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산의 추억

 

 

백두산 1

 


백두산처럼 어수룩한 산
처음 보았네
어떤 산은 낮으면서 높고
일만 이천의 봉우리들
밧줄과 피켈 없이는
봉우리 하나도 내놓지 않는데

 

단 하나뿐인
반도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
수천수만의 발자국이 몰려와도
눈썹 하나 꿈틀하지 않고
일제히 토해놓는 그들의 함성
잠자코 귀담아 듣네

 

그들이 비탈을 내려갈 때
어린 아이 올라탄 소
잔등처럼 부드러운 능선
마을의 등불이 보일 때까지
더 낮게 등마루를 엎드리는
높으면서도
한없이 낮기만 한 산
백두산처럼 어수룩한 산
처음 보았네.

 


- 1995년 8월 15일 백두산 등정을 하고 와서 -

 

 

 

시작(詩作) 노트 -- 백두산을 오르는 길은 두 가지가 있다. 중국사람들이 오르는 길과 한국 사람들이 오르는 길이다. 지난 20일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은 백두산 꼭대기에 올랐다. 전에 중국사람들이 오르는 길을 통해 몇번 오를 수 있었으나 문대통령은 사양했다고 한다. 어떤 기업체에서 겨우 계장이나 지내다가 캐나다로 이민 온 나이지만 나도 같은 생각이었다. 백두산이 지니고 있는 주체성의 암반이 그만큼 우리들 가슴 속에 뿌리가 깊지 않았나 싶다.
아래는 고은의 유명한 시 ‘그 꽃’이다.

 

 

그 꽃/ 고은

 


내려갈 때 보았네
올라갈 때 보지 못한
그 꽃

 


물론 이 시는 ‘백두산’과 관계가 없지만 ‘백두산’의 모습을 어쩌면 그렇게 간략하게 잘 연상시켜주는지 모른다. 멀리서 바라보는 정상은 웅장하다거나 신비한 것과는 거리가 멀다. 하지만 내려오면서 발견하게 되는 백두산의 아름다움이란 인간의 작은 가슴으로는 도저히 감당하기가 어렵다.
정상에서 내려다 보는 한반도는 백두산이 그 한복판에 있고 우리가 한민족의 주체로서 수천년을 그 영토 안에서 살아왔음을 저절로 느끼게 한다.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이라는 애국가의 가사가 빈말이 아님을 실감하게 한다. 
앞으로 남북관계가 더 개선됨으로써 더 많은 동포들이 한국사람들이 오르는 코스를 따라 백두산 등정이 이뤼지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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