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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s2000
흔적을 찾아서(33)-텔단(Tel Dan),사사들의 언덕
bs2000

 

가이샤라 빌립보에서 약 6km 떨어진 곳에 수목이 우거지고 물이 꽐꽐 솟아오르는 곳, 그래서 사람들은 에덴 동산 같은 곳이라고도 하는 “텔 단”이 있습니다. 요단강 이라는 이름 역시 그 발원지가 이 곳 “단”이기 때문에 생겨났습니다.

 

또한 “단”은 히브리어로 “재판관”혹은 “사사”라는 뜻이고, “텔”은 언덕이라는 말이니 “재판관의 언덕” 혹은 “사사들의 언덕”이라는 말이 되기도 하겠지요.

 

그런데 또 “단”은 이스라엘 12지파 가운데 한 지파로, 후에 “이스라엘”이라고 새 이름을 받은 야곱의 두 번째 아내 라헬의 여종인 ‘빌하’를 통해 낳은 야곱의 다섯 번째 아들 이름이기도 합니다.

 

이 지역이 구약성경에서 처음으로 등장할 때의 이름은 ‘라이스’였고, 출애굽 후에도 이스라엘 지파에게는 분배되지 않은, 가나안 원주민들의 땅이었습니다. 처음 “단”지파에게 분할된 땅은 베냐민 지파의 왼쪽 해안가 지역이었습니다.

 

“단” 지파에는 삼손과 같은 위대한 사사가 있어 필리스티아인(philistines블레셋) 들과의 경쟁이 가능했지만 우리가 잘 아는 이야기대로 삼손이 죽은 이후, 이들에게 밀려 분배 받은 땅을 포기하고 좀 더 북쪽으로 이동하여 이곳에 있던 “라이스”를 정복한 후, 조상 “단”의 이름을 따서 “단”이라고 부른 것이 도시의 유래라고 합니다. (삿18:29)

 

그리하여 구약시대에 이스라엘 영토를 표시할 때에는 최북단의 경계도시가 되어

“단에서 브에르 세바까지”(삿 20:1삼상 3:20 외 여러 곳)라고 하였던 것입니다.

이렇게 오래된 도시였으나 이 지역의 발굴은 최근인 1993년과 94년에 걸쳐 시작되었습니다.

 

발굴 책임자인 비란(Biran)에 의하면, 발굴하고 싶었던 것은 북왕국 첫 번째 왕이었던 여로보암의 흔적들이었기에 여로보암이 쌓은 제단 터부터 시작하던 중, 고고학 분야에서 오랫동안 회자될 중요한 유적과 유물들을 많이 발견했습니다.

 

그 중에서 백미를 꼽으라면, 기원전 9세기에 아람 왕 하자엘이 유대 침공 후 승리한 전쟁이 아람어로 새겨진 현무암 돌판이라고 합니다. 이 돌판 해독으로 인하여 엘리사의 잔혹한 전쟁 예언(왕하 8:12)이, 유대인이 아닌 아람왕의 역사적인 전쟁 기록으로 입증이 되었다고 합니다. 이 비문은 현재 이스라엘 국립 박물관에 전시 중이라고 합니다.

 

지혜의 왕이라는 칭송이 하나도 부족하지 않도록 부와 권력과 지혜를 겸비한 솔로몬도 자식 농사만은 성공하지 못하였던 것 같습니다. 아니 자식 농사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마저도 제어하지 못하고, 수많은 후궁들의 치맛바람에 휘말리어 후궁들이 가지고 온 여려 신들을 섬기게 하였으니까요.

 

그래서였던지 솔로몬 사후 결국 르흐보암이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유다 온 족속과 베냐민지파를 모아 남 유다 왕국을 만들고, 여로보암이 에브라임 산지에 남은 열 지파와 함께 세겜을 건축하며 북 이스라엘 왕조로 나누어지게 된 이야기가 열왕기상 12장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12장 27절로부터 보면 “만일 이 백성이 예루살렘에 있는 여호와의 전에 제사를 드리고자 하여 올라가면 이 백성의 마음이 유다 왕 된 그 주 르호보암에게로 돌아가서 나를 죽이고 유다 왕 르호보암에게로 돌아가리로다 하고 이에 계획하고 두 금송아지를 만들고 무리에게 말하기를 너희가 다시는 예루살렘에 올라갈 것이 없도다 이스라엘아 이는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올린 너희 신이라 하고 하나는 벧엘에 두고 하나는 단에 둔지라” 라고 되어 있는 것을 보면 그래도 성전이 있는 예루살렘을 믿음의 본향으로 생각하는 민중들이 두려웠나 봅니다.  

 

그리하여 “벧엘”과 함께 “텔 단”을 예루살렘과 견주는 북 왕국의 종교 중심지로 만들기 위하여 여로보암이 금송아지 우상과 제단을 만들어 놓고, 하나님이라며 섬기게 하였던 장소가 최근 발굴되어 우리가 보고 있는 것입니다.

 

남부 유대 왕국이 비교적 평화스러웠던 반면에 북부 이스라엘 왕국은 솔로몬 사후 200년 만에 멸망에 이르기까지, 이방과의 전쟁과 왕실의 피비린내 나는 보복, 모반, 배신, 살인, 이런 것들의 악순환이었던 것은 아마도 하느님과의 계약을 저버리고 금송아지 숭배에 빠진 북 이스라엘의 필연적인 결과였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느님께서는 그들에게 선지자 엘리야와, 엘리야에 이어 선지자가 된 엘리사를 통하여 북 이스라엘의 왕들에게 그들의 죄악을 책망하며 놀라운 일들을 행하시었으나, 그들은 죄에서 돌아서지 않음으로써 결국 BC722년, 호세아왕 때 앗시리아 왕의 포로로 끌려가며 멸망하는 불행의 역사를 맞게 되었습니다.

 

그 내용들이 “열왕기 하 17장”에 잘 기록이 되어 있지요.

앗시리아가 혼혈정책을 써 가면서 유대민족을 말살(?)하려 했던 이유도 있었겠지만 북왕조 이스라엘의 멸망 후 “단” 지파의 기록이 성경에서 사라졌습니다.

심판권(審判權)을 받은 단 지파의 행적이 왜 끊어져 버렸을까요?

 

그래서인지 우리 민족이 이스라엘 지파 가운데 하나인 단 지파의 자손이라는 이야기가 오래 전부터 있었습니다.

그동안 “믿거나 말거나”의 수준인 이야기로 치부하고 말았었는데 우리 한국과의 관계에 대한 재미있는 이야기들이 있어 조금 옮겨 봅니다.

 

우지 마노르 (Uzi Manor) 주한 이스라엘 대사는 한국이 이스라엘과 많이 닮았다고 하며 이런 이야기를 하였다고 합니다.

 

“이스라엘은 고대왕국 시절 12개 부족으로 구성돼 있었습니다. 나중에 이민족의 침략을 받아 유럽·아시아·아프리카 등 사방으로 흩어졌지요. 그런데 지금까지 단 하나의 부족만 어디로 이동했는지가 미스터리예요. 그 ‘사라진 부족’(lost tribe)의 이름이 단(Dan)인데, 고조선의 시조가 단군 아닙니까? 재미있죠?”

 

이를 뒷받침하는 여러가지 설들이 있는데, 국립 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대동강 유역에서 발굴된 와당에 새겨진 글자들이 고대 히브리문자라는 고증이 있습니다.

 

사진에 쓰여 있는 설명처럼, 서울대학교 종교학 교수였던 고 신사훈 박사의 설명도 있고, 이후 이스라엘의 Bar Ilan University(바르 일란 대학교) 고대 성경 히브리어 전문가인 Ed. Greenstein 교수의 설명에 의하면 와당 사진 세 점의 문양은 BC 8세기 후반에서 BC 6세기경까지 사용된 것으로 추정되는 고대 히브리어로 밝혀졌다는 KTN 한강현 기자의 글도 그의 블로그에 올라와 있습니다.

 

박정규 박사의 “한국 고대 기독교뿌리를 찾아서(64)”라는 글에서도, 그리고 부천 상동중앙교회를 담임목회 하고 있는 유석근 목사의 저서 「또 하나의 선민 알이랑 민족」 역시 같은 맥락의 이야기로, 발간된 직후부터 한국교회는 물론 일반에까지도 널리 알려져 읽히고 있다고 합니다.

 

김정민 박사의 고대사 특강 시리즈에서도 “우리민족은 어디서 왔는가?”를 심도 깊이 다루고 있음을 볼 수가 있습니다.

 

워낙 오래 전에 있었던 민족들의 이동 자취이기에 아직은 설 들이지만, 한가지 확실한 것은 신앙을 왜곡하여 이용하는 사람이나 국가의 결말은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것과 같이 “폐허가 되리라” 부르짖는 것만 같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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