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그리스에 온갖 기행으로 많은 일화를 남긴 견유학파 철학자 디오게네스가 있었다. 어느 날 느긋하게 일광욕을 즐기고 있을 때 알렉산더 대왕이 그를 찾아 왔다. 알렉산더가 “뭐든지 다 들어줄 테니 소원을 말해 보라”고 했다. 그러자 디오게네스는 “지금 그대가 햇볕을 가리고 있으니 좀 비켜 주시겠소?”라고 대꾸했다고 한다.
그는 평생을 옷 한 벌만 입고 통속에서 개처럼 살았으니 경제적으로 철저한 서민층 무산계급에 속했고, 대부분의 유력인사들이 앞다퉈 찾아가서 만나고 경의를 표했던 절대권력 알렉산더의 권위를 철저히 무시하는 반체제적인 태도를 보였다. 그는 보수주의자일까 진보주의자일까?
유력 대선 후보로 거론되던 어느 분이 만나는 사람마다 ‘보수주의자냐, 진보주의자냐’를 물어보는데 대해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면서 “어떻게 모든 사람을 보수냐 진보냐로 나누느냐?”고 비난했다. 어떤 정치인은 “자기는 보수니 진보니에는 관심이 없고 ‘실용주의’로 가겠다”고 하기도 했었다. 어떤 정당은 보수우파를 표방하면서 “모든 국민의 행복을 책임지겠다”고도 했고, 어떤 정치인은 대통령후보가 되기 위해 보수정당에서 진보정당으로 하루 아침에 훌쩍 당적을 옮기기도 했다.
정치인들의 이런 행태를 보면 보수나 진보가 그 사람의 인생관, 세계관과 직결된 삶의 철학이요 신념이 아니라 단순히 ‘자신의 정치적 이해에 따라 편을 선택하는 것’ 정도로 이해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들 때가 많다.
정치인들만 그런 게 아니다. 인문학자를 자처하며 진보적 성향의 글을 많이 쓰는 어느 분은 신문 칼럼에 “기성세대 중에 많은 사람들이 자기가 높은 자리에 있을 때의 생각에 머물러 있고, 지금은 그 위치에 있지 않으면서도 현재의 자기 위치와 동떨어진 생각에 사로 잡혀서 계급배반적인 투표가 횡행한다.”고 썼다.
말하자면, 투표는 각자의 정치적 소신에 따라 하는 게 아니라 자기가 속한 계급에 따라 자기편을 찍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서, 자신의 계급이 아니라 소신에 따라 투표하는 사람들을 자기 처지도 제대로 파악 못하는 우매한 찌질이들로 치부하고 있다. 비단 이 분뿐만이 아니라 이런 식으로 나이 드신 분들의 보수성향을 조롱하면서 비난하는 글들을 지금껏 수없이 많이 봐 왔다.
어떤 사람의 정치적 성향을 보수냐 진보냐로 구분하는 건 단순히 정치적 편가르기나 현 체제유지냐 변화와 개혁지향이냐의 문제가 아니라 보다 근본적으로 세상을 어떤 눈으로 바라보고 인생을 어떤 태도로 살아갈 것인가 하는 문제와 직결되어 있다. 먼 옛날 인류가 공동체 생활을 시작하기 이전에는 자연계의 모든 다른 동물들과 마찬가지로 인간도 자연의 순리에 따라 태어나서 자연법칙에 따라 각자 능력대로 살다가 죽으면 그만이었다.
그런데, 인류가 공동체 생활을 하기 시작하면서부터 공동으로 이용하는 마을 길도 생겨나고 마을 사람이 모이는 장소도 필요하게 되는 등 공동으로 관리해야 하는 영역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그러다 보니 자연히 어디까지를 각자 개인이 알아서 하고 어디서부터 공동으로 관리할 것이며, 그 관리는 어떤 방식으로 할 것인가의 문제가 대두되었다. 여기서 사람들의 생각이 똑같지가 않으니 다양한 의견들을 크게 두 갈래로 나누어 놓은 게 보수니 진보니 하는 이념의 시작이요 본질이다.
보수는 통상 현재의 상태를 그대로 지키자는 쪽으로 전통을 중시하고 급격한 변화를 싫어한다. 반면 진보는 기존 정치?경제?사회 체제에 대항하면서 변혁을 통해 새롭게 바꾸려는 성향이나 태도를 말한다. 보수는 권위적, 체제순응적이고, 진보는 탈권위적/평등지향적, 체제반항적이다. 보수는 모든 면에서 국가개입 최소화를 지향하고, 진보는 국가적극개입을 지향한다. 보수는 자본가, 대기업, 기득권층 편이고, 진보는 노동자, 중소기업, 서민 편인 것처럼 보인다.
그렇지만 진보정권이 노동자?서민에게 반드시 좋은 것도 아니며, 보수정권이 반드시 이들에게 나쁜 것도 아니다. 애초에 보수?진보는 어느 편이라는 차원에서 출발한 개념이 아닐 뿐 아니라 세상은 그렇게 단순하게 돌아가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보수는 성장을 중시하고, 진보는 분배를 중시한다. 보수와 진보는 본질적으로 상호 적대적인 관계라기보다는 상호 보완적인 관계이다. 기본적으로 성장이 없다면 분배를 논할 필요가 없어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한 나라가 균형있게 발전하기 위해서는 보수와 진보가 적절히 균형을 이루며 교대로 국가를 운영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어느 국가나 정치적인 문제들은 대부분 보수나 진보 그 자체의 문제라기 보다는 그 정책을 지향하는 사람들이 부도덕하거나 부패하는 데서 발생한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 문제를 이념 그 자체의 문제인양 착각하는 경우가 많고, 정치인들은 이런 속성을 더욱 부추겨 정치적으로 이용한다.
보수는 우파적이고, 진보는 좌파적이다. 그런데, 좌우파란 개념은 원래 계급투쟁사관을 바탕으로 한 공산주의가 등장하면서 나온 개념이므로 기본적으로 국가경영이념적 성격보다는 편가르기의 성격이 더 강하다. 보수와 진보를 지지하는 사람들이 단순히 그 정책방향을 지지하거나 반대하는 선을 넘어 상대편에 대해 심한 적대감과 증오를 보이는 경우가 많은 것도 바로 이런 속성 때문이다.
다시 처음 얘기로 돌아가서, 디오게네스는 보수주의자일까 진보주의자일까? 만약 그가 극빈민층에 속했고, 탈권위주의적이었으며, 철저히 반체제적인 태도를 보인 점으로 미루어 진보주의자일 거라고 생각한다면, 그 사람은 보수와 진보를 이념의 차원에서 제대로 이해하는 게 아니라 편가르기 차원에서 피상적으로 이해하고 있을 공산이 크다.
디오게네스는 개인생활에 대한 국가의 간섭을 철저히 거부하고, “내 인생은 내가 알아서 살아갈 테니 국가가 나서서 뭘 해주겠다고 간섭하지 말아달라”는 철저히 보수자유주의적인 태도를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만약 그가 진보좌파적 생각을 가졌다면, “나같이 지식과 덕망을 갖춘 사람이 이렇게 평생 노숙자생활을 하게 내버려 둔다면 이게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제대로 된 나라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모름지기 국가는 제가 기거할 집을 마련해 주고 매월 최소한의 생활비를 지급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라고 하지 않았을까?
제발 이제 사람들이 저 이념이란 괴물의 정체를 제대로 알아서 권력욕에 눈이 어두워 막무가내로 선동질해대는 저 정치인들에게 더 이상 대책없이 휘둘리지 않았으면 좋겠다.
<저작권자(c) Budongsancanada.com 부동산캐나다 한인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