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편리하고 풍족해지고 있다. 아직도 기아에 허덕이는 아프리카의 몇 개 지역이나 북한 등 일부 나라들을 제외하고는 많은 나라의 사람들이 배고픔을 모를 정도로 풍족해졌고, 또 빠른 속도로 발전하는 과학 덕분에 이젠 거의 모든 개인들이 자신의 전화기를 소유하고 지구 반대편에 있는 사람들과 서로 얼굴을 보면서 통화를 하며 세상의 소식을 바로 전하는 세상이 되었다. 앞으로 또 어떤 세상으로 바뀔지 상상도 못하는 상황이 되어 가고 있다.
필자는 가끔 100여 년 전 우리 선조들이 가난을 벗어나고자 조국을 떠나 머나 먼 하와이나 남미 사탕수수 밭의 근로자로 가서 일하다 죽는 순간까지 고향과 가족들을 보지 못하고 그리워만 하다 돌아가셨다는 내용의 영상물이나 기사를 보면서 그 분들이 살던 세상에서 불과 100여 년 만에 이렇게 세상이 변했다는 사실에 놀라움을 느낀다.
이러한 눈부신 과학의 발전으로 이전에는 상상도 못하던 문명의 혜택을 받으며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이지만 이러한 모든 발전과 풍족함 뒤에는 우리들의 엄청난 노력과 희생 그리고 경쟁이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그리고 갈수록 경쟁은 치열해지고, 이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세상이다 보니 발생하는 부작용 또한 많은 것이 사실이다.
이러한 엄청난 발전에 사람이 ‘배고픈 것은 참아도 배 아픈 것은 못 참는다’는 말이 있듯이 다 같이 배고프고 가난한 것은 참아도 남이 나보다 더 잘 되는 것에는 참기 어려워하는 세상이 되어 가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그러다 보니 남에게 뒤떨어지지 않기 위해 더욱 노력하고 더 많이 일을 할 수 밖에 없는 세상이 되었다.
이렇듯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밤낮으로 일을 해야 하는 현대인들에게 나타나는 여러 가지 몸의 이상 현상이 나타날 수 있는데 이러한 현상들이 지속되면 큰 질병으로까지 발전할 수도 있다. 이러한 질병들은 병으로 발전하기 전에 증상으로 먼저 나타나 예고를 하고 있는데 현대인들에게 나타나는 대표적인 증상 중 하나이고, 사람들 사이에서 가장 자주 언급하는 증상 중 하나가 바로 항상 피곤하다는 것이다. 아마도 우리 자신이나 주변 거의 모든 사람들이 불규칙한 생활 습관과 수면부족 등의 원인으로 항상 스트레스와 피곤함을 느끼고 있으리라 생각된다.
그러다 보니 대부분의 사람들이 피곤한 것은 당연한 것이며, 그저 간단하게 '몸이 늘 피곤한 상태'를 연상하며 감기몸살처럼 며칠 푹 쉬면 좋아질 거라 믿고 있다. 그러나 우리 현실은 이 며칠의 휴식 시간도 허락되지 않는 상황이 많다 보니 대부분의 사람들이 정말 피곤하고 힘들어도 휴식을 취하거나 의사를 찾기보다는 주변 사람들이 말하는 몸에 좋다는 시중의 제품들이나 에너지 드링크 등을 마시는 등 쉬운 방법으로 해결하려고 하는 경우가 많이 있다.
그런데 이러한 만성피로가 단순히 불규칙한 생활습관과 만성 수면부족 때문이라면 충분한 휴식이나 수면을 취해주는 것으로 해결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사실 이 질환은 발병 원인에 따라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매우 심각한 병이 될 수도 있다.
만약6개월 이상 이러한 증세가 지속되며 일상 생활에 불편을 끼칠 정도가 된다면 이미 질병의 단계에 이르러 심각한 상황에까지 왔을 수도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다.
한의에서 만성피로에 대해 언급된 내용을 찾아보면2,500여 년 전 한의학의 최고 경전인 황제내경(黃帝內經)에서 “이미 병이 된 것을 치료하지 말고, 아직 병이 되기 전에 치료한다(不治己病治末病)”라고 했는데 이는 만성피로 같은 만성질병 등은 만성으로 발전하기 전에 미리 예방과 조기 치료의 중요성을 강조했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허준 선생의 동의보감을 보면 노권상(勞倦傷)이라는 증상을 서술하고 있는데 이는 현대의 만성피로를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동의보감은 “일을 많이 해 피곤하게 되면 인체의 형상과 기(氣)가 쇠퇴한다.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喜怒不節) 잠자리가 일정하지 않으며 일을 많이 하게 되면 기(氣)를 손상시킨다. 기(氣)가 손상되면 화(火)가 망동하게 되어 비(脾)를 상하게 된다. 비(脾)는 사람의 사지(四肢)를 주관하는데 비(脾)의 기(氣)가 상하면 말하기 힘들고 움직이는데 숨이 차고, 겉으로 열이 나고 땀을 흘리며 마음이 불안해진다. 음식을 제때에 못 먹고 노역을 과도하게 하면 비위(脾胃)가 허약해져서 중기(中氣)가 부족해지니 ‘보중익기탕(補中益氣湯)’이라는 한약 처방으로 치료한다”라고 서술하고 있다.
이렇듯 ‘만성피로’라는 용어가 부각된 것은 최근의 일이지만 한의학에서는 이미 오래 전부터 만성피로를 치료의 대상으로 삼아 왔다는 것을 이러한 문헌 등을 통해서 알 수 있다.
필자는 몇 년 전에 만성피로라는 제목으로 칼럼을 쓴 적이 있었으므로 이번 호에서는 과거의 내용에 보충한 ‘만성피로증후군’이라는 제목으로 같이 내용을 나눠 보고자 한다.
정의
‘피로’라는 단어를 한 마디로 정의하기는 어렵지만, 보통 기운이 없어서 집중이 되지 않거나 일상적인 활동을 하기 힘들 정도로 기운이 없는 것을 말한다. 하지만 이런 증상을 느낀다고 해서 모두 ‘만성피로 증후군’인 것은 아니며 원인과 관계없이 피로가 6개월 이상 지속되거나 반복될 때 ‘만성피로 증후군’이라고 한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의 진단 기준에 따르면 ‘만성피로증후군’(CFS;Chronic Fatigue Syndrome)은 충분한 휴식 후에도 피로가 회복되지 않고, 특별한 원인이 없이 일상생활의 절반 이상을 제대로 수행할 수 없을 정도의 극심한 피로가 6개월 이상 지속되는 것을 정의하고 있다.
그리고 2015년, 미국의 보건정책 자문기관 의학연구소인 IOM(Institute of Medicine)은 만성피로 증후군에 대해 실제 존재하는 중대한 질병이라고 선언하였고, 명칭도 전신성 활동불내성 질환(SEID: Systemic Exertion Intolerance Disease)으로 변경했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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