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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 배경영화 (III) -'모정(慕情)'

 

(지난 호에 이어)

 달빛 밝은 밤에 배를 타고 다시 해변으로 돌아오는 중에 마크가 키스하자 "당신에게 키스는 키스일 뿐 그 이상의 의미가 없을 거에요"라고 말하는 수인…. 그런데 옷을 갈아입던 그녀가 "중국의 피와 유럽의 피가 지금 서로 싸우고 있어요. 그 이유는 '잠자는 호랑이' 때문"이라며 그에게 불현듯이 담배를 달라고 요청하는 그녀! 이때 담뱃불 붙이는 장면은 주체할 수 없는 미묘한 사랑의 감정과 갈등을 잘 표현한 잊을 수 없는 명장면 중 하나이다.

 

 수인을 숙소에 데려다 주고 내일 5시에 병원 뒤 언덕에 있는 나무 아래에서 만나기로 약속하고 키스하고 헤어지는 두 사람. [註: 영화에서 두 연인의 만남의 장소로 유명한 이 언덕은 홍콩섬에서 가장 높은 빅토리아 피크(Victoria Peak)로 알고 있으나 사실은 홍콩이 아닌 캘리포니아의 어느 시골에서 촬영되었다. 그래서 언덕으로 올라가는 연속 장면은 보여주지 않는다. 실제로 빅토리아 피크에서 바라보는 홍콩의 야경은 정말 보석같이 아름다워 연인들이라면 꼭 들러야 할 곳이다.]

 

 다음 날 약속장소인 언덕 위에서 만나는 두 연인. 마크의 어깨에 나비가 앉아있는 모습을 본 수인이 '행운의 상징'이라고 말한다. 의사가 그런 미신을 믿느냐고 하자 "중국에서는 아들을 낳으면 여자 옷을 입히고 여자 이름을 붙인다"며 "신이 질투해서 아들을 빼앗을까 봐 그런다"고 설명하는 수인. 풍년에도 논바닥에 주저앉아 머리를 흔들며 '흉년이다!'라고 울부짖는단다. 역시 신이 질투할까 봐 불행한 척 속이는 것이라고. "저도 그래요. 신을 속이고 싶어요. 제 행복을 보면 질투할 거예요." 풀밭에 드러누운 그녀와 키스하며 둘은 포옹한다.

 

 그렇게 사랑이 깊어가던 중, 수인은 중국 충칭(重慶)에서 부모님이 돌아가신 후 자기 가족을 돌보고 있는 삼촌의 편지를 받고 문제가 생긴 여동생 수첸을 만나러 간다. 이를 말리는 마크! 그러나 정체성을 찾기 위해 중국이 자기가 돌아갈 곳인지를 알아보기 위해서, 또 둘 사이에 잠깐 휴식기를 두는 게 좋겠다고 말하는 수인.

 

 왜냐하면 자기는 자존심과 품위를 지켜야 하는 유라시언이고 당신은 기혼자, 난 미망인, 당신은 미국인, 난 중국인이며 당신은 기자니까 관망할 뿐이지만 난 의사로서 내 의무에 깊이 빠져드는 사람이므로 "사랑이란 이름으로 모든 게 정당화 되지는 않는다"며 "자기에겐 그 이상의 뭔가가 필요하다"고 당차게 말하는 수인.

 

 드디어 충칭 행 비행기에 몸을 싣는 수인. 기내에서 뜻밖에 친구 수전을 만난다. 그녀는 사귀는 영국인과 꾸이린(桂林)으로 가는데 남의 눈을 의식해 자리를 따로 앉아간단다. 수인이 흘깃 다른 자리에 앉아있는 남자를 보니 바로 자기 병원의 이사 중 한 명이었다. 수전은 '네 월급 올려주라고 부탁할께'라고 호기를 부리며 선물 받은 다이어가 박힌 시계를 자랑스럽게 보여준다.

 

 충칭의 삼촌집에 도착한 수인은 삼촌(필립 안) 및 친지들과 일일이 인사하고 차를 마시며 동생 수첸에 대해 묻는다. 삼촌은 "수첸은 가문의 수치야. 외국인의 집으로 도망치다니!"라며 그 이유는 공산당이 밀려오면 총살 당할까 봐 두려워서 외국인의 집은 안전하리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란다. "외국인에게 빌붙다니 치욕!"이라고 숙모(뷸라 궈)가 거든다. [註: 필립 안(安必立, 1905~1978)은 도산 안창호(島山 安昌浩, 1878~1938) 선생과 헬렌 리(이혜련, 1884~1969) 여사의 2남1녀 중 장남으로 한국인 부모에 의해 미국에서 태어난 첫 케이스였으며, 또 아시아계로서 최초로 헐리우드 배우가 된 분으로 헐리우드 명예의 거리에 이름을 남겼다.]

 

 삼촌의 배려로 밤에 길잡이와 함께 수첸(도나 마텔)을 만나러 가는 수인. "언니처럼 자유롭게 살면서 중국을 잊고 싶다"며 "하지만 삼촌이 여권을 내주지 않아 가만히 앉아서 총살 당한다는 두려움 때문에 도망쳤다"고 말하는 수첸. 1949년 당시 지식인들의 정치·사회적 불안 속 갈등을 수첸을 통해 간접적으로 설명한 부분이라 보겠다.

 

 여권을 내주기로 약속하고 삼촌집으로 돌아온 수인은 하인이 불러서 거실로 가보니 뜻밖에 마크가 와있지 않은가! 마크는 수인을 잃을 것 같은 마음에 중국까지 달려온 것이다. 잠깐 바깥으로 나온 둘. 마크가 싱가포르에 별거 중인 아내와의 이혼을 결심하고 수인과 결혼하겠다는 단호한 의사를 밝히고 그녀의 수락 여부를 묻자 "당신이 원한다면 전 뭐든 하겠다."고 대답하는 수인. 단, 집안의 어르신인 삼촌의 허락을 받아야 한다는 조건을 내건다.

 

 삼촌은 그녀가 중국시민이므로 여권이 만료되면 홍콩에서 진료할 수 없다고 지적한다. 이에 마크가 그럼 중국에 살겠다고 하자 삼촌은 당신은 적응하기 힘들 거라고 말한다. 수인이 그럼 미국에 가서 살겠다고 하자 "그렇게 도망을 치면 뿌리가 뽑혀 시들어 죽는다."며 수인의 아버지도 외국인 부인 때문에 집을 버렸지만 마음은 여기다 묻었다며 반대 입장을 견지하는 삼촌.

 

 이에 "마크 없이 사느니 차라리 모든 희망을 버리겠다."는 수인의 결단에 "그렇다면 뜻대로 해라. 변화의 물결을 막을 수는 없지."라며 "네 흔적을 남기지 말라!"고 당부하는 삼촌.

 

 참석한 친지들이 모두 결혼을 축하하며 수인에게 옥(玉)을 건네주는데, 이는 옥을 몸에 오래 지니면 그 사람의 분신이 된다고 여기는 중국인의 전통에 기인한 관례로, 옥을 준다는 것은 당신들의 분신을 떼어준 것이란다. 하지만 행복을 느끼기에 앞서 수인은 중국 커뮤니티에서 왕따를 당한 것으로 자기가 살 곳이 아님이 분명해졌다….

 

 홍콩에 착륙하는 비행기 창문으로 눈부신 햇빛이 비치자 수인이 또 '좋은 징조'라고 말하자 마크가 "징조에 신경 쓰지 말아요. 운명은 우리편이요."라고 말한다. [註: 영화 속 홍콩 공항은 카이탁(啓德) 공항이다. 1998년에 란타우섬에 있는 지금의 첵랍콕 공항으로 이전되었다.]

 

 공항에서 아예 싱가포르 행 비행기를 예약하여 당장 떠나겠다며 손톱을 물어뜯는 마크. 문제가 해결되면 그 버릇도 없어질 거라고 말하는 수인.

 

소지품을 잘 챙겨서 내리라는 기내 방송이 나오자 "당신도 잘 챙기라는데…"라며 그녀의 손을 붙잡고 내리는 마크.

 

 장면은 노라 헝의 집. 친구들로부터 수인과 마크와의 관계에 대해 서로 설왕설래(說往說來) 하던 중 병원에서 온 전화를 받는 수인. 마크가 보낸 전보의 내용을 알린다. "이제 손톱을 안 물어뜯소." …기쁨에 겨워 마냥 행복해 하는 수인!

 

 공항에 마중나간 수인. 그러나 마크의 표정이 어둡다. 전보를 칠 때만 해도 이혼에 동의했던 부인이 마음이 바뀌어 놓아주려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당신께 드리는 사랑은 조금도 변하지 않는다"며 "달라질 건 없다."고 그를 위로하는 수인….(다음 호에 계속)

 

▲ 마크가 키스하자 "당신에게 키스는 키스일 뿐 그 이상의 의미가 없을 거에요"라고 말하는 수인….

 

▲ 해변에서 서로 담뱃불 붙이는 장면은 주체할 수 없는 사랑의 감정과 갈등을 잘 표현한 잊을 수 없는 명장면 중 하나이다.

 

▲ 영화 속 약속장소인 '모정의 언덕'에서 바라본 홍콩항과 병원(궁정식 돔 건물) 등 전망. 사진 오른쪽 계단에 언덕으로 올라오는 수인의 모습이 보인다.

 

▲ "제 행복을 보면 신도 질투할 거예요"라며 수인과 마크는 모정의 언덕에서 둘의 사랑을 키워나간다.

 

▲ 홍콩 카이탁 공항에서 중국 충칭(重慶)으로 가는 비행기를 타러가는 수인(가운데). 항공기 플래그가 중화민국 국기이다.

 

▲ 기내에서 뜻밖에 만난 친구 수전(조르자 커트라이트)은 수인의 병원 이사인 영국인에게서 선물 받은 고급시계를 자랑스럽게 보여준다.

 

▲ 충칭(重慶)에 도착한 수인은 삼촌(필립 안·오른쪽 두번째)과 숙모(뷸라 궈·맨오른쪽)를 비롯한 친지들과 일일이 인사한다. 필립 안(安必立, 1905~1978)은 도산 안창호(島山 安昌浩, 1878~1938) 선생의 장남이며 최초의 동양계 미국인 배우로 헐리우드 명예의 거리에 이름을 남겼다.

 

▲ "마크 없이 사느니 차라리 모든 희망을 버리겠다."는 수인의 결단에 삼촌(필립 안)은 결국 결혼을 승락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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