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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부 영화 시리즈(VI)-‘O.K. 목장의 결투’ (하) (Gunfight at the O.K. Corral)

 


서부극의 고전, 사실(史實)보다 과장된 스토리


 

 


(지난 호에 이어)
 그 다음날 이른 아침, 클랜튼 형제와 그의 부하 등 7명과 어프 3형제 및 병상에 있던 할러데이가 합류하여 7대4의 결투를 벌인다. 쟈니 링고는 할러데이가 직접 처치하고 드디어 클랜튼 패거리 7명은 모두 사살되는데, 그 중엔 항복할 기회를 주었으나 거절한 어린 빌리 클랜튼도 포함돼 있었다. 버질과 모건 어프, 닥 할러데이는 부상을 입는다. [註: 존 스터지스 감독이 그 후 보다 정확한 역사적 자료에 근거하여 1967년 리메이크한 'Hour of the Gun'에서는 아이크 클랜튼은 살아남는다. 이때 와이어트 어프 역은 제임스 가너, 닥 할러데이 역은 제이슨 로바즈, 아이크 클랜튼 역은 로버트 라이언이 맡았다.]


 알함브라 살롱. 닥 할러데이와 와이어트 어프는 마지막 이별주를 나누고는 할러데이는 도박장으로, 와이어트는 로라를 만나러 캘리포니아로 떠나는데 프랭키 레인의 주제곡이 흐르는 가운데 툼스톤 부트힐 묘지를 지나면서 대단원의 막을 내린다. [註: 여기서는 7명이 모두 여기에 묻힌 것을 암시하는데, 사료에는 맥로리 형제와 빌리 클랜튼 등 3명이 부트힐 묘지에 묻혔다고 한다.]

 

 

 

 


 와이어트 어프와 닥 할러데이를 소재로 한 영화가 하도 많아 이것 저것 보다 보면 헷갈리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예컨대 이 영화나 '황야의 결투' 등은 'OK 목장의 결투'에 한정해 30여 초의 총격전을 다룬 영화이지만, '툼스톤'이나 '와이어트 어프' 등은 'OK 목장의 결투' 이후에 일어난 '어프의 피의 복수전'까지 다룸으로써 그들의 전기 같은 성격을 띄고 있다. 

 

 

 

 


 또한 역사적 사건을 다루다 보니 그 해석도 다양하여, 이를테면 이 영화에서는 오후가 아닌 이른 아침에 일어난 결투에서 악당 모두가 사살되는 것으로 나오지만 다른 영화에서는 우두머리 아이크 클랜튼, 쟈니 링고 등은 살아남아 제2의 복수전에서 죽는 것으로 나온다. 


배역도 영화마다 호화캐스팅이라 주는 느낌도 각각일 뿐만 아니라 한글 자막도 어프의 형제들 중 누가 형이고 동생인지 제대로 공부를 하지 않아(?) 더 헷갈리게 하는 경우도 많다.

 

 

 

 


 나의 관점에서는 미국 민요 '마이 달링 클레멘타인'이 흐르며 자기 사랑을 차마 고백 못하는 와이어트(헨리 폰다)의 마음을 대변하는 듯 감상적이고 낭만적인 서부극 '황야의 결투'와, 사실(史實)에 비교적 충실하면서 닥 할러데이(발 킬머)와 와이어트 어프(커트 러셀)의 사나이 우정과 그 일생을 조명한 조지 P. 코스마토스 감독의 '툼스톤(1993)'을 꼽고 싶다.


 실제 닥 할러데이는 조지아주 명문 태생으로 폐병 때문에 치과를 문 닫고 기후 좋은 서부로 방랑길에 올랐다. 셰익스피어의 '햄릿'을 줄줄 외울 정도로 인텔리였던 할러데이는 총과 칼에 능했는데 1887년 36세로 숨지기까지 17번 체포되었고, 4번 교수형 당할 뻔 했고, 매복 함정에서 5번이나 살아남았다고 한다. 그가 남긴 유언은 "이건 재미있잖아!(This is funny!)"로 재미있다.


 와이어트 어프는 1929년 81세로 LA에서 사망했는데 운구를 운반한 사람 중에는 그의 친구이자 서부영화 배우였던 윌리엄 하트와 톰 믹스가 있었는데 특히 톰 믹스는 많이 울었다고 하며 미망인 조세핀은 참석하지 않았다고 전해진다. 


 뉴욕 맨해튼 출신으로 어려서부터 운동을 좋아한 버트 랭카스터(Burt Lancaster, 1913~1994)는 19세에 닉 크라바트(Nick Cravat, 1912~1994)를 만나 플로리다의 Kay Brothers 서커스단에서 곡예사로 활동하다 1939년 손목에 부상을 당해 그만 두고 제2차 세계대전 때인 1942~1945년간 미육군 위문사단 소속으로 공연을 하러 다녔다. 


 이후 각종 직업을 전전하다 1946년 제작자 마크 헬링거의 눈에 띄어 로버트 시오드맥 감독의 느와르 필름 '살인자(The Killers)'에 에바 가드너(Ava Gardner, 1922~1990)와 공연하면서 선이 굵은 남성적 역할로 호평을 받아 '불꽃과 화살(The Flame and the Arrow•1950)'과 '진홍의 도적(The Crimson Pirate•1952)'에 서커스 친구인 닉 크라바트와 함께 출연하여 곡예사의 기예로 인상적인 연기를 선보였다.


 랭카스터를 가장 유명하게 만든 영화가 1953년 '지상에서 영혼으로(From Here to Eternity)'였다. 상관의 부인 케런 홈즈 역으로 나온 데보라 커(Deborah Kerr, 1921~2007)와의 불륜을 다룬 하와이 해변에서의 농익은 러브씬은 지금도 로맨틱 영화의 아이콘으로 꼽힌다. 


그 후 토니 커티스, 지나 롤로브리지다 등과 공연한 공중곡예 영화 '트래피즈(Trapeze•1956)'를 비롯하여 '성공의 달콤한 향기(Sweet Smell of Success•1957)' '조용하고 깊게 출항하라(Run Silent, Run Deep•1958)' 등에 출연하여 성공을 이어간다. 


 1960년에 리처드 브룩스 감독의 '엘머 갠트리(Elmer Gantry)'에서 드디어 아카데미 및 골든글로브 남우주연상을 수상하고, 존 프랑켄하이머 감독의 '알카트라즈의 조류가(The Birdman of Alcatraz•1962)' 및 '대열차작전(The Train•1965)', 리 마빈과 공연한 리처드 브룩스 감독의 '4인의 프로페셔널(1966)' 등을 통해 여러 장르를 넘나드는 폭 넓은 연기를 선보여 1980년 루이 말(Louis Malle) 감독의 '아틀랜틱 시티'로 BAFTA 남우주연상을 수상한다. 그의 마지막 출연 영화는 케빈 코스너와 공연한 1989년 '꿈의 구장(Field of Dreams)'이었다. 


 커크 더글라스(Kirk Douglas)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1939)' '사랑아 나는 통곡한다(1949)' 등으로 유명한 올리비아 드 하빌랜드와 함께 103세로 헐리우드 황금기 시대(1929~1959)를 거쳐 생존하는 배우이다. 그는 두 번 결혼했는데 유명 배우 마이클 더글라스는 첫 부인 다이애나 딜 사이에서 난 두 아들 중 장남으로 지금 75세이다. 


 커크 더글라스가 출연한 영화는 셀 수 없이 많다. 그 중에서도 우리에게 잘 알려진 작품을 몇 개 꼽으면 '율리시즈(1954)' '해저 2만리(1954)'


'열정의 랩소디(1956)' '영광의 길(1957)' '바이킹(1958)' 등이며, 이 중 빈센트 반 고흐 역의 '열정의 랩소디(Lust for Life)'에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후보에 올랐다. 특히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대서사극인 '스파르타쿠스(1960)'로 그의 트레이드 마크인 깊게 패인 턱과 함께 우리에게 깊이 각인된 배우이다. (끝)

 

 

※ 알림: 갤러리아 쏜힐점 문화교실 '손영호의 여행•영화•음악 이야기'가 10월26일(토) 오후 5시에 있사오니 많은 참석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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