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 정치는 하고 싶다고 하여 아무 나라나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우선 그만한 자질과 교육을 받은 민족이어야 하고, 필수적인 여건도 두루 갖춰야 이룰 수 있는 까다로운 과업이다. 세계에서 국호에 ‘민주’ 라는 수식어를 붙인 나라가 많지만, 그 대부분은 민주주의라는 이름을 도용하면서 실제로는 독재 정치를 은폐하는 수단으로 삼는 모습이다.
북한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요, 중공은 ‘중화인민공화국’이다. 그런걸 보면 민주주의 그 자체가 싫다는 나라는 없을 듯하다. 그러니 너도나도 ‘민주’라는 위선의 겉옷을 걸치지 않았겠는가.
영국에서는 마그나카르타(대헌장, 1215년), 청교도 혁명(1660년), 명예 혁명(1688년)을 겪으면서 인민의 자유와 인권을 법률로써 제도적으로 보장하였고, 그것을 실현하는 방편으로 의회민주주의를 발전시켜왔다. 그들은 수백 년에 걸친 혁명과 반혁명의 우여곡절을 겪으며 오늘의 모범적인 정치체제로 자리잡게 한 것이다.
종교 전쟁과 절대주의 체제의 질곡을 벗어나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영국을 떠난 이들이 1620년 북미 대륙에 정착하였다. 그 후 인구가 빠르게 증가한 식민지 자치주와 영국 사이엔 마찰이 불가피하였는데, 이것이 아메리카의 독립전쟁(1775년)을 유발한다.
자치주 혁명군은 마침내 승리하여 영국의 지배를 벗어났다. 그들은 인간의 자유, 행복추구권 등을 천부적天賦的 인권으로 여겨 이를 헌법으로 보장하고 ‘시민이 주권자로서 일정한 기간마다 통치자를 직접 뽑아 세운다’라는 혁신적인 정치사상을 실현하기에 이른다.
프랑스에서 일어난 새로운 형태의 인민봉기, 즉 시민혁명(1789년)은 왕과 왕비를 단두대로 처단하여 구체제와 결별함으로써 유럽의 왕들을 벌벌 떨게 했다. 주변 왕국들의 훼방 속에 한동안 시행착오는 겪었지만, 결국 프랑스 대혁명은 인류가 이룬 가장 위대한 진보라고 일컫는 기념비적 사건으로 자리매김했다.
한국의 민주주의 이념은 1919년 상해에 세운 대한민국임시정부의 헌법에서 천명한 것이 시초였다. 그것은 조국 강토를 되찾는 날 왕국의 복원이 아닌 ‘대한민국’을 세울 결의를 내외에 선포한 역사적 문건이다. 근래에 국내의 일부 인사 중에는 “임시정부의 헌법에 의미를 부여할 가치도 없다. 대한민국의 역사는 1948년 8월 15일부터이다.”라고 주장한다.
이런 친일 매국노 같은 주장을 펼치는 자들을 보면, 그들의 선조가 일제에 빌붙어 권세를 누렸고, 일왕께 국방헌금도 많이 바치고, 자식들의 교육에도 유리한 입장이었으며 그래서 지금까지 떵떵거리며 사는 바탕이 그때…. 또 해방 후에는 자유당원, 공화당원, 민정당원, 한나라당원으로 잽싸게 말을 갈아타며 평생 ‘등 따습고 배부른’ 길만 걸은 얍삽한 행적을 본다. 그렇게 민족의 수난과 고통을 외면했으면 입이나 다물고 살 것이지.
프랑스는 4년의 나치스 통치 때 부역한 민족 배반자를 역사의 심판대에 세워 수만 명이나 죽였다. 한국은 40년간 일제에 협력해 ‘황군에 가담하자’고 선동하고, 일제의 손발이 되어 민족을 죽음으로 내몬 자들이 엄청 많았음에도, 처벌된 사람이 없었다. 일을 이렇게 만든 이는 이승만이다. 그것은 6.25 때 “대통령은 시민과 함께 서울을 사수한다”라는 거짓 방송을 내보내면서 그 혼자만 멀리 달아난 비리와 함께, 그의 많은 공적으로도 덮을 수 없는 큰 실책이었다. 민족정기를 바로 세울 민국 초기에, 마땅히 해야 하는 청소를 하지 않은 그의 부작위不作爲는 민족사에 기록되어 두고두고 회자膾炙될 것이다.
입만 열면 ‘헌법 정신’, ‘법치주의’, ‘자유’를 되뇌는 집권자가 취임 후 8개월이 지나는 지금, 그의 말대로 실행되고 있다고 여길 국민은 별로 없다. 해야 할 일은 하지 않고, 하지 말아야 될 일에 검찰력과 국고를 쏟아 붓고, 스스로 내분을 조장하는 등 국력을 소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집권자가 국민을 대하는 언행이 수사 검사가 형사범 대하듯 한다.
그들에 비판적인 무리나 야당을 타도해야 할 ‘범죄 집단’, ‘빨갱이’라고 거침없이 매도한다. 그의 말 대로라면 소위 윤핵관들이 마치 빨갱이 소탕전에 나선 구국의 용사들 같다. ‘언어도단’ ‘적반하장’은 이런 경우에 쓰는 말이다. 그들은 허우대가 멀쩡하지만 신성한 국방 의무를 빼먹은 사이비 애국자들이다. 소총, 기관총의 구분조차 못 하는 주제에 누굴 보고 그런 망발인가. 입이 비뚤어진 것이야 사진을 보고 알았지만, 그래도 말은 바로 해야지.
검사가 집권하면 누구보다 법질서를 잘 지켜서 공익을 실현하고, 사회를 안정화하리라 기대했었다. 그들은 말로만 ‘법질서’를 외치면서 실제는 헌법 질서를 유린하고 있으니, 사회의 소란이 끊일 새 없다. 국정의 중요한 고비마다 무속인들이 나서서 공공연히 ‘콩 놔라’, ‘팥 놔라’ 하는 데, 결국 일이 그렇게 돼가는 것을 보면, 그들이 집권자의 머리 위에 군림하는구나 싶다.
백성의 주장이 제일이면 민주 공화국이요, 검찰의 주장이 제일로 존중되면 검찰 공화국이다. 그러니까 한국은 이름뿐인 민국民國이 아니라, 이제 실제적인 검찰 공화국이 된 것이다. 혹시 무속인 공화국이 된 건 아닐 테지?
2022년 10월29일 저녁, 서울 이태원에 놀러 나온 군중 속에서 158명의 청년이 압사했지만, 정부의 누구도 사과할 줄 모르고, 덮으려고만 한다. 정부는 국민의 눈과 귀를 막고 어용 언론들을 통제하여, 희생자의 이름도 얼굴도 주소도 숨기고 국화꽃에다 머릴 조아리게 하는 이상한 추도식으로 뭉개려 했다. 공감 능력이 없고, 생명을 귀하게 여길 줄 모르는 인간들의 행태가 우스꽝스럽다.
국무총리는 외신 기자들에게 농담 때리며 시시덕거리고, 행정안전부 장관도 말장난이라면 절대 밀리지 않는다. 우리는 경제개발의 바쁘고 고단한 과정에서도 정치적 자유, 경제적 평등이란 이상을 갈구하며 독재체제에 대항한 긴 투쟁을 하였고, 결국 자력으로 민주 정치를 쟁취했다.
슬프다, 국민이 30여 년간 투쟁하며 가꾼 민주주의 꽃밭을 검찰 출신 집권자가 짓밟고, 지난날의 성과를 전부 뒤엎는 것은 국민에 대한 모욕이요 패악질이다. 현명한 국민이 검찰 공화국이란 시대 역행적 야욕을 물리치고, 웃을 수 있을 그날을 바라며 응원한다. (2022.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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