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세 청년 김치맨?

 

 

49세 청년 김치맨?

 

 엊그제 토요일에 김치맨의 7순잔치가 있었다. 생일이 주중이라서 주말에 가족이 캐유가 우리집에서 모였다. 말이 좋아 7순잔치이지 실상은 그저 가족끼리만 모인 조촐한 자리였다. 작은 케이크 하나에 촛불 몇개 꽂아놓구서 Happy birthday to you! 노래를 합창했을 뿐이다.

 

 예전에는 나이 60되면 회갑연을 거창하게 동네잔치로 벌렸었다. 김치맨이 고2때 전주에서 20킬로미터쯤 떨어진 시골동네에서 농사짓고 사시던 조부님의 환갑잔치가 있었다. 한적한 농촌마을에 모처럼 빅 이벤트가 생긴 것이다. 온 동네가 시끌벅적했었다.

 

 그 후 30여년 지난 1986년에 아버님의 회갑연이 있었다. 그런데 아버님의 회갑연 이후에는 예순살이 됐다고 축하해주는 풍습이 점차 사라져간 것 같다. 6순잔치가 아니라 고희잔치 7순잔치가 유행처럼 행해지고 있었다. 수명이 길어져 인생70 고래희(人生七十古來稀)라 해서 70세까지 살아남는 일이 매우 드물다는 게 정설처럼 됐기 때문이겠다. 잔치 복이 많으신 가친께서는 이곳 토론토에서 자신의 자서전 출판기념회 겸해서 고희잔치를 하셨다.

 

 태어난 지 70년 동안이나 죽지 않고 살아있음을 크나큰 축복으로 여기던 시절은 이제 옛말이 돼버렸다. 지금은 평균수명이 83세쯤이라 하며 100세 시대가 왔다고들 한다. 100세 넘게 살아있는 사람은 센티내리언(Centenarian)이라 한다(A centenarian is a person who lives to or beyond the age of 100 years.). 유엔 추계에 따르면 2015년 현재 전 세계에 45만1천명이나 있다.

 

 작년부터 유행한 이애란의 ‘백세인생’ 이라는 유행가 가사에는 ‘60세는 젊어서! 70세에는 아직도 할 일이 너무 많이 남아서 저 세상으로 못 간다!’ 한다. 그리고 ‘80세에 저세상에서 날 데리러 오거든 아직은 쓸만해서 못간다고 염라대왕에게 그리 전해달라고 부탁한다.

 

 생각해보면 별로 자랑스러워하기만 할 7순이 못되는 김치맨이다. 평생을 시행착오와 실패만 거듭해오며 살아온 탓에 “70번째 생일을 축하합니다!” 소리 듣기가 좀 민망하기도 하다. 그리고 죽기 전에 꼭 해야 할일들이 그리 많이 남아있지도 않은 것 같다. 그래서 김치맨은 아직까지는 건강하지만 100세까지 살기는 바라지 않는다.

 

 10여년 전에 김치맨이 만 72세가 된 뒤 이 세상을 하직하는 걸로 가상하고선 유언장이 아닌 자신의 ‘조사(弔詞, Eulogy)를 쓴 적이 있다. 그런데 벌써 만 70세가 돼버렸다. 지금의 건강상태로는 돌연사, 사고사가 아니면 2년여 후에 죽음을 맞이할 거 같지는 않아 천만다행(?)이다.

 

 나이에 대한 유모어를 어디에선가 읽은 적이 있다. 유엔인구통계국에선 청년(40세 이하), 장년(41-65), 노년(65세 이상)의 현재의 구분기준을 바꿀 계획이라는 얘기이다. 즉 50세 이하는 청년, 장년 51세-80세, 그리고 81세-120세까지를 노년으로 하기로 했다고!

 

 이 새 기준에 의하면 김치맨이 노년층으로 분류되려면 아직도 10년이나 남았다. 하긴 얼마 전까지만 해도 김치맨은 ‘나이가 좀 든 젊은 청년!’임을 자부했었다. 그리고 달력나이(Calendar Age/Chronological Age)와 실제 나이에 큰 차이가 있다 했다. 즉 인간들의 육체적 나이(Physical Age)는 달력나이 곱하기 0.7을 해야만 된다는 이론이다. 거기에 의하면 김치맨은 7순노인이 아니라 49세 청년이다.

 

 누구나 자신이 언제 어떻게 저 세상으로 훌쩍 떠날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렇기에 죽음이라는 생의 종말에 대해서는 나하고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일처럼 여기고들 살아가는 게 아닐까? 그저 매일 매일 눈앞에 닥치는 그날그날의 일상생활에만 매달려 살아가고들 있는 것 같다.

 

 김치맨도 그렇지만 많은 사람들은 자신이 유한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은 잘 알면서도! 앞으로 언젠가 닥쳐 올 죽음에 대해서는 신경 안 쓰고 살아가고 있는 것 같다. 마치 천년 만년 살아가기라도 할 것처럼 나이들어 늙어서도 이런 저런 욕심들을 버리지 못한다. 저 세상으로 가는 때를 우리들이 미리 알고 있다면 어떻게들 살아갈까?

 

 얼마 전에 워터루의 가정의에 가서 정기검진을 받고왔다. 오는 길에 조금 돌아 한적한 작은 시골동네에서 편의점하는 친구를 만나 점심을 함께 먹은 적이 있었다.

 

 그 친구는 연금이 나오는 은퇴연령 65세가 되려면 아직도 10년 넘게 남아있는데도 은퇴 후의 삶에 대해서 궁금해 했다. 10여년 후의 자기 삶의 모습을 미루어 짐작해보면서 지금부터 어찌 살까? 궁리해보고자 하는 것 같았다.

 

 김치맨은 솔직히 그가 부러웠다. 왜냐하면 지금껏 앞날의 삶에 대해 생각을 해보지 않고 그저 나날의 생활에만 매달려 왔기 때문이다. 그와 헤어져 돌아오는 길에 김치맨은 문득 자신의 삶의 계획에 대한 생각이 들었다. 자신의 10년 뒤의 삶의 모습에 대해 미리 생각해보고 있는 그 친구! 그런데 나는?

 

 우리는 생일잔치에서 “생일을 축하(Congratulation!)합니다.” 노래 부른다. 나이를 한살 더 먹었음이 축하받아야 할 일일까? 아님, 일찍 죽지 않고 오래 살았음을 축하해 주는 걸까? 여기 영어권에서는 “Happy birthday!” 라며 행복한 생일날임을 강조한다. 그 나이 먹도록 오래 살았지만 앞으로 더욱 더 행복하세요! 동화(Fairly Tales) 맨 마지막에 나오는 ‘Live happily ever after!’ (지금부터라도 좀 더 행복하게 사세요!) 라고 덕담을 해주는 게 보다 더 바람직하지 않겠는가? (2017.04.11)

 

 

 (사진) ▲백세인생(www.youtube.com/watch?v=5DkZ_EsMTG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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