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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s2000
흔적을 찾아서(71)-버가모(Pergamon, 페르가몬) 유적지
bs2000

 

선사 시대부터 도시가 형성된 곳으로, 일찍이 알렉산더 대왕이 동방 원정 중에, 수하 장군이었던 리시마쿠스(Lysimachus)는 이 지역이 천연 요새임을 깨닫고 도시 중앙에 있는 390m 높이의 산 꼭대기에 성을 쌓는 등 이곳을 군사 기지로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리시마쿠스는 BC 281년, 코로페다움 전투에서 그의 수하의 배신으로 인해 패하여 전사한 후 필레타리우스(Philetarius)에 의해 페르가몬 왕국이 탄생했습니다.

페르가몬 왕국은 아나톨리아 지역이 로마 제국의 속국으로 편입되기 전에는 소아시아 7교회 중 에베소, 서머나를 제외한 나머지 5개 교회가 있던 지역을 포함한 터키 아나톨리아 서부 지역 중 상당 부분을 관할했던 왕국이었습니다.

이렇게 발흥한 페르가몬은 BC 133년, 거대 제국으로 발돋움하기 시작한 로마에 왕국을 평화적으로 넘겨주며 150년이란 시간동안, 짧았지만 큰 족적을 후대에 남기고 역사의 무대에서 퇴장하였습니다.

그 당시 페르가몬(Pergamon)은 세계 최초로 ‘양피지’를 발명한 도시로 유명합니다. 양가죽으로 만든 종이를 일컫는 ‘양피지’를 헬라어로 ‘페르가멘트’(Pergament), 라틴어로는 ‘페르가멘툼’(Pergamentum), 영어로는 퍼치멘트(parchment)라고 한다는데, 모두 페르가몬(Pergamon)에서 파생된 단어라고 합니다.

로마시대 이후, 성경에는 “버가모”라는 이름으로 나오지만, 로마가 이 곳을 “아시아”의 수도로 삼으면서, 소 아시아에서는 가장 큰 도시로 발전하였으나, 후에 세력이 커진 에베소로 수도가 옮겨지게 되면서 쇠퇴하기 시작하였던 도시였습니다.

(그 당시의 지식으로는 동쪽에 있는 지금의 터키 지역을 “아시아”라 하였으나 후에 진짜 “아시아”를 알게 되자 “소 아시아”라고 부르게 되었던 것입니다.)

버가모가 독립된 페르가몬 왕국일 때부터 높은 문화를 이루면서, 은광, 가축, 양털 직조, 그리고 글씨 쓰는 양피지 등을 생산하며 부의 근원을 이루며 아시아 문화의 중심지가 되어 세계 최초라는 수식어를 많이 가진 도시가 되었습니다.

세계 최초의 병원, 세계 최초로 양피지를 개발, 세계 최초의 노동조합과 세계 최초의 3단계 시스템 교육(초, 중, 고)을 구축하여 그리스 교육의 중심지가 되었으며, 아시아 최대의 도서관(20만권 도서 소장)과 세계 최대 경사지(80도)에 야외극장을 건설하였다고 합니다.

버스로 꼬불꼬불 돌며 올라간 산 정상에 널려져 있는 유적들은 어제 본 에베소의 유적에야 비할 바는 못되지만 아직 발굴이 다 안되어서 그렇지 이곳 또한 엄청 큰 도시였던 것은 확실한 것 같았습니다.

산 정상 조금 아래에는 넓이 30m, 높이 12m에 이르는 거대한 제단이 있었던 제우스 신전터가 지금은 다 무너진 채로 커다란 소나무를 키우고 있었고, 디오니소스, 아테네 등의 신전이 웅장하게 자리하고 있었던 자리에는 무성하게 핀 야생 양귀비가 만발하여 마치 새빨간 카펫을 깔아 놓은 것 같았습니다.

그 곳에 혼자 서 있는 좀 올리브나무에는 부적이 주렁주렁, 마치 하얀 꽃이 만발한 것 같으니 역시 신들의 도시다웠습니다만 종이 쪽지마다 적혀진 사연들은 다 어떤 사연들이었을까요? 건강? 사랑? 돈? 명예? 기껏해야 인간 “오욕 칠정”중에 한 두 가지겠지만 예나 지금이나, 동양이나 서양이나 부적을 붙여 놓고 빌고 나서야 마음에 평안을 얻는 인간의 본심에는 별 변화가 없나 봅니다.

이런 버가모에서의 선교활동에는, 교회 생활에는 당연히 많은 곤란이 있었겠지요. 바위를 뚫어 만든 동굴을 나서니 시야가 확 트이며 세상에서 제일 가파르게 객석이 지어진 야외 원형극장이 나타났습니다. 객석의 깊이도 에베소에서 보다는 많이 좁은 것 같아 그 가파르기가 더 심하게 여겨져서인지 일행들도 모두 조심을 하며 사진을 찍기 위해 앉았고, 저는 카메라를 들고 그 몇 칸 아래 앞에 서서 화인더를 드려다 볼 때 사람들이 웃으며 하는 말들이 “조금 더 뒤로. !” 였습니다.

뒤를 돌아보니 화인더를 보며 뒷걸음 치다가 한발을 삐끗하면…? 저~만큼 아래의 무대까지 초고속 특급으로도 한참 걸릴 것만 같이 아득하게 보였습니다. 물론 뼈를 추스르노라 더 많은 시간을 고생하기는 하겠지만….

그 당시 그 많은 사람들이 들어와 관람을 하면서 대형사고가 나지 않은 게 이상할 만큼 가파르게 지어진 객석이었습니다. 그 무대 뒤로 더 멀리에 까마득히 보이는 도시의 빨간 지붕들이 장난감 집처럼 보이는, 경관 하나는 빼어난 곳이었습니다.

고대 도서관 중에서 제일 규모가 컸던 곳은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에 있는 도서관으로 50만권의 장서를 자랑했고, 그 다음이 버가모 도서관으로 20만권의 장서를, 그 다음으로 에베소에 있는 셀시우스 도서관으로서 약 1만 2000권 정도 장서를 보유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알렉산드리아 도서관과 버가모 도서관 사이에 ‘정보 전쟁’이 벌어졌답니다. 그 당시는 마케도니아 출신의 ‘프톨레마이오스’(Ptolemaios) 왕조가 ‘파라오’ 가 되어 이집트를 통치하던 시기였고, 알렉산더 대왕의 충신이었던 프톨레마이오스 1세는 알렉산더의 뜻을 따라서 알렉산드리아를 세계에서 가장 크고 아름다운 학문과 지식의 도시로 만들려는 목적으로 도서관을 지었습니다.

BC 250년, 프톨레마이오스 2세 때가 알렉산드리아의 가장 전성기로서, 도서관에도 가장 많은 장서를 보관했던 시기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와 동시에 똑같이 알렉산더 대왕의 수하 장수였던 리시마쿠스로 인해 아시아에 세워진 왕국인 ‘버가모’에서도 유메네스 2세와 그 뒤를 이은 앗탈로스 2세도 정치보다 학문 연구에 치중해서 ‘버가모 도서관’을 크게 만든 후 이집트에서 책을 만드는데 필요한 ‘파피루스’(Papyrus)를 수입해서 점점 몸집을 키워오는 버가모 도서관에 위기감을 느낀 프톨레마이오스 2세가 버가모에 파피루스 수출을 전면 중단시켰다고 합니다.

버가모의 유메네스 2세는 이집트 나일강 하구에서만 자라는 파피루스를 대체할 수 있는, 책을 만드는 재료를 개발하라고 신하들에게 지시하는데, 얼마 후에 신하들이 양이나, 송아지 가죽을 가공해서 책으로 사용할 수 있는 ‘양피지’를 개발하였습니다.

게다가 유메네스 2세는 획기적인 발명을 하게 됩니다.

그동안 파피루스로 만드는 책은 ‘두루마리 형태’였는데, 유메네스 2세는 양피지 옆에 구멍을 뚫어 꿰어서, 지금처럼 최초로 옆으로 넘기는 책을 개발했던 것입니다.

덕분에 책의 내용을 찾는데 드는 시간과 보관하는 비용이 현저하게 줄어들게 되며 오히려 파피루스의 시대가 막을 내리게 되는 계기가 버가모에서부터 시작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버가모와 알렉산드리아 사이의 ‘도서관 전쟁’은 결국 알렉산드리아의 승리로 막을 내렸습니다. 주전 1세기경 알렉산드리아의 도서관이 화재로 크게 손상을 입게 되자 클레오파트라 여왕은 매우 상심했고, 이 사실을 알게 된 로마 장군 안토니우스는 군대를 동원하여 버가모 도서관의 장서를 알렉산드리아로 옮겼다고 합니다.

역시 문화재도, 나라도, 지키기 위해서는 힘이 있어야 하고, 힘이 없을 때에는 힘 있는 나라를 움직일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함은 만고의 진리인가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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