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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 음악가 시리즈(X)-'아마데우스(Amadeus)'(3)

 


짧지만 굵게 살다간 노력하는 천재 음악가

 

 

(지난 호에 이어)
 마지막으로 궁정악장 살리에리의 견해를 묻는 황제. 그는 모차르트를 비엔나에 붙들어 두는 것이 좋을 것 같다며 그 이유는 (잘츠부르크로 돌아가라는 명령을 거부하는 결과가 되므로) 대주교를 화나게 할 것이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살리에리의 정치적인 답변에 만족해 하는 황제.


 드디어 황제의 명을 받고 모차르트가 궁으로 들어온다. 살리에리는 밤을 새워 그를 위한 환영행진곡을 작곡했지만, 모차르트는 이 곡을 밖에서 이미 듣고 암기했다며 황제 앞에서 바로 편곡까지 하면서 연주한다. 마치 살리에리의 작품을 무시하며 자신의 천재성을 뽐내듯이…. 


 사실 이 곡은 모차르트의 '피가로의 결혼(Le Nozze di Figaro)'에 나오는 아리아 '너는 더 이상 가지 못해(Non piu andrai)'라는 곡인데 그의 천재성을 돋보이게 하기 위해 삽입된 장면이다.

 

 

 

 


 살리에리는 큰 충격을 받고 십자가에 대고 호소한다. "저의 간절한 소망은 신을 찬미하는 것이었습니다… 제게 욕망을 갖게 하셨으면 재능도 주셨어야죠…."


 하루하루 하느님께 감사드리고 하느님을 찬양하며 불굴의 의지로 자신을 채찍질 하는 수도자 같은 삶을 살고 있는 살리에리에게, 신들린 연주력과 놀라운 편곡 능력 그리고 시대의 감성을 뛰어넘는 작곡 실력까지 갖춘 모차르트란 존재는 경이롭고도 한없이 부러운 존재로 다가온다. 

 

 

 

 


 살리에리에게 그의 뮤즈인 카테리나 카발리에리(크리스틴 에버솔)가 성악 지도를 받기 위해 찾아온다. 발성연습을 하는데 하이 옥타브에서 갑자기 장면은 바로 모차르트가 황제의 커미션을 받고 첫 번째로 독일어로 작곡, 초연한 오페라 "후궁으로부터의 탈출(Die Entfuhrung aus dem Serail, K.384)" 중 '고문의 아리아(Martern Aller Arten)'로 연결된다. [註: 카테리나 카발리에리(Caterina Cavalieri, 1755~1801)는 비엔나 출신 소프라노 가수로 안토니오 살리에리에게서 성악을 공부하고 그의 오페라 "굴뚝청소부(Der Rauchfangkehrer•1781)"에서 프로일레 나네테 역을 맡기도 했다. 특히 1782년 7월16일, 비엔나 부르크극장에서 초연한 모차르트의 오페라 "후궁으로부터의 탈출(또는 유괴)"에서 주인공 콘스탄체 역을 맡고, 그 후 "돈 조반니"에서도 도나 엘비라 역을 맡는 등 둘의 관계가 상당히 깊었음을 시사한다. 요제프 2세 황제가 가장 좋아했고 살리에리의 뮤즈였던 그녀는 평생 독신으로 살다 45세로 사망했다.] 


 3막 27장으로 구성된 이 작품은 최초의 완전한 징슈필(Singspiel, 구어체 대사가 포함되고 대개 희극적 성격을 띤 18세기의 독일어 오페라)이며 독일 오페라의 선구이다. 
 줄거리는 스페인의 귀족 벨몬테의 약혼녀 콘스탄체와 하녀 블론테, 하인 페드리요 등 3명이 배를 타고 여행하던 중 해적들에게 납치돼 터키의 태수인 제림의 궁에 팔려간다. 그녀를 구출하려는 벨몬테를 중심으로 태수와 궁전 경비대장 오스민, 그리고 납치된 3명을 둘러싸고 희극이 벌어지는데 우여곡절 끝에 뜻하지 않게 해피엔딩으로 끝난다. 


 제2막에 나오는 '고문의 아리아'는 협박하는 제림에게 콘스탄체가 '어떤 형벌이 가해진다 하더라도 내 마음은 변하지 않는다'며 단호히 유혹을 뿌리치는 내용의 유명한 아리아다.


 이 '고문의 아리아'는 소프라노 가수에게 고난도의 콜로라투라 기교를 약 10분간이나 계속해야 하는 정말 '고문'에 가까운 곡이어서 붙여진 이름이기도 하다. 영화 속에서의 노래는 아일랜드 출신 콜로라투라 소프라노 가수인 수전 머피가 불렀다. 

 

 

 

 

 

 

 

 


 영화에서는 마지막에 태수 제림의 선처로 4명이 배를 타고 조국으로 돌아가게 되자 제림의 덕을 칭송하는 합창 '파샤 제림 만세(Bassa Selim lebe lange!)'를 부르는 가운데 막이 내리고 모차르트의 지휘는 끝난다.

 

 

 

 


 살리에리는 그의 천재성에 감탄하지만 음악에 덜떨어진 황제는 "음표가 너무 많다(too many notes)"는 헛소리를 한다. 역시 천재라도 그걸 알아주는 사람이 없으면 소용없는 법이다. 

 

 

 

 


 이때 하숙집 주인 베버 부인(바바라 브라인)이 '볼프강의 약혼녀'라고 소리지르며 딸 콘스탄체(공연 오페라의 주인공과 이름이 같다)와 함께 황제가 있는 무대 위로 올라온다. [註: 체칠리아 베버(Caecilia Weber, 1727~1793) 부인은 당시 '신의 눈동자'라는 이름의 하숙집을 운영했는데, 모차르트가 1781년 비엔나에 정착하면서 이 집에서 하숙했다. 사실 모차르트가 베버 부인을 처음 만난 것은 1777년 일자리를 찾기 위해 만하임에 갔을 때였는데, 그 때 둘째 딸 알로이지아(1760~1839)를 짝사랑했지만 퇴짜를 맞았던 일이 있었다. 

그녀는 아버지가 1779년 사망하자 생계가 막연한 베버 가족에게 연봉 700플로린을 지원하는 조건으로 그 해 10월31일 궁정극장 배우이며 화가인 요제프 랑게(Joseph Lange, 1751~1831)와 결혼했다. 랑게가 1782년에 그린 동서지간인 모차르트와 처제인 콘스탄체의 초상화는 가장 사실적으로 묘사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체칠리아 베버 부인은 딸 넷을 두었는데 모두 수준 높은 성악 교육을 받아 셋째 딸인 콘스탄체 베버(Maria Constanze Weber, 1762~1842)를 제외하고는 모두 전문직 가수로 활동했다. 체칠리아의 남편 프란츠 프리돌린 베버(1733~1779)는 더블베이스 연주가였는데, 오페라 '마탄의 사수(Der Freischutz)'로 유명한 작곡가 카를 마리아 폰 베버(1786~1826)는 그의 조카이다.]


 황제가 나이를 묻고 결혼하라고 말하자 모차르트 옆에 서 있던 카발리에리가 '약혼녀'라는 말에 화가 나서 황제로부터 '무대의 보배'라는 찬사와 함께 받은 꽃다발로 그를 냅다 후려치고 퇴장한다. 그리고는 "보잘 것 없는 그녀에게 끌린 것을 보면 밤 잠자리 기술이 상당히 좋은 모양"이라고 독설을 날린다. 카발리에리가 모차르트에게 그 동안 몸과 마음을 바쳤음을 강하게 암시하는 장면이다. 

 

 

 

 


 이에 살리에리는 큰 충격을 받고 자신과 모차르트 둘 다를 위해서 그가 잘츠부르크로 제발 돌아가게 해달라며 하느님께 간절히 기도하는 한편, 모차르트는 고향으로 돌아오라는 아버지 레오폴드의 뜻을 거역하고 비엔나에 정착하고는 아버지의 사전 동의 없이 콘스탄체와 결혼한다. [註: 콘스탄체 20살, 모차르트 26살 때인 1782년 8월4일 비엔나의 슈테판 대성당(Stephansdom)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그러나 불과 9년 후 여기서 장례식을 치르게 될 줄이야!]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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