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선풍기 바람을 싫어한다. 에어컨 바람도 싫어한다. 남편의 출근 후엔 언제나 커피 한잔과 책상 앞에서 이것저것 할 일을 마치고 이제 다시 걷기 시간이다. 덥고 햇살이 따사롭다. 웬만해서는 사용하지 않던 하늘색 우산을 차고에서 꺼내 받쳐 든다.
옛날 어릴 적 고향에서 잘 차려 입은 동네 친척분이나 엄마가 읍내에 외출이라도 하려면 챙기시던 양산을 가끔 이용한다. 머리 부분만 가린다. 다리는 태워서 매끈한 피부로 건강해 보이고 싶어서…
가방 속에 간식거리까지 준비해서 공원길을 걷는다. 도서실에 온다. 신문도 꼼꼼히 읽어 내려간다. 우리 동네 소식들까지.
커다란 제목의 ‘To Alzheimer Disease’가 눈에 띈다. 남편의 치매기를 자세히 적어가면서 느낌도 참으로 마음이 찡한 보호자의 마음을 이해한다. 동포사회 내에도 치매 협회가 있는 걸 알고 있다. 제발 우리는 그런 병엔 안 걸려야 하는데, 장담 못할 우리네 건강문제가 아닐 수 없다. 본인도 가족들도 얼마나 힘겨울지.
10월에는 세상 떠나신 C 장로님 2주기가 되어 자꾸만 생각난다. 이웃에 살았던 정 많던 분이었다. 엊그제 미망인 되신 J 어르신과 오래 통화했다. 자주 찾아 뵈어야 도리인데 현실이 아쉽다. 남편의 파독시절 독일어 강사로도 열심이셨고, 신앙인의 철두철미 성격 탓인지 동네에서 구멍가게를 운영할 당시에도 성인잡지 판매를 거부하신 분이다.
딸만 둘이셨던 장로님은 완벽, 완고주의였다. 이곳에서 태어나 장성한 따님에게도 너무나 완강하셨다. 어쩜 한국적 가부장 기질을 가지셔서 우리 맘을 이해 못하셨다고 아쉬워만 하던 중년 따님 H 부인의 넋두리들이다.
오로지 말씀대로 살고 싶다고 고집하는 내 남편과 세대도 성격도 비슷하셨던 C 장로님이 생각난다. 말수가 적고 밖의 출입도 전혀 없었다가 치매 질환으로 고생 많이 하시다가 세상을 떠난 그분 모습이 유난히 생각난다.
우리는 모두 건강과 행복하기를 바란다. 나의 주장은 하루를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기를 원한다. 스마트폰을 산지 한 달 되어가니 조금은 익숙하다. 충청인의 광장에 너무 재미난 읽을거리들이 많다.
방금 들어온 H 여사님의 고향을 그리며 써서 올린 시에 너무 공감해 그 시절로 흠뻑 젖어 든다. 이맘때 봉숭아 꽃 많이 따서 백반 섞어 쪄내고 호박 잎으로 손톱마다 싸매두고 자고 나면 예쁜 색깔로 물들어서 신기했었다.
여러분, 쇠 비름나물을 아세요? 길가에 담장 밑에서 잘 자란다. 여름방학 땐 채소장사 흉내 낸다고 지푸라기로 묶어 대문 앞에서 채소 팔던 시늉을 하곤 했다. 아! 그리워라. 어릴 적의 소박했던 그 시절. 옛일을 잊지 못한다.
50~60년 전의 고향 모습을 떠올린다. 논산훈련소 덕택에 기차가 처음 개통되던 시절. “아버지, 나도 기차로 통학하겠어유.” “안된다. 다 큰 여자아이가. 안전하게 기숙사에서 학교생활 해야 한다”고 반대했다.
상, 하급생이 한방에서 일자로 누워 잠자고 공부하다가 소등시간엔 사감 선생이 단속했다. 이불 쓰고 몰래 잡지를 읽었던 시절, 정말로 그리워만 하면 되는 것인가.
나의 소녀적 어린 시절엔 친구도 많았다. 우리 동네는 조금 부촌(?), 훈련소 덕분이었나 보다. 가끔 미군 지프에서 아저씨들이 껌도 주고, 가루 커피 작은 봉지도 주었다. 먼지 많던 신작로에서 그것들을 얻어먹으려고 기다리던 철부지 계집애들.
코스모스가 한들한들 피어있는 곳의 가을바람이 그리워 들판을 걸어 다니던 추억. 햅쌀이 구수해서 정미소에 들러 한 줌 얻어먹던 지난날. 숙자, 수자, 명순, 재순아 아직도 살아있는지 궁금하다. 어디서 어떻게 사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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