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이 이 말씀을 듣고 있을 때에 비유를 더하여 말씀하시니 이는 자기가 예루살렘에 가까이 오셨고 그들은 하나님의 나라가 당장에 나타날 줄로 생각함이더라. 이르시되 어떤 귀인이 왕위를 받아가지고 오려고 먼 나라로 갈 때에 그 종 열을 불러 은화 열 므나를 주며 이르되 ‘내가 돌아올 때까지 장사하라.’하니라. 그런데 그 백성이 그를 미워하여 사자를 뒤로 보내어 이르되 ‘우리는 이 사람이 우리의 왕 됨을 원하지 아니하나이다.’ 하였더라. 귀인이 왕위를 받아가지고 돌아와서 은화를 준 종들이 각각 어떻게 장사하였는가를 알고자 하여 그들을 부르니, 그 첫째가 나아와 이르되 ‘주인이여, 당신의 한 므나로 열 므나를 남겼나이다.’ 주인이 이르되 ‘잘하였다. 착한 종이여, 네가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하였으니 열 고을 권세를 차지하라.’하고, 또 한 사람이 와서 이르되 ‘주인이여, 보소서. 당신의 한 므나로 다섯 므나를 만들었나이다.’ 주인이 그에게도 이르되 ‘너도 다섯 고을을 차지하라.’하고, 또 한 사람이 와서 이르되 ‘주인이여, 보소서. 당신의 한 므나가 여기 있나이다. 내가 수건으로 싸 두었나이다. 이는 당신이 엄한 사람인 것을 내가 무서워함이라. 당신은 두지 않은 것을 취하고 심지 않은 것을 거두나이다.’ 주인이 이르되 ‘악한 종아, 내가 네 말로 너를 심판하노니 너는 내가 두지 않은 것을 취하고 심지 않은 것을 거두는 엄한 사람인 줄로 알았느냐? 그러면 어찌하여 내 돈을 은행에 맡기지 아니하였느냐? 그리하였으면 내가 와서 그 이자와 함께 그 돈을 찾았으리라.’하고, 곁에 서있는 자들에게 이르되 ‘그 한 므나를 빼앗아 열 므나 있는 자에게 주라.’ 하니, 그들이 이르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릇 있는 자는 받겠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도 빼앗기리라. 그리고 내가 왕 됨을 원하지 아니하던 저 원수들을 이리로 끌어다가 내 앞에서 죽이라.’ 하였느니라.”(눅 19:11-27)
“열 므나의 비유”와 “달란트 비유”(마 25:14-30)를 비슷한 비유로 생각하기 쉽지만 이들 두 비유는 완전히 다른 것이다. 우선 예수님이 두 비유를 말씀하신 장소가 다르다. 마태복음의 것은 감람산에서 하셨으나 누가복음의 것은 여리고에서 하신 것이다. “달란트 비유”의 대상은 예수님의 제자들이었고, “열 므나의 비유”는 그를 따르는 군중들에게 하신 것이었다.
앞의 비유에서는 주인이 세 종에게 나주어 준 달란트의 양이 달랐지만 후자의 경우에는 열 명의 종 모두에게 한 므나씩을 주었다. 첫째 비유에서는 충성스런 종들에게 대한 상급이 같았지만 둘째 비유에서는 칭찬 받은 종들이 받은 상이 다르다.
이처럼 “달란트 비유”와는 판이하게 다른 “열 므나의 비유”는 예수님이 여리고에서 삭개오를 만난 후에 하신 것이다.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가는 도중 여리고에서 삭개오의 집에 들어가셨을 때 삭개오는 그의 재산의 절반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고, 남의 것을 빼앗은 것이 있으면 네 배로 갚겠다고 했다. 그러자 예수님은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다.”(눅 19:9)고 말씀하셨다.
이 말씀을 들은 사람들은 하나님의 나라가 당장 임할 것이라는 기대를 가지게 되었다. 그런 그들의 생각이 옳지 않음을 지적하며 하나님의 나라가 언제, 어떻게 올 것인가를 가르쳐주기 위해 예수님이 하신 것이 이 비유다.
어떤 귀족이 왕이 되려고 먼 나라로 떠나면서 열 명의 종에게 한 므나씩을 주면서 그가 돌아올 때까지 그 돈으로 장사하라고 지시하는 것으로 이 비유는 시작된다. 얼핏 들으면 이상하게 시작되는 비유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이 서두는 역사적 사실에 근거한 것이다.
유대 왕 헤롯은 죽기 전에 영토를 세 아들 안티파스, 필립, 아켈라오가 나누어 다스리도록 조처했다. 그러나 그 같은 헤롯의 뜻이 실현되려면 로마정부의 인준이 필요했다. 따라서 아켈라오는 당시의 로마황제 아구스도의 재가를 받기 위해 로마로 가야 했다.
그런데 그가 로마로 떠나기 전 유월절을 지키려 예루살렘에 모여든 유대인 3천명이 아켈라오의 군대에 의해 학살당하는 일이 벌어졌다. 이 때문에 상당수의 유대인들이 아켈라오를 증오하게 되어 50명의 대표자들을 로마로 보내 그가 왕이 되지 못하도록 청원을 하게 된다.
그때 로마에는 그 청원을 지지하는 유대인들이 8천명에 달했다고 한다. 그들의 청원에 대한 아켈라오의 변론을 들은 황제는 고심 끝에 선정을 베풀어 반대자들의 지지를 받아내라는 조건을 붙여 아켈라오의 왕위계승을 허락한다.
이 비유는 이 같은 역사적 사실에 입각하여 시작되는 것이다. 떠나기 전에 귀족이 열 명의 종들에게 준 한 므나의 가치는 그 당시 한 사람의 3개월 임금에 해당하는 것이었다. 달란트처럼 큰 가치를 지닌 것은 아니었지만 효율적으로 사용하면 웬만한 사업을 시작할 수도 있는 금액이기도 했다. 그러기에 귀족은 먼 길을 떠나기에 앞서 열 명의 종들에게 한 므나씩을 주며 그가 없는 동안에 그 돈을 현명하게 사용하라고 지시한 것이다. 왕권을 부여받고 돌아온 귀족은 종들을 불러 그들이 올린 실적에 관한 보고를 듣는다.
첫 번 보고는 “주신 한 므나로 열 므나를 벌었습니다.”였다. 자본금을 열배로 늘린 대단한 성과였다. 귀족은 그의 근면함과 지혜로움을 칭찬하고, 그에게 열 도시를 다스리는 권한을 준다.
둘째 종이 자기도 한 므나를 투자하여 다섯 므나로 만들었다고 하자 귀족은 “너도 잘했으니, 다섯 도시를 다스리라.”고 그가 달성한 성과를 인정하는 특혜를 준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달란트 비유”에서는 다섯 달란트와 두 달란트 받는 종들이 자기 두 배의 이윤을 올리자 주인은 “잘 하였도다.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니 내가 네게 많은 것으로 맡기겠다.”며 두 사람에게 같은 상을 주었는데 “열 므나의 비유”에서는 종들이 거둔 실적에 비례하여 상을 주었다는 점이다.
이 사실이 중요한 까닭은 하나님은 우리 모두에게 사명을 주시지만 그것을 어떻게 감당하느냐에 따라 우리를 크게 사용하시기도 하고 작은 일에 쓰시기도 하기 때문이다.
예수님이 우리의 충성심을 얼마나 중요하게 여기시는 가는 받은 한 므나를 전혀 사용하지 않고 수건에 싸 두었다가 그대로 가져온 종을 문책하시며 그에게 주었던 돈을 빼앗아 열 므나를 가진 종에게 준 것을 보아도 잘 알 수 있다.
받은 돈을 보관했다 그대로 가져온 종은 그것을 투자했다 실패할 것이 두려웠기에 그렇게 행동한 것이다. 그런 그에게 귀족이 꾸짖은 내용은 주어진 한 달란트를 그대로 가져온 종에게 주인이 “악하고 게으른 종”이라 부르며 “그 돈을 땅에 묻어두는 대신 은행에 맡겼다면 이자라도 받을 것 아니냐?”고 책망한 것과 같다.
예수께서는 그에게 충성하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의 일을 맡길 수 없음을 밝히신 것이다. 예수님은 그를 신뢰하지 않은 이들과는 지속적인 관계도 원하지 않으신다.
나태한 종에게 주었던 한 달란트를 빼앗아 열 달란트 가진 종에게 주며 “이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두운 데로 내어 쫓으라”(마 25:30)하신 말씀이 이를 말해주고 있다.
“열 므나의 비유”에서도 귀족은 반환 받는 한 므나를 열 므나 가진 자에게 준다. 뿐만 아니라 귀족은 그가 왕위에 오르는 것을 반대한 사람들을 처형하라고 명령한다. 로마에서 돌아온 아켈라오가 그의 왕위계승을 방해한 사람들을 제거했다는 기록은 없다. 하지만 아켈라오가 그를 반대한 세력을 배후에서 조종한 대제사장를 해임했다는 기록은 남아있다.
예수님의 재림을 로마에 갔다 돌아온 마켈라오에 비유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이 비유는 예수께서 다시 오실 때까지 맡은 일에 충성하는 것이 믿는 자들의 의무요 그러지 못하면 예수님으로부터 떨어질 수도 있음을 가르쳐주고 있다.
“열 므나의 비유”는 “하나님의 나라는 이와 같으니라.”로 시작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이 비유는 예수님의 재림과 그때에 임하게 될 하나님의 나라에 관한 비유이다. 예수님이 삭개오의 집에서 “오늘 이 집에 구원이 이르렀다.”라 하신 말씀을 하나님의 나라가 즉시 임한다는 뜻으로 받아드린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왕국은 “지금“ 아닌 그가 부활하여 승천하신 후 세상에 다시 오실 “그때“에 도래할 것임을 가르쳐주신 것이 이 비유인 것이다.
물론 믿는 자들의 마음속에는 하나님의 나라가 임재해 있다. 그러나 세상 모든 사람들을 위한 하나님의 왕국은 예수께서 재림하시는 그 날에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아켈라오가 아구스도에게서 왕위계승을 인가 받기 위해 로마로 가면서 그의 지지자들에게 돈을 나누어주며 현명하게 투자하라고 지시한 것처럼 부활하신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그가 오시는 날까지 맡은 바 사명에 충실할 것을 명하셨다.
그러면서 예수님은 그들이 주의 일을 감당할 수 있도록 성령을 선물로 주셨고, 예수님 자신이 그들과 세상 끝까지 동행하시겠다고 약속해 주셨다. 따라서 주를 믿는 우리들은 예수께서 주신 기회를 통해 하나님께 충성할 수 있는 능력까지 부여받은 축복된 존재들인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하여 우리에게 주어진 영광된 사명을 수행해야 할 것이다.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 행한 대로 갚아주시라.”(계 22:12)하신 예수님의 약속을 마음 속 깊이 간직하고 주께 헌신하며 충성하는 우리들 되어야 할 줄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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