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 방에서-(한경애 로사리아)

 


(이 글은 필자가 최근 유명을 달리한 부군을 그리워하며 쓴 글을 예수성심성당의 한 신자 분이 본보에 보내온 것입니다.) 

 

 


구름과 새들이 지나다 종종 들여다 봐주고, 햇볕이 어깨를 쓰다듬어 주곤 하던 이 작은 방에 당신이 있었습니다. 신비한 지구별에 살고 싶어, 잠시 머물던 엄마의 태 안에서처럼, 다소곳이 꼬부리고 누워, 끝 모르는 기다림에 안겨 있었습니다. 


오욕칠정에 물들은 어른들의 언어는 단 한번도 들어본 적 없는 아기의 모습으로, 매일매일 나는 그 모습을 보며 나의 얼룩진 어제와, 내 안에 숨겨 놓은 나를 눈물로 씻어내곤 했었습니다. 


희망과 소망이 그려진 벽지로 도배를 하고, 당신을 닮은 꽃과 천사들도 불러 왔었지요. 절망을 먹고 살아야 하는 나였지만 당신이 여기 있어서, 내 가슴 안에 평화와 위안이 잠시 잠시 머물다 갈 수 있었습니다.


 침상에 묶여 세상 밖으로 발끝조차 보이지 못하던 당신이었지만, 당신과 나를 뿌리째 흔들어대던 천둥번개와 폭풍우도 두려웠던지 이젠 모두 사라져버렸습니다. 


정적과 그리움만이 그 자리에 누워, 내 눈물의 강이 몸부림치는 소리를 듣고 있습니다. 당신이 날개 밑에 숨겨 거두어 간 것은 아닌가요. 더 이상 나의 연약한 허리가 휘어지지 않기를 빌며, 더 이상 내 가슴에 찬바람이 새어 들지 못하도록, 여보! 이런 나를 두고 떠난 당신이 하늘의 그분께 답답한 가슴을 열어 보이고 싶어 돌아오지 못할 긴 다리를 건너간 것은 아닌가요? 


그렇다면 당신이 잠깐 잊었던 것 같습니다. 바닥을 드러낸 나의 인내와 치열한 전쟁을 벌이고 있었을 때가 지금보다 더 행복했었다는 걸.  


여보! 다시 돌아와 줄 순 없는 건가요? 하늘에 계신 그분께 간절히 부탁을 드려보세요. 당신이 다시 돌아오고, 아픔만은 버리고 올 수 있다면, 난, 우리들의 영혼과 육신을 마비시켰던 9년이라는 시간보다 더 긴 나의 모든 삶을 바쳐서라도 되찾고 싶어요. 


여보! 그때로 다시 돌아가고 싶어요. 단 한 번 만이라도 두 손을 꼭 잡고 풀밭을 걸어보고 싶어요. “빨리 좀 걸어요! 조금 더 빨리 걸어봐요!” 이렇게 잔소리도 하지 않을게요. 내가 당신에게 발을 맞춰 줄게요.


 어젯밤에도 당신이 벗어놓고 간 하늘빛 가운 한벌이 빈 방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괴로움과 외로움을 감싸 안고 눈물을 닦아주던 당신의 전 재산인 그 헐렁한 옷 한 벌과 당신의 향기를 베고 자며 ‘허무하다 허무하다’ 외쳐주며 달리는 기차를 타고 꿈나라로 당신을 찾아 갔었습니다. 당신과의 아름다운 재회를 위해 매일 밤 여행연습을 할 겁니다. 오늘밤에도 마중 나와 주시겠지요?


단 한 번도 나에게 ‘안돼!’ ‘왜 그랬어!’ 라고 목소리 높여 말해 본 적이 없는, 언제나 내 편이었던 나의 유일한 사람, 한정우씨!


 내가 당신께 패악을 부리던 잘못들 용서해 주실거지요? 당신의 기억의 주머니 속은 선한 마음만 가득한 줄 잘 알고 있지만 부탁할게요. 나 로사리아가 너무도 연약한 사람인지라, 끝이 보이지 않는 어둡고 긴 터널 속에서 질식해 죽을 것만 같아서, 하늘의 그분께도 당신한테도 삿대질을 마구 해댔었답니다.


당신에 대한 그리움과 아름다운 추억으로 하루를 살며, 보속의 삶으로 여생을 채워갈 것입니다.


“여보! 사랑하는 한정우씨!”


메아리 혼자 살고 있는 빈방에 난 오늘도 당신의 이름을 가득히 채워놓고 있습니다. “한정우씨! 우리 꼭 다시 만나요 아름다운 어느 별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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