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네스트 헤밍웨이(6)

60년 만에 마주한 헤밍웨이

1960 419혁명직후 휴학이 게속 진행중   필자는 친구들과 함께 대한극장을 찾았다. 어네스트 헤밍웨이 원작의무기여 잘 있거라를 관람하기 위해서였다. 제목만 보고 호쾌한 전쟁 활극을 기대했던 혈기 왕성한 16세 소년들에게 영화는 기대와 달리 두 연인의 처절하고도 비극적인 연정으로 끝을 맺으며 적잖은 실망을 안겨주었다.

하지만 극장 안 불이 켜지는 순간, 소년의 실망은 묘한 경외감으로 변했다. 객석 여기저기서 여학생들이 손수건으로 눈을 가린 채 훌쩍 훌쩍하는 광경을 목격한 것이다. 그 눈물 젖은 손수건들은 우리들 가슴에 '이성'이라는 낯선 파도를 일으켰고모르는 사이 그 슬픔의 소용돌이에 함께 휩쓸려 들어갔다.

먹먹해진 가슴을 안고 인파가 뒤덮인 극장밖으로  늦봄추위에  몸을 움추리며 친구들을 따라 퇴계로에서 종로 3가 뒷골목의 이름난 함흥냉면집을 찾았다. 생전 처음 맛본 함흥냉면은 충격이었다. 쫄깃한 면발에 거칠게 달라붙은 양념장은 알싸하게 매웠고, 홀짝 홀짝 면을 넘길 때마다 식도까지 뜨겁고 짜릿한 전율이 일었다. 불붙은 혀를 달래려 주전자에 담긴 뜨거운 육수를 컵에 따라 후루룩 들이키면, 짭조름하고 구수한 맛이 이열치열로 내장을 달래주어 마치 천상에 오르는 듯한 기분을 만끽하게 했다.

입안을 화끈하게 달구는 양념장의 고통과 뒤이어 찾아오는 육수의 구수한 위로. 그것은 미각이 선사하는 강렬한 맛의 롤러코스터였다. 평소 당구장을 전전하며 떠들던 친구들도 그날만큼은 냉면 맛에 심취해 영화 이야기도 잊은 채 무덤덤한 표정이었다. 아마 그들도 필자처럼 전쟁 영화의 활극 대신 마주한 인생의 비극, 그리고 처음 맛본 매운맛의 자극에 취해 이성에 눈을 뜨기 시작했으리라. 그날 이후 친구들은 도서관 제과점을 바삐 돌아다니며 '걸프렌드'를 만들려 애쓰던 기억이 지금도 입가에 미소를 짓게 한다.

 

 

함흥냉면과 무기여 잘 있거라의 롤러코스터

60여 년이 흐른 지금, 필자는 다시 소설과 영화를 펼쳐 들었다. 이제야 비로소 깨닫는다. 헤밍웨이가 설계한 행복과 불행의 롤러코스터는 우리가 그날 먹었던 함흥냉면과 닮아 있었다는 것을. 다만 차이가 있다면, 냉면은 지독하고 살인적인 매운맛 끝에 구수한 육수의 위로가 찾아오지만, 헤밍웨이의 소설은 달콤하고 가장 행복했던  로맨스로 시작해 서늘한 빗줄기라는 비극의 끝으로 우리를 몰아넣는다는 점이다.

인생이란 결국 이토록 예고 없이 매운맛과 구수한 맛이 교차하는 궤도 위를 달리는 것이 아닐까. 81세의 나이에 다시 마주한 헨리와 캐서린, 그리고 1960년대 종로의 냉면 향기는 여전히 내 가슴속에서 뜨겁고 맵싸한 진동을 일으키고 있다. 10월에 한국방문중 그유명한 함흥냉면집을 찾을 계획이다. 먼저 떠난  친구가 없어도 가고 싶다.

 

 

여담

재미있는 점은, 훗날 헤밍웨이와 결별하고 이태리 장교와 결혼한  아그네스는 이 소설을 읽고 "나는 캐서린처럼 연약하고 순종적인 여자가 아니었다"며 불쾌해했다고 한다. 자신을 문학적 공격으로 독자들에게 슬픔을 주는 비극의 주인공으로 만드는 헤밍웨이를 속좁은 패배자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헤밍웨이에게 그녀는 이미 '자신을 구원하고 파멸시킨' 불멸의 문학적 상징이 되어버린 뒤였다.

어쩌면 30세의 헤밍웨이는 사랑의 상실과 전쟁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가장 비극적인 결말을 써 내려가며 자신의 트라우마와 정면으로 승부했는지도 모른다. 아니면 자기학대를 서슴치않는 나르시스트일지도 모른다.

헤밍웨이는 늘 누군가 혹은 무언가를 이겨야만 자신의 존재를 증명할 수 있다고 믿으며 스스로를 채찍질했던 작가였다. 그래서 주위사람들은그를 상대못할 정신병자취급까지 했다.

 

헤밍웨이를 읽으며 행복과 불행은 함께 존재한 다는 헉슬리의 명언을 다시 생각한다.

 

불교에서는 행과 불행이 손등과 손바닥의 한손이라고 가르친다.

 

다 같은 말이다.

CA
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