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WII 배경 영화(I)-‘지상에서 영원으로’(From Here to Eternity)(5·끝)

 

(지난 호에 이어)

 장면은 삼엄한 경계를 서고 있는 해안가 병영. 그러나 멈추라는 지시를 듣지 않고 아픈 몸으로 비틀대면서 가던 프루윗은 초병의 오인 사격을 받고 어이없이 죽고 만다. 군을 사랑하면서도 고지식하고 타협을 할 줄 모르는 '개성'을 용납하지 않는 이 계급사회에 저항하다가 끝내 희생당하고 만 것이다.

 

 그의 포켓에 들어있던 마우스피스를 들고 워든 상사가 말한다. "그는 군대를 사랑한 훌륭한 군인이었어…. 조금만 굽혔으면 됐을 텐데. 권투만 했더라도, 아니 자넨 아냐. 고집불통! 우스운 건 올해는 권투 결승전이 없을 거란 거야."

 

 장면은 바뀌어 호놀룰루 항구. 미국행 여객선이 떠난다. [註: 이때 배경음악으로 흐르는 '알로하 오에(Aloha 'Oe)'는 하와이어로 '안녕 그대여'라는 뜻으로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의 마음을 노래한 하와이 민요이다. 하와이 왕국의 마지막 국왕인 릴리우오칼라니 여왕(Queen Lili?uokalani, 1838~1917)이 1898년 작사·작곡한 곡이다. 20세기 이후로는 단순한 사랑노래가 아닌 하와이 왕국의 멸망이라는 망국의 한을 품은 슬픈 노래가 되어버렸다.]

 

 갑판에서 캐런과 앨마가 대화를 나누고 있다. 캐런이 "(지상낙원 하와이는) 내가 본 중 가장 아름다운 곳이에요."라고 하자 "제가 일하던 곳도 보이는 것 같군요."라고 화답하는 앨마.

 

 캐런이 목에 건 화환을 벗어 바닷물에 던지며 말한다. "전설이 있죠. 이 꽃들이 해변 쪽으로 가면 여기 다시 올 수 있고, 반대쪽으로 가면 못 돌아온대요." 이에 앨마가 말한다. "난 돌아오지 않을 거예요. 내 약혼자가 12월7일에 전사했어요." "저런 안 됐군요." "그는 폭격기 조종사였죠. 그는 폭격기를 격납고로 몰고 가다가 일본군한테 폭격 당했죠. 신문에서 읽으셨겠죠. 은성무공훈장을 받았어요. 그의 어머니께 보냈는데 저보고 간직하라고 주셨죠." "정말 좋으신 분이군요."

 

 앨마가 얘기를 계속한다. "그의 집안은 남부 사람들인데 아주 좋은 분들이에요. 그의 이름은 장군 이름을 딴 '로버트 E. 리 프루윗'이죠." "누구요?" "로버트 E. 리 프루윗! 정말 우스운 이름 아닌가요?" [註: 남북전쟁 때 남부군 총사령관이었던 로버트 E. 리(Robert E. Lee, 1807~1870) 장군의 이름과 같기 때문이다.]

 

 이때 카메라는 앨마 손에 쥐어져 있는, 프루윗이 부적처럼 지니고 다니던 트럼펫 '마우스피스'를 보여준다. 그리고 물에 떠가는 화환 두 개를 보여주며 영화는 끝을 맺는다.

 

 이 영화는 엄밀히 말하면 전쟁 영화가 아니다. 일본의 진주만 공격 직전 호놀룰루 근처에 주둔했던 미군 기지를 배경으로 획일화를 요구하는 군대라는 체제 안에서 개성을 고수하는 병사들의 삶을 복잡한 이야기 속에 풀어낸 영화이다. 어쩌면 고독하며 억압에 저항하는 투쟁의 영화이기도 하고…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한 여인들의 이야기는 '지상에서 영원으로' 전설이 된다.

 

 이 작품은 아카데미상 13개 부문에 후보로 올라 작품상(제작자 버디 애들러), 남우조연상(프랭크 시나트라), 여우조연상(도나 리드), 감독상(프레드 진네만), 각색상, 흑백촬영상(버닛 거피), 편집상, 음향상 등 8개 부문에서 수상했다.

 

 '지상에서…'에는 당시의 기준으로서는 꽤 선정적인 장면들이 많이 나온다. 그 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장면이 자신의 상관인 중대장의 부인 캐런 홈즈와 불륜 관계에 빠진 밀턴 워든 상사가 파도치는 바닷가에서 캐런과 격정적인 키스를 나누는 장면이다. [註: 이로부터 16년 후인 1969년 '집시 나방(The Gypsy Moths)'에서 데보라 커와 버트 랭카스터가 다시 공연했다. 이 작품에서 데보라 커는 48세의 나이에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누드로 출연하여 화제가 되었다.]

 

 이 장면 외에도 워든 상사가 중대장의 집을 방문하였을 때, 허벅지가 드러나는 아주 짧은 반바지를 입은 캐런의 모습을 보여주는 장면이나, 클럽에서 일하는 앨마가 소파에 누워 담배를 피고 있는 프루윗 옆에서 귀고리를 다시 다는 장면, 저드슨이 새의원클럽에서 나올 때 바지를 허리 위로 추스리는 장면 등은 관객들로 하여금 야릇한 생각을 하게 만드는 장면들이다.

 

 몽고메리 클리프트(Montgomery Clift, 1920~1966)는 요즘 세대는 잘 알지 못하겠지만 지적이고 우수에 찬 듯한 매력의 꽃미남으로 엄청난 인기를 끌었던 배우였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사랑아 나는 통곡한다(1949)' '젊은이의 양지(1951)' 그리고 '지상에서…'와 같은 해인 1953년에 '종착역(Stazione Termini)'으로 인기 절정에 이른다. 이어서 '지난 여름 갑자기(1959)' '뉘른베르크 재판(1961)' 등으로 기억되는 미국 네브래스카주 오마하 출신 배우다.

 

 몽고메리 클리프트는 죽은 후에 동성애자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30대 후반에 엘리자베스 테일러 집으로 가다가 자동차 사고를 당해 배우의 생명인 얼굴이 망가져 수십 차례의 성형수술을 했으며, 당시 보수적 미국사회에서 동성애자라는 사실을 숨긴 채 술·마약에 중독됐다. 심리 불안과 각종 건강 문제에 시달리다 1966년 7월23일 아침 관상동맥증으로 46세의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데보라 커(Deborah Kerr, 1921~2007)는 1947년 영화 '검은 수선화'에서 클로다 수녀 역으로 데뷔했다. '쿼바디스(1951)'에서 리기아 공주 역, 1956년 뮤지컬을 각색한 영화 '왕과 나'에 영국인 가정교사로 출연, 시암의 국왕(율 브리너)과 사랑에 빠지는 연기를 펼쳤다.

 

 1967년에 007영화 '카지노 로열'에 당시 46세로 출연하여 가장 나이 많은 '본드 걸'이었다. 그 후 '스펙터(2015)'에서 모니카 벨루치가 50세의 '본드 걸'로 등장하기까지는.

 

 데보라 커는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후보에 6번이나 올랐지만 수상에는 실패했다. 말년에 파킨슨병으로 투병하다 2007년 10월16일 잉글랜드에서 향년 86세로 타계했다.

 

 프레드 진네만(Fred Zinnemann, 1907~1997) 감독은 하이 눈(1952), 70mm 대형 스크린의 효시인 오클라호마!(1955), 노인과 바다(1958), 파계(破戒,·1959), 사계절의 사나이(1966), 자칼의 음모(1973), 줄리아(1977) 등의 숱한 명작을 남긴 명감독이다.

 

 그는 65편을 오스카상 후보에 올려 본인은 물론 연기자에게 24개의 상을 안겨준 '스타 제조기'라는 관록을 자랑하는 오스트리아계 유대인이다. (끝)

 

▲ 쿠히오 해변공원에서 만난 캐런은 워든이 장교 신청서 제출조차 하지 않았고 군대와 결혼한 사람이니 이제 더 이상 자기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미련없이 떠나기로 작정한다.
 


▲ 1941년 12월7일 일요일 아침, 일본군의 하와이 미군 기지 공습에 대항하여 워든 상사가 기관총으로 공중사격하고 있다.
 


▲ 앨마의 집에서 술에 찌들어있는 프루윗(몽고메리 클리프트). 신문에 "제임스 R. 저드슨 중사의 죽음, 여전히 단서를 못 찾음"이란 기사가 났다.
 


▲ "군대는 당신을 쓰레기 취급하고 학대하고 당신 친구까지 죽였는데 왜 돌아가려는 거냐고요?"라고 방방 뛰며 말리는 앨마(도나 리드)를 뒤로 하고 결국 복귀를 결심하고 떠나는 프루윗!
 


▲ 삼엄한 경계를 서고 있는 해안가 병영. 그러나 멈추라는 지시를 듣지 않고 아픈 몸으로 비틀대면서 가던 프루윗은 초병의 오인 사격을 받고 어이없이 죽고 만다.
 


▲ 미국행 여객선 갑판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는 캐런(데보라 커)과 앨마(도나 리드).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한 여인들의 이야기는 '지상에서 영원으로' 전설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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