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 영화 ‘고려 아리랑, 천산의 디바‘ 포스터
-우리가 이방 땅에서 어찌 여호와의 노래를 부를까.- 유대인들이 탄식한 소리다. 그러면서 그들은 시온을 기억하며 울었다. 바벨론 강변에 앉아서다. 그게 언젠가. 기원전 6백년 경이니 지금부터 2천6백 년 전이다.
이방 땅에서 부르는 노래는 눈물을 동반할 수밖에 없다. 살아갈 길이 막막하기 때문이다.
유대인들은 바벨론에 정복돼 포로로 끌려갔다. 고려인들도 마찬가지 신세다. 총부리 앞에서 화물차를 타야 했다. 그게 1937년. 스탈린의 명령 때문이었다. 20만이 연해주에서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송됐다. 도착한 곳은 마실 수 없는 소금물에 갈대만 우거진 황무지였다. 토굴을 파고 겨울을 나야 했다. 견디지 못하고 5만 명 이상이 사망했다.
그 피눈물을 닦아 준 사람들이 있었다. 바로 ‘고려극장’ 배우들이었다. 집단농장을 찾아다니며 고된 노동에 지친 동포들에게 ‘아리랑’을 들려줬다. ‘춘향전’을 연극으로 꾸며 다가갔다. ‘고려극장’이 오는 날은 가뭄 끝에 단비가 내리는 순간이었다.
‘고려극장’은 1932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창단됐다. 강제 이송당할 때 ‘고려극장’도 화물차에 같이 실었다. 극장 건물을 뜯어서 실었다는 얘기가 아니다. 연극인들의 열정도 같이 실었다는 얘기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최초로 올린 연극은 ‘장평동의 횃불’. 일본 제국주의에 항거하는 한국인들의 영웅적인 투쟁을 그렸다. 그땐 해외동포들의 화두는 자나 깨나 조국의 독립이 아니던가.
그 이전 해외에서 최초로 올려진 연극은 ‘안중근 의사전’이다.
미국 네브래스카 주의 헤이스팅스 시에서 몇 안 되는 유학생들에 의해서였고 1912년의 일이다. 하지만 극장 건물을 소유한 것은 ‘고려극장’이 해외에선 처음이다. 지금은 어엿이 국립극장으로 승격돼 있다. 바벨론에 끌려가 코가 빠져 있는 유대인들을 추스른 것은 선지자 예레미야였다. 그는 70년만 참으면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다고 외쳤다. ‘장평동의 횃불’이며 ‘안중근 의사전’ 등 기를 쓰고 연극을 하는 건 이 역시 선지자의 외침이 필요해서가 아니었겠나.
‘천산의 디바’는 고려극장 무대에 섰던 두 걸출한 여자 성악가 이함덕과 방타마르의 라이프 스토리다. 노래와 함께 흘러간 그들의 개인사이자 민족사의 증언이다. 16편의 영화가 이번 토론토 한국영화제에서 닷새에 걸쳐 상영됐는데 그 중 하나인 다큐영화다.
‘고려극장’의 한 남자 가수는 이렇게 노래한다. “우리는 모든 것을 잃었네/ 고향도 잊어가고 있고/ 우리의 역사도 모르고/ 무엇을 우리 후손들에게 남겨줄 것인가/ 어떻게 살아가는 것을 가르쳐 줄 것인가/ 우리가 가야 할 길은 어디에도 없네/ 우리를 이해하기 어렵구나.”
무저갱에 빠져 허우적대며 부른 절망의 노래다. 그러면서도 ‘무엇을 우리 후손들에게 남겨줄 것인가’ 고민했다. 그런 고민이야말로 ‘고려극장’이 외국땅에서 장장 85년이나 이어온 저력이 아닐까.
올해 6번째인 토론토 한국영화제 역시 그런 빌미와 무관치 않아 보인다. 5만 명이 죽은 고려인들에 비하면 단 한 명도 죽지 않은 캐나다 이민은 극히 순탄한 여정이 아닌가. 그렇다고 그런 질문이 언제까지 우리에겐 무효할 것인지 영화제는 앞으로도 계속 묻고 싶어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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