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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청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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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1-11
김제동의 '개헌학 개론' "촛불정신, 새 헌법에 새기면 어떨까요?"

 

 

김제동의 '개헌학 개론'


"촛불정신, 새 헌법에 새기면 어떨까요?"

 

 

▲  11일 오후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국민주권 만민공동회 현장. 방송인 김제동씨와 한 시민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우리 헌법 전문에 촛불 정신을 반영한다면 이렇게 됩니다.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했던 촛불 정신의 법통을 이어받아. (중략)' 있어 보이잖아요."

마이크를 든 김제동씨 제안에 광장에 있던 시민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지난해 사드배치에 반대하는 성주 군민과 만나 '헌법학개론'을 펼친 그가 이번엔 '개헌학개론'을 열었다. 정치개혁 공동행동과 국민주도 헌법 개정 전국네트워크 공동 주최로 11일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국민주권 만민공동회 자리였다.

신분을 초월한 시민이 모여 자신의 주장을 자유롭게 펼쳤던 과거 만민공동회처럼 이날도 전국에서 모인 시민들이 마이크를 번갈아 잡으며 각자가 상상한 '새로운 헌법'을 설명했다. 

 

 

 11일 오후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국민주권 만민공동회 현장에 참석한 청소년들.
▲  11일 오후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국민주권 만민공동회 현장에 참석한 청소년들.
ⓒ 손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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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 시간인 오후 2시에는 사회자 김제동씨와 50명 남짓 시민이 참여했지만, 점점 규모가 늘어나 마칠 때쯤에는 약 300명이 운집했다. 김씨를 중심으로 반원 형태로 모인 시민은 다양했다. 아이를 안고 나들이 나온 가족과 등산복 차림의 노년, 셀카봉을 들고 광화문을 활보하던 한복 차림의 청소년들도 발걸음을 멈추고 만민공동회의 일원이 됐다.

등산복에 셀카봉까지. 김제동판 개헌학개론 
 



가장 먼저 마이크를 잡은 시민은 울산에서 올라온 여성 청소년 이은선씨였다. '선거연령 낮추고 민주주의 높이고'라고 쓴 피켓을 미리 준비해온 그는 만 17세인 자신도 투표권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씨는 "지금 만 18세까지로 선거연령을 조정하는 안이 논의되고 있는데, 만 18세는 보통 고등학교 3학년으로 모든 청소년을 대변할 수 있는 나이가 아니다"라며 "만 17세까지로 청소년 참정권을 보장해서 민주주의를 확대하자"고 주장했다.

이씨가 정치 영역에 청소년의 직접 참여가 필요하다고 느낀 계기는 아무도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았을 때였다.

"저는 (학교에서 겪은 부당한 일을) 국가인권위원회에도, 국회의원실에도, 국민신문고에도 다 올렸는데 인권위에서는 사건이 여러 개라 전담하기 어렵다고 하고, 의원실에는 그냥 기자에게 넘겨버렸고, 신문고에서는 '교사가 교복 치마 길이를 단속할 때 볼펜으로 다리를 찌르는 문제를 제기했는데 이것에 성적 수치심을 느꼈다면 위클래스(학내 상담실)와 상담센터를 이용하라'는 형식적 답변을 받았습니다. 청소년 참정권 운동을 함께 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청소년 참정권이 첫 의제로 떠오르자 독일에서 온 중년 여성도 마이크를 잡았다. 이 여성은 "지난해 촛불집회 때 청소년 나와서 발언하는 걸 지켜봤다"면서 "저희가 어렸을 때는 감히 무서워서 입도 뻥끗하지 못했는데 지금의 청소년들은 너무 똑똑하고 자랑스러웠다"고 선거연령 인하 주장에 힘을 실어주었다.

이어 "독일에 살면서 아프가니스탄, 시리아 등에서 목숨 걸고 피난 온 많은 사람들을 만났는데, 그 사람들에게 우리 촛불 혁명이 얼마나 큰 용기와 힘을 주는지 여러분은 아마 모르실 것"이라며 "청소년들이 어떤 권력에도 속박받지 않고 훨훨 날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촛불 시민으로 독일에서 살고 있다는 게 너무 자랑스럽다"며 거듭 고마움을 나타내기도 했다.

"중요한 문제 무시하는 국회. 절박해서 왔습니다"
 

 11일 오후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국민주권 만민공동회에서 한 여성이 발언하는 모습.
▲  11일 오후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국민주권 만민공동회에서 한 여성이 발언하는 모습.
ⓒ 손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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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엔 스스로를 "여성, 아르바이트 노동자, 대학생으로 살고 있다"고 소개한 김푸른씨가 발언을 신청했다. "제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반값등록금, 낙태죄 폐지 같은 의제가 국회에서 무시당하고 있다는 절박함에 왔다"는 그는 그 원인으로 "남성이 80%를 차지하고 그중에서도 50대 이상이 대부분인 비례성이 보장되지 않는 선거제도"를 지목했다.

이어 "300석 중 비례대표는 47석에 불과해 비례대표제의 가치를 온전히 살리는 결과를 만들어 내기엔 턱없이 부족하다"면서 "다양성이 제도화되는 새로운 선거제도가 국회에서 통과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계량 한복을 입은 한 중년 남성은 '아이들의 건강권'을 강조했다. "우리 아이들 이야기를 하려고 나왔다"고 말문을 연 그는 "우리나라 아이들 중 건강이 좋지 않은 아이들은 산간, 농촌에 살고 있고, 제일 건강한 아이들은 강남에서 자라고 있다"며 건강 불평등 문제를 제기했다. 이어 "이것은 주요 정당이 생활 정치를 정치 영역으로 가져가지 않고 이데올로기 정치를 이끌었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사회를 맡은 김제동씨는 시민들 의견을 경청한 뒤 대부분 공감을 표했다. 일부 의견에는 이견을 표하기도 했지만, 국가의 유일한 주인인 시민들이 개헌 과정에 직접 참여하는 이 과정 자체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특히 그가 행사 말미에 "시민이 헌법 개정의 결정권자"라고 강조할 땐 만민공동회의 집중도가 최고조에 달했다.

"법은 늘 힘 있는 사람의 칼이었지, 힘없는 사람들의 지팡이였던 적은 없습니다. 법은 힘 있는 사람들의 것이 아니라 우리 힘들 때 가지고 있으라고 존재하는 것이에요. 그런데 헌법을 전부 자기들만 가지고 있었으니, 이번에는 우리들 거라는 걸 천명하는 계기가 돼야 해요. 

헌법 중 국민이 지켜야 할 것은 사실 상 38조, 39조 납세 국방 정도입니다. 나머지는 전부 다 국가 또는 정치하는 사람들이 국민을 어떻게 대우해야 하는지 적어놓은 겁니다. 그래서 헌법 1조부터 130조 통틀어서 권력이라는 단어는 1조에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여기 딱 한번 나오고 나머지는 다 권한입니다. 대통령의 권한, 사법부의 권한, 행정부의 권한. 그들은 권력을 입에 담을 수 없어요. 권력은 국민만 입에 담을 수 있도록 헌법에 그렇게 돼 있습니다. 

그러면 '니가 뭘 안다고 헌법을 이야기하느냐'고 합니다. 바로 핵심이 여기 있습니다. 아무것도 아니라고 여겨지던 사람들이 헌법에 대해 이야기 할 수 있어야 우리가 진짜 헌법의 주인이 됩니다. 

아까 질문은 조선시대에 '니들이 문자를 알아서 뭐해'라고 묻던 것과 같은 말입니다. 그런 건 힘 있는 사람들, 돈 있는 사람들, 정치인들 그리고 헌법학자에게 맡기면 된다고. 그러면 안 되는 것이죠. 우리 헌법이니까요. 여러분들이 헌법을 만드는 데 결정권자입니다. 그런 결정권자, CEO들이 결정권을 행사하셔야 됩니다. 그게 가장 중요한 개헌의 과정입니다. 그래야 진짜 재밌는 나라가 되지 않겠습니까?"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376123&PAGE_CD=ET001&BLCK_NO=1&CMPT_CD=T0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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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청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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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1-04
MB 집 앞에 모인 특공대 "미래의 범죄를 예방하자" - 정청래, MB집 대문에서 '구속하라!' 최초 시위

 

MB 집 앞에 모인 특공대 "미래의 범죄를 예방하자"

 

논현동 MB집앞 "이명박을 구속하라" 이명박 전 대통령 구속을 촉구하는 시민들이 4일 오후 서울 강남구 논현동 이 전 대통령 자택 부근에서 촛불문화제를 개최하고 있다.
▲ 논현동 MB집앞 "이명박을 구속하라" 이명박 전 대통령 구속을 촉구하는 시민들이 4일 오후 서울 강남구 논현동 이 전 대통령 자택 부근에서 촛불문화제를 개최하고 있다. ---오마이뉴스(시민기자)
 

정청래, MB집 대문에서 '구속하라!' 최초 시위 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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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청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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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0-30
북한산성 14성문의 비밀

 

 

북한산성 14성문의 비밀

 

 

일요일 오후의 느지막한 산행 길, 기울어가는 해를 벗 삼아 휘적휘적 산길을 오른다. 혼자이기에 조금은 쓸쓸한 느낌도 있으나 또 그렇기에 길 위에서 만나는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가 다 정겹고 소중한 친구들이다.

오늘은 북한산성 행궁 터와 나한봉 일대를 둘러보기로 한다. 청수동 암문을 빠져나가 사모바위 근처에 이르면 이미 어둠이 깔릴 시각이지만 백중이 엊그제니 달님께서 보살펴주시리라. 산성입구로부터 산영루, 중흥사를 지나 행궁 터로 접어드니 그야말로 인적 없는 호젓한 산길이다. 

1711년 북한산성 축성과 함께 유사시 임금의 보장처로 지어졌던 행궁은 약 200년의 영욕을 뒤로한 채 1915년 7월, 이틀간에 걸친 폭우에 무너졌다. 다행히 내전(內殿)만은 무사했다고 하나 그 후로 1925년 을축년 대홍수에 휩쓸려갔는지, 아니면 6·25 때 미군의 폭격으로 사라졌는지 지금으로서는 알 길이 없다.
 

1910년대 북한산성 행궁의 모습  서울에서 피서를 온 성공회 신부들이 한가로이 독서를 즐기고 있다.
▲ 1910년대 북한산성 행궁의 모습 서울에서 피서를 온 성공회 신부들이 한가로이 독서를 즐기고 있다.
ⓒ 이종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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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애하는 여러분, 이 곳의 여름 두 달은 항상 특별한 일이 없기 때문에 그저 우리가 할 일은 장마의 더위와 끈끈함을 견디며 지내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일 년 중에 이때를 휴가로 사용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몇 년 전에 서울에서 10마일 북쪽에 위치한 북한산 언덕 위에 버려지고 반 폐허가 된 <행궁>을 더위를 피할 목적으로 리스한 것을 기억할 것입니다. 우리는 월세 내는 것을 대신해서 행궁을 수리 보존하기로 하였고 매년 여름 이 곳은 더위를 피하는데 아주 유용하게 사용되었습니다. 
  
대한성공회 주교를 지낸 마크 트롤로프(Mark Trollope)가 1915년 <모닝캄(The Morning Calm)>지에 기고한 글이다. 그의 기고문과 함께 실려 있는 사진 속에는 행궁 대청마루에 기댄 채 독서 삼매경에 빠져있는 성공회 신부들의 모습이 보인다. 퇴락한 행궁과 그 안에서 한가롭게 피서를 즐기는 신부들의 모습에서 망국의 비애를 느끼지 않을 자 그 누구랴?
 

북한산성 행궁지 유사시 임금의 피신처로 지어졌던 행궁은 2백여 년의 역사를 뒤로한 채 1915년 대홍수에 무너져 내렸다. 포장으로 뒤덮인 행궁지 주변에 단풍이 붉게 물들었다.
▲ 북한산성 행궁지 유사시 임금의 피신처로 지어졌던 행궁은 2백여 년의 역사를 뒤로한 채 1915년 대홍수에 무너져 내렸다. 포장으로 뒤덮인 행궁지 주변에 단풍이 붉게 물들었다.
ⓒ 이종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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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저기 푸른색 천막으로 덮여있는 행궁지는 경기문화재단 북한산성문화사업팀의 주도로 발굴 작업이 진행 중이다. 행궁 복원이 꼭 필요한 일인가 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나부터도 의문을 갖고 있으나 이왕 복원하기로 결정한 것이라면 시간과 돈에 구애받지 말고 최대한 원형에 충실한 작업이 이루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산영루도 그렇고 중흥사를 비롯한 북한산성 내 여러 사찰과 성곽, 성문 등의 복원된 모습을 보면 투박하면서도 중후하고 실용적이면서도 고풍스러운 우리 건축의 멋과 맛이 사라져 버린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최근에 복원된 산영루(山影樓)만 봐도 옛 사진 속의 그것과 비교할 때 무언가 건물 하나하나에 담겨있는 옛 장인들의 혼이 사라진 기계적인 건축이요, 껍데기만의 복원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더구나 기껏 복원해놓고도 출입금지 팻말을 떡 하니 설치해 놓았으니 도대체 누구를 위한 누각이요, 무엇을 위한 복원이란 말인가? 새소리 물소리 산 그림자에 취한 나그네가 누각 위에 올라 <사철가> 한 가락 흥얼거릴 수 있는 풍류를 기대해 보는 건 진정 나만의 사치인가?
 

산영루 산영루는 17C 전에 건축되어 몇 번의 중수를 거쳤으며 현재의 것은 1915년 대홍수 때 유실된 것을 2014년에 복원한 것이다. 작은 사진은 1896년 독일인 엘러가 촬영한 산영루의 모습이다.
▲ 산영루 산영루는 17C 전에 건축되어 몇 번의 중수를 거쳤으며 현재의 것은 1915년 대홍수 때 유실된 것을 2014년에 복원한 것이다. 작은 사진은 1896년 독일인 엘러가 촬영한 산영루의 모습이다.
ⓒ 이종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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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드득 빗방울 듣는 소리가 들려 돌아보니 여기저기에서 떨어지는 도토리들의 교향곡이다. 행궁 터를 뒤로한 채 아쉬운 발걸음을 돌려 산길을 오르자 '청수동 암문 1.2㎞' 표지판이 나온다. 표지판이 가리키는 대로 길을 따라가면서 보니 북한산성의 여타 등산로에 비해 산세가 완만한 데다가 산성 내부의 계곡과 봉우리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어 산성 종주 때와는 또 다른 즐거움이 있다. 

쉬엄쉬엄 남장대 지에 오르자 서쪽으로 의상능선이 한눈에 들어온다. 고개를 돌려 동쪽을 바라보니 대남문, 대성문, 동장대가 손에 닿을 듯 가깝고, 북으로 노적봉, 백운대, 만경대가 위풍당당 억만년의 위무를 뽐내고 서있다. 그 안에 동장대와 남장대, 북장대가 삼각형의 트라이앵글을 구축하고 있으니, 유사시 임금의 피신처로서 이만한 천혜의 요새가 또 어디 있을까?
 

남장대지에서 본 북한산 연봉들 사진 중앙 뒤쪽 가장 높은 봉우리가 백운대이고 우측으로 인수봉과 만경대가 차례로 늘어서 있다. 백운대 아래쪽 봉우리는 노적봉이다.
▲ 남장대지에서 본 북한산 연봉들 사진 중앙 뒤쪽 가장 높은 봉우리가 백운대이고 우측으로 인수봉과 만경대가 차례로 늘어서 있다. 백운대 아래쪽 봉우리는 노적봉이다.
ⓒ 이종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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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한봉에 올라 건너편 나월봉으로 이어지는 구간의 성벽을 바라보니 중장비를 동원한 보수공사가 한창이다. 지난겨울에 찾았을 때만 해도 성벽의 체성[몸통]부분에는 문제가 없었는데 아마도 성가퀴[여장] 보수 작업을 진행하는 모양이다. 시야가 확 트인 봉우리 위에 앉아 북한산 남서쪽의 어려 봉우리들을 조망하다가 문득 아스라이 이어진 성곽 길 너머 어디쯤에선가 수줍게 미소 짓고 있을 성문(城門)에 생각이 가 닿는다. 
  
북한산성에는 수문과 시구문을 제외하고 모두 13개의 성문이 있다. 1711년 축성 당시 12 성문이던 것이 1712년 중성문 건축으로 13 성문 체제가 이룩된 후 지금껏 변함이 없다. 이는 북한산성 관련 문헌에도 일관되게 나타나는데 그중 『북한지(北漢誌)』에만은 유독 14 성문으로 기록되어 있으니 이로부터 13 성문 설, 14 성문 설 등 다양한 주장들이 쏟아져 나와 오늘날까지 혼란이 계속되고 있다. 

『북한지』는 북한산성 축성 당시부터 약 30년 동안 승려들을 지휘하여 축성과 수비 임무를 총괄했던 팔도도총섭 성능이 저술한 것으로 도리(道里), 연혁(沿革), 산계(山溪), 성지(城地) 등 총 14개 조목으로 나누어 북한산성의 모든 것을 기록하고 있다. 이 책을 빼놓고서는 북한산성을 논할 수 없을 만큼 그 영향력이 막강함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혼란을 부추기는 주인공이 되고 말았으니 아무래도 이는 『북한지』의 역설이라는 말 밖에는 달리 표현할 길이 없을 것 같다. 
 

북한도 북문의 문루가 없고 대남문도 암문이라고만 표시되어 있을 뿐 문루가 보이지 않는다.
▲ 북한도 북문의 문루가 없고 대남문도 암문이라고만 표시되어 있을 뿐 문루가 보이지 않는다.
ⓒ 이종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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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왕 말이 나왔으니 『북한지』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살펴보도록 하자. 현재 국립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는 『북한지』의 체제를 보면 앞머리에 북한산성을 3장으로 나누어 그린 「북한도(北漢圖)」가 있고 다음에 14개 조로 이루어진 본문, 그리고 마지막으로 저자 성능의 발문이 있다. 성능의 발문에 "을축년 십일월 상한"이라는 간지가 있어 그것의 저술 연대가 1745년임을 알 수 있을 뿐 언제 판각이 되었는지, 또 저술 당시에 「북한도」가 함께 제작되었는지 아니면 나중에 제작되어 첨부된 것인지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알려진 바 없다. 다만 필자 개인적으로는 「북한도」가 나중에 제작되어 첨부되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는데 그 근거는 다음과 같다.
                          
「북한도」를 자세히 살펴보면 『북한지』에는 분명히 있다고 언급된 <북문>의 문루가 없다. 그리고 <소남문> 역시 그냥 암문이라는 표기만 있을 뿐 문루가 보이지 않는다. 이 <소남문>은 오늘날의 <대남문>에 해당하며 당시에 <문수문>으로도 불렸는데 이곳에 문루가 설치된 시기는 대략 1765년 경이다. 그렇다면 <북문>의 문루가 사라진 시점부터 <대남문>의 문루가 세워지기 전까지가 바로 「북한도」의 제작 시기가 아닐까? 『비변사등록』에 1764년 11월, 북한산성 북문이 방화에 의해 불탔다는 기록이 있고 또 이듬해 4월, 북문의 문루를 건설할 목재와 기와를 이용하여 문수문에 새로운 문루를 세우자는 주청이 있는 것으로 보아 「북한도」의 제작 시기는 대략 1765년경으로 추정되며, 이는 성능이 발문을 쓴 때로부터 무려 20년이 지난 후이다.

「북한도」가 『북한지』 보다 20년이나 늦게 제작된 것이라면 「북한도」에는 『북한지』의 성문이 어떻게 그려져 있을까? 북문, 대동문, 대서문, 대성문, 중성문, 소동문, 소남문, 서암문, 백운봉암문, 용암봉암문, 동암문, 청수동암문, 부왕동암문, 가사당암문 등 『북한지』의 14 성문 중에서 「북한도」에 표시된 것은 대동문(동문), 대성문, 중성문, 북문, 서문 등 5개 대문과 소남문(암문), 서암문(암문), 백운봉암문(암문), 용암봉암문(암문), 청수동암문(암문), 부왕동암문(암문), 가사당암문(암문) 등 7개의 암문(暗門)이다. 모두 12개로 나머지 소동문과 동암문은 표시되어 있지 않다. 다만 대성문과 대동문(동문) 사이와 나한봉과 나월봉 사이에 암문 형태의 그림 두 개가 그려져 있어서 이것을 성문으로 간주한다고 할 때 대성문과 대동문(동문) 사이의 성문은 동암문, 즉 오늘날의 보국문으로 볼 수 있다.

그렇다면 나머지 하나, 나한봉과 나월봉 사이의 성문은 소동문이 되어야 하는데 안타깝게도 나한봉과 나월봉 사이에는 산성 축조 당시부터 성문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다. 필자가 직접 이 구간을 답사하며 일일이 살펴본 결과도 그렇고 일제강점기 때 일본인 학자 이마니시류(今西龍)의 북한산성 보고서를 봐도 이곳에 성문이 존재하지 않았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마니시류는 이 보고서에서 『북한지』의 14 성문이 13 성문으로 바뀐 것을 두고 1개의 성문이 폐쇄되었을 가능성을 제기했지만 이는 근거 없는 억측일 뿐, 차마 『북한지』의 오류 가능성까지는 생각하지 못했던 것 같다. 한편 그의 보고서는 짧은 조사 기간 탓인지 대성문을 대남문으로 보고, 보국문을 소동문으로 보는 등 오히려 북한산성에 대한 혼란을 가중시킨 측면이 있다.
 

나한봉과 나월봉 구간의 성벽 북한도에 성문 비슷한 표시가 보이지만 처음부터 이곳에는 성문이 존재하지 않았다. 작은 사진은 보수 공사를 끝낸 후의 모습이다
▲ 나한봉과 나월봉 구간의 성벽 북한도에 성문 비슷한 표시가 보이지만 처음부터 이곳에는 성문이 존재하지 않았다. 작은 사진은 보수 공사를 끝낸 후의 모습이다
ⓒ 이종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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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서, 그렇다면 축조 당시부터 북한산성에 14 성문이 존재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성능은 왜 이처럼 중대한 실수를 범했던 것일까? 그것도 30년 이상을 산성에 머무르며 산성의 축조와 수비에 관여했던 장본인이기에 이 같은 실수는 더욱 용납하기가 힘들다. 이마니시류의 생각처럼 차라리 1개의 성문이 폐쇄된 것이라면 얼마나 좋을까마는 산성 축조 당시의 『금위영등록』, 『어영청등록』, 『훈국등록』, 『비변사등록』 등 각종 문헌자료를 아무리 뒤져봐도 그럴 가능성은 희박하다. 『북한지』 이후의 기록인 『만기요람』(1808)에 14 성문이 등장하기도 하지만 이는 『북한지』의 기술을 그대로 따른 것일 뿐, 1785년 왕명으로 직접 북한산성을 답사하고 돌아와서 쓴 안찰어사 신기(申耆)의 서계(書啓)에도 분명 13 성문만이 기록되어 있다. 

그렇다면 성능은 왜 이 같은 착오를 일으켰던 것일까? 그 비밀의 열쇠는 바로 대성문(大城門)에 있다. 한자 '大成門'으로도 표기되는 북한산성 대성문은 1720년대 후반부터 문헌에 그 이름이 등장한다. 이 문은 산성 축조 당시에 건립된 것이 아닐뿐더러 그렇다고 축조 이후에 건립된 것도 아니다. 기존에 있던 문의 이름이 바뀌었던 것인데 여기서부터 명칭의 혼란이 일어났다. 도성에서 이동하기에 가장 가깝다는 지리적 이점 때문에 유사시 임금이 이 문을 통하여 산성으로 피신하는 계획이라도 수립되었던 걸까? 아무튼 대동문의 지위를 격상하여 대성문으로 바꾸면서 소동문이 대동문으로 바뀌는 연쇄적 명칭 변경이 일어난 것이다. 대동문이 대성문으로, 소동문이 대동문으로 변경된 사실은 앞에서 언급한 축조 당시의 기록들과, 「금위영 이건기 비」, 그리고 현재 성벽에 남아있는 명문(銘文) 등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문수봉 방향에서 내려다본 대남문 화려하지는 않지만 아기자기한 단풍이 늦가을의 정취를 물씬 풍기고 있다.
▲ 문수봉 방향에서 내려다본 대남문 화려하지는 않지만 아기자기한 단풍이 늦가을의 정취를 물씬 풍기고 있다.
ⓒ 이종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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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동문이 대성문으로 바뀌면서 소동문이라는 명칭은 마땅히 사라졌어야 옳다. 하지만 성능은 의도적이든 그렇지 않든 간에 하나의 문에 2개의 이름을 부여하는 오류를 범하고 말았으니 『북한지』에 등장하는 소동문과 대동문은 이름만 다를 뿐 결국 하나의 문이었던 셈이다. 그리하여 「북한도」의 제작자는 이 소동문의 위치를 찾지 못한 채 나한봉과 나월봉 사이에 다소 애매한 형태의 성문 표시를 남길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소설 같은 이야기라고 생각겠지만 이것 말고 다른 가능성은 없다. 

물론 이것은 어디까지나 필자의 얕은 지식에서 비롯된 견해이니 얼마든지 뒤집어질 수 있고 또 꼭 그렇게 되길 바란다. 어찌 보면 북한산성 14 성문의 비밀은 성능이 우리에게 던진 화두(話頭) 같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 풀릴 듯 풀리지 않는 비밀의 문을 드나드는 사이 우리 모두 열렬한 북한산성의 신봉자가 되고 마니 말이다. 이런저런 상념에 젖어있다 보니 해는 어느덧 서산에 지고 사방에 땅거미가 내려앉는다. 서둘러 자리를 털고 일어나 대남문으로 향한다. 아무리 달빛이 좋다지만 사모바위 승가사 길은 왠지 무서울 것 같다. 어디선가 까악까악 까마귀 울음소리가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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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372611&PAGE_CD=N0002&CMPT_CD=M0117

yuchung
유청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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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1-29
성화봉송 중 옷에 불붙어...ㅎㅎㅎㅎㅎ

러 성화봉송 중 주자 옷에 불붙어 ‘진화’ 소동

 

 

심심하면(?) 불이 꺼져 관계자들을 화나게 만든 러시아 소치 동계올림픽 성화가 또 ‘사고’를 쳤다.

지난 27일(현지시간) 러시아 중부 아바칸시에서 열린 성화봉송 행사 중 봉송 주자 옷에 불이 붙는 소동이 일어났다. 

이날 사고는 성화봉에 있던 불똥이 봉송 주자 옷에 떨어져 일어났으며 조직위원회 관계자들이 재빨리 불을 꺼 다행히 큰 피해는 막았다.

단순한 해프닝인 이번 사건이 주요뉴스가 된 것은 이번 소치 올림픽 성화의 ‘과거’가 화려하기 때문이다. 지난 1월 소치 올림픽 조직위원회 측은 성화봉 ‘불새’(Firebird)를 공개하면서 “강풍이나 혹한 등 어떤 경우에도 불이 꺼지지 않는다” 며 큰소리쳤다.

그러나 현재까지 운송 중 꺼진 사례만 10여 차례. 특히 지난달 초 러시아 수영영웅 샤바르시 카라페트얀이 크렘린궁내에서 성화를 봉송하던 중 불이 꺼지자 한 경호원이 라이터로 재점화해주는 모습이 TV로 생중계되기도 했다.

러시아 측은 당초 역대 가장 긴 성화 봉송과 각종 이벤트를 통해 소치 올림픽 분위기를 후끈달아오르게 할 계획이었다. 

실제로 이번 성화 봉송은 역대 올림픽 성화 봉송 최장거리인 무려 6만 5000km 여정을 진행중이며 최근에는 우주에도 다녀오는 ‘호사’를 누렸으나 엉뚱한 사고가 빈발해 체면만 구기게 됐다.

yuchung
유청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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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1-29
임상실험 참여가 전문직업인 남자…”월 1700만원 벌어요”

임상실험 참여가 직업인 남자…”월 1700만원 벌어요”

 

 

 

미국 네바다 주에 사는 남성 마크 파리시는 의사도 연구원도 아니지만 의학에 고마움을 느낀다. 의학 덕분에 짭짤한 수입을 올리고 있기 때문이다.

 

남자의 직업을 굳이 정의하자면 임상실험 자원자. 파리시는 각종 임상실험에 자원해 몸을 빌려주는 일을 수년 째 생업으로 삼고 있다. 파리시는 임상실험을 통해 막대한 치료비를 절약하면서 오히려 돈까지 받고 있는 이름난 환자로 최근 외신에 소개됐다. 

실제로 그는 다양한 임상실험에 자원해 치료를 받으면서 넉넉하게(?) 생활비까지 벌어들이고 있다. 에볼라 바이러스 치료제 임상실험은 아직 그의 기억에 생생하다.

 

임상실험에 자원한 파리시는 매주 4000달러, 우리 돈으로 약 425만원을 꼬박꼬박 받았다.각종 임상실험에 만성이 되다보니 충격적인 제안도 거리낌 없이 받아들이게 됐다.

 

그는 최근 고환 1개를 기증했다(?). 실험을 위해 고환을 적출하고 인공고환을 넣어야 한다는 말을 듣고 선뜻 결정을 내린 것. 파리시는 실험대상이 되는 조건으로 무려 3만5000달러, 우리나라 돈으로 약 3710만원을 받았다.

 

신체 일부를 팔아넘긴 것이라는 비판이 나올 법도 한 일이지만, 그는 대수롭지 않은 일이라는 태도로 실험 과정을 설명했다. 그는 “고환 1개를 빼내고 인공고환을 달았다”며 “2주 뒤 경과 확인 후에 수표를 받으면 된다”고 말했다.

 

외신은 “그야말로 외신에 과학(의학)으로 산다는 말이 가장 어울리는 일반인”이라고 남자를 소개했다.

yuchung
유청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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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1-19
이집트에서 발견된 '4400년 전의 사랑'

 

 

호주 맥쿼리 대학교의 고대문화연구센터가 공개해 미국 NBC 뉴스 등 해외 언론의 주목을 받은 이미지다. 

여자는 사제였으면 이름이 메레티테스였다. 남자는 파라오의 궁전에서 공연했던 가수 카하이. 둘은 4400년 전 이집트에 살았던 부부다. 

이 부부와 자녀들과 - 아마도 손자들까지 - 카이로 인근 사카라에 있는 한 무덤에 묻혔고, 그 무덤에서 부부의 다정한 모습을 담은 부조 유물이 발견되었다. 

4400년 사랑하는 부부의 모습은 ‘살갑게’ 묘사되었다. 서로 눈을 바로 보며 마음을 나눈다. 여자의 손이 남자 어깨에 올려졌다. 이렇게 남녀가 친근감을 표현하는 유물은 피라미드 시대 이집트에서 아주 드물며 동종 유물이 소수만 남아 있을 뿐이라고 한다. 

맥쿼리 대학교의 연구원 미럴 라쉬엔은 “나는 이 이미지가 대단히 특별한 친밀함을 표현한다고 생각한다”고 언론에 말했다. 

yuchung
유청섭
557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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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0-18
3D 프린팅 기술...아래그림이 이해 안되면 문제 ??

3D 프린팅 기술의 묘미를 확인 해보세요

이해가 안되면 문제 ??

 

yoon
Y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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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9-10
얼굴 필요 없는 남자 등장!

'우산 필요 없는 남자' 이어 '얼굴 필요 없는 남자' 등장!

 

'우산 필요 없는 남자' 1탄, 2탄이 네티즌들의 관심을 끌고 있는 가운데 '얼굴 필요 없는 남자' 사진이 공개돼 웃음을 자아내고 있다.

'우산 필요 없는 남자' 사진이 연이어 게재된 온라인 커뮤니티 게시판에는 'XX 필요 없는 남자'라는 제목을 따라한 '얼굴 필요 없는 남자'라는 제목의 사진 한 장이 올라왔다.

사진 속 남성은 옷을 거꾸로 입은 상태에서 뒤통수 머리카락을 얼굴 모양으로 깎아 보는 이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선글라스와 콧구멍, 수염 등이 잘 나타나 웃음을 자아낸다.

'우산 필요 없는 남자'에 이은 '얼굴 필요 없는 남자' 등장에 네티즌들은 "무섭다", "'우산 필요 없는 남자' 보다 더 재미있다", "'우산 필요 없는 남자' 사진은 약과였네" 등의 반응을 보이고 있다

 

yoon
Y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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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9-10
'가장 예쁜 女교관' 화제…"훈련, 받고싶어!"

중국 네티즌 사이에서 ‘가장 예쁜 교관’이라는 이름의 사진이 화제를 모으고 있다.

20대 중반으로 보이는 이 여성 교관은 학생들의 군사훈련을 통솔하고 있으며, 군복과 어울리지 않은 가녀린 채구와 작은 얼굴이 눈에 띈다.

특히 중국이 낳은 월드스타인 장쯔이와 매우 흡사한 외모, 흰 피부 등은 군인의 이미지와는 다소 상반돼 더욱 눈길을 끌고 있다.

화장기 없는 수수한 얼굴과 날씬한 몸매, 학생들을 친절하게 인도하는 매너 등 사진 속 모습은 타인의 호감을 사기에 충분하다.

이 교관의 신상은 알려지지 않았지만, 네티즌 사이에서는 ‘중국에서 가장 예쁜 미녀 교관’이라는 칭호와 함께 급속도록 사진이 퍼지면서 유명인사가 됐다.

네티즌들은 “군인이라 훈련이 많을 텐데 저런 피부를 유지할 수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 “저런 미녀 교관이 있다면 어떤 군사훈련도 두렵지 않을 듯”이라며 격한 호감을 드러내고 있다.

 

yuchung
유청섭
55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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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9-10
북극 빙하 증가, 잘 만든 재난 영화 '투모로우'가 현실로?

북극 빙하가 지난 1년 새 오히려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영국 데일리메일은 지난 8월 미국 항공우주국(NASA)이 찍은 위성사진을 지난해 8월 사진과 비교한 결과 북극 빙하 면적이 약 238만㎢ 늘었다고 최근 보도했다. 이는 유럽 대륙의 절반에 해당하는 면적이다.

데일리메일이 공개한 사진에 따르면 현재 북극 빙하 면적은 지난해보다 눈에 띄게 넓어져 러시아와 캐나다 북부까지 뻗어 나가 있다.

두 사진을 비교한 일부 기상 전문가들은 “북극권의 빙하 면적이 1년 전과 비교하면 60% 증가했다”며 “지구가 1997년 빙하기에 접어들었다”고 주장했다. 또 이번 세기 중반까지 ‘미니 빙하기’가 이어질 것으로 예측했다.

20세기 말 다수 기후학자들은 이산화탄소 배출에 의한 온실효과로 인해 지구온난화가 진행 중이라고 지적했다. 1988년 구성된 유엔 산하 정부간기후변화위원회(IPCC)는 “지구의 기온상승 추세가 계속된다면 극지방의 빙하가 녹아 지구 해수면이 상승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특히 2007년 영국 BBC는 기후학자 위즈로우 마스로우스키의 슈퍼컴퓨터 분석 결과를 인용해 “2013년 여름이면 북극 빙하가 모두 녹아 없어질 것”이라고 보도하기도 했다.

반면 일부 과학자들은 지구온난화 원인이 지구의 기온 변화 주기에 의한 자연현상일 뿐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대양의 해수면 온도는 태양의 영향으로 상승과 하강을 반복하는데 이 주기에 따라 지구 전체의 기온이 변화해 왔다는 설명이다.

이 주장에 따르면 올해 북극 빙하가 다시 늘어난 이유는 지구가 ‘미니 빙하기’에 접어들었기 때문이다. 대양 기온 변화 주기 연구자인 미국 위스콘신대 아나스타시오스 초니스 교수는 “1980∼90년대의 지구온난화는 이미 멈췄다. 지구는 작은 빙하기에 접어들었다”며 “앞으로 적어도 15년 동안 지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2004년 개봉한 영화 ‘투모로우’는 일부 기후학자들의 주장을 빌려 지구온난화가 진행됨에 따라 해양대 순환에 이상이 생겨 빙하기가 오는 과정을 묘사하기도 했다.

일부 기후학자들은 지구온난화로 극지방의 빙하가 급속도로 녹으면 바닷물의 염분이 낮아져 해저로 가라앉는 심층수의 양이 줄어들다 멈추게 되고 결국 해류의 흐름도 멈추게 돼 적도부근의 열을 극지방으로 옮겨주지 못하게 된다고 내다봤다. 해양대 순환이 멈추면 적도부근은 더 뜨거워지고 극지방은 더 추워져 북극지역에서 빙하기가 닥친다는 주장이다.

북극 빙하 증가 소식을 접한 네티즌들은 “영화 투모로우가 현실로?”, “설국열차 타야 하는 건가?”, “지구온난화와 미니 빙하기의 싸움”, “그래서 더워진다는 거야 추워진다는 거야” 등의 반응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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