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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용우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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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연-캐나다 태권도 대부 이태은 사부

▲‘이태은의 날’ 행사에서 함께 포즈를 취한 이태은 사부와 부인 신인순 여사

 

 이민생활 20여년 동안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인연을 맺어왔다. 개중엔 그저 스쳐 지나간 사람도 있었고 또 개중엔 깊은 정을 나누며 지금도 인연을 이어가는 분이 있다. 그중에 가장 소중한 분으로 남아있는 분이 있다. 바로 캐나다 태권도계의 대부 이태은 사부(師父)가 그분이다. (사부란 원래 스승을 높여 부르는 말이지만 오타와에선 이태은 선생의 오랜 호칭으로 굳어져 통용되고 있다.)    

 이 사부와 나는 15년 전 기사취재를 하면서 알게 됐다. 그 전에도 몇 차례 접촉은 했지만 전화로만 통화를 하다가 그해(2005년 6월) 마침 오타와에서 큰 행사가 열리게 돼 취재차 방문을 하게 됐다.  당시 온타리오 정부가 6월 3일을 ’이태은의 날(Tae Eun Lee Day)’로 선포하고 매년 기념행사를 하기 시작한 첫 행사였던 것이다.

 그때 참관한 행사현장은 한국의 태권도가 캐나다의 수도에서 이처럼 막강한 위력을 발휘하리라곤 생각도 못했었다. 그때만 해도 나는 이민 온지 얼마 안돼 모든게 신기하게 보일 때여서 더욱 그랬다. 알공퀸 칼리지 체육관에서 거행된 행사에는 시민 수천여 명이 참석해 열광의 도가니를 연출했다. 공식 기념일이 선포되는 순간 오색풍선이 체육관을 뒤덮고 참석자들은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환호하며 이 사부에게 깊은 존경의 뜻을 표했다.

 현지 여학생이 한국의 애국가를 한자도 틀리지 않게 암송하고, 아리랑 가락에 맞춰 질서정연하고 유연하게 기량을 선보이는 시범단의 모습에서 참 대단하다는 생각을 안 할 수 없었다. 특히 75세의 고령에 유방암까지 앓았던 할머니와 소아마비 장애인으로서 역경을 딛고 유단자가 된 청년이 고난도 시범을 보일 때는 가슴이 뭉클했다. 

 그후에도 나는 매년 이태은의 날 행사에 참석했고 어느땐 가족들과 함께 가기도 했는데, 우리가 갈 때마다 이 사부 내외는 지극정성을 다해 우리를 친가족처럼 보살펴주셨다. 우리의 인연은 그렇게 20여 년간 지속되고 있다.  

 오타와에서는 매년 5월 말이면 시내 곳곳에서 태권도복 차림의 시민들을 쉽게 본다. 도복에는 한글로 선명하게 ‘태권도, 이태은’이란 글자가 적혀있다. 오타와뿐 아니라 몬트리올, 노바스코샤, 핼리팩스 등지에서 온 학생과 가족들도 많다. 그런 모습을 보면 한국인의 자부심이 절로 우러난다.

 온주정부에 앞서 오타와 시정부는 97년부터 매년 5월31일을 ‘이태은의 날’로 제정, 기념해오고 있다. 캐나다의 주와 시정부가 개인의 공적을 기리기 위해 기념일을 선포한 것은 이태은 사부가 유일하다.

0…내년에 팔순을 맞는 이태은 사부는 전남대 상대와 대학원을 마치고 석사학위를 받은 후 ROTC 제1기로 임관했으며, 대한항공에서 근무하다 1976년 캐나다로 이민왔다. 이듬해 오타와로 이주한 이 사부의 고생담은 이루 말로 다 표현할 수가 없다. 맨주먹으로 오타와에 왔을 때 가족들은 소금과 간장을 반찬 삼아 끼니를 때우면서 피눈물을 삼켜야 했다.

 그는 이때 캐나다인들에게 한국의 태권도를 선보이면 관심을 끌 수도 있겠다는 생각으로 태권도 시연에 나섰다. 그러나 그때만 해도 태권도는 현지인들에게 거칠고 과격한 운동으로 비쳐졌고 사람들은 외면했다. 그는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보는 이도 없는 국회의사당 광장에서 하루종일  태권도를 하면서 격파시범을 보였다.

 처음엔 미친 짓거리로만 알던 사람들이 하나 둘 호기심을 보이기 시작했고 배우고 싶다는 사람이 늘어갔다. 이에 이 사부는 용기를 내어 본격적인 태권도장 개척에 나섰다. 입소문을 타기 시작하자 짧은 시간에 도장 수가 늘기 시작했다. 마침내 오타와를 비롯해 캐나다 동부지역 일대에 60여 개가 넘는 도장과 태권도 교실을 운영하게 됐다. 첫 도장을 오픈한지 40여년 만이다.   

0…캐나다 한인이민사에서 이태은 석자를 빼놓고는 이야기가 안된다. 43년간 태권도인으로 활동해온 그의 이력은 한인이민역사 그 자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캐나다태권도협회장을 역임하면서 태권도가 캐나다정부의 공식 지원종목으로 채택되도록 하는 등 태권도의 보급과 위상제고에 절대적으로 기여했다. 오타와 ‘스포츠 명예의 전당’에 이름을 올렸고, 캐나다 정부가 수여하는 ‘올해의 아시아인상’ ‘다이아몬드 주빌리 메달’ 등 수상경력은 셀 수도 없다.

 그는 특히 장애인들의 재활을 돕기 위해 무료로 태권도를 가르쳐왔으며 아동병원 입원환자를 지원하기 위한 모금운동을 펼치는 등 헌신적인 사회봉사로 주류사회의 신망을 얻어왔다. 교도소 재소자를 교화하는 등 청소년 선도에도 앞장섰다. 캐네디언들에게 자칫 파괴적이고 과격해 보일 수도 있는 태권도가 친근해 보이는 것은 바로 그러한 봉사정신이 깃들어 있기 때문이다.

 이 사부에게 태권도를 배운 문하생 중에는 연방총리로부터 장성·기업인·고급공무원 등 정·재계 유명인사들이 수두룩하며 연방경찰(RCMP) 특수요원이나 총리실 경호원들도 상당수가 그의 도장을 거쳐갔다. 이 때문에 연방정계 등에 상당한 인맥도 갖고 있다. 이 사부의 문하생들은 88년 서울올림픽, 92년 바르셀로나올림픽 등에서 잇달아 메달을 획득, 캐나다의 국위를 높이기도 했다.

0…이 사부의 오늘이 있기까지는 부인 신인순 여사(74)의 내조를 빼놓을 수가 없다. 신 여사가 남편의 문하생과 지인들에게 한식을 대접하기 위해 한겨울 눈 속에도 오타와에서 토론토 한국식품점까지 차를 몰아 장을 보아갔다는 얘기는 전설처럼 남아있다. 이 사부의 두터운 인맥은 그런데서 차곡차곡 쌓여왔다.

 이 사부의 성공비결은 선천적 부지런함과 진실성이 최대의 무기가 아닌가  한다. 그와 악수할 때면 이렇게 부드러운 손에서 무슨 힘이 나올까 하는 의심이 든다. 별로 크지도, 억세지도 않다. 태권도 9단이란 사실이 믿어지지 않는다. 동안(童顔)인 그는 웃으면서 말한다. "태권도라고 굳이 손발을 쓰지는 않는다. 내공(內功)을 통해 미리 상대방의 기를 제압한다. 상대방이 총을 들고 공격하려 할 때 그의 기를 빼버려 방아쇠를 당길 수 없도록 한다." 그는 가히 무예의 최고 경지에 오른 인물이다.

 그는 말 그대로 맨주먹으로 이방을 평정한 사람이다. 그러나 그는 흔한 무도인이 아니다. 그것이 단순한 무술이었다면 별 의미가 없을 것이다. 거기엔 눈물겨운 시련을 딛고 일어선 인간승리의 영혼이 깃들어 있기에 더욱 값지다. 인생의 모진 풍파를 겪은 사람이기에 남다르다.

0…나는 이민생활의 가장 큰 보람(성공)은 현지인들 사이에 잘 어울려 생활해나가는 것이라고 믿는다. 그런 의미에서 내가 현재까지 캐나다에서 만나본 한인 중 가장 모범적으로 성공한 케이스를 들라면 주저없이 오타와의 이태은 사부를 꼽는다.

 그런데…! 코로나 사태는 이 사부의 인생에 또다른 풍파를 겪게 만들었다. 그는 온갖 고생을 하며 키운 도장을 수제자에게 넘기고 은퇴를 준비하고 있다. 현 상태로는 도장을 유지하기가 어려워 이참에 무대에서 내려오려 한다는 것이다.

 최근 이 사부로부터 소식을 듣고 무척 가슴이 아팠다. 천하의 이태은이지만 흐르는 세월과 재난은 어쩔 수가 없나 보다. 하지만 내 가슴에 이태은 석자는 영원히 남아 있을 것이다. “이태은 사부님, 사랑합니다.”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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