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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 음악가 시리즈(III)-'불멸의 연인' (Immortal Beloved) (2)

 
베토벤이 남긴 편지의 주인공을 찾는 여정 

 

 

(지난 호에 이어)
 비밀방에 몰래 숨어서 그를 지켜보는 부녀(父女). 이윽고 들리지 않는 귀를 피아노에 대고 그 진동을 손가락을 통해 느끼며 '월광 소나타'의 1악장을 연주하는 베토벤. 그러나 연주모습을 보면 안 된다는 약속도 잊은 채 음악에 감동하여 눈물을 흘리며 선율에 이끌려 자기도 모르게 스르르 피아노방으로 들어가는 줄리에타! 


 이를 들켜버린 베토벤은 격노하여 그 후 다시는 만나지 않는다. 그는 당시 자신이 연주하는 소리를 들을 수 없을 정도로 청각이 망가져 있었는데 이 사실을 숨기려고 안간힘을 다했다. 왜냐하면 이것이 알려지면 그의 음악가로서의 일생을 망치게 될 것이란 염려 때문이었다. 이것이 남 앞에 나서기를 싫어하고 무대공연을 꺼리는 이유였다. 

 

 

 


 1802년 베토벤은 그의 피아노 소나타 가운데 가장 대중적으로 잘 알려진 "피아노 소나타 14번 '월광(Moonlight, www.youtube.com/watch?v=5GOE3w2ZUrQ)'"을 줄리에타에게 헌정한다. 원래 이 월광소나타는 그녀를 위해 쓴 작품이 아니었는데, 당시 줄리에타 귀차르디에게 연정을 품었던 베토벤이 충동적으로 그녀에게 헌정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실제로 베토벤은 줄리에타를 두고 "내가 그녀의 남편보다 더 그녀를 사랑했다"고 고백할 정도였으니까. 

 

 

 


 당시 그녀가 진심으로 베토벤을 사랑했는지 아니면 농락한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실리(實利)에 밝은 여자이었음은 분명한 것 같다. 그녀는 집안의 반대로 베토벤과의 연애관계가 끝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1803년 11월 14일 오스트리아의 귀족이자 작곡가인 벤첼 폰 갈렌베르크(Wenzel Robert von Gallenberg, 1783~1839) 백작과 결혼했기 때문이다. 

 

 

 


 한편 베토벤은 이 시기에 이미 청력 장애가 심해지면서 상당히 고통을 받고 있었고, 1802년 자살할 생각으로 유명한 '하일리겐슈타트 유서(Heiligenstadt Testament)'를 쓰기도 했는데, 이런 배경에는 줄리에타 귀차르디와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에 대한 좌절감과 충격이 상당히 컸을 것으로 여겨진다. 이 점 때문에 영화의 내용에는 없지만 실제로 쉰들러는 줄리에타가 '불멸의 연인'이라고 했다가 나중에 흐지부지 얼버무린 해프닝이 있었다.   영화 밖 이야기(1): 여기서 영화 속에 잠깐 등장하는 두 여인도 실제 '불멸의 연인'의 강력한 후보였기에 살펴보고 지나가는 게 좋겠다. 줄리에타 갈렌베르크와 사촌지간인 테레제 폰 브룬스빅(Therese von Brunsvik, 1775~1861) 백작부인과 요제피네 폰 브룬스빅 다임(Josephine von Brunsvik Deym, 1779~1821) 백작부인인데, 둘은 자매로 당시 헝가리 왕국의 귀족 가문이었다.

 

 

 


 1799년 요제피네(게노 레흐너)가 만 20살, 언니 테레제(클라우디아 숄티)가 24살 때 그녀의 부모가 두 자매를 비엔나로 데려와 베토벤에게 피아노 레슨을 의뢰하는데, 이 의뢰는 이후 벌어질 두 자매와 베토벤 간의 처절하고 슬픈 연애관계의 서막이 된다.


 피아노를 가르치다가 요제피네에게 빠져든 베토벤은 그녀에게 적극적으로 구애하는데, 문제는 그녀가 피아노를 배울 당시에 이미 결혼이 예정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당시 요제피네는 자신보다 무려 27살이나 많은 요제프 다임 백작(Count Josef Deym, 1752~1804)과 일종의 정략결혼을 하기로 되어 있었는데, 브룬스빅 가문은 재정적인 문제로 딸들을 무조건 부잣집에 시집 보내려고 했기 때문에 이런 어울리지 않는 결혼도 개의치 않았던 것이다. 

 

 


 피아노를 배우면서 요제피네도 베토벤을 진심으로 좋아하게 됐지만, 그녀는 결국 집안의 요구를 이기지 못하고 같은 해 7월 29일 다임 백작과 결혼하게 된다. 그녀는 남편과 그럭저럭 잘 지내면서 모두 4명의 자녀를 낳았는데, 그녀가 넷째를 임신하고 있던 1804년에 다임 백작이 폐렴으로 프라하에서 급사하고 만다.

 


 다임 백작 사망 후, 애초에 베토벤을 좋아했던 요제피네는 베토벤의 구애에 결국 결혼 약속까지 하게 되는데, 이는 베토벤 인생에서 처음이자 마지막 약혼이었다. 이 시기에 베토벤은 피아노곡 "안단테 파보리(Andante favori, WoO 57)"를 그녀에게 헌정했다. [註: WoO는 'Werke ohne Opuszahl'의 약자로 '작품번호가 없는 작품'을 뜻한다. '안단테 파보리'라는 제목은 베토벤 스스로가 지은 것인데, 그의 제자였던 카를 체르니(Carl Czerny, 1791~1857)의 설명에 의하면 베토벤이 사교적 모임에서 이 곡을 즐겨 연주했기 때문에 '가장 좋아하는 안단테'라는 뜻으로 붙인 것이라 한다.]


 하지만 이 약혼은 브룬스빅 가문의 맹렬한 반대에 부딪친데다, 요제피네 스스로도 베토벤이 자기 자식들에게 좋은 아빠가 될지 확신하지 못했기 때문에 결혼으로 결실을 맺지는 못하고 시간만 지지부진 흘러간다.

 

 

 


 사랑과 집안 분위기 사이에서 번민하던 그녀는 결국 베토벤과의 결혼을 단념하고, 1807년경 자기 자식들의 가정교사로 있던 에스토니아의 하급 귀족 크리스토프 폰 슈타켈베르크(1771~1841) 남작과 연애를 시작한다. 그런데 이 연애 역시 집안의 반대에 부딪쳐 난항을 겪다가, 두 사람의 속도위반 사실이 들통나는 바람에 1808년 급기야 결혼이 성사된다. 


 문제는 이 결혼이 두 사람에게 처음부터 끝까지 불행의 연속이었다는 것. 홀로 첫 남편의 네 자식을 키우면서 생활고와 실의에 빠진 요제피네는 성격 파탄에까지 이른다. 그 때문에 생애 말기에는 장성한 첫 남편의 자식들에게 버림받고, 그녀를 돌봐주던 언니 테레제도 떠나 버렸으며, 브룬스빅 친정 집에서도 버림받은 채, 가난과 고독 속에 42세의 젊은 나이로 쓸쓸하게 죽는다. 


 다수의 베토벤 연구가들은 요제피네가 죽을 당시 써진 베토벤의 마지막 두 피아노 소나타 31번(작품 110)과 32번(작품 111)을 그녀의 죽음을 애도하는 장송곡으로 보고 있다. 이 두 소나타의 주제에서 그 전에 그녀에게 헌정했던 '안단테 파보리'의 주제, 일명 '요제피네의 주제(Josephine's Theme)'가 연상된다는 것이다. 


 불멸의 연인의 실제 수신인이 누구이던 간에 베토벤의 인생에서 '진정한' 불멸의 연인을 딱 한 명 꼽는다면 바로 이 요제피네 폰 브룬스빅일 것이다. 요제피네야 말로 베토벤이 가장 오랫동안, 또 가장 깊이 사랑했던 여인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요제피네가 미망인이 된 후 베토벤과 그녀가 본격 연애를 하다가 브룬스빅 집안의 반대로 두 사람의 결혼이 물 건너가는 분위기가 될 즈음, 그녀의 친언니 테레제와 베토벤이 갑자기 가까워진다.


 하지만 두 사람의 연애기간은 그리 길지 않았는데, 헤어진 이유가 명확히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아마도 베토벤은 요제피네와 성혼이 되지 못해 마음의 상처를 입은 후 위안 차원에서 언니와 잠시 사귀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래도 베토벤은 나중에 테레제에게 "피아노 소나타 24번 작품 78"을 헌정했으며, 그 덕분에 이 소나타에는 '테레제'라는 별명이 붙어있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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