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를, 지금 이순간을 즐겨라

 

장자: 물고기들이 조용히 잘도 논다. 물고기들이 매우 즐거워한다.

혜자: 자네가 물고기가 아닌데 어떻게 물고기들의 즐거움을 아는가?

장자: 자네는 내가 아닌데, 어떻게 내가 물고기의 즐거움을 모르는 줄 아는가?

혜자: 그렇지. 내가 자네가 아니니 자네를 알지 못하지. 그와 마찬가지로 자네는 물고기가 아니니, 물고기의 즐거움을 모름이 틀림없네.

장자: 근본으로 돌아가 이야기 하세. 처음에 자네가, 내가 어찌 물고기의 즐거움을 아느냐고 물은 것은 이미 내가 그런 것을 알고 있다고 전제하고 물은 것일세. 나는 지금 이 호수의 다리 위에 있으면서 저 물 속의 물고기와 마음으로 통해서 그들의 즐거움을 안 것일세.

 

 대화의 논리 형식으로 치면 혜자의 승리이다. 그런데 장자는 논리학이 아니고 언어학이다. 또한, 논리적인 혜자에 비해 장자는 변신의 귀재이다. 장자는 나비가 되기도 하고 나비가 장자가 되기도 한다.

 소통과 연결의 전문가 장자에게 있어 존재의 경계선은 무수히 부서지고 변경된다. 장자의 아내가 죽자 혜자는 조상을 간다. 그때, 장자는 북을 두드리면서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혜자: 자네는 부인과 함께 살면서 자식도 기르고 몸이 함께 늙어가다 죽었는데 곡을 하지 않는 것은 혹 그럴 수 있겠으나 북을 두드리며 노래까지 부르는 것은 너무 심하지 않은가.

장자: 그렇지가 않네. 그녀가 죽었을 때 내가 어찌 슬퍼하지 않았겠는가? 그러나 그녀가 태어나기 이전을 살펴볼 때 원래 생명이 없었네. 그 뿐만 아니라 형태도 없었지. 기 또한 없었지. 흐릿하고 아늑한 사이에 섞여 있다가 기가 생기고 형체가 생기고 그것이 변하여 생명이 갖추어 졌네. 그것이 지금 또 바뀌어 죽음으로 간 것이네. 이것은 춘하추동 네 계절이 번갈아 운행하는 것과 같네. 그 사람은 천지 사이의 큰 방에서 편안히 자고 있네. 그런데 내가 큰 소리로 따라서 운다면 내 스스로 천명에 통하지 못하는 것 같음으로 울기를 그쳤네.

 

 장자는 삶과 죽음의 본질을 깨달아 죽음을 자연스런 변화로 받아들임으로써 죽음을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만일 그가 백인들 사회에 속하면 그냥 "짐"(Jim)이라 불려진다. 그러나 말레이시아 외딴섬 파트산의 주민들에겐 그는 "로드 짐"(Lord Jim)으로 불려진다. "로드 짐"은 "조셉 콘라드"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소설의 주인공이다.

 시대 배경은 1899-1900년 경이다. 영국의 1등 항해사 “짐"은 부상으로 자바섬에 머물며 치료를 받게 된다. 회복을 한 후, 화물선 파트나에 승선하게 된다. 메카로 가는 회교신자들을 잔뜩 때운 그 배가 항해 중 심한 태풍을 만나 침몰할 위기에 처하자 "짐"은 선장과 동료 승무원들과 함께 승객들을 내버리고 구명정을 타고 탈출한다.

 그런데 "짐"이 항구에 도착해 보니 아뿔싸, 그들이 내버린 배가 멀쩡히 정박해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결국, 그는 재판에 회부되고 승무원 자격을 박탈 당할 뿐만 아니라 겁쟁이, 비겁자로 낙인 찍힌채 버러지 같은 삶을 살게 된다.

 그런 그가 재생의 길을 걷게 되는 것은 말레이지아 외딴섬 "파투산"에 정착하면서 이뤄진다.

 그는 이 섬의 주민들을 수탈하는 강도단 두목에 맞서 주민들을 이끌고 전투를 벌여 승리를 하고 "로드"라는 칭호를 받게 된다. 그러나 강도단 두목 제너럴이 "짐"과의 약속을 어기고 촌락을 역습하면서 그 과정에서 촌장의 아들이 사망하며 "짐"은 그 책임을 지게 된다.

 촌장은 "짐”에게 마을을 떠나면 살려주겠다고 말하나 다시는 책임을 회피해 도주하지 않기를 맹세한 그는 자신이 선택한 죽음의 길을 향하여 간다. 자기를 더 이상 경멸하지 않는 자, 인간 말종이 되지 않기 위해 그것이 죽음을 뜻하는 것이라 할지라도 니체의 위버멘쉬(Ubermensch)처럼 죽음의 길을 선택한다.

지금이 아니라면 언제? (And if not now, when?). 가급적 내일이란 말은 조금만 믿어야겠다. 현재라는 시간의 문을 열고 발을 딛는 순간 안쪽은 과거가 되고 이제부터 미래가 시작된다. 그렇다는 것은 현재의 순간이야말로 모든 과거와 미래가 만들어지는 필연으로 귀결된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그래도, 대부분의 인간은 현재라는 문에서 내일이라는 미래에 올 죽음을 느끼며 매일 살고 있는 것은 아니다. 미래는 현재의 진행형이지만 지금 이 순간을 열심히 사는 것이 미래에 올 죽음에 대한 도전적 자세이며 긍정적 승부욕이 아닐까.

니체는 이렇게 말하였다. 지금 그대의 육체로 살아라! 살아있는 이순간 잘 웃고 잘 먹고 살아 있음을 자축하라! 이것이 그대가 온 힘을 다해 이루어야 할 평생의 숙제다. (2022년 12월 5일)

 

*추신: 이미 월드컵 전반전에 4 대 0으로 끌려가며 지고 있는 경기인데도 불구하고 필사적인 투혼을 보여 후반전에 한 골을 만회한 대한민국팀에 찬사를 보낸다. 그들이 자랑스럽다.

 

 

<저작권자(c) Budongsancanada.com 부동산캐나다 한인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CA
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