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아스포라(Diaspora)

 

 5월 28일 정오, 서울 3호선 지하철 안국동역에서 내려 친구들을 만나기 위해 6번 출구로 나갔다. 인사동 골목으로 나가는 길이다. 이틀 후면 고국을 떠나 지난 50여 년 살아왔던 캐나다로 돌아간다. 약 2년 반 코로나 바이러스라는 전염병으로 발이 묶여 있었다. 어렵게 떠났던 여행이 막을 내려가고 있다. 여행기간만이라도 고국에서만큼은 한국인보다 더 한국인이 되고 싶었던 나, 하지만 나의 한계는 거기까지였다.

 1866년 이씨조선 말 천주교인 대학살이 자행되었던 병인박해 당시, 한반도의 북쪽 끝에선 민족 새 이동이 일어나고 있었다. 함경북도 육진 지역을 휩쓴 대기근은 굶주리고 헐벗었던 많은 한민족으로 하여금 두만강을 건너 금지되었던 땅이었던 북간도로 가게 하였다.

 기막힌 현실을 극복하기 위한 생존수단으로써 도강하였던 그들은 용마루골이라 불리던 용정을 중심으로 많은 의사, 열사들을 배출하며 북간도는 민족 얼의 재생산지가 된다. 그 후 나라가 망하면서 중국인도 일본인도 아닌 국적불명의 유랑자로 전락하게 된다. 한국형 "디아스포라"의 모형이라 할 수 있다.

 디아스포라는 특정 민족이 자의적이라기보다는 타의적으로 기존에 살던 땅을 떠나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여 집단을 형성하는 것 또는 그러한 집단을 의미한다. 흩뿌리거나 퍼트리는 것을 뜻하는 그리스어에서 나왔다. 영어로는 Diaspora라 표현하며 "디아스포라"라 발음한다.

 슬픈 의미가 담겨있다. 당연히 우리가 현재 사용하고 있는 이민(Immigration)의 개념과는 다르다. 이민이 자신의 문제를 이주하려는 국가에서 해결할 수 있으리라는 희망의 자유의지 발현인 것에 반해 디아스포라는 타의적인 의미가 강하다. 그래서 재외동포 사회를 “코리안 디아스포라"라 불리는 것에 거부감을 갖는다.

”디아스포라"는 유대인들이 조국에서 추방되어 세계 각국으로 뿔뿔이 흩어져 살아가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섣불리 나라밖 동포사회를 "디아스포라" 운운하면 당연히 불쾌감을 갖게 된다.

 한민족의 "디아스포라" 역사는 우리의 관념보다는 훨씬 그 역사가 길다고 할 수 있다. 국가가 임무를 수행치 못해 백성의 안전을 지키지 못할 때는 어느 국가도 그 예외가 될 수 없다.

 몽골 원나라의 고려 침공, 만주족 금나라(후에 청나라)에 의하여 치른 병자호란 그리고 임진왜란 등 무책임한 국가에 의하여 얼마나 많은 백성들이 낯선 타국으로 끌려갔던가?

 비록 우리 역사가 그리고 교과서가 외면을 하더라도, 끌려갔던 백성들과 그 후예들은 노예가 되어 세계 각지로 흩어져 슬픈 민족의 응어리로 남게 된다. 슬픈 한민족의 "디아스포라" 역사이다. 피눈물이고 한 맺힌 진실의 뒤안길에 숨겨진 잊힌 역사이기도 하다.

 코로나 바이러스의 등장으로 우리는 인류의 눈부신 발전이 그리고 공존이 얼마나 쉽게 허물어지는지 목격한 세대다. 전염병 바이러스는 인종차별을 하지 않는다. 적나라하게 인간이 얼마나 이기적인지, 생존의 위협 앞에서 나약한지를 여실히 드러내 보여주었다.

 그렇다 할지라도 이 엄연한 사실 또한 바이러스의 종결과 함께 서서히 잊히게 되어 있다. 그래서 이 서글픈 기간에 더욱 고국이 보고 싶었다. 고국을 떠나기 이틀 전인 5월 28일 친구들과 만나 전통 한국 음식점에서 점심을 시작으로 인사동 거리를 헤집고 다녔다.

옛날엔 2차, 3차 술집으로 자리를 옮기던 친구들이었지만 80을 바라보는 나이로는 어림도 없는 일이 되었다. 그래서 그런지 우리는 인사동 주위 전통 찻집을 전전하게 되었다. 물론 다시 만날 것을 약속하며 헤어졌다. 그러나 우리 모두는 알고 있었다. 어쩌면 이것이 나와 친구들의 마지막 모임이 될 수 있다는 것을!

 회자정리(會者定離), 만나면 반드시 헤어진다는 뜻으로 당연한 자연의 이치다. 그런데 끊을 수 없는 것이 있다. 말로는 쉽게 설명될 수 없는 탯줄과 같은 헤어질 수 없는 것이 있다.

나는 그것을 오늘 한국 여자 대표 축구팀과 캐나다 여자 축구팀과의 친선경기가 열린 BMO 경기장에서 발견하였다. 경기 전 울려 퍼진 애국가,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 대한사람 대한으로 길이 보전하세". 내 눈에는 나도 모르게 눈물이 고여 있었다.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하느님이 보우하사 우리나라 만세!“

 서울에서였다. 미군철수 반대 운동의 서명을 받던 한 여인이 말하였다. 외국에 사는 한국 사람이 더 애국자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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