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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순자 수필

    한순자

    경기도 여주 출생, 건국대 국어국문학과 졸업, 경기도 광수중학교 근무, 1992년 캐나다 이민, 캐나다문인협회 수필 부문 입상, 2006년 해외동포문학상, 작품집 <인생에 실패는 없다 다만 또 다른 삶이 있을 뿐이다>, <나이만큼 행복한 여자>, <밀리언 달러 티켓 나도 한장>,<행복이라는 이름의 여행> 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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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련한 사람들

 

 

가련한 사람들

 

 사람을 만나고 돌아설 때면 인상이 오랫동안 남아 있는 사람이 있다. 그런 사람 중엔 만날수록 좋아지는 사람, 두 번도 보고 싶지 않은 사람, 불쌍한 사람, 가련한 사람, 한심한 사람, 얄미운 사람 등으로 가슴에 남아 있을 때가 있다.

 

 가게에 오는 손님 중에 아무리 생각해도 가련하다 싶은 사람이 있었다. 그는 몽골 남자로서 이라크 여자와 결혼을 해서 아들까지 하나 낳고는 이혼을 했다고 한다. 여자는 이라크로 다시 돌아갔다가 돌아와서 다른 남자와 재혼해서 살고 있으며, 그 아들아이가 주말과 주일엔 엄마 집으로 간다고 한다.

 

 언젠가 그는 아들아이가 엄마 집으로 가고, 혼자 집에 있기 싫어서, 그것도 그 여자가 아이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올 시간이어서 밖으로 나왔다고 하는 것이었다. 평소에 아무도 없는 집에 들어가기 싫어서 아들아이가 학교에서 돌아오면 도서관으로 데리고 가서 책도 읽고 하다가 밖에서 대충 사먹고 들어간다고 한다.

 

 애인이 한국 여자가 있었다는 그 남자는, 한국말도 어느 만큼은 하는 편이어서 다시 결혼을 하지 그러느냐고 했더니 지금은 애인이 없으며 서양 여자는 싫고, 한국 여자, 몽골 여자, 티베트 여자가 좋다고 한다.

 

 하긴 그 남자뿐이 아닌 가끔은 동양 여자, 그것도 한국 여자를 소개시켜 달라는 얘기를 듣곤 하는데, 오늘날 서양 여자보다도 동양 여자를 더 찾는 듯한 인상은 어쩌면 당연한 얘기인지 모른다. 그것은 여자들이 잘해주고 위하는 남자를 좋아하듯, 남자들도 여자에게 받고 싶은 심리가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남편을 섬기고 위함은 서양 여자들보다는 동양 여자들이 더 낫다고 알고 있기에 동양 여자, 그 중에도 한국 여자를 소개시켜 달라는 얘기는 그냥 하는 그런 얘기가 아님도 느끼게 된다.

 

 그 남자는 청소도 요리도 할 줄 모르며 그야말로 생활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모르는 사람처럼 보였다. 언젠가는 내가 약식을 해서 조금 가지고 간 날 마침 그가 왔기에 조금 먹어 보라고 주었더니 맛이 있다면서 어떻게 만드는지 묻기까지 하는 것이었다.

 

 밖에 나가서 돈은 벌어야하니 다시 나가곤 하지만, 아무도 없는 집에 들어오면 다시 또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치울 줄도 모르고 요리도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니 다시 또 밖으로 나와서 무엇인가 사먹고 배회하는 모양이다.

 

 그렇다고 늘 그렇지는 않겠지만 우선 정서적으로 안정을 하지 못하니 집에 느긋하게 있지를 못하고 집에서는 잠만 자고 나온다는 얘기를 서슴없이 하는 것이다.

 

 아들아이는 아빠가 좋은 여자 만나서 재혼하기를 바라지만 마음이 가는 사람도 없고 13살이나 되는 아들도 있어 그 아이 또한 걸림돌이라고 얘기한다.

강아지라도 한 마리 키워 보지 그러느냐고 했더니 매일 집에 혼자 있어야 하는데 누가 돌볼 수 있어 기르겠느냐며 그것도 못하겠다고 한다.

 

 점점 독신주의가 늘어 감은 누구의 눈치나 간섭받지 않고 나하고 싶은 대로 마음껏 하며 내 삶을 아낌없이 살고자 하는데서 그런 부류의 사람들이 늘어나기도 하고, 진정 독신주의를 즐기고 원하는 사람도 있지만, 삶을 같이 할 사람을 만나지 못해서 혼자 사는 사람들이 더 많다고 본다.

 

 가정에서 식구와 같이 음식을 만들며 함께 즐길 줄 모르니, 배가 고프면 적당히 먹고, 또 밖에 나가서 해결하면 된다는 식이니 정서적으로나 가정적으로 안정을 찾기 쉽지 않다.

 

 개인주의, 이기주의가 팽배해지다 보니 설령 좋은 사람을 만난다 해도 같이 화합하고 어울릴 줄 아는 습성이나 마음이 없어, 같이 살며 부딪치느니 혼자 살려는 마음으로 기울 것이다.

 

 집은 있으되 가정 즉, 식구가 함께 마음을 주고받으며 그곳에서 화락함을 얻고 누릴 수 있는 가정이 없어 밖으로만 떠돌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야말로 참으로 가련하다는 생각이 든다.

 

 누구의 간섭이나 눈치 보지 않고 혼자 내 삶을 살겠다고 택했지만, 결국은 그런 사람들끼리 다시 만나게 되니, 서로 양보하고 이해하며, 그 안에서 함께 누릴 수 있는 행복을 찾기보다 귀찮고 성가시다며 온전한 가정생활, 결혼 생활도 누려보지 못하고 서로 갈라서서 혼자 살게 된다.

 

 아내가 해주는 따뜻한 밥상과 보살핌, 남편이 있어 든든하게 의지가 되는 안정감을 찾지 못하고, ‘삶의 진수’라 할 수 있는 ‘가정 내에서의 자식 낳아 기르며 사는 그런 맛'도 느끼지도 못하며 다른 즐거움을 찾겠다고 허우적대는 그런 사람들이야말로 그냥 가련하다는 생각이 든다.

 

 내 시신을 누가 거두어 줄 것인가? 결혼은 해도 후회, 하지 않아도 후회한다는 얘기가 있다. 그렇다면 하지 않고 후회하느니 해보고 난 다음에 후회하는 편이 백 번 나은 것임을 말해 무엇 할 것인가.

 

 또한 요즘은 부모들조차도 참고 살지 말고, ‘애’ 생기기 전에 헤어지라고 종용한다고 하니, 밀알이 되어 썩지는 못할지언정, 참지도 않고 어찌 ‘삶의 진수’를 맛보며 살수가 있더란 말인가.

 

 내가 자식이나 남편을 위해, 아니 아내를 위해, 참고 인내하는 희생까지야 바라지 않는다 해도 봉사하는 수고로움도 하지 않고 무슨 결실을 기대한다는 말인가.

 

 또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하나를 참지 못하면, 둘도 참지 못할 것이요, 한 사람과 맞지 않는다고 두 번 세 번 결혼한대야 그런 번거로움이 어디 있을 것이며, 그래 가지고야 자식인들 온전하게 낳아보겠나 싶다.

 

 난 가끔은 ‘내가 죽은 다음 내 시신을 누가 거두어 줄 것인가’ 생각을 해 볼 때가 있다. 그때쯤이면 우리 엄마도 이미 돌아가신 다음일 것이며, 형제들이 있다고 하나 그때까지 몇이나 남아 있을지 알 수 없으며, 남아있다 해도 연락이 되어 내 시신까지 처리해 줄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그러나 나의 두 딸들과 사위들은 내 근황이나 거처를 알고 있음은 물론이요, 내 죽은 다음에도 슬퍼하고 애도함도 또한 물론이요, 당연히 내 시신을 거두어 줄 것임을 알기에 난 그 생각만으로도 참으로 마음이 편안해지고, 언제, 어느 때, 숨을 거둔다 해도 편안하게 죽음을 맞을 수 있으리라 싶으니 그것만으로도 세상에 왔다가면서 그 이상의 보람도, 아쉬움도, 여한도 없이 눈을 감을 수 있을 것 같다.

 

 그런데 결혼도 해보지 않은 사람이, 어찌 자식을 낳을 수 있을 것이며, 자식을 위해 참고 수고도 하지 않은 사람들이, 어찌 죽은 다음에 내 시신을 거두어 주기를 바랄 수 있겠는가.

 

 세상엔 내가 수고하지 않고 얻어지는 것은 없다. 설령 얻어진다 해도 내가 수고하고, 땀 흘리지 않고, 손에 넣는다고 한들 그것이 무슨 큰 의미가 있겠는가.

 꼭 명심해야 할 것은, 내가 세상에 태어났음은 내가 원해서 이 땅에 온 것이 아니지만 태어나 살았던 생명은 죽게 되어 있으니, 내 시신을 온전하게 거두어 줄 수 있는 자식은 낳아야 하며, 또한 부모의 시신을 외면하지 않는 삶을 살도록 참고, 수고해야 함이다.

 

 온전한 가정도 꾸려보지 못하는 가련한 사람들로 남지 않음이, 죽은 다음 내 시신을 주변 사람들이 아니고, 내 자식들이 거두어 줄 수 있도록 함이 마지막까지 가련한 사람으로 남지 않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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