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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WI 배경 영화 (XI)-‘아라비아의 로렌스’(Lawrence of Arabia)(2)

 

(지난 호에 이어)

 계곡에서 야영을 하는 동안 왕자의 막사에선 대령과 중위를 앉혀놓고 마지드(가밀 라티브)가 코란 강론을 한다. "코란은 많이 암송할수록 쉬워지고 많이 읽을수록 좋습니다. 이것이 보상받는 최상의 방법입니다."고 말하는데 아까 우물에서 만났던 알리 족장이 들어온다.

 

 앉아있던 로렌스가 고개를 들어 쳐다보고 서로 눈이 마주치는 순간 살기가 돈다. 이를 간파한 파이살 왕자가 조용히 한 손을 들어 진정시킨다.

 

 다시 마지드의 강론이 이어지는데 파이살이 "미래는 과거보다 나을 것이오."라고 부연(敷衍)하자 로렌스가 즉각 코란의 구절을 암송한다. "결국 신은 당신을 풍족케 해주고 만족시켜 주실 것입니다."라고 끝맺음을 해 파이살 왕자와 알리 족장의 비상한 관심을 끈다.

 

 그때까지 오랜 강론에 지루함을 느끼던 브라이튼 대령이 헛기침을 한 후 '옌보'로 후퇴하는 결정을 내려달라고 화제를 돌린다. 파이살 왕자가 "수에즈 운하는 영국에게나 중요하지 아랍에게는 그렇지 않다."고 말하자 브라이튼 대령은 "영국과 아랍의 관심은 동일하다."고 항변하는데 옆에 있던 알리 족장이 '새빨간 거짓말'이라는 투로 경멸한다.

 

 이에 대령이 "옌보로 후퇴하면 영국은 무기, 전략, 훈련 등 모든 것을 지원하겠다."고 재차 다짐하자 파이살과 알리는 그러면 대포를 달라고 요구한다. 사실 영국은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아랍인들에게 대포 등 최신 무기는 지원하지 않는다는 내부 방침 때문에 브라이튼 대령이 '대포보다 훈련이 더 중요하다'는 구차한 변명으로 설득하려는 것임을 간파했던 것이다.

 

 '영국이 작은 국토와 적은 인구로 세계를 지배할 수 있었던 것은 훈련이 잘 돼 있었기 때문'이라고 훈련을 재차 강조하자, 파이살은 '해군과 대포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강변하는데, 이 말에 로렌스가 동의하자 대령은 "자네는 군사 조언가가 아니다. 누구의 명령을 듣는거냐?"며 화를 낸다.

 

 이에 파이살이 그냥 의견을 들어보는 것이라고 무마한다. 양측의 이익을 얻기 위한 정치적 암투는 이렇게 치열하다. 옆에 있던 마지드가 "여기서는 파이살 왕자님을 따라야 한다."고 점잖게 일침을 놓는다. [註: 에미르 파이살(Emir Faisal, 1883~1933) 왕자는 메카의 대종주 후세인 빈 알리(1854~1931)의 셋째 아들로 1920년 시리아 아랍 왕국의 왕이었고, 1921년 8월23일부터 죽기까지 이라크 국왕으로서 수니파와 시아파 간의 통합을 장려하여 인종, 종교를 초월한 '범아랍 독립국가'를 창설하기 위해 노력했다. 1933년 9월8일 48세의 나이에 스위스 베른에서 건강진단을 받다가 심장마비로 사망하였는데 그의 개인 간호사는 죽기 직전 비소 중독의 흔적이 있었다고 증언했다. 이 역의 알렉 기네스는 실제 파이살 왕자와 너무도 닮아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는 후문이다.]

 

 로렌스가 말한다. "폐하 생각이 맞습니다. 사막은 '노가 필요없는 바다'입니다. 그 바다에선 베두인이 우위를 차지할 겁니다. 지리에 익숙하니까요. 옌보로 후퇴하면 아랍군은 영국군의 예하(猊下)부대로 전락합니다." 그러자 브라이튼 대령이 "자넨 배신자야!"하고 몰아붙인다. [註: 옌보(Yenbo)의 정식 명칭은 Yanbu' al Bahr (Spring by the Sea)로 사우디 아라비아의 서부에 있는 홍해의 주요항구이다. 석유화학 및 정유 산업 단지가 집결돼 있어 주로 외국 근로자들로 인구가 형성돼 있고, 수에즈 운하를 통해 서유럽으로 오일을 수송할 수 있는, 그 이름처럼 '바다의 샘'인 주요 거점이다.]

 

 영국이 아라비아에까지 욕심이 있음을 간파하고 있는 파이살 왕자가 "한창 젊을 때라 열정으로 가득해서 그러니 할 말은 하게 놔둡시다."라며 이를 수습한다. 그리고 후퇴에 관한 결정은 내일까지 하겠다며 모두 물러가게 한다.

 

 로렌스와 독대한 파이살 왕자는 그에게 "영국과 아라비아를 동시에 충성할 수 있느냐?"며 "사막을 사랑하는 것이 마치 하르툼의 고든 장군을 닮았다."고 말한다. [註: 대영제국의 찰스 조지 고든(Charles George Gordon, 1833~1885) 장군은 열렬한 복음주의 기독교 신자였으며, 1885년 1월26일 북아프리카 수단의 수도 하르툼(Khartoum)을 함락시켜 수단 총독이 되었지만 반란 토민을 토벌하던 중에 총독 관저에서 토민병이 던진 창에 찔려 죽어 효수(梟首) 당했다. 이 실화를 바탕으로 만든 영화가 1966년 찰턴 헤스턴, 로렌스 올리비에 주연의 '하르툼 공방전(Khartoum)'이다. 또 하르툼에 파병된 이른바 영국 고든구원군을 다룬 영화가 히스 레저 주연의 '네 개의 깃털(The Four Feathers·2002)'이다.]

 

 그리고 이어서 "9세기 전 '코르도바'의 위대함을 되찾기 위해 영국의 도움이 필요하긴 하지만 아무도 가져다 줄 수 없는 '기적'이 필요하다."고 말하자, 영국의 이익에 반하여 아랍을 위해 "지금이 다시 위대해질 때입니다."라고 말하는 로렌스의 비범한 식견에 커다란 감명을 받는 파이살 왕자. [註: 코르도바(Cordoba)는 711년 이슬람 세력에게 정복 당한 후 그리스도교 세력에 의한 레콩키스타(Reconquista)가 완료된 15세기 말까지 7세기 반 동안 인구 50만 명에 이베리아 반도의 수도 구실을 한 번영의 도시였다. 중세의 유려한 이슬람 문화유산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어 1984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스페인의 도시다.]

 

 그의 막사를 나온 로렌스는 사막을 걸으며 홀린 사람처럼 골똘히 생각에 잠긴다. 다음 날 동이 틀 때까지 생각에 잠긴 로렌스는 옆에 두 소년이 온 것도 모른 채 주먹을 불끈 쥐며 "아카바!"라고 소리친다. 해법을 찾은 것이다.

 

 그 곳은 물자를 하적할 수 있는 항구가 있는 곳이며 또한 영국 해군의 공격을 막을 수 있는 요새화된 곳으로 터키군 대포는 바다로 조준, 고정돼 있을 뿐 육지 쪽은 무방비 상태이므로 소규모 병력으로도 충분히 점령할 수 있다는 것이 로렌스의 판단이었다. [註: 아카바(Aqaba)는 홍해의 북동단, 아라비아 반도의 최서단에 위치한 전략적 산업 도시로 '홍해의 신부(新婦)'로 불리는 요르단의 유일한 항구이다. 1917년 오스만 터키가 점령하고 있던 이 곳을 T. E. 로렌스와 아우다 이부 타이가 주도한 '아랍 반란군'에 의해 탈환되었다. 지금은 와디 럼, 페트라와 더불어 요르단 3대 황금 관광지의 허브다.]

 

 로렌스는 파이살 왕자에게 50명의 정예 군인을 요청하는데 그 리더가 알리 족장이다. 물론 50명의 특공대가 모험을 감행한 것은 아카바를 점령함으로써 아랍에 돌아올 이익 때문이었다. 그러나 아랍인들조차 감히 시도해보지 못한 사막횡단을 이끈 것은 아라비아를 위하는 로렌스의 진심이었다.

 

 사막에 들어서기 전 오아시스에서 여장을 풀고 있는데 10대 고아소년인 다우드(존 디메치)와 파라지(미셀 레이)가 뒤따라와 로렌스의 하인이 되겠다고 한다. 그는 알리 족장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몸종으로 고용한다. 로렌스는 장군에게 스스럼없이 대하듯 신분의 차이가 문제될 것이 없는 자유인이었던 것이다. (다음 호에 계속)

 

▲ 로렌스와 베두인 안내인 타파스(지아 모혜딘)가 파이살 왕자를 만나러 사막을 횡단하고 있다.

 

▲ 허가 없이 마스투라 우물 물을 마셨다는 이유로 안내인을 멀리서 장총으로 쏴 죽이고 나타나는 하리스 족장 알리 엘 카리쉬(오마 샤리프). 왼쪽 로렌스 발 앞에 안내인에게 주었던 권총이 떨어져 있다.

 

▲ 로렌스가 안내자에게 선물로 주었던 권총을 챙기는 하리스 족장 알리 엘 카리쉬(오마 샤리프). 로렌스로 상징되는 서구 문화와 알리로 상징되는 아랍 문화의 첫 충돌 장면이다.

 

▲ 터키군의 무장 경비행기 2대가 나타나 파이살 왕자의 진영을 무차별 공격한다. 현대식 무기를 접해본 적이 없는 아랍군은 말과 낙타를 타고 칼로 무모하게 싸운다.

 

▲ 로렌스(피터 오툴, 왼쪽)에게 "영국과 아라비아를 동시에 충성할 수 있느냐?"며 "사막을 사랑하는 것이 마치 하르툼의 고든 장군을 닮았다."고 말하는 파이살 왕자(알렉 기네스).

 

▲ 사막에서 동이 틀 때까지 생각에 잠긴 로렌스는 옆에 두 소년이 온 것도 모른 채 주먹을 불끈 쥐며 "아카바!"라고 소리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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