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물 -김정희-

(독자 수필)

 

벌써 1년이 되어 간다. 작년에 참석한 연말파티에서 선물교환이 있었다. 오래 전에 다녔던 회사의 파티에서 일어난 일을 위로하는 것 같이 느껴졌던 그 날의 기억은 아직도 생생하다. 덤으로 즐거운 습관도 생겼다.
 

들어간지 얼마 되지 않은 회사에서 크리스마스 파티를 했었다. 직원들의 이름을 적어 반으로 접은 종이들을 추첨을 통해 한 장씩 가지고, 정해진 금액 범위 안에서 고른 선물들을 주고 받는 시간도 있었다. 겨우 얼굴만 익힐 수 있었던 직원이 기뻐하면서도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 있을까 고심하다가 전화카드를 준비했다. 그때만 해도 외국에 전화를 할 때 많은 사람들이 전화카드를 사용했었다. 한 장의 플라스틱 전화카드와 종이카드를 포장한 후, 장난 삼아 실제보다 훨씬 큰 상자에 담았다. 내가 준비한 선물을 발견하는 직원의 얼굴에 피어났던 함박웃음은 지금도 기억난다. 

분위기가 무르익어 가면서 간간이 들리는 다른 직원들의 탄성과 함께 내 차례가 왔다. 나를 위해 준비했을 선물이 무엇일지 설렘과 호기심이 가득 차 있던 나에게 한 직원이 이미 사용한 것 같은 종이봉투를 건넸다. 그 속에서 누군가의 손 때가 묻어 있는 조그만 봉제 장난감이 나왔다. 한동안 그 봉투의 주름보다 훨씬 더 내 마음이 구겨졌었다. 
직장을 떠나면서 다행히 그날의 일도 잊게 되었다. 작년, 성인장애자공동체 파티에 참석하기 전까지는.

이 모임에서는 주는 사람의 이름을 밝히지 않고 받는 사람도 정하지 않았다. 참석한 사람들이 준비해 온 선물들을 모아 놓고 진행자가 이름을 하나씩 추첨했다. 누구나 무난하게 사용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 고른 내 선물을 받던 분에게 침묵으로 새해 인사도 보냈다. 드디어 내 이름이 불려지고 선물과 함께 조그만 카드 한 장을 받았다. ‘올 한해도 수고 많으셨어요’라고 시작된 카드에 ‘감사한 마음’이라고 서명을 하셨다.
내가 받기는 했지만, 파티에 참가한 모두에게 전하는 인사 같았다. 감사하다는 마음을 가진 분은 어떤 분인지 궁금했다. 보기만 해도 따뜻함을 느낄 수 있었던 목도리도 고마웠지만, 진솔함이 느껴지는 손글씨 카드를 읽어 가는 동안 내 가슴이 뭉클했었다. 한겨울 내내 목도리를 사용하면서 지녔던 감사의 마음은 계절이 바뀌면서 점점 엷어지다가 어느새 잊혀졌다. 겨울 준비를 하다가 조심스럽게 개켜둔 목도리를 발견하는 순간, 작년에 느꼈던 감흥이 되살아나는 듯했다.

지금은 담담하게 말할 수 있게 되었지만, 같이 근무했던 그 회사 직원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기에는 무척 당황스러웠다. 깨끗한 종이에 단 한 줄의 덕담이라도 써서 주었다면, 지금도 소중한 추억으로 간직하고 있었을 텐데. 그 무엇보다도 ‘감사한 마음’님이 주신 카드는, 그것이 무엇이든, 주는 이의 마음에서 우러나는 진실함이 담겨 있다면, 받는 이의 마음에도 잔잔한 감동이 오래오래 머문다는 것을 가르쳐 주었다.

‘감사한 마음’님 덕분에 새 습관이 생겼다. 그 모임에 갈 때면 가끔 탐정이 되곤 한다. 오늘 오셨다면 어디에 계실까? 얼굴에 미소를 짓고 있는 저 분? 농담으로 우리를 웃겨 주던 이 분? 아니면 말이 없고 무뚝뚝해 보이던 그 분? 찬찬히 주위를 둘러보니, 전에는 미처 알지 못했던 또다른 모습도 보이기 시작했다. 계속 하다보니 이곳에 있는 모든 분들이 ‘감사한마음’님처럼 느껴졌다.

새로 시작한 이 놀이는 이 세상 마지막 순간까지도 계속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감사한 마음’님이 누구인지 알게 되면 인사를 드리고 싶지만 한편으로는 계속해서 모르는 것이 더 좋겠다는 생각을 할 때가 있다. 주위에 있는 분들에게 조금만 더 관심을 갖게 될 때 각자가 가지고 있는 독특함과 장점을 발견하는 것도 쏠쏠한 재미가 있기 때문이다. ‘감사합니다, 우리 모두 1년 동안 정말 수고 많이 했어요. 다가오는 한 해에도 건강하게 열심히 그리고 유쾌하게 살아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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