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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만 불 짜리 공연 티켓

 

“다음 주 수요일에 시간 좀 있어요?” “왜?” 후배 피디가 워커힐 호텔에서 무슨 콘서트를 하겠다고 연락이 왔는데 혼자 가기가 뭐하니 같이 좀 가자는 것이다. 1990년대 말, 당시에는 기업이나 정부 기관, 관공서, 대학 등에서 행사 비용을 대고 공연을 해달라는 경우가 간혹 있었다.

 

당시 KBS 열린 음악회나 MBC 가요콘서트 등 가요 프로그램을 보면 스튜디오 공연이 아닌, 야외무대에서 1천~3천여 개의 관객석을 만들고 가수, 합창단, 무용단, 오케스트라가 나오는 버라이어티 한 공연은 대개 이런 협찬사가 있었다.

 

책상머리 좀 떠나 바람도 쐴 겸 따라 나섰다. 워커힐 호텔은 결혼식 하객으로 몇 번 가봤지만, 실내의 웅장함에 미팅을 하기 전부터 기가 죽었다. 크리스털 샹들리에 조명과 양탄자가 깔린 미팅룸도 그렇고, 깔끔한 헤어스타일과 세련된 정장을 한 호텔리어 들은 마치 날렵하고 근육이 잘 발달한 경주마 같았다.  

 

그들에 비해 청바지에 티셔츠 차림의 우린 야생에서 키워진 몽골말이랄까? 그런 느낌이었다. 미팅 내용은 “워커힐 카지노의 VIP 고객들을 초대해 콘서트를 하고 싶다”는 것이다. 장소는 1000석 규모의 호텔 이벤트 홀이고, 가수는 단독 콘서트면 좋겠다며 구체적으로 “조용필이나 일본에서 활동하고 있는 김연자를 초대하고 싶다”라고 한다.

 

당시로는 조용필이나 김연자의 단독 콘서트를 한다는 것은 일단 섭외 자체가 불가능하던 시절이어서, “예산을 얼마 정도 생각하느냐?”라고 했다. “저희는 주로 일본과 대만에 있는 VIP 고객을 초대할 예정인데, 왕복 항공권과 2박 3일의 숙박, 관광, 콘서트 관람 등의 모든 비용을 무료로 하는 프로그램을 구상하기 때문에 예산 걱정은 하지 말라는 것이다. 우리는 ‘조용필과 김연자 단독 콘서트가 왜? 어려운지?’를 미팅 내내 설명을 했지만, 그들은 “그러니까, 방송사에 부탁하는 겁니다”라고 했다.

 

미팅을 마치고 돌아오며, “이런 콘서트는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닌 것 같다”고 의견을 나눴다. 그 뒤, 조용필과 김연자와 접촉했지만, 둘 다 단독 공연을 할 수 없다고 해서 다른 기획안을 제안했지만, 행사는 흐지부지 이루어지지 못했다. 그리고 몇 년 뒤, 그 아이디어와 유사한 프로모션 공연이 ‘베넥스 에이앤씨’라는 회사 주최로 열린다.

 

2004년 5월 15일, 잠실 주경기장에서 열린 <오페라 카르멘> 공연이다. 이 공연의 프로모션 로얄석 1매(2장)는 2000만 원(2만 불)으로 한국에서 가장 비싸게 팔린 티켓으로 기록된다. 이 티켓은 워커힐호텔의 VIP 고객인 일본인들을 상대로 판매되었고, 로얄석 2매 외에 한국 왕복 1등석 항공권 2매, 초호화 별장의 1박 2일간 숙식, 2명의 가이드, 롤스로이스 리무진을 교통편으로 서비스 받았다.

 

 2002년 월드컵 이후, 한국에서는 공연의 대형화가 유행되는데 2003년 9월 잠실 주경기장에서 공연된 <아이다>에서는 이집트 코끼리 전차 군단의 행진 장면을 위해 실제 코끼리를 동원하기도 했었다. <오페라 카르멘>도 총제작비 85억 원(850만 불), 출연진 750명, 무대 길이 105미터, 일일 관객 좌석수 4만 석, 진행 요원 500명 등 각종 화젯거리의 오페라였다.

 

▲2004년 5월 15일 잠실 올림픽주경기장의 <오페라 카르멘>은 출연진 750명, 무대 길이가 105미터나 되는 초대형 공연이었다.

 

초대형 공연인만큼 공연 제작자들은 좀 획기적인 이슈거리를 생각했는데, 오페라 내용의 배경이 되는 스페인의 투우장 장면을 공연에 넣어 보자는 계획을 세운다. 실제로 여주인공 ‘카르멘’의 상대역이 투우사여서, 제작진은 스페인에서 투우에 사용되는 소 여덟 마리를 들여오고, 투우사들이 공연 중에 실제 투우를 벌이기로 한다. 물론, 경기장 복판에서 소에게 진짜 칼질을 할 수는 없으므로 마취 침이 달린 칼을 이용한다는 아이디어도 준비했다.

 

그런데, 이 계획은 중대한 난관에 부딪친다. 2000년 유럽의 광우병 파동 때문에 유럽의 쇠고기나 소를 원료로 한 제품을 반입을 할 수 없었던 것이다. 따라서 스페인 투우도 당연히 반입이 금지되었다. 2003년 가을, 공연 관계자들은 광우병 규제를 피할 방법을 조사하고 관계기관에 협조를 요청하다가 결국 유럽에서 투우를 들여오는 것을 포기한다. 그 대신 투우에 쓰는 소를 미국에서 구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아내고 투우사는 스페인에서, 투우는 미국에서 구해오는 새로운 계획을 세운다.

 

 ▲잠실 주경기장에서 열린 <오페라 카르멘>의 최고가 티켓은 2 만불에 팔렸다.

 

사실 광우병 문제는 국가 간 외교나 행정의 틀을 넘어 보건, 방역, 생화학 등이 복합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쇠고기 수출 대국인 미국은 “자기 나라 소는 안전하다”고 자부했었다. 그런데 2003년 크리스마스 이브인 12월 24일, 앤 배너먼 농무부 장관은 “미국 최초로 광우병에 걸린 소가 발견될 듯하다”는 내용을 발표한다. 미국 농무부 장관의 발표가 나오자, 한국도 검역 일정을 미루는 방법으로 잠시 시간을 벌다가 미국 측의 최종 발표 후, 수입을 금지시킨다.

 

한편, 미국에서 광우병이 발견되는 바람에 미국 소도 들여올 수 없게 된 제작진은 결국 투우 장면 실현에 실패한다. 제작진은 백방으로 다른 나라에서라도 투우를 찾아보려 했지만, 그 당시 이미 광우병이 없는 나라는 찾을 수가 없었다. 우여곡절 끝에 <오페라 카르멘>의 막은 오르지만, 난데없는 강풍 때문에 100미터나 되는 스크린도 하루 뒤, 안전을 위해 철거되고 이래저래 공연은 김이 빠져 버린다.

 

2만불이나 하는 <오페라 카르멘>의 티켓은 일본 기업체의 고위 간부들이 구입했다고 주최사가 밝히지만, 과연 몇 매나 팔렸을까? 궁금하다. 아무튼, 요즘 같은 코비드 19 시대에 <오페라 카르멘> 같은 초대형 공연은 앞으로 할 수 없을 것 같으니, 당분간 이 최고가 티켓 기록은 깨기 어려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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