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에 값이 있던가

 
 
값은 무슨 뚱딴지 같은! 성실과 근면으로 나의 최선의 건실함을 실천하며 그래도 부끄럽지 않은 모습으로 남들 보기에 너그러운 인품의 소유자로 보낸 세월이었다면 값진 삶이 아닌가?


묵은 해를 여위며 왜 떠나냐고 소리칠 수도 악을 쓸 수도 없는 한 해를 영원히 보내야 하는 섣달이다. 내가 잘 가라고 손을 흔드는 게 아니고 나와 함께 하자고 온갖 풍상을 겪게 되었던 열두 달의 2019년이 나를 위하여 다듬어 간섭하고 다스리며 지켜주고 안아 주었기에 이젠 새로운 꿈과 소망을 엮어내려 예비된 흠결 하나 없는 새로운 한 해를 위하여 엄동설한 12월 끝자락이 부산하게 서둘러 대고 있다.


이 한 해의 마지막을 붙들고 그 무엇으로도 막을 수 없는 갖은 용트림을 아무리 한들 떠나버릴 세월인데 누가 무슨 수로 붙잡을 수 있으랴. 낡고 험한 커튼을 걷어내고 화려하고 멋들어진 새것으로 단장해 주려는 것처럼 분명코 새해를 펼쳐주려는 보이지 않는 그 무엇이 2020년 싱그러움과 새 희망으로 내 곁에 다가오는 것임을 부정할 자 없다.
가는 해에 넌 뭘 했느냐고 한마디 묻지도 않았다. 자연이란 내 품 안에 내 너를 감싸 안고 허락하고 다듬어준 너의 삶을 지켜 보호해 주었지 않았던가! 어떤 값 이나 감사의 보답마저도 언제 내가 물었던가? 두 눈으로 보고 두 귀로 듣고 네 멋대로 한다고 언제 간섭 한번이라도 했었던가?


해가 뜨고 지고, 비 바람이나 천둥 번개, 봄 여름 가을 겨울의 온갖 변화를 네게 허락했다고 값을 물었던가? 투정이나 불만에 벌을 주는 엄포를 내렸었던가? 나의 빛 속에 너를 향한 그 모든 사연들이 오직 사랑 하나였거늘, 넌 그 사랑마저도 올바르게 간직하지 못하고 뭐 한가지라도 의롭게 실천하지 못했던 지난해가 아니었던가? 


그 마저 묻지도 질책하지도 않은 채로, 오직 사계절의 화려하고 정교한 자연의 섭리만으로 내 곁에 함께하련다고 동행하면서 새해를 펼쳐 주었기에, 가는 해에 아쉽고 못다 이룬 네 소망과 희망들 썩혀 버릴 것들 아니지 않던가!


이제 또 다른 새해 분명코 기뻐하며 새로운 도전과 꿈을 성취하리라는 기회가 주어질 것이다. 허술했고 미비해서 아쉽게 이루지 못한 부끄러웠던 사연들, 헤아릴 수 없는 먼지처럼 많지 않았던가.


계획했고 실천하려던 것들 못 이루었다고 묵혀 둬야 또 다른 야속함과 후회만이 애통함을 지녀야 할 것이기에 새해 음성 귀에 담아 힘차고 강인한 열정으로 내 곁을 추슬러보는 한 해를 맞이하자고 이렇게 뜻깊은 한 해를 펼쳐 안겨주는 것이다. 


"그물이 삼천 코면 걸릴 날이 있다"는 옛말에 희망이라도 걸어본다. 아침에 다짐했던 것이 저녁에 변해버린다는 "조석변"의 허상이 결코 아니다.


약속과 이행, 결단과 용기, 실천과 성취, 이 모든 것들 정서적 요행 역시 아니다.


지성을 갖춘 양심적 행위만으로 이루어 낼 수 있는 투쟁의 산물이요, 용단으로 다짐했던 순수한 가치가 아닌가!


세월의 흐름에 푸념이나 허상으로 흘러가버린 물길마냥 목적을 상실해버린 삶이라고 내 나이만 헤아려 본다면 결국 추억이라는 잔주름에 좌절만이 참으로 쓸쓸하고 애석하지 않겠는가.


 허전하고 외롭지 말라고 부모 형제 자매들 사랑으로 한 몸 되게 했는데, 가는 길들 험하다고 함께할 수 있는 이웃들 친구들 각별한 인연 속에 함께 할 수 있었는데, 산천초목 사계절의 다양한 섭리 속에 온갖 먹고 마실 수 있는 것들 구비되어 사는데 유용하고 요긴하게 넉넉하게 베풀어졌거늘, 과연 몇 가지나 꼭 성취하여 보람되게 살아야 할 네 분량을 채워나갈 수 있었는가?


가는 세월 탓하며 새로 빚어내는 황금 같은 새로운 한해 모든 행위들 과연 이제는 부끄럽지 않은 모습을 보일 수 있으려나? 값도 없이 허락된 또 새로운 한해 정말 기쁨과 감사 만으로 채워낼 수 있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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