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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경남의 기획 연재

    국제펜클럽본부회원, 한국번역문학가협회 회원 / <눈물의 아들 어거스틴>, <윤치호 영문일기> 번역 외에 <좌옹 윤치호 평전> 2018년에 편저 간행
    죠반니노 과레스끼의 <23인 클럽> 명예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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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에세이)자연의 모자이크를 따라서-한스빌 마을의 바위식구들

 


 

한국을 떠나기 며칠 전 경북 풍기의 한스빌에 살고 계신 아저씨 내외분이 우리 부부를 초대해서 청량리역의 무궁화열차로 두 시간 반 만에 풍기역에 도착했다. 기차 역에 마중 나온 아저씨, 윤도선 박사는 산부인과 의사직을 은퇴하고 눈이 나빠졌고, 아주머니는 아직 정정하지만 소백산 국립공원 자락에 산수 맑고, 살기 좋은 이 통나무집 마을이 노년의 최고 낙원이라 생각하며 살고 계셨다.
 옛부터 내려오는 한산의 모시처럼 풍기의 인조견은 지금도 유명하다. 또한 개성과 더불어 인삼의 명산지이기도 하고, 사과는 경산사과 못지않다고 사과밭을 지나며 아주머니께서 자랑한다. 아주 크지도 작지도 않은 홍옥들이 주렁주렁 탐스럽다. 그런데 그 옆에 웬 보랏빛 사과가 열려있어 놀라자, 은빛 돗자리로 태양열을 반사하면서 보랏빛 종이로 사과를 싸주는 신재배법이란다. 
한스빌 마을에 들어서자 붉은 소나무 밑에 붉은 핀란드산 통나무로 지은 집들이 그림 같이 아름답다. 언덕위로 솔라하우스도 더러 보였다.
 


우리 아이들이 학교 다닐 때 여름방학이면 가서 쉬던 용인 동백리, 향린동산의 자그마한 솔라하우스가 생각난다. 단칸방의 작은 집이지만 화이어 플레이스에 장작불 지피고 불고기를 구워먹곤 했지. 높은 언덕에 지은 솔라하우스에서 우리 딸이 플룻을 불면 온 동산에 울리고, 지나가던 손님이 문 앞의 바위에 앉아 듣고 가곤 했었지.
 아저씨 댁은 20 여평의 단층에 방 2개와 부엌, 거실과 화장실이 있는 통나무집이다. 쇠못을 쓰지 않고 나무못으로 지었고, 프랑스에서 수입한 창과 현관 문짝은 3단계에 걸쳐 튼튼하게 안전장치가 되어있다. 핀란드산 원목을 직수입해서 스위스 건축가의 설계로 지은 이 통나무 집 마을이름도 한국과 스위스를 합쳐 한스빌이라고 지었다고 한다. 
 

전문 건설업을 하면서 대규모 터널공사를 하는 과정에서 스웨덴을 자주 방문하다가 통나무집 마을에 매료되어 특이한 한스빌 마을을 조성한 대원종합건설 송화선 사장은, 영주 시의회 의장을 지내기도 했다고 한다. 스웨덴과 사업 교류를 하면서 친환경적인 차원과 넓은 세계에 눈을 뜬 송화선 사장은 이 한스빌을 중심으로 애향심에서 우러나는 ‘죽계문화재단’을 설립하고 지역문화 활동을 넓히기 위해 해마다 5월에 지역주민과 입주민을 위해 음악회도 연다고 한다. 
 저녁엔 역시 풍기 명물의 하나인 ‘영주 소고기’ 구이집에 갔다. 농협에서 직영하는 집에서 최고의 소고기 맛을 즐겼다. 통나무집에 다시 돌아와, 그동안 나누지 못한 이야기보따리를 푸느라 시간 가는 줄을 몰랐다. 밤에 우는 두견새인가, 뻐꾹새 소리인가 듣다가 살며시 꿈속에 빠져 들어갔다.
 

이른 아침, 상쾌한 공기를 마시며 남편은 아저씨와 산책에 나섰다. 한스빌을 한바퀴 돌고 ‘야외음악당’ 구경도 하고, 토론토에 돌아가면 바로 단비합창단 연주에서 가질 곡목을 ‘바위 관중’들 앞에서 한 곡조 뽑아보기도 하고. 야외지만 음악당 못지않게 좋다고 한다. 
 우리는 푸짐한 웰빙 아침 식사를 하고 마을을 다시 한번 산책하며 서울로 갈 길을 재촉했다. 한스빌 통나무집이 20 여채인데, 사업주가 입주자격 심사를 엄격하게 해서인지 전문직업을 가졌던 사람들만 들어와서 7채 밖에 안 산다. 온 동네마다 오솔길과 숲 사이로 벗님처럼 서있는 바위들이 사람 숫자보다 많은 것 같다.
 

이 마을의 주민인양 마을과 조화가 잘 되는 바위 조각 작품들이 우리가 지나갈 때마다 한 마디씩 말을 건네며 미소를 보내준다. 아저씨 댁에서 큰길 옆 언덕 아래에 크고 흰 한마리 충견 같은 바위가 누워있다. 마치 “짐승이나 곡식예물 당신께서 아니 원하시고, 오히려 내 귀를 열어주셨사옵니다.”(Psalm 40:6) 라는 시편을 노래하는 듯. 노년이 되어 욕심을 버리면 하늘의 음성도 귀담아 들을 수 있는 귀가 열려 지혜가 생긴다는 이야기 같다.
 한 골목 돌아서는 모퉁이에 아주 자신만만한 바위조각품을 만난다. 암반 같은 받침대 위에 올라 앉아 마치 “나의 구원이 그분에게서 오니, 내 영혼은 오직 하느님 품에서 안온하구나. 그분 홀로 나의 바위, 나의 구원이시며 나의 요새이시니 나는 흔들리지 아니하리라. (Psalm 60:2)”고 노래하는 듯. 
 

 
  
 

 
 

다시 언덕을 올라 배점저수지가 내려다보이는 정자에 올라가 쉬었다. 소백산맥 자락이 겹겹으로 눈앞에 펼쳐진다. 우리는 바위 틈새에 얼굴을 내밀고 인사하는 보랏빛 들국화에게 눈인사를 보내고, 풍기역을 향해 차를 달렸다.
 풍기역엔 옛날 기차와 그 기차에 물을 채워주던 큰 물탱크가 ‘풍기 인삼’을 홍보하는 모습으로 서있다. 철로 옆엔 한스빌에서 따라 온 듯한 솟대처럼 키가 큰 바위 위에 얹어놓은 행운의 조약돌들이 우리에게 잘가라고 인사하며 서있다. 
 너무나 짧은 1박2일 나들이지만 언젠가 ‘사과꽃 축제’가 열리는 봄날에 우리 단비합창단이 이곳에 와서 ‘불우어린이 돕기’ 자선연주회를 이곳 주민들과 귀여운 바위군중들을 위해 들려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하면서 기차에 올랐다.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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