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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jinwoolee

    [이민수기]

    부산 출생, 동아대 정법대, ROTC 21기 임관,
    삼성그룹 근무, 2002년 캐나다 이민,
    현재 킹스턴 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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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생애, 가장 용기있는 결정, Oh! 캐나다(2)-“바다를 건널 수 있는 자는, 용감한 사람이다.”

 
        

(지난 호에 이어)


4. 재취업, 신규사업팀 - 서울 무역센터 근무  

 
 생활형 프렌차이즈 사업이 조기에 안정을 찾게 되자, 아내는 그것은 자신에게 맡기고 난 뭔가를 새로이 도전하라는 것이었다. 당장 대안은 없었지만 우선 경력직 간부사원 모집, 신문 광고를 보고 이력서를 몇 군데 보냈다. 


그리고 또 신문 광고에서 눈에 띈 것은 관세사 1차 시험이 3개월 후에 있었다. 신입사원 시절부터 S물산에서 경험한, 무역 지식과 관련이 있는 시험이었다. 시간이 다소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기왕에 뭔가 하나에 집중하는 게 나을 듯해 도전하기로 마음 먹었다. 이것 저것 잴 시간이 없었다. 곧장 학원 등록하고 수험서를 사 돌아 오면서 동네 인근에 독서실도 예약했다. 

 

 

 

 


기존 생활 방식을 하루 아침에 180도 바꿔야 했다. 지난 주까지 상가 앞에서 장사하다가 곧바로 수험생으로의 급 변신이었다. 뭔가 부족하고 준비가 덜 된 상태였지만 열심히 했다. 마치 학창 시절로 되돌아간 기분이었다. 자는 시간까지 아껴가며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지만 시험 결과는 1과목 실패였다. 아쉬웠다. 꼭 합격하고 말겠다고 마음 먹었지만 어쨌던 결과는 반대였으니 변명할 생각은 없었다.


그렇게 실망하고 있던 어느 하루, 낯선 우편물 한 통이 날아 들었다. 찬찬히 살펴보니, 경력직 서류 전형에 합격했으니 면접을 보러 오라는 것이었다. 어쩜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정말 길고 어두운 동굴에서 본 한줄기 빛이었다. 아내에게 바로 알려주고 어느 때보다 면접에 보다 신중하고 철저히 대비했다.


그리고 지정된 날짜에 참석하여 보다 적극적인 태도로 면접에 임했다. 결과는 최종 합격이었고, 서울 무역센타에 있는 무역부 근무 조건을 제시했다. 약간의 망설임도 있었지만, 감사하게 받아 들이며 수락했다. 우리 가족의 미래를 다시 설계 할 수 있었던 “무역 경력직 간부사원”, 재취업 기회는 당시 아내가 권하여 그 다음날 신문 광고 보고 이력서 제출했던 한 곳이었다.


행운이 함께 했다. 지금 생각하면, 재취업은 가족들에게 시험 합격보다 더 큰 희망을 준 것 같다. 서울로 이사를 왔고, 아이들도 서울 학교 생활에 잘 적응하면서 자기들 꿈을 키울 수 있었다. 아내는 내 넉넉지 않은 봉급 메운다고 백화점에서 파트타임 일을 하기도 했다. 퇴직 후 잃었던 가족의 웃음과 행복을 되찾은 시기였다.        

 

5. “햐, 이런 세상이 있었네” – 캐나다 이민 설명회


어느 공휴일이었다. 며칠 전 메모해 두었던 캐나다 이민 설명회 장소를 다시 확인했다. 집에서도 과히 멀지 않은 곳이었다. 가벼운 마음으로 참석했지만 실상은 “캐나다 이민이 어떤 거지? 싶어 속으론 몹시 궁금했다. 도착하니 제법 사람들이 많이 붐볐고, 접수 후 자리에 앉아 강사의 설명에 귀를 기울였다.


40대 중반의 강사도 5년 전에, 캐나다로 이민을 했었는데, 특이 했던 것은 대부분의 이민자들이 선호하는 밴쿠버와 토론토를 피해 자신은 몬트리올로 첫 정착을 했던 점이었다. 즉 영어권 도시로 정착한 경우, 자녀들이 성장해서 결국 영어와 한국어 밖에 못하나, 몬트리올의 경우는 연방 정부가 표방하는 이중언어 즉 영어와 불어를 자유롭게 구사하게 되어, 취업에도 유리하다는 것이었다. 


또한 자녀들이 한국어를 익힌 후, 외국어 습득이 용이한 시기는 초등 3, 4학년부터 중 1, 2학년 정도가 가장 좋더라는 개인적 경험을 들려 주기도 했다. 여러 정황을 들어보니 “우리 가족 얘기다” 할 정도로 딱 들어맞다는 느낌을 받았다. 


개별 면담 후 자격도 아주 긍정적이라고 하여, 상당히 들떴던 기억이 난다. 본인이 신청한 영주권 분야는 개인의 전문성을 바탕으로 하는 ‘독립 이민’이었는데, 이민성에서 요구하는 직종에 이력을 맞춰 주는 작업, 즉 과거에 경험한 해외 수출입 무역 경력을, 시장 분석가(Marketing Analyst)란 직종으로 변신(?)시켜 무사히 영주권을 받는데 성공했다. 정말 고맙고 감사한 일이었다.  


분명, 돈이 좀 들더라도 전문 기관에 의뢰해야 하는 이유가 있었다. 여러 관련 서류를 준비하는 과정이 다소 복잡 하였지만, 그 모든 것이 새로운 세상으로 다가가는 희망의 몸짓이라 생각했던지 크게 힘든 줄 모르고 진행했다. 


세월이 지나고 보니 장담할 순 없지만 최소한 스스로 전력을 다해 노력하는 삶에는, 누구도 생각지 못한 행운이 함께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전하고 싶다. 물론 그것은 기약 할 수 없는 것이지만 정녕 숭고한 믿음이라 생각된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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