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가을기운이 든다. 지구의 온난화 (global warming) 영향인지 요즘은 날씨를 가늠하기가 쉽지
않다. 미국대학탐방기간에 버지니아에서 경험했던 날씨는 높은 습도 때문이었는지 그야말로 끓는
더위 (sizzling hot) 에 다름 아니었다. 여기저기 벌써 낙엽이 지기 시작한다. 옛날 중국의 한 시인
(poet) 은 오동 닢 한 닢이 지는 것을 보고 천하에 가을이 왔다고 읊었지만 오늘 날 어떤 사람들은
한 겨울에 소복이 쌓인 눈을 보고도 겨울이 아니라고 우기는 형상이니 ‘지록위마’ (指鹿爲馬) 라는
고사성어가 나온 연유를 알만하다.
사람이 태어나서 부모에 의해 길러지고 스승에 의해 교육을 받고 사회에 나가서 자아를 실현하고
인격적으로도 성숙하여 가정을 이루며 다시 부모가 되어 자녀들을 기르고 스승이 되어 학생들을
가르치고 자녀들이 국가와 사회를 위해 일하게 하다가 늙게 되어 마침내 인생을 마감하는 인생의
주기 (life cycle)를 갖게 된다. 여기서 태어나는 것은 자신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아니지만,
부모에 의해 길러지고 스승에 의해서 교육받는 동안, 그러니까 대학을 졸업하기 까지 약 23년간은
부모의 식솔 (dependant)로서 혹은 선생님의 제자 (student)로서 지내게 된다. 자기가 먹고 자고
공부하는 것을 스스로 해결하는 사람이 아니고 보호받고 (protected), 지원받고 (supported),
교육받는 (educated) 피동적인 주체인 것이다. 이 기간이 인생의 학습기간 (learning period)
인데 배우는 자는 ‘보고-듣고-느끼고-배워서-행동하는 자세’를 가져야 마땅한 것이다.
이런자세는 아주 기본적인 것이지만 왠지 이런 학생들을 만나는 것이 그리 쉽지만은 않으니 왜 그럴까?
학생들이 오해하는 한 가지는 ‘범생이’ (모범생의 속어) 가 싫다는 것인데, 남과 다른 사람이 되려면
뭔가 특별히 튀는 사람이 되어야 된다는 말을 오해하는 듯 하다. 그러나 그런 사람들은 그 분야에서
그야말로 특별한 ‘범생이’ 인 것이다. ‘범생이가 싫다’는 말은, 특별한 분야에 뛰어나는 사람들은 그
분야에 특별한 ‘범생이’었다는 아주 중요한 사실을 간과 (disregard) 한데서 나온 학생들의 자기
합리화인 듯 하다. 우리 젊은 학생들이 보고-듣고-느끼고-배워서-행동하는 (I see, I listen, I feel,
and I do) 의 법칙을 알면 얼마나 좋을까 하여 여기에 대해 몇 마디 하고자 한다.
우리는 눈이 있어 언제나 주위를 본다. 사람을 보고 사물을 보고 자연을 바라본다. 부모와 친구와
선생님과 주위의 사람들을 본다. 좋은 사람들과 아름다운 사물들을 보면 그런 모습들에서 배워야
한다. 자기를 언제나 투사 (project) 하여 자기를 늘 비춰 (reflect) 보고 부족하다 싶으면 배워서
(learn) 자기의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 아름다운 모습들을 닮으려고 노력해야 한다. 이런 노력이
없으면 부모를 통해 눈 (eyes) 을 만들 주신 창조주에 대한 도리가 아니다. 어떤 사람은 상상을
초월하는 자연의 장관인 그랜드 캐년 (Grand Canyon) 을 보고도 ‘산에 주름 좀 잡아 놓았구먼’
이라며 감탄 할 줄을 모르는가 하면, 어떤 이들은 풀 한 포기 없는 황무지를 보고도 ‘와, 멋있군
(Wow, wonderful)’ 이라며 감탄하기도 한다. 왜, 이런 차이가 날까? 생각의 태도가 완전히
반대이기에 그렇다. 긍정적인 사람 (positive person) 은 하찮은 일에서도 느끼지만 부정적인
사람 (negative person) 은 대단한 것을 보고도 느끼지 못하게 된다. 일출 (sun rising) 을
보면서 과연 해의 고마움과 천지창조의 경외감 (wonder) 을 얼마나 느껴보았나? 신선한 공기를
마시면서 공기의 중요성과 고마움을 과연 얼마나 느끼며 살고 있는가? 화창한 날 (sunny day),
구름 낀 날 (cloudy day), 바람 부는 날 (windy day), 비 오는 날 (rainy day), 심지어는
폭풍이 부는 날 (stormy day) 도 모두 얼마나 아름답고 숨막히게 멋진 자연 현상인 것을 얼마나
느끼며 살아가는가?
필자가 어렸을 때 5.16 장학생으로 ‘청오 (靑五)’ 라는 잡지를 정기적으로
받아보았다. 맨 첫 번째 속 표지에 ‘음수사원 (飮水思源)’ 이라는 한자성어가 있었는데 그 당시에는
그 속 뜻을 몰랐었다. 뜻을 해석은 했으되 정말로 그 뜻이 참으로 대단하다는 것을 느끼지 못했다는
말이다. 사람이 물을 마실 때도 그 물이 어디에서 나왔으며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그 원천을 알라는
말씀인 것이다. 여기에는 학문의 태도가 들어있고 자신의 부모가 있는 것이다. 우리는 두 눈이
있어 아름다운 것들과 추한 것들을 모두 보게 된다. 아름다운 것은 배우고 닮아가며, 추한 것은
멀리하고 배우지 말아야 한다. 보고 느껴서 배우지 못하면 사람이 아니다라는 생각을 언제나 마음에
간직해야 한다.
우리는 귀가 있어 사람들의 말을 듣게 된다. 우리가 어려서 학습하는 기간에는 특히 부모님과
선생님들로부터 좋은 말씀을 듣게 된다. 그런데 이 좋은 말씀이 충고 (advice)로 들리지 않고
비난함 (blame)으로 들려서 서운함으로, 서러움으로 해석되기 일쑤이다. 잘되라고 하는 좋은
말씀이 자기를 책망하는 것으로만 들리는 것은 왜일까? 역시 부정적인 태도 (negative attitude)
가 그 원인이라고 진단된다. 사람이 부정적이 되면 그 끝이 안 보인다. 어떤 경우는 칭찬도
칭찬으로 안 듣고 가식적인 칭찬 (fake compliment) 이겠지 라고 해석해버린다면 해볼 도리가
없는 것이다. 사람은 보고 들을 줄을 알아야 한다. 그래서 하나님은 인간에게 두 눈 (two eyes)
과 두 귀 (two ears) 를 주셨지만, 말은 적게 하라고 입을 하나만 (one mouth) 주신 것이라고
여겨진다. 관심 (concern) 이 없이는 소위 충고가 불가능 하다. 충고를 안 듣게 되면 이를
반복하게 되기에 소위 잔소리 (nagging) 로 들리게 된다. 충고를 잘 들어 이를 고치는 자녀에게
잔소리하는 미련한 부모는 세상에 없다. 부모는 어떻게 하면 칭찬을 해줄까 기회를 보고, 부모는
어떻게 하면 용돈을 더 줄까 자녀의 훌륭한 점을 찾기에 시간을 보내게 된다. 이런 부모의 심정을
모르고 서운하게 들리고 잔소리로 들리고 지겹다며 부모를 탈출하려는 자녀가 있다면 그런 원인이
어디에 있나를 생각해 볼 일이다. 모든 것은 자신이 문제라는 엄연한 사실을 알아야 한다. 낳아서
길러주고 먹여주고 재워주고 공부시켜주는 부모에게 자녀가 할 일은 서운함을 느끼는 못난 생각이
아니라, 말씀을 잘 따르고 듣고 감사해야 할 일 이다.
우리는 두 눈이 있어 보아야 하고, 두 귀가 있어 들을 줄 알아야 한다는 점을 살펴보았다. 그러나
정작 중요한 것은 보고 들으면 느껴야 (feel) 하며, 느끼면 또한 행동으로 실천 (do) 할 줄을 알아야
한다. 느낄 줄을 모르면 보고 들어서 무엇을 하며, 행동으로 실천하지 않으면 느낀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우리는 Immanuel Kant라는 독일의 위대한 철학자를 잘 안다. 그는 ‘너는 할 수 있다,
왜냐하면 너는 해야 하기 때문이다 (You can, because you shall)’ 이라고 설파했다. 물론 행동을
강조한 말이다. 그가 저술한 책 중에서 ‘순수이성비판 (純粹理性批判)’ 보다 ‘실천이성비판 (實
踐理性批判)’을 더 소중하게 생각하는 이유는 바로 생각보다 실천이 중요하다는 이유에서이다.
서양문학에서 후세 사람들은 William Shakespeare 를 일컬어 ‘사상의 인간 (a man of thought)’
라고 하고, Christopher Columbus 일컬어 ‘행동의 인간 (a man of action)’ 이라고 한다.
전세계적으로 매 13일 마다 자신에 대해 한편의 논문이 발행되는 Shakespeare, 그가 없는 영문학이
어디 있겠는가 싶지만, 지구가 둥글다는 믿음을 죽음을 각오한 행동으로 실천한 Columbus 가 왜
세계의 역사 속에 남는지는 우리가 생각해 볼 일이다. 우리 젊은 학생들은 그들의 인생여정에서
지금 배우는 기간 (learning period) 이다. 그들의 할 일은 경제적으로 가정을 책임지는 일이
아니라 부모와 스승을 따르며 보고 듣고 느끼고 배워서 행동으로 실천하는 일이다. 인생의 중요한
시기 (critical period) 가 바로 지금이라는 엄연한 사실을 알고 항상 ‘보고-듣고-느끼고-배워서-
행동하는’ 그런 행동의 인간 (a man of action) 이 되기를 모든 젊은이들 에게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