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하기는 숨쉬기 다음가는 천부적 인권이요 즐거움이다. 말하기의 어려움은 말하는 이의 지식의 다과나 말의 정당성 또는 그 말을 꼭 해야 할 절박감의 정도에 비례하는 것도 아니다. 누구든 말을 안 하고 살 수는 없고, 일상에서 말 수를 줄이기도 쉽지는 않다.
말하는 자유를 통제하면, 당하는 이에겐 엄청난 고역이 된다. 임금이 중신을 벌할 때 멀리 귀양보내면서도 죄인을 가시나무로 둘러싼 집에 가두어 외부와 접촉하지 못하게 했고, 오늘날에도 정권에 밉보인 공안 사범을 좁은 독방에 가두는 것을 본다. 인간의 말하는 즐거움을 극단적으로 빼앗아 고통의 강도를 높이는 조치들이다.
듣기는 말하기와 비교해 수동적인 기능이다. ‘천 냥 빚도 말 한마디로 갚는다.’ ‘죽더라도 할 말은 한다.’ 같은 옛말을 보면, 말하기의 능동성이 확연하다. 말하기는 본인의 의지가 강하게 실린 기능으로서 효과를 얻기가 쉽다. 말하기는 글쓰기에 비해서도 역동성이 크고 효과가 빠르다. 하지만 대중을 상대로 즉석에서 말하는 경우는 실수할 위험성이 높다.
말하기의 어려움은 무엇보다 뱉은 말을 주워 담을 수 없는 데 있다. 이런 때 말은 ‘생존권’ ‘천부적 자유’가 아니라, 말하는 이를 죄는 족쇄가 되고, 다치게 하는 칼날이 될 수도 있다.
현명한 화자(話者)는 정제된 말만 내놓으려고 애쓴다. 나이가 많고 학식이 있다고 하여 다 말을 잘하는 것도 아니다. 말하는 이의 언어적 센스, 도의적 정당성, 교양 등이 동시에 요구되기에 그렇다.
해바라기처럼 목을 빼고 그리움의 원천인 서쪽 하늘만 응시하는 이민사회의 모습이 측은하다. 수구초심의 본능이 이민자로 하여 고국의 소식에 목말라하고 일희일비하게 한다. 소용돌이치는 그곳 정국 상황에 따라 여기서도 좌니 우니 편을 가르면서 의견이 다른 상대를 원수 대하듯 하는 경우를 보면, 그런 땐 모국어로 나누는 정담도 맛이 떨어진다.
캐나다 사회의 운영방식은 사회주의 국가의 그것에 가깝다. 캐나다 정부의 보호에 노년의 삶을 의탁하면서도 왜 우리끼리는 작은 차이를 지닌 서로를 용납할 수 없어서 차별의 눈을 부라리는지? 그런 편협한 언행은 자가당착일 텐데.
정치는 말로 하는 것이다. 대통령의 말은 고도의 정치 행위로서, 정부의 최종 결심 같이 들린다. 그의 발언이 진실하고 품위 있고 무게를 지녀야 하는 이유다. 그 발언의 수준이 나라의 품격 수준으로 인식되기에 더욱더 그러하다.
윤석열은 집권 후 두 달 남짓에 벌써 많은 공약을 무시하며 자신이 한 말에 역행하는 언행을 밥먹듯 하면서도, 자신의 인기가 없는 이유를 전부 문재인 때문이라고 말한다. 어불성설이다. 체구는 듬직한데, 말은 참 가볍게 한다.
지도자는 말을 바르게 해야 한다. 하기 쉽다 하여 거짓말을 되풀이하고 위선적인 행동을 일삼으면, 결국 부메랑이 되어서 돌아온다. 귀양지를 떠돌던 그를 중앙지검장으로 검찰총장으로 특진시키고, 고지식하게도 ‘엄정중립’을 지키며 뒤로 물러선 이는 문 대통령이었다.
대선 과정 내내 이재명을 아프도록 깎아내린 자들은 대부분 문재인계 인사들이었다. 결국 윤석열의 대통령 당선에 문재인이 일등 공헌자인 셈이다. 자로(子路)가 묻고 공자(孔子)가 답한 가르침에, “政者正也 修己治人”이란 구절이 있다. “정치란 것은 바르고 정의로워야 한다. 그러므로 나 자신을 먼저 닦아서 올바른 사람이 된 뒤에야 남을 바르게 이끌 수 있다.”란 뜻이다.
이명박, 박근혜, 문재인, 윤석열 등은 유감스럽게도 눌변가들이다. 석 달째 접어든 윤석열 대통령은 정치 신인답게 겸손하고 부드럽게 시작했어야지, 왜 사정(司正) 정국 만들기에 사활을 거는지? 제발 뒤로는 가지 말고, 앞으로 가기를 빈다.
국민을 형사 피의자 보듯 하는 말버릇도 고쳐야겠다. 꼭 그럴 셈이면, 본인의 가족과 측근의 드러난 비리부터 청소한다면 국민이 환호할 것이다. 대통령의 입에서 매일 “법대로, 법에 따라서” 따위의 협박조 말이나 듣고 싶어 뽑은 건 아니다. 국민은 “경제, 물가, 화합, 발전, 안전, 함께 노력합시다” 같은 진취적인 국정 청사진과 가슴이 뛰는 상생의 방안을 듣고 싶어 한다.
‘도어스테핑’에서 보여주는 그의 사나운 말과 삿대질은 “여러분, 나는 무지하고 무례한 사람이다. 여론 따윈 관심이 없다. 그래서 어쩔래?”라는 어깃장 같다. 그건 대통령의 언사가 아니다. 박근혜를 흔히 혼군(昏君)이라고 일컫는데, 윤석열이 태도를 고치지 않으면 폭군(暴君)이 될 소질이 다분하다. 자유민주주의 나라의 지도자들이 하는 약식 회견은 미국으로 치면 케네디나 오바마쯤, 한국에선 김대중이나 노무현 정도는 돼야 소화해낼 방식 같다.
일부 언론의 “참신하다”라는 아첨성 부추김에 내공도 없이 겉 흉내만 내면 무식이 곧 탄로 난다. 그게 뜻대로 되질 않으니까, 화난 얼굴로 국민께 삿대질인가? 머리에는 지식이 없고, 가슴에 경세제민(經世濟民)의 착실한 구상이 없는데 어찌할꼬. 준비가 안 된 지도자에게 5년은 너무나 길다.
‘누구나 하는 말인데, 그것을 잘하기는 참 어렵구나’ 싶다. 신임 대통령의 지지율이 30%로 급락한 것은 나라의 불행이며 국민의 손해다. 지금도 늦진 않았다. 당신의 거친 반말은 부드럽고 정중한 말투로 바꾸고, 술은 그만 마시고, 책 좀 읽고, 최고위 공직자답게 일찍 출근해서 솔선수범하고, 거짓말 박사의 말과 행동까지도 단속한다면 이 위기를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잖으면 무슨 탈이 날 것만 같아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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