 암울하기만 한 조선의 척박한 현실을 이렇게 표현하기도 했다. 


“주여! 지금은 아무 것도 보이지 않습니다./주님, 메마르고 가난한 땅, 나무 한 그루 시원하게 자라 오르지 못하고 있는 땅에/저희들은 옮겨와 앉았습니다. /그 넓고 넓은 태평양을 어떻게 건너 왔는지/그 사실이 기적입니다. /주께서 붙잡아 뚝 떨어뜨려 놓으신 듯한 이 곳,/지금은 아무 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보이는 것은 고집스럽게 얼룩진 어둠뿐입니다. /어둠과 가난과 인습에 묶여 있는 조선사람뿐입니다…”  -‘보이지 않는 조선의 마음’ 


0…돌이켜보면 그동안 내가 원하는 것은 거의 모두 이루어진 것이나 마찬가지다. 풍족하진 않지만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아 있는 어린 시절을 보내고, 정규 학교를 다니고, 직장생활도 해보고, 예쁘고 이지적인 아내를 만나 결혼도 하고, 그렇게 바라던 이민도 오고, 아이들이 영육간에 건강히 자라주고, 자그나마 집 한 칸도 있고… 그런데도 늘 무언가 모자란 듯 끝없이 더 많은 것을 바라고 있는 나.   


 남과 비교되지 않는 삶을 찾아 이민까지 왔으면서도 남과 같지 못한, 남보다 못한 나의 생활에 불만과 짜증을 토로하는 모습은 얼마나 어리석은가. 이 병만 나으면, 이 고비만 넘기면 , 이번 딜(deal)만 잘 성사되면, 주위에 베풀면서 살자고 다짐하지만 막상 그런 소망이 이루어지고 나면 철석같은 다짐은 오간데 없이 사라지고 또 다시 다른 먹잇감을 잡으려 속을 끓이며 사는 나.     


 걸을 수 없는 사람에게, 설 수 없는 사람에게, 말할 수 없는 사람에게, 볼 수 없는 사람에게, 먹을 수 없는 사람에게, 나는 얼마나 부러운 존재인가. 날마다 이런 기적같은 삶을 살고 있는 나는 얼마나 행복한 존재인가. 그런데 무엇이 모자라 자꾸만 허기져 하는지.    


 ‘작은 예수’, ‘거지 성자’로 불린 고 최귀동 할아버지는 ‘얻어먹을 수 있는 힘만 있어도 그것은 주님의 은총’이라 했다. 오갈 데 없는 이들을 위한 사회시설 ‘꽃동네’는 이렇게 태동했다. 


 세월은 시위를 벗어난 화살같이 빠르기만 한데, 연말이 되니 새삼 이런 생각이 든다. 나는 과연 현재 생활에 얼마나 행복해하며 사는가. 바로 곁에 있는 그것을 외면한 채 왜 애써 다른 곳을 두리번거리는가.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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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1-23
영일만의 기적

 
 

▲ 1970년 4월 1일 포항종합제철 1기 착공식에서 박정희 대통령(가운데)과 착공 버튼을 누르는 박태준 사장. 오른쪽은 김학렬 부총리

 

 


 “황무지든 뭐든 개간해야지. 나는 경부고속도로를 직접 감독할 거야. 임자는 종합제철소야. 고속도로가 되고 제철소가 되는 그날엔 우리도 공업국가의 꿈을 실현하게 되는 거야.” 


 1965년 5월 어느날, 당시 박정희 대통령이 박태준을 청와대로 불러 다짐했다는 말이다. 그로부터 3년 후 포항종합제철㈜가 설립되고 또 그로부터 5년 후(1973년 7월) 마침내 포항제철 1기 설비 종합 준공식이 열렸다. 이렇게 영일만의 허허벌판에서 기적처럼 탄생한 포항제철이야말로 대한민국 산업근대화 과정에서 절대로 빠질 수 없는 위대한 이름이 됐다. 


 2002년 3월 15일, 포스코(POSCO, Pohang Iron and Steel Company)로 이름을 바꾼 세계 최고 수준의 철강회사 포항제철 그룹은 2017년 현재 대한민국에서 시가총액 5위의 기업집단이자 자산규모 70조 원에 달하는 거대한 기업군이다. 특히 한국에서 보기 드문 전문경영인이 운영하는 대기업 집단이며, 지배구조 최우수 기업으로 정평이 나있다.


 포철 신화는 물론 박정희의 전폭적인 지원이 있었기에 가능했지만, 박태준이라는 거인이 있었기에 또한 가능했다. 정권이 바뀐 뒤 수 많은 정치인들의 비리 혐의가 줄줄이 터져 나왔지만 박태준만은 별로 잡아낼 것이 없었다. 그만큼 그는 사심 없이 국가를 위해 헌신했다는 뜻이다.  

     
0…“두드리면 열리리! 이 사람아, 비 맞은 장닭처럼 꼴이 그게 뭔가. 박태준이 이것밖에 안 되나? 힘을 내라고. 다시 부딪쳐 보는 거야…” 포항제철 건설자금 문제로 벽에 부닥쳤을 때, 박태준의 오랜 친구 박철언이 건넨 위로와 격려의 말이었다고 한다.


 박정희(1917년 11월 14일~1979년 10월 26일)와 ‘철의 사나이’ 청암(靑巖) 박태준(1927~2011)이 영일만 맨땅에서 이룩한 기적은 군사정권의 숱한 공과(功過) 논란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 경제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한 것이 틀림없다. 개발독재의 어두운 그림자도 있긴 했지만 그 시대에 그런 무모할 정도의 추진력이 없었다면 영일만 모래 위에 이처럼 거대한 성을 쌓을 수는 없었을 것이다. 


 마침 지난 11월 14일은 박정희 탄생 100주년이었다. 아직도 그를 추모하는 측과 거부하는 세력이 신경전을 벌이는 모습이 씁쓸하다.     


 0…포항은 제철소와 해병대의 도시다. 포항에서 이 두 단어를 빼면 무엇이 남을까 싶다. 내가 포항을 처음 찾은 것은 해병대 훈련을 받기 위해 입대한 1981년 여름이었다. 그때 처음 들어선 도시의 이미지는 거대한 제철소, 바로 그것이었다. 포철 창업자 박태준이 썼다는 ‘자원은 유한, 창의는 무한’이라는 문구가 포철 정문에  대형 아치로 걸려 있었는데  그 위용이 가히 외지인을 압도했다.   


 포항에서의 초기 군 경험, 특히 훈련시절은 아무리 장교훈련이라곤 하지만- (지금은 아련한 추억으로 남아 있지만)- 당시는 무척 고된 생활이었다. 일주일씩 굶어가며 밤낮없이 강행군을 하고 바닷가 뻘밭을 포복하는 지옥같은 훈련이 얼마나 힘들었으면 나중에 제대하고 나면 포항쪽에 대고 오줌도 안 눈다고들 했을까. 


 그런 고된 생활을 거쳐 임관을 했고, 그 후의 생활은 비교적 안정됐다. 나는 포항에서도 외곽인 오천지역의 전차대대에서 근무했는데, 인근 마을에서 자취를 하며 자전거를 타고 출퇴근하던 기억이 아련하다. 


 포철과 함께 포항의 상징인 해병대는 6.25 한국전이 한창이던 1950년 9월 1일 제1연대로 창설됐으며, 1955년 3월 사단급 제대로 증편돼 오늘에 이른다. 현 해병대 1사단은 단일부대로서는 대한민국 국군 중 최대 규모를 자랑한다. 포항엔 1사단 외에도 교육훈련부대가 있어 명실공히 해병대의 본거지라 할 수 있다.    


 내가 소대장으로 근무하던 당시 포항시내에서 만나는 사람 열명 중 9명 정도는 포철 직원 아니면 해병대원이었다. 특히 포철 직원들은 급여도 좋고 후생복지가 잘 돼있어 선망의 직장으로 불렸다. 포항 시내 음식점에선 포철 신분증만 보이면 얼마든지 외상 술을 먹을 수 있었다. 마침 나의 친한 친구가 포철 기숙사에 기거하고 있었는데, 시설이 웬만한 호텔 이상으로 훌륭했다. 우리가 서로 과음을 한 날엔 친구 기숙사에서 하룻밤 신세를 지곤 했다.       


0…이처럼 국가적으로도 중요한 도시인 포항에서 최근 지진이 일어났다. 지진으로 인한 피해 규모도 갈수록 늘고 있다. 겨울 추위가 닥치고 있는 시점에 발생해 주민들 고생이 말이 아니다. 특히 대입 수험생들이 수능시험을 제때 치르지 못하고 시험이 연기되는 혼란을 겪었다.  


 포항 지진은 지난해 9월의 경주 지진에 비해 위력이 작음에도 피해는 경주 때보다 훨씬 큰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 지역적으로 연약한 퇴적암층에 인구밀집 등 여러 요인들이 지적되고 있는데, 특히 액상화(液?化, liquefaction)현상이 나타나 걱정이다. 이는 지진 흔들림으로 땅 아래 있던 물이 지표면 위로 솟아올라 지반이 액체 상태로 변하는 현상인데, 이로 인해 일부에서 지반 침하가 일어날 수도 있다고 한다.


 전혀 다른나라 일로만 여겨지던 지진, 그러나 한국도 이젠 안전지대가 아니다. 곳곳에서 위험징후가 나타나고 있다. 그런데도 한국엔 워낙 사건사고가 많다 보니 벌써 뉴스 순위에서 밀려나고 있다. 영일만의 기적처럼 피땀 흘려 이룬 성과도 하루아침에 잃어버린다면 얼마나 허무한가. 견고한 내진(耐震)설계 등 철저를 기해 소중한 인명과 자산을 지켜내야겠다.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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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1-18
위대한 한인사회

 
 

▲지난 11일(토) 오후 토론토한인회관 대강당에서 무궁화요양원 모금 현황을 설명하는 인수추진위원들. 

 

 


 가슴 뭉클한 장면이었다. 지난 7월 말, 곡절 많고 의구심도 적지 않았던 무궁화요양원 인수를 위해 모금운동을 시작할 때만 해도 이처럼 큰 성과를 거두리라고 확신한 사람은 아마 없었을 것이다. 개중에는 “무궁화에서 또 돈을 걷느냐”며 불쾌감을 나타내는 분들도 있었다. 그러나 모금이 시작되자 각계의 동참이 이어졌고, 2개월 반만에 기적같은 일이 일어났다. “무궁화를 일단 살리고 보자”는 호소가 동포들의 가슴을 흔든 것이다.  


0…무궁화요양원 살리기 동포 모금 결과에 대한 설명회가 지난 11일(토) 오후 토론토한인회관 대강당에서 열렸다. 이날 행사에서는 요양원 인수추진위원들이 나와 성금 최소 목표액(350만 달러) 달성에 대한 자축과 함께 향후 인수절차와 자금충당 계획 등에 대해 진지하게 설명했다. 법정관리사인 회계법인 딜로이트 관계자도 참석해 한인들이 궁금해하는 사항에 답했다. 이 관계자는 요양원 시설을 콘도와 분리해 판매함에 따른 절차와 유틸리티를 나누는 방법 등으로 입찰이 지연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말하자면 머리가 붙은 샴쌍둥이를 분리해내는 수술과 같은 것이다. 


 그동안 인수추진위원으로 김도헌 박사(신장전문의), 김은희 변호사, 조성용(캐한기업인협회장), 강대하, 이지연씨 등이 주도했고 유동환, 박진동씨 등이 뒤에서 많은 도움을 주었다. 설명회 말미에 김은희 변호사는 열두 살 어린이가 성금과 함께 보내온 편지를 소개하며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 이들의 헌신적인 노력 덕분에 무궁화요양원은 이제 한민족 손으로 넘어올 가능성이 커졌다. 


 그런데 이날 설명회장에는 의외로 참석자가 적었다. 강당에 많은 좌석을 준비했지만 자리가 많이 비었다. 단기간에 거액의 성금이 모아진 것을 감안하면 설명회에 많은 인파가 몰리는 것이 정상일텐데 다소 뜻밖이었다. 물론 이 날이 캐나다 현충일이라서 관련 행사가 많이 열린 탓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성금을 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소중한 자금이 어디에 어떻게 쓰일 것인지, 관심있게 지켜보는 것도 중요하다 할 것이다. 


 한인들은 대체로 사람을 잘 믿기에 이번에도 성금을 내놓고선 그저 ‘잘 하겠지’ 라고 믿는 것 같다. 그러나 믿는 것도 좋지만 앞으로 지속적으로 이 문제를 관심있게 지켜 보아야 최종 결과도 좋을 것이다. 


0…이번 모금에는 1200여 개인과 단체에서 참가한 것으로 기록됐지만 신자가 수천 명에 달하는 대형교회를 생각하면 총 참가자는 1만 명이 훨씬 넘을 것으로 추산된다. 이야말로 개미군단의 위력을 유감없이 발휘한 것이라 할 수있다. 개중에는 재력께나 있는 분들과 주재 지상사 등이 외면한 경우도 없지 않아 아쉬움을 준다. 그러나 앞으로도 모금운동은 계속될 것이니 차후 동참을 기대해본다.    


 이날 설명회에서 한 원로분은 “만에 하나, 입찰에 성공하지 못하더라도 모금된 성금을 반환할 것이라는 약속을 변경해서라도 앞으로 계속해서 요양원 설립을 추진해 나가야 할 것”이라고 조언하기도 했다. 


 인수위는 지금까지 총 355만여 달러가 모금됐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 중 139만여 달러는 약정액(pledge)으로 아직 입금을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 또한 공식 모금은 끝났지만 접수마감 후에도 온정은 계속해서 답지하고 있다. 요양원 입찰공고는 12월이나 새해 1월 초에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아직까지 뚜렷한 경쟁자는 없어 보이지만 그렇다고 마음을 놓을 수는 없다. 


 요양원 인수주체는 비영리자선단체 차격증을 갖고 있는 아리랑시니어센터(이사장 김은희)이다. 아리랑센터는 향후 투명성 확보를 위한 회계감사, 전문경영인 채용 등 경영에 관한 조언 및 감사, 기부자들의 의견 수렴과 개진 등을 맡는다.


 때마침 온타리오 정부에서는 최근 무려 1억5천500만 달러에 달하는 노년층 대책을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향후 4년에 걸쳐 5천 개의 장기요양 침상을, 10년 안에 무려 3만 개의 침상을 늘려나갈 계획이다. 갈수록 노년층이 느는 현실에 비추어 이는 비즈니스 측면에서도 시도해볼만한 가치가 있는 사업이다. 실버산업의 비중은 갈수록 늘어날 것이다. 


 인수위는 이런 점을 고려해 한인사회에서도 연중 모금운동을 통해 10년 안에 300개, 20년 안에 1천개의 요양침상을 갖춰가도록 노력할 예정이다. 이런 상황에서 일각에서는 부지가 넉넉한 대형 한인교회들이 그 터를 활용해 요양시설을 짓는 것도 고려해볼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는데, 매우 일리가 있다고 본다.  


0…반세기 캐나다 한인이민사에서 획기적 사건들이 적지 않았지만 무궁화요양원 살리기 모금운동도 이민사를 다시 쓰게 하는 중요한 사건이 됐다. 무려  35년 전에 태동하기 시작한 무궁화요양원. 그동안 파란많은 사연은 필설(筆舌)로 표현하지 못할 정도다. 온갖 우여곡절이 있었고 일부 시행착오 등 만족스럽지 못한 측면도 있었지만, 지난(至難)한 길을 걸어온 무궁화에 대해 재력가는 물론, 일반 서민들까지 기부의 손길로 화답했다. 


 인수위는 의사, 변호사 등 동포 1.5세 전문인들이 주도적으로 나섬으로써 신뢰를 주었다. 인수위가 모금 계좌에 있는 돈을 찾으려면 서명권자 5명 전원이 서명해야 가능하다. 이런 점들 때문에 동포들이 믿고 동참한 것이다. 


 특히 이 캠페인에는 스스로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도 동참함으로써 가슴을 뭉클하게 했다. 장애인공동체, 식당 종업원들, 어린 학생들, 눈물겨운 가족단위 참여… 친목단체와 동창회, 향우회에서도 성금을 보내왔고, 특히 대형 한인교회들이 앞장서 주도한 것은 이민교회의 진정한 방향을 보여준 사례다.


 한인동포들이 이처럼 위대해 보인 적이 없다. 이는 분명 아주 소중한 기억으로 남을 것이다. 우리는 지금 한인사를 다시 쓰고 있다.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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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wlee
이용우
62007
9183
2017-11-09
내조(內助)의 힘

 

 

▲지난 11월 2일 민초해외문학상 시상식에서 나란히 선 (왼쪽부터) 이유식.이계복 선생 부부, 김봉희.최연홍 박사 부부 

 

 

 제10회 민초해외문학상 시상식이 지난 2일(목) 저녁 알버타주 캘거리 시내에 있는 한 중국식당에서 개최됐다. 이 행사에는 130여 명의 한인.비한인들이 참석해 좌석을 꽉 메운 가운데 시종 진지하고 흥겨운 분위기 속에 진행됐다. 민초(民草)문학상은 캘거리의 이유식 시인이 2008년 자신의 아호를 따고 사재를 출연해 제정한 것으로, 시상식은 매년 전세계 각 지역에서 열리는데 이번은 10회째를 맞아 민초 시인의 터전인 캘거리에서 열게 됐다.    


 이날 시상식에서 재미시인 최연홍 박사가 대상(작품 ‘하얀 목화꼬리 사슴’)을 수상했고, 에드먼튼에 살던 고 유인형 수필가가 특별상을 수상했다. 유 선생 수상은 고인의 미망인 유재희 씨가 대신 받았다. 


 최 시인은 연세대 정외과를 졸업하고 미국 인디애나대학에서 행정학 박사학위를 취득했으며 워싱턴시립대, 서울시립대 강단에 서기도 했다. 다수의 한국어 시집과  영문시집을 펴냈으며, 미 의회도서관에서 시를 낭송한 최초의 한국시인이기도 하다. 고 유인형 수필가는 캐나다한인문협회원으로 활발한 작품활동을 하다 5년 전 암으로 별세했다.


 나는 민초 시인과의 여러해 인연 덕에 10년 전 첫 시상식에 이어 이번에도 특별 초대를 받았다. 그날 따라 캘거리에는 올들어 첫눈이 내려 온세상이 하얗게 덮혀 있었다. 인연도 묘해, 그날은 마침 내가 꼭 20년 전 이민답사차 캘거리를 방문한 날이었다. 내가 그때 캘거리에 정착했더라면 지금쯤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0…시상식 행사가 성황리에 끝난 후, 민초 시인은 워싱턴과 토론토에서 온 최 박사 내외와 나를 위해 밴프 로키 관광에 나섰다. 그런데, 캘거리에는 가는 날 첫눈이 내리더니 우리가 머문 사흘 내내 눈가루가 흩뿌리고 기온도 영하 10도 안팎을 오르내렸다. 그래서 솔직히 나는 장거리 외출에 별 생각이 없었다. 도로에 눈이 수북히 쌓여 도저히 운전을 해서 갈 수 있을 것 같지가 않았다. 그런데 민초 시인 내외분은 이런 날씨에 개의(介意)하는 기색이 아니었다. 부인인 이계복 여사에게 “이런 날 무리가 아닌가요?” 했더니 “여기서 눈때문에 움직이지 못한다면 아무 일도 못하죠.” 라며 아무렇지도 않다는 것이다. 오히려 내가 머쓱해졌다. 


 차를 운전해가는데, 하이웨이에 눈이 쌓여 빙판길이나 다름 없는데 민초 시인은 콧노래를 부르며 즐겁게 우리들을 태우고 가셨다. 로키는 어느 계절에 보아도 좋지만 눈덮힌 웅대한 산맥은 신비로움을 더했다. 차안에서 최 박사의 부인 김봉희 여사는 “와우, 와우” 하며 감탄사를 연발했다. 


 밴프까지 2시간여의 드라이브 동안 우리는 여러 얘기들을 나누었는데, 내가 느낀 것 중 하나는 이 분들이 이 정도의 위치까지 오를 수 있었던 것은 부인의 내조(內助) 덕이 엄청 컸다는 사실이다. 소탈하신 최 박사는 격식없이 많은 대화를 나누는데, 가끔 두분 내외의 이면을 짐작케하는 장면들도 있었다. 지면에 표현은 못하지만, 성공한 것만 눈에 보이는 분들이라고 왜 애환이 없겠는가. 


 우리 일행 다섯이 림록(Rimrock)호텔 창가에 앉아 와인을 들면서 나누는 따스한 대화는 정겹기만 했다. 여기서도 두분 내외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었다. 그야말로 나를 포함한 세 남자의 공통점은 감성적이고 약간은 즉흥적이라는 사실을 발견했다. 문학하는 남자들이니 그럴 수밖에… 반대로 이계복, 김봉희 두 여사는 논리적이고 차분하다. 이런 모습은 우리 부부와도 닮았다. 한쪽이 감성적이면 다른 한쪽은 논리적이라야 조화가 맞을 것이다. 둘 다 성격이 같다면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기 쉬울 것이다. 우리는 그런 얘기를 하면서 배꼽을 잡고 웃었다.     


 0…올해 76세인 만초 시인과는 15년여 동안 교류를 해오지만 이번에 새삼 느낀 점이 있다. 첫째 자기관리가 뛰어나다. 둘째, 결단력과 추진력이 강하다. 전날 행사 준비로 무척 피곤했을텐데도 새벽에 일어나 눈쌓인 마당을 헤치고 수영을 다녀오는 것을 보고 놀랐다. 또한 무슨 약속이든 한번 하면 어떤 상황에서도 반드시 지킨다는 것이다. 이런 신뢰가 바탕이 되어 비즈니스에서도 성공을 거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그러나 그런 이면에는 부인의 소리없는 내조가 큰몫을 했던 것을 누가 알까. 이번에 가까이서 본 부인의 총명과 지혜는 깊은 신뢰를 갖게 하기에 충분했다. 남편이 하자는대로 소리없이 순종하는 듯 하면서도 적당한 선에서 콘트롤을 하는 모습은 슬며시 미소를 짓게 한다. 가령 차를 운전하면서 수시로 옆을 돌아보며 이야기를 하는 낭군에게 “여보, 앞을 보고 운전하세요. 타신 분들이 불안해요.” 슬쩍 한마디 하니 민초 시인도 군소리 없이 따르는 모습에서 진솔한 부부의 모습이 이런 것 아닌가 생각됐다.


 내가 묵은 민초 시인댁 방은 호텔처럼 깨끗하고 쾌적했는데, 부인의 세심한 손길이 미친 흔적이 엿보였다. 


 무릇, 혼자서 이룩할 수 있는 일은 없는 것 같다. 부부가 합심해야 큰일도 이룰 수 있음을 다시 한번 깨닫는 기회였다. 참 소중한 시간을 갖게 해주신 이유식, 최연홍 두 분 내외분들, 모두 건강하게 잘 지내시기를.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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