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NG

사소한 '걸치는 것' 하나의 중요함

아침저녁으로 제법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는 8월의 끝자락이다. 계절이 바뀌는 길목에 서면 문득 지난 계절의 호된 기억이 떠오르곤 한다. 유난히 뜨거웠던 지난 7월, 감기라는 작은 그림자가 내 몸에 드리운 지 두 주가 넘었을 때의 일이다. 처음엔 그저 바람처럼 스쳐 지나갈 줄 알았던 여름 감기는 내 몸 한편에 조용히 눌러앉아, 마치 오래된 기억처럼 쉽게 떠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

 

지나간 초여름, 여름이 갑자기 문을 열고 들어오던 날이었다. 반팔과 흰 바지를 단정히 입고 카페에 앉아 시원한 공기를 마시던 그때, 나는 산산한 바람이 얼마나 달콤했던지 '신선놀음에 도끼자루 썩는 줄 모른다'는 말처럼 그날 가장 중요한 ‘걸치는 것’을 깜빡하고 있었다.

 

얇은 스웨터 하나, 앞이 터진 가벼운 긴팔 윗옷 하나. 그 작은 옷은 단순한 천 조각이 아니라 찬 공기와 따뜻한 몸 사이를 지켜주는 보이지 않는 경계였다. 차에 몇 개씩이나 넣어 다니면서도 그날따라 그 한 개를 걸치지 않았다는 것이, 결국 내 몸의 경계를 스스로 허문 셈이 되었다.

 

열도 없고 몸살도 없었지만 팔과 종아리의 피부가 싸늘하게 시렸다. 체온이 빠져나간 자리에는 작은 불안이 고요히 내려앉았다. 홍삼 엑기스, 꿀, 생강차, 쌍화차, 대추차, 계피차 등 따뜻하다 하는 것은 모조리 들이켰다. 찜질방의 뜨거운 공기 속에서도 온기를 되찾기 위해 애를 썼다. 아픈 몸을 달래는 일은 늘 소란스럽고, 그 소란은 마음을 먼저 흔들었다. 기침이 폐렴으로 번질까 걱정되어 약도 꼬박꼬박 챙겨 먹었다. 그제야 ‘내 고뿔이 남의 염병보다 더하다’는 말이 뼈에 와닿았다.

 

지난 십여 년 동안 감기 한 번 걸리지 않고 황소처럼 일하며 살아온 나였는데, 여름 감기는 개도 안 걸린다는 속담 앞에서 그 강단이 무색해졌다. 세월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흐르고, 자만은 누구에게나 조용히 틈을 탄다.

 

체온이 1도만 내려가도 면역력이 30%나 떨어진다고 한다. 정상 체온 36.5도를 지키는 일은 삶을 지키는 일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시니어가 되고서야 새삼 깨닫는다. 나는 늘 몸에 열이 많다 여겨 뜨거운 물로 샤워하는 것도 싫어하고 뜨거운 음식은 식혀 먹었다. 그 사소한 습관들이 내 몸의 문을 조금씩 열어두고 있었던 것이다.

 

밖에서는 초록 바람이 불고 꽃들이 저마다 색을 펼치고 있었을 텐데, 가장 좋은 계절에 종일 누워만 있으니 서글픈 마음이 들었다. 찔레꽃과 해당화가 한창일 때 그 꽃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 생각을 하면 마음만 동동 굴렀다. 아프다는 것은 몸이 아니라 마음이 먼저 갇히는 일이라는 것을 그때 비로소 알았다.

 

늙는다는 것은 머리가 희어지고 주름이 생기는 일만이 아니었다. 작은 실수 하나에도 며칠씩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것, 몸이 예전처럼 말을 듣지 않는다는 것을 조용히 받아들이는 일. 그 모든 것이 늙음의 또 다른 얼굴이었다. 한 달여가 지나면서 체중은 3kg이나 줄고 얼굴은 작아졌지만 서서히 회복되었다. 아플 때는 아프지 않은 사람이 가장 부럽다. 그날, 그저 ‘걸치는 것’ 하나만 챙겼더라면 이런 일은 없었을 텐데 말이다.

 

삶은 늘 사소한 것 하나를 놓친 자리에서 가장 큰 깨달음을 건네준다. 작은 옷 하나가 몸을 지키듯, 작은 주의 하나가 삶을 지킨다는 것을 나는 이번에야 비로소 배웠다. 후회는 언제나 늦게 찾아오지만, 그 늦음 속에서 나는 다시 한번 건강하게 살아가는 법을 배운다.

 

CA
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