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211)-진주를 배는 상처

 

자명종이 또 다시 울리고 있다. 글을 쓰려면 지금 일어나야 하는데 몸이 협조하지 않는다. 힘들게 일어나 몸과 목을 좌우로 돌려 본다. 멍하고 찌뿌둥하다. 세월에 장사 없다더니 신진대사가 느려졌는지 조금만 먹어도 몸이 불고, 잠자는 시간도 줄었다. 또한 잠자고 일어나도 피로가 쉬이 풀리지 않는다. 


정신은 청춘에 머물고 있는데 몸은 예전과 많이 다르다. 서유석 씨의 <가는 세월>의 가사가 구구절절이 마음에 와 박힌다. 서유석씨가 1970년대에 작사하고 부른 곡이다.

당시 20대 후반이나 30대 초반이었을 텐데, 어찌 가는 세월을 아쉬워하였는지 잘 이해되지 않는다.


“가는 세월 그 누구가 잡을 수가 있나요. 흘러 가는 시냇물을 막을 수가 있나요. 아가들이 자라나서 어른이 되듯이. 슬픔과 행복 속에 우리도 변했구려. 하지만 이것만은 변할 수 없어요. 새들이 저 하늘을 날아서 가듯이… 달이 가고 해가 가고 산천초목 다 바뀌어도, 이 내 몸이 흙이 되도 내 마음은 영원하리. 하지만 이것만은 변할 수 없어요. 새들이 저 하늘을 날아서 가듯이…”

 


 내친김에 두보(杜甫)의 시 <歲月(세월)>을 읽어 보자.


流水不復回(유수불부회) 흐르는 물 다시 돌아오지 않고
行雲難再尋(행운난재심) 떠도는 구름은 다시 볼 수 없네
老人頭上雪(노인두상설) 늙은이 머리 위에 내린 하얀 눈
春風吹不消(춘풍취불소) 봄바람 불어와도 녹지를 않고
春盡有歸日(춘진유귀일) 봄은 가도 다시 또 돌아오건만
老來無去時(노래무거시) 늙음은 한번 오면 갈 줄 모르네
春來草自生(춘래초자생) 봄이 오면 풀은 저절로 나건만
靑春留不住(청춘류부주) 청춘은 붙잡아도 머물지 않네
花有重開日(화유중개일) 꽃은 져도 다시 필 날이 있어도
人無更少年(인무갱소년) 사람은 다시 소년이 될 수 없고
山色古今同(산색고금동) 산의 색깔은 언제나 변함없는데
人心朝夕變(인심조석변) 세상인심 아침저녁으로 변하네

 


12월이니 이제 2018년도 얼마 남지 않았다. 어느덧 송구영신(送舊迎新)을 해야 한다. 1월에 태어났으니 곧 나이가 한 살 더해지리라. 오늘 회사에서 Secret Santa로 부터 선물을 받았다. 매년 하는 행사인데 참가자들이 추첨을 하여 자신에게 정해진 상대에게 익명으로 선물을 하는 것이다. 20불 한도에서 하기로 되어있기에, 내 경우 빨간 머그 컵과 20불짜리 팀호튼 카드를 몰래 주었다. 


익명으로 나에게 전달된 선물을 보고 매우 당황하고 부끄러웠다. 직접 만든 딸기잼, 머플러 등과 과자, 라이터 등 7가지를 정성스레 포장한 선물이다. 내가 준 선물은 너무 무성의하고 사랑이 담겨있지 않게 느껴졌다. 


삶 속에서 작은 사랑을 실천하며 사는 이와 그렇지 못한 나를 보는 시간이었다. 익명의 산타에게 감사한다. 곧 구세군의 자선냄비를 보게 되리라. ‘종소리를 들으면 꼭 화답하며 년말을 보내자.’며 다짐해 본다. 


오늘은 재산을 잃었으나 행복을 얻은 A씨에 대해 이야기 하겠다. A씨는 11년 전 대기업의 전산부장 직을 명퇴하고 캐나다로 이민을 왔다. 친구의 권유로 친구가 운영 중인 컴퓨터 관련 사업에 투자하였다. 초기부터 금전 문제로 친구와 이견이 생겨 투자금을 회수하려 하였으나 돈은 이미 다 사용되어, 찾을 수가 없었다.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파트너 관계를 유지하며, 비즈니스를 활성화 시키려고 노력하였지만, 예상치 못한 많은 문제점에 직면하여 적자만 누적되었다. 더 이상 투자해야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고 깨달았을 때는 이미 20만불 이상의 돈이 사라진 후였다. 


자신을 속인 친구를 상대로 손해 배상 청구 소송을 하였다. 민사 소송의 특성상 판결이 나기까지 오랜 시간이 소요되고, 변호사 비용을 포함하여 경비가 많이 발생 되었다. 2년간 소송에만 신경 쓰며 다른 일을 하지 않고 지내다, 정신을 차려보니 은행 계좌에 잔액이 $120,000 남았다. 


이 돈으로 집을 살 것인지, 비즈니스를 할 것인지 고민 하였으나, 가족회의를 통해 컨비니언스 스토어를 구입하기로 결정 하였다. 온 가족이 힘을 합쳐 열심히 가게를 운영 하면 잃은 돈도 다시 벌 수 있고, 재판이 끝나면 투자금을 회수하여 모든 일이 잘 될 것으로 생각하였다. 


지인이 소개해 주는 비즈니스를 충분한 사업검토 없이 구입하였다. 남을 신뢰하고, 열심히 일하는 근면한 성격의 A씨는 한국에서 별 어려움 없이 잘 살았다. 그러나 이민 후 첫 단추가 잘못 끼워져서 인지, 컨비니언스 사업도 예상대로 되지 않았다. 


임대료를 내고 나면 생활비가 부족하여 신용카드로 부족분을 메우며 생활 하였고, 5년간 컨비니언스를 꾸려온 결과, 은행 신용대출 한도 $50,000을 다 사용하였다. 미지급 변호사 비용만 $15,000이 남았고 결심 공판은 차일피일 미루어진다. 화병으로 술을 마셔야 잠을 잘 수 있고, 가족 관계도 매우 위태로운 상태였다. 


지인의 소개로 필자와 인연을 맺은 A씨에게 “다 비우고 새로 시작하라”고 파산 신청을 권고 하였다. 9개월이 지난 후, 모든 빚, 소송 등의 짐을 내려 놓고 편하게 살고 있다. 


본인 명의의 집도 없고, 직장 생활을 하며 힘들게 살지만 행복하다는 A씨에게 "건강해 보이고, 얼굴도 환해진 이유가 뭐냐"고 물으니 "부족한 나를 깨달았고, 그럼에도 나를 믿고 따르는 내 가족에게 감사하다. 좋은 가족을 주신 주님께 감사 드리며 범사에 감사하다 보니 마음이 평화로워지고 행복하다"고 하였다. 


그 감사에 보답하기 위해 작은 봉급을 쪼개어 어려운 이웃에게 매달 쌀 한 포대를 나누는 그의 모습에서 사랑의 무지개가 쏟아져 나오는 것 같다. 경제적인 장애는 법의 지원을 받아 누구나 치유가 가능하지만, A씨처럼 자신의 고통을 통해, 어려운 이웃의 고통을 같이 느끼고, 나누려는 사람은 흔치 않다. 


김남조 시인의 진주를 배는 상처가 생각난다. 조개는 몸에 들어온 모난 이물질로 인해 상처를 입고, 그 아픔에서 벗어나려고 이물질을 감싸는 성분을 배출, 동그란 진주를 만든다. A씨는 재정난이라는 상처를 통해 큰 사랑을 품게 되었다. 


넉넉하지 못하여도 나누는 삶을 사는 그를 보며 내 안에 계신 주님을 만난다. 세월이 만든 주름살도 사랑을 밴 흔적으로 보이는 여생을 살리라. 독자 여러분도 연말연시 사랑을 나누며 행복한 시간 보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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