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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적을 찾아서(39)-베데스다 못(Pool of Bethesd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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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께서 행하신 세 번째 기적은 예루살렘에 있는 양 문” 곁에 있는 히브리말로 “베데스다”라 하는 “못”에서 38년 된 병자를 고쳐주신 일입니다.(요 5:2~16)

“자비의 집”이라는 뜻의 “베데스다 못”이 있었던 것은 성경의 기록과 다른 문서들로, 그리고 아직도 진행중인 발굴로 고증이 되었는데, 아직도 “못”의 수원이 어디인지, 그리고 그 “못”이 언제, 누구에 의해서, 무슨 목적으로 생겨났는지, 언제부터 “베데스다”라는 이름으로 불려졌는지에 대해서는 이견들이 있는 “못”입니다.

아주 오래 전,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명으로 아들 이삭을 번제물로 드리려고 올랐던 모리아 땅의 산(창 22:2)에 살던 여부스족들의 성을, 다윗이 수구를 통하여 점령한 후 다윗 성을 쌓고, 솔로몬은 다윗 성의 서쪽, 시온산에 이삭을 뉘었던 바위 위에 신전을 지으며 형성된 도시가 예루살렘이고 보면, 산 위의 도시, 예루살렘은 물이 귀한 도시일 수밖에 없는 자연 조건이었습니다.

그러나 성 밖에, 여부스족들이 사용하던 기혼 샘(Gihon Spring)이 있어, 예루살렘 성 안 모든 사람이 사용할 수 있는 풍부한 수량을 뿜어내고 있었습니다.

BC 722년, 앗수르 왕 살만에셀5세에 의해 북 왕국 이스라엘이 멸망 당함을 본 유다 왕 히스기야는 앗수르가 머지않아 침략할 것을 예견하고, 예루살렘 성이 포위될 것에 대비하여 성벽 밖에 위치한 기혼 샘으로부터 예루살렘 성까지 지하 터널을 판 후 큰 “못”을 만들어 성 안의 식수를 공급하게 하였습니다.

이와 관련된 기록이 성경 세 곳(왕하20:20, 대하 32:2-4,30)에 나와 있습니다.

특히 대하32:30의 내용은 현재 이스탄불 고고학 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실로암 비문(碑文, Siloam Inscription)”에 자세히 묘사되어 있다고 합니다.

3 규빗(1.3m)남았을 반대편에서 상대방을 부르는 목소리가 들렸다.

터널이 뚫렸을 동료를 얼싸안고 도끼를 서로 부딪쳤다. 물은 샘으로부터 1천2규빗(5백25m)흘러나왔다

여섯 줄, 모두 2백 글자 중에서 1백77자만 보존된 비문 내용입니다. 이사야 8장 6절에 “이 백성이 천천히 흐르는 실로아 물을 버리고….”라는 말이 오직 한번 나올 뿐, 구약 전체에 “실로암”이라는 단어가 안 나오는 것을 보면, “실로암 비문”이라는 이름은 나중에 붙여진 것 같습니다.

1880년에야 발견된 이 수로에 붙어 있던 비문을, 1890년 예루살렘에 거주하던 한 그리스 사람이 도굴하여 골동품 상에게 팔면서부터 붙은 것 같습니다. 이 소문을 접한 오스만 터키 당국이 압수하여, 현재 이스탄불에 있는 고고학 박물관에 전시하게 된 것이지요.

“실로암 못”의 위치는 추정만 할 뿐 정확히 알 수가 없었는데, 2005년에야 예수님 당시의 제2성전 때의 “실로암 못”이라고 생각되는 위치를 히스기야 터널의 끝 부분에서 발견하여 아직도 복구 작업 중에 있습니다. 그러면 앗수르에 멸망 당하기 전, 제 1 성전 때 히스기야가 만든 “못”은 어디에 있었을까요?

열왕기하 18:17과 이사야서 7:3에는 “윗물 수도 끝, 세탁자의 밭” 이라는 구절이 나오는 것을 보면, ‘못’이 하나만은 아니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윗물, 즉 “기혼 샘”에서 처음 도달한 못이 “실로암 못”이요, 여기에 이어 다윗 성 서쪽으로 끌어 만든 못이 “베데스타 못”이라고 가정을 한다면, 이사야 22장 11절에 나오는 “두 성벽 사이에 만든 저수지”가 혹시 “베데스다”의 전 모습이 아닐런지요?

그 당시 세탁이라 함은 베틀에서 막 나온 옷감을 부드럽고 깨끗하게 씻기 위하여 물에 세제를 풀어 넣은 후, 발로 밟는 과정이었기에 많은 물이 필요하였고, 세제의 냄새와 또 세탁한 천을 햇볕에 말리기 위하여 “세탁자의 밭”은 주로 성문 밖에 있었다고 합니다.

“베데스더 못”은 “양 문” 곁에 있다고 하였습니다. 그 당시 제단에 바치던 양들을 이 문 밖에서 깨끗이 씻어 들였기에 “양 문” 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하니 이 역시 설득력이 있는 것도 같습니다.

신약 성경에만 나오는 “실로암”을 영어 성경에서는 “Pool of Siloam” 이라고 하고 “베데스타”를 “Pool called Bethesda”라고 하며, 단지 “기혼 샘”만을 “Gihon Spring”이라고 기록하는 것을 보면 “실로암”과 “베데스타”는 땅에서 샘 솟는 샘이 아니라 일종의 저수지 역할을 하는 수조였던 것만은 확실하였던 것 같습니다.

“베데스타 못”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행각이 다섯이나 있는, 그리고 깊이 7 ~ 8m의 두 개의 쌍둥이 못으로 성전에 물을 공급하기 위한 목적과 더불어 종교적, 의학적 치료를 목적으로 크게 확장되며 붙여진 이름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예수님 당시에는 헤롯 대왕이 크게 복원한 성으로 들어가는 양 문(Sheep Gate, 느 3:1, 요 5:2)곁 가까운 곳이었습니다.

서기 73년에 예루살렘이 완전히 폐허가 된 후인 1140년, 십자군이 탈환하였을 때, 마리아의 부모인 안나와 요아킴이 살던 곳으로 추정되는 곳에 “성 안나 교회(St Anne's Church)”를 지었습니다. 얼마 후 십자군이 퇴각하고, 다시 오스만 터키가 지배하던 시대인 1537년~1542년사이에 예루살렘 성을 다시 축성할 때, 아마도 “베데스다 못”은 땅 속에 묻혀 있었기에 “성 안나 교회”를 성 안에 넣고 축성을 하였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예루살렘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 중의 하나가 된 “성 안나” 교회를 1888년, 프랑스의 “백의의 선교사회” 신부들이 관리하며 보수할 때, 못 터가 발견되어, 이 곳이 “양 문” 옆에 위치했다는 요한복음의 “베데스다”로 여겼다는 기록이 있다고 합니다.

1957년부터 시작된 발굴을 통해서 현재까지, 길이가 105m, 폭이 60m, 그 깊이가 7.5m가 되는 직사각형 모양에, 네 개의 회랑이 둘러싸고 있는 형태로서, 그 측면은 다섯 개의 회랑으로 나누어져 있는 모습이 나타났다고 합니다. 이로써 요한복음의 “다섯 개의 행각”(요 5:2)이라는 말이 입증되는 셈이지요.

원래의 “양 문”은 없어진지 오래고, 그 후 생긴 “스데반 문” 혹은 “사자의 문”으로 들어가면 성 안나 교회” 벽에 붙여 철책이 쳐있는 너머로 약 10m 깊이 파인 곳이 “베데스다 못”의 발굴지인 것입니다.

요즈음에는 지하로 들어가 로마시대에 물을 저장하던 저수조라는 곳을 볼 수도 있다고 합니다. 이 저수조를 보고 어떤 학자는 우기에 오는 빗물을 저장하여 사용하던 저수조라고도 합니다마는 못의 이름과 사용 목적하고 발굴 규모를 보면 너무나도 맞지 않는 주장 같습니다.

하늘나라를 가보지 못하였기에 지금은 추측밖에는 할 수 없는 것처럼, 그 옛날에 그 일들을 보았던 사람들이 없는 지금, 그 옛날 일들을 정확하게 알기 위해서는 땅 속 깊이 묻힌 그 자취를 발굴하여야 추론을 할 수 있을 터이니, 언제인가 조금 더 발굴이 되면 “베데스다 못”의 수원이 어디였던지 밝혀질 수도 있겠지요.

그러나 중요한 것은, 양 문 가까이 있던, “가끔 물이 동하는 못”에서 예수님이 38년 동안이나 제 힘으로는 못으로 들어 가지도 못하던 병자에게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고 하신 말씀에, 병자가 “일어나고, 자리를 걷고, 걸어 나갈 수가 있었다”는 점입니다. (요5:5)

예수님이 누구이신지도 모르던 병자가, 말씀에 순종할 때 즉시 기적이 일어났다는 증거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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