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
ON

서부 영화 시리즈(XI)-'석양의 무법자'(The Good, the Bad and the Ugly)(하)

 
'무법자 3부작' 중 가장 성공한 마지막 편


 

 

 


(지난 호에 이어)
 자기가 판 '무명의 묘' 속에서 금자루들을 발견하고 기뻐 날뛰는 투코. 모두 여덟 자루. 하지만 기쁨도 잠시뿐, 고개를 들어보니 교수형 올가미가 걸려있다. 블론디는 투코를 불안정하게 박혀있는 묘비목 위로 올라가게 하곤 그 올가미를 그의 목에 걸고 손을 뒤로 묶은 뒤, 투코의 몫으로 공평하게 네 자루를 남겨놓고 떠난다. 


 블론디의 모습이 지평선으로 사라질 즈음 총으로 로프를 쏘자 떨어지면서 투코의 얼굴이 금자루에 처박힌다. 블론디는 웃으면서 떠나가고 투코는 묶인 채 그의 뒤에 대고 온갖 욕설과 저주를 퍼부으면서 영화는 막을 내린다. 

 

 


 세르지오 레오네 감독은 존 웨인 등에 의해 영웅적 카우보이로 묘사되는 종전 서부극의 이데올로기 및 낭만주의를 비판, 파괴하는 도덕적으로 복잡한 반영웅주의를 풍자한다. 비록 세 명의 건맨은 직접 전쟁에 참전하지는 않지만 점점 그 소용돌이 속에 얽혀 들어간다. 


 한편으로는 자본주의와 인간 탐욕 등 부정적인 요소에 초점을 맞춰 세 명의 건맨의 특성으로 살려냈을 뿐만 아니라 또 한편으로 미국 남북전쟁 중 전란에 시달리는 무고한 시민들, 선한 불한당, 특히 군인들의 관점에서 반전(反戰)의 주제를 부각시켰다는 점에서 이 영화는 가장 훌륭한 서부영화로 평가된다.

 

 

 


 레오네 감독은 폭력과 탐욕을 묘사하는데 그의 특허인 롱샷과 극단적인 클로스업 기법을 사용하여 눈과 얼굴, 그리고 허리에 찬 총자루로 천천히 움직이는 손 등을 통해 긴장과 서스펜스를 유발하고 흥분감을 불러 일으킨다. 


 아울러 대화를 절제하고 캐릭터의 행동과 표정에 초점을 맞춘다. 게다가 아름다운 풍치와 함께 결투 장면 전 또는 중간에 시의적절한 음악과 어우러져 긴장과 압박감을 드높인다. 특히 3인 결투 장면에서 그 효과는 배가된다. 

 

 

 


 다만 블론디(혹은 '이름 없는 자')는 교수형 밧줄을 끊을 때 사람을 죽이기보다 그들의 모자를 날려버리는 등 트릭 슈팅을 하는 데 반해 센텐자와 투코는 그들의 개인적인 이득을 위해 살인도 불사하는 반영웅적 인물로 나온다.


 레오네 감독은 부인과 함께 캘리포니아로 날아가 클린트 이스트우드를 설득하여 (1, 2편에서는 고정 개런티만 받았지만) 25만 달러의 개런티 외에 북미 지역 수익의 10%를 주는 조건으로 어렵사리 출연 동의를 받아냈다고 한다. 


 한편 센텐자 역으로 레오네 감독은 또다시 찰스 브론슨을 주목했지만 이미 '특공대작전(The Dirty Dozen•1967)' 촬영에 들어갔기 때문에 부득불 2편의 리 반 클리프를 재출연시키기로 결정하였다고 한다. 

 

 

 


세 주역 중 투코 역으로 지안 마리아 볼론테를 고려했으나 레오네 감독은 '천성적인 코믹한 재능'이 있는 배우를 찾던 중 '서부 개척사(1962)'에 나왔던 일라이 월랙을 지목하고 바로 결정했다고 한다. 


 제작비는 점점 커져 120만 달러, 흥행수입도 2,500만여 달러로 엄청 늘어났다.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3편을 마지막으로 레오네 감독과 결별한다. 그 후 '옛날 옛적 서부에서(Once Upon a Time in the West•1968)'의 하모니카 맨 역에 찰스 브론슨이,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1984)'에 로버트 드 니로가 캐스팅되었다. 

 

 

 

 


 레오네 감독은 "이스트우드는 폭탄이 터지고 총알이 우박 내리듯 하는데도 몽유병 환자처럼 연기한다. 항상 대리석처럼 똑같이 행동한다. 드 니로는 진짜 배우이지만 클린트는 그냥 스타이다. 드 니로는 번민을 하지만 클린트는 하품만 한다."고 이스트우드를 혹평했다. 


 개인적인 얘기이지만 필자가 미국 LA에 주재원으로 있을 때 그레그 워너라는 마케팅 담당 부사장이 있었는데, 1988년 어느 봄날 그가 풀이 죽어 내 사무실에 들렀다. 자동이체되는 자기 월급을 봉쇄하고 다른 구좌로 보내달라는 것이었다. 그 이유는 이혼 소송 중이었기 때문. 


 그의 부인은 나도 잘 아는 사람으로 아동소아과 의사인 인텔리였다. 그렇게 다정다감하던 부인이 바람이 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린 애들을 부인이 부양하기 때문에 그레그는 자기 소유의 집에서 쫓겨나는 신세였고 월급은 그녀의 차지가 되었으며 심지어 요트 등 소유하고 있던 모든 것을 내놓아야 했다. 


 그러던 중 그레그가 두 애들을 만나는 날이라 집으로 갔으나 집 열쇠가 바뀌어 들어가지 못하고 밖에서 서성거리고 있는데, 마침 부인이 아랑곳 하지 않고 차를 몰고 외출하는 중이었다. 부화가 났지만 한편 호기심이 발동하여 그녀를 미행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PCH(Pacific Coast Highway, 제임스 딘이 교통사고로 죽은 유명한 태평양 연안 고속도로) 1번을 따라 북상하는데 끝도 없이 올라가다가 몬터레이 못미쳐 카멜 시티로 빠지더라는 것이다. LA쪽에서 약 600㎞를 북상한 셈이다. 


 카멜 시티는 "예술가와 시인이 모여 사는 도시"로 잘 알려진 곳이며, 1986~1988년에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시장을 역임한 곳이다. 드디어 부인의 차가 어느 집 앞에 머물러 인터폰으로 연락하는 듯 하더니 대문이 열리고 들어가는 바람에 더 이상의 추적이 불가능했다. 


 그런데 그 집이 바로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저택이었다. 그녀는 영화 '그대 품에 다시 한번'처럼 왕복 1,200㎞를 마다 않고 연인을 찾아갔던 것이다. 


 아무튼 그레그는 그 후 K자동차의 외국인으로는 처음으로 이사가 된 유능한 미국인이었지만, 2002년에 일본 도쿄에서 개최한 어느 세미나에서 한 번 만나본 것이 나랑 마지막이 되었다. 얼마 후 식사 중 기도(氣道)가 막혀 사망했다고 들었다. 


 2014년에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제작•감독한 '아메리컨 스나이퍼'가 아카데미상 후보에 오르고, 그 후 '설리: 허드슨강의 기적(2016)' '15시 17분 파리에서(2018)' 등을 감독하며 90을 바라보는 노익장을 과시했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개인적으로는 별로 좋아하지 않는 배우다. 


 아무튼 이스트우드가 '무법자 3부작'에서 입었던 판초는 자기 친구에게 줬다는데, 그 후 카멜 시티의 어느 멕시칸 레스토랑에 걸려있었다고 한다. 


 리 반 클리프(Lee Van Cleef, Jr., 1925~1989)는 '하이 눈'에서, 일라이 월랙(Eli Wallach, 1915~2014)은 '황야의 7인(1960)'에서 이미 언급했기에 여기서는 생략한다. (끝)

 

※ 알림: 갤러리아 쏜힐점 문화교실 '손영호의 TMMT'에서 2월22일(토) 오후 5시 '카핑 베토벤'이 상영되오니 많은 참석 바랍니다.

 
 

 

 

 

 

 

 

 

 

<저작권자(c) Budongsancanada.com 부동산캐나다 한인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