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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경남의 기획 연재

    국제펜클럽본부회원, 한국번역문학가협회 회원 / <눈물의 아들 어거스틴>, <윤치호 영문일기> 번역 외에 <좌옹 윤치호 평전> 2018년에 편저 간행
    죠반니노 과레스끼의 <23인 클럽> 명예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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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에세이)자연의 모자이크를 따라서-갑바도기아의 애가(哀歌)

 

산 위로 4천 제곱킬로미터의 암석이 뒤덮고 있는 도시 갑바도기아! 

보는 사람은 누구나 “와”하는 탄성을 지르며 하느님의 조화를 생각지 않을 수 없게 된다. 금강산도 이보다 더 절묘할 수 있을까?! 금강산이 신비롭고 예술적인 ‘여체산(女體山)’이라면 이 갑바도기아의 산악지대는 너무나 종교적인 고뇌가 깃든 ‘남체산(男體山)’이라고 하면 어울릴 것이다. 

 예수님의 부활 이후 첫 번 오순절 예배를 드린 마가의 다락방에서 듣는 복음의 말씀이, 그곳에 모인 여러 나라 사람들이 모두 자기나라 말로 들리는 이적이 일어난다. “세찬 바람소리와 혀 같은 것들이 나타나 불길처럼 갈라지며 각 사람위에 내리는” 성령을 체험한 것이다. 동에서, 서에서, 세계 각처에서 모인 사람들 중에는 터키의 한 산악지대인 갑바도기아 사람들도 있었다. 베드로도 신도들에게 보내는 그의 편지에서 갑바도기아 사람들에게 전하는 인사를 빼놓지 않았다.(벧전1:1) 


 

 갑바도기아는 4세기 초에 신학과 영성이 발전된 곳이며 바실리오 주교, 나치안츠의 그레고리오 주교와 니사의 그레고리오 주교 등 유명한 3교부를 낳은 곳이다. 바실리오 주교가 그 시대의 은둔생활이 개별화되는 것을 막기 위해 이곳에 종합적인 수도원을 설치했다고 하는데 1년 365일에 해당하는 365개의 암굴교회가 있었다고 전해진다. 

그러다가 바실리오 수도회 전통을 이어오던 갑바도기아의 그리스 정교회 수도자와 신자들이 1923년의 터키-그리스 조약 이후 그리스로 이주하고, 현재는 30여 개의 교회만이 야외박물관으로 개장되어 관광객들에게 공개되고 있다. 

 지금도 갑바도기아엔 ‘깊은 우물’이란 이름의 지하도시인 데린구유(Derinkuyu), 계곡에 위치한 종합도시인 젤베(Zelve) 계곡과 동굴성당들이 모여있는 괴뢰메(Goreme) 지역에 그 당시의 유적들이 아직도 남아 있다. 

 

 

갑파도기아의 괴레메 종합수도원lThe Monastery of Gorme, Cappadocia

구석기 시대에 사암(沙岩)에서 분출된 용암이 사암 위로 뒤덮이며 하나의 괴암도시가 생겨난 것이다. 그러나 신기하게도 그 푸석한 사암을 파내면 주거할만한 공간이 생겨 그곳에 학교, 집, 관공서 등 필요한 건물이 다 들어선 것이다. 기독교 역사의 암흑시대에 가장 뜨겁게 살았던 신앙의 조상들의 숨결을 느끼면서 눈앞에 보이는 티끌만큼이라도 그때를 생각해 보려고 우리도 괴뢰메의 한 동굴교회에 들어가 예배를 드렸다. 

 우리 일행의 한 분인 아현감리교회 김지길 목사님의 설교가 우리를 더욱 감동하게 했다. "하느님의 자녀는 누구나 다 세상을 이겨냅니다. 세상을 이기는 승리의 길은 곧 우리의 믿음입니다"(요한1서 5:4) 는 말씀처럼, 우리가 사랑과 희생으로 주님의 발자취를 따를 때 세상의 승리자가 되며, 우리도 이곳에 살았던 그리스도인들처럼 신앙의 유산을 남길 수 있다는 말씀이었다.

동굴교회의 희미한 프레스코 벽화를 구경하고 나와서 다시 한 번 괴뢰메의 기묘한 봉우리들을 내려다보았다. 어떤 이는 요정의 굴뚝같다며 재미있어 했지만 내가 보기엔 고깔을 쓴 수도자들의 순례의 행렬, 갑바도기아의 슬픈 역사를 노래하는 듯이 보였다. 

 그들은 마치 수도사들이 갈색 혹은 회색 토우와 고깔을 쓰고 어딘지 모를 끝없는 순례의 길을 묵상하며 걸어가는 것만 같았다. 

현세의 고난과 슬픔을 영원한 평화와 기쁨과 소망으로 바꾸며 걸어가는 갈색의 순례자들을 바라보면서 ‘갑바도기아의 애가(哀歌)’를 내 마음의 하얀 쪽지에 한 수 적어 괴레메의 종합수도원 앞에 서 있는 버드나무 잎에 걸어놓고 왔다.


 

‘갑바도기아의 哀歌’

 

젤베의 잿빛 골짜기 사이로

갈색의 토우를 입은 수도사들이 

밤색 꼬깔을 쓰고 줄지어 산을 내려오네.

 

골짜기 굽이굽이 

강으로 바다로 흘러가는 돌 물결인 양

끝없는 비탈길을 사랑의 주님 만나기 위해 걸음 옮기네.

걷다가 둥글게 둘러서서 머리를 맞대 구수 회의도 하고,

서로 끌어안고 둥글게 둥글게 돌며 화해의 춤을 추네.

짙푸른 하늘을 우러러 그분의 뜻을 묻기도 하고,

뿌리 든든한 호두나무 앞에 앉아 전해주는 

생명의 비밀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네.

 

다시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어버이 같은 

괴레메의 서러운 손짓은 우리가 가야 할 안식처를 깨우쳐주네.

버드나무 잎이 무성한 그 곳 

내 영혼이 부를 노래와 기도가 있는 그 안식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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