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네스트헤밍웨이(11)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걸작 노인과 바다(The Old Man and the Sea)는 단순한 낚시 이야기를 넘어, 인간의 불굴의 의지와 존엄성을 다룬 뜨거운 드라마(DRAMA)로 다음의 줄거리를 살펴볼수 있다. 

 

84일간의 불운, 그리고 마지막 출항 

쿠바의 노어부 산티아고는 84일째 단 한 마리의 물고기도 잡지 못한 최악의 불운을 겪고 있다. 마을 사람들은 그를 비웃고, 유일한 멘토 제자인 소년 마놀린마저 부모님의 반대로 그의 배를 타지 못하게 했다. 

하지만 노인은 포기하지 않는다. 85일째 되는 날, 그는 운명을 시험하듯 평소보다 훨씬 먼 먼바다(Gulf Stream)로 홀로 배를 저어 나간다. 

 

거대한 '청새치'와의 목숨을 건 사투 

드디어 노인의 낚싯줄에 엄청난 무게감이 느껴진다. 그것은 노인의 배보다 더 큰 거대한 청새치(Marlin)였다. 여기서부터 이 소설의 백미(白眉, CLIMAX)인 ‘3일간 밤낮의 추격전'이 시작된다. 

고독한 대화: 노인은 손에 쥐가 나고 온몸이 피투성이가 되는 고통 속에서도 자신을 끌고 가는 청새치를 형제라 부르며 경의를 표한다. 

인내의 미학:  낚시에 걸린 작은 날생선외에 먹을 것도, 잠잘 곳도 없는 작은 보트 위에서,특히 해가 떨어진후 어두움을 동반한 추위와 배고픔으로 찾아오는 두려움과 암흑속의 파도를 타며 생기는  공포를 노인은  정신력 하나로 버틴다., 결국 3일째 되는 날 청새치를 수면 위로 끌어올려 작살을 꽂는 데 성공한다. 

 

피할 수 없는 비극: 상어 떼의 습격 

승리의 기쁨도 잠시, 청새치가 흘린 피 냄새를 맡고 상어 떼가 몰려오기 시작한다. 이 부분이 소설에서 가장 처절하고 흥미진진한 대목으로 이어진다. 

노인은 나무로 만든 노 끝에 칼을 묶어 창을 만들고, 몽둥이를 휘두르며 필사적으로 무기가 소진될때까지 상어때들과 싸운다. 그는 이때 그 유명한 명대사를 남긴다. 

"하지만 인간은 패배하기 위해 태어난 것이 아니다. 인간은 파괴될지언정 패배하지는 않는다." (But man is not made for defeat. A man can be destroyed but not defeated.) 

 

뼈만 남은 전리품, 그리고 사자의 꿈 

결국 노인은 항구에 도착하지만, 그가 가져온 것은 살점이 다 뜯겨 나간 18피트(약 5.5m)짜리 거대한 뼈뿐이었다. 사람들은 그 거대한 뼈를 보고 노인의 실력과 고난을 뒤늦게 깨닫는다. 

지칠 대로 지친 노인은 집으로 돌아와 깊은 잠에 빠진다. 그리고 그의 꿈속에는 젊은 시절 아프리카 해변에서 보았던 밀림의 사자들이 나타난다. 비록 결과물은 뼈뿐이었지만, 그의 정신적 승리는 누구도 부정할 수 없음을 보여주는 감동적인 결말이다. 

 

이 소설이 흥미로운 이유 

단순함 속의 긴장감: 배 한 척, 노인 한 명, 거대한 물고기 한 마리 상어때라는 최소한의 설정만으로 숨 막히는 긴장감을 만들어낸다. 

상징성: 청새치는 우리가 쫓는 꿈이나 목표를, 상어는 인생에서 마주하는 시련과 고통을 상징한다. 

 

 

산티아고 노인이 바다와 고기와 자신이 하나임을 깨달았던 것처럼, 각 종교와 철학에서 말하는 연결성과 통합의 원리를 정리한다면 

 

금강경의일합상(一合相) 

부분들이 모여 전체를 이루지만 그 전체 또한 실체가 있는 것이 아니라 만물이 서로 의존하며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는 통찰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인류의 위대한 경전과 철학 속에서 그 맥을 같이 하고 있다. 

 

성경 (Christianity) 

성경에서는 만물이 하나님의 신성 안에서 연결되어 있으며, 특히 지체(Body Parts)의 비유를 통해 일합상의 원리를 설명한다. 

구절: "우리가 한 몸에 많은 지체를 가졌으나 모든 지체가 같은 기능을 가진 것이 아니니, 이와 같이 우리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 되어 서로 지체가 되었느니라." (로마서 12:4-5) 

해석: 각기 다른 존재들이지만 결국 '그리스도'라는 하나의 근원 안에서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논리이다. 이는 산티아고가 고기를 형제라 부르며 자신의 고통과 고기의 고통을 구분하지 않았던 영적 일체감과 상응한다. 

 

코란 (Islam) 

이슬람 철학의 핵심은 '타우히드(Tawhid)', 즉 하나님의 유일성과 만물의 통합성이다. 

구절: "동쪽과 서쪽이 모두 하나님의 것이니, 너희가 어느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든 그곳에 하나님의 얼굴이 있느니라." (코란 2:115) 

해석: 우주의 모든 물질과 에너지는 개별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의 근원(하나님)으로부터 발현된 것이라는 뜻이다. 우주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존재의 반영이라는 점에서 일합상과 맞닿아 있다. 

 

고대 그리스 철학의 '일합상' 

고대 철학자들은 만물의 근원(Arche)을 탐구하며 '여럿 속에 존재하는 하나'를 찾고자 했다. 

 

소크라테스 (Socrates) & 플라톤 (Plato): 이데아의 통합 

플라톤은 현상계의 모든 개별적인 사물들은 불완전하지만, 그 근원인 이데아(Idea)의 세계에서는 모든 것이 완벽한 질서 속에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고 보았다. 

특히 플라톤은 우주를 하나의 살아있는 유기체로 보는 '우주 영혼(World Soul)' 개념을 제시했다. 이는 산티아고가 바다를 단순한 물덩어리가 아니라 '라마르(La Mar, 여성으로서의 바다)'라는 생명체로 인식한 것과 유사하다. 

아리스토텔레스 (Aristotle): 전체는 부분의 합보다 크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사물의 개별적 실체를 인정하면서도, 그들이 이루는 전체성(Holism)을 강조했다. 

그의 유명한 명제는 개별 존재들이 유기적으로 결합했을 때 나타나는 우주적 질서와 에너지를 의미한다. 

그는 모든 만물이 제1 원동력에 의해 목적론적으로 연결되어 있다고 보았으며, 이는 만물이 서로 원인이 되고 결과가 된다는 연기설(緣起說)적 일합상과 논리적 궤를 같이한다. 

(다음호에 계속) 

 

노인과 바다를 읽고 항해를 하며 떠오른 영문시 한편을 올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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