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말 C일보는 ‘유럽 에너지 위기에도 원전 덕에 느긋한 프랑스’라는 기사를 내보냈다. 프랑스 전력 생산의 71%를 원전이 차지하며, 에너지 자급률도 높아 안정적이라는 내용이다. 마크롱 정부가 지난 2월 6기의 신규원전 건설을 발표하면서 기존 원자로 폐쇄 계획을 중단하고, 수명을 늘려 계속 쓰겠다고 선언한 내용도 묶어 전했다.
이 기사는 그러면서 “우리나라도… 에너지 공급망 다변화와 안정적인 공급처 확보를 위한 장기 대책이 시급하다. 무엇보다 원전을 늘리든 재생에너지를 확대하든 단기간 성과를 낼 수 없는 에너지 정책은 경제·과학적 근거는 물론 안보 측면까지 고려해 추진돼야 한다. 정치·이념적 판단이 끼어들어선 안 된다”고 날카롭게 지적했다.
에너지 위기에도 끄떡없는 프랑스 원전 소개 기사는 독일의 탈원전 정책과 비교, 대조했다. 원전 가동중단과 수명을 다한 원전의 폐기를 선언했던 독일 정부의 정책이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천연가스 부족사태에 직면하면서 위기를 맞았고, 이런 점에서 프랑스의 처지와 대비된다는 것이다.
이런 논조는 최근에도 이어지고 있다. 한국 보수언론은 겨울철 난방에너지 부족사태에 직면한 독일이 가동을 중단했던 일부 원전을 3~4개월 정도 재가동키로 하자, ‘탈원전 유턴’이라며 일제히 입을 모았다.
그런데, 언뜻 예리해 보이는 C일보 기사와 다르게, 세계 주요언론은 다른 목소리를 냈다. 로이터통신은 “한때 유럽의 최대 에너지 수출국이던 프랑스가 올 겨울 국내 수요도 감당 못할 위기에 처했다”고 보도했다. 보도 시점은 C일보와 비슷한 8월말이다.
올해 프랑스의 원자력 에너지 발전량이 30년 이래 최저수준으로 떨어지면서 에너지를 수입했으며, 전력요금도 메가와트시(MWh)당 1000유로를 넘었는데, 이는 1년 전 불과 70유로 수준에서 폭등했다고 밝혔다. 로이터는 그러면서 “독일과 벨기에 등 인근 국가의 전력난도 심해질 것이 뻔한 올 겨울 프랑스는 더 큰 에너지 위기에 직면할 수 있다”고 전했다.
영국 BBC방송은 최근 ‘유럽, 원전에 대한 중요한 결정의 기로에 서다’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프랑스 원전 56기 가운데 절반가량이 노후화된 부품 교체와 유지보수 문제로 가동을 중단하고 있다”며 “원전 연료 역시 러시아 의존도 높아 스위스의 최대 신생 원자력발전소는 연료확보에 안간힘을 쏟고 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유럽의 노후 원전 대부분은 테러나 사이버테러에 취약점 갖고 있으며, 무엇보다 가장 큰 문제는 핵폐기물 저장과 처리에 관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미국 CNBC는 '한때 기쁨과 자부심의 원천이던 프랑스 원전, 올 겨울 큰 문제에 직면하다'는 기사에서 "원전의 탄소배출이 적은 것은 확실하지만 경제적이라고는 결코 말할 수 없다”고 선을 그었다.
또 “프랑스는 가동을 멈췄던 원전을 되살리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으나 유지보수의 어려움 등으로 추위가 본격화되기 전에 가동률을 높일 수 있을지는 미지수이며, 최악의 경우 지역적인 블랙아웃도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를 전했다.
프랑스라는 나라가 두 개 있을 리 없고, 같은 프랑스 원전을 바라보는 관점이 이렇게 극명하게 엇갈린 점은 독자로서 어리둥절할 뿐이다.
하지만 한국 일부 언론이 왜 그렇게 ‘핵발전 친화적’인 기사를 내보내는지 어지간한 독자들은 안다. 검찰은 문재인 정부 시절 탈원전과 태양광 등 신재생에너지 보급정책을 집요하게 캐고 있으며, 윤석열 정권 출범 이후 감사원까지 나서 사업실태 감사에 열을 올리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의 ‘핵 사랑’은 이미 알려져 있다. 대선 후보시절 경북 울진의 한울원자력본부를 방문했으며, 핵발전 비중의 30% 유지(사실상 확대)와 해외에 10기 이상의 원전 수출을 통해 10만개 이상의 일자리를 창출하겠다는 공약을 발표했다. 보수언론도 이런 분위기에 충실히 발을 맞추고 있는 것이다.
사실 윤석열 정부가 취임한 뒤 벌써 몇달이 흘렀지만 임기 5년간 어떤 일을 하고자 하는지, 주요 국정과제가 무엇인지 희미해졌다. 교육, 노동 등 내놓는 정책마다 줄줄이 국민들로부터 퇴짜를 맞거나 흐지부지되는 상황이다. 국제 정세가 급변하고 경제도 난장판이 되고 있지만 검찰수사 말고는 국민들의 시선을 끄는 이슈가 없다.
그래서 한 가지 제안을 해 본다. 국정과제와 국민의힘 2024년 총선 주요 공약으로 ‘서울 광화문광장에 핵발전소 건설’을 구체적으로 추진하는 것이다.
이건 여러 가지 측면에서 타당성이 있는데, 먼저 한반도에서 전력을 가장 많이 소비하는 곳이 서울 수도권이란 측면에서 유의미하다.
최근 나온 민주당 김정호 의원실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부산, 울산, 강원, 충청 등에서 수도권 등 전국에 전력을 보내는데 따른 송배전 손실량이 금액으로 환산해 연평균 약 1조7천억 원에 달하는 것으로 분석됐다. 이는 1GW(기가와트) 원전 21기가 1년 동안 가동한 전력량에 달한다. 낭비도 이런 낭비가 없다.
만약 광화문에 핵발전소를 건설해 서울 수도권에 곧바로 전력을 공급한다면 송배전에 따른 전력 손실을 최소화할 수 있다. 더 나아가 1년 동안 절약한 1조7천억이면 청와대 이전 비용을 충당하고도 남는다.
또, 윤 대통령의 핵발전소 수출공약과도 맞아 떨어진다. 광화문광장에 최첨단 기술과 노하우를 총동원해 랜드마크 형태의 핵발전소를 짓는다면 전 세계의 주목을 끌고, BBC가 유럽 노후 원전의 테러 대비 문제를 지적했는데, 서울 한복판에 세운 것만으로도 ‘K-핵발전’의 기술적 자신감을 선명하게 드러낼 수 있다.
입지를 따져도 검토해 볼 여지가 있다. 부산, 울산, 경주 등 동남권은 세계 최고 수준의 핵발전소 밀집지역이다. 게다가 최근 경주 인근에서는 지진 발생 가능성이 높은 활성단층이 자주 발견된다. 미국 일본에서 원전 사고가 실제로 발생했었다는 점을 기억한다면 위험 경보가 계속 울리는 동남권보다 서울 수도권 입지를 따져보는 것도 괜찮다.
한국은 냉각수 문제로 바닷가에 원전을 많이 짓지만 프랑스의 경우 상당수는 강물을 냉각수로 이용한다. 그런 면에서 한강을 곧바로 끌어다 냉각수로 쓸 수 있는 서울에 핵발전소를 짓는다면 C일보의 표현처럼 ‘원전 덕에 느긋한 대한민국’이 될 수 있다.
“에너지 문제에 정치 이념적 판단이 끼여들어선 안 된다”는 C일보의 충고가 새삼 무게감 있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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