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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 음악가 시리즈(I)-'파리넬리' (Farinelli: Il Castrato)(하)

 

 
전설적인 실존 인물 
카스트라토의 생애를 그린 작품 

 

 

 

 

 장면은 다시 무대. 파리넬리가 이어서 헨델의 '리날도' 두 번째 곡 '바람아 폭풍아 날개를 빌려주렴(Venti, Turbini, Prestate)'을 부르는데 무대 천장에서 헨델이 편지를 떨어뜨린다. 

 

 

 


 "마침내 파리넬리, 오랜 세월의 우리의 대립이 오늘밤 끝나려 한다."로 시작하는 편지의 내용은 화해라기보다는 카스트라토의 목소리로는 자신에게 감동을 줄 수 없다고 비웃으며 공연 중인 파리넬리에게 리카르도로부터 듣게 된 거세의 비밀을 폭로하는 것이었다. 


 공연이 끝나고 무대 뒤에 나타난 헨델이 파리넬리에게 말한다. "자네를 거세한 형에게 자넨 재능을 바쳤어. 형제의 결속을 지키기 위해 내 얼굴에 침까지 뱉었지. 그리곤 나를 자네같은 사람으로 만들었고 나의 상상력을 거세했어. 이제 난 다시는 오페라를 쓰지 않을 걸세. 자넨 그걸 아는 첫 사람이자 모든 책임이 있는 사람이야. 신께 기도하게, 힘을 달라고! 내게서 훔친 오페라를 끝까지 부를 수 있게 말이야, 파리넬리!" 


 영화가 막바지로 치달으면서 오페라 사업에 실패한 헨델은 파리넬리가 자신의 곡을 부른다는 사실을 접하고 주변의 눈에 띄지 않게 귀족 극장을 찾는다. 드디어 인간의 목소리라고 믿기 어려운 고음과 미성으로 헨델의 오페라 '리날도' 제2막에 나오는 유명한 아리아 '울게 하소서(Lascia Ch'io Pianga, youtube.com/watch?v=WuSiuMuBLhM)'를 포르포라의 지휘로 소름끼치도록 아름답고 비장하게 부른다. 


 이 곡은 십자군의 영웅 리날도와 그 상관의 딸인 약혼녀 알미레나, 그리고 적군 사라센의 여왕 아르미다와의 삼각관계로 엮어지는데, 아르미다의 마술 궁전에 포로로 납치된 알미레나가 자신의 운명을 탄식하며 풀려나기를 기원하는 비탄의 노래이다. [註: 이탈리아 시인인 토르콰토 타소(Torquato Tasso, 1544~1595)의 서사시 '해방된 예루살렘(Jerusalem Delivered•1581)'에서 영감을 얻어 불과 2주 만에 작곡한 '리날도'는 헨델의 음악적 에너지가 최고조에 달하던 26세 때의 걸작이다.]


 이 장면에 리카르도가 어린 파리넬리를 카스트라토로 만들었던 과거 장면이 오버랩되는데, 노래와 더불어 감동적인 클라이맥스를 연출한다. 카스트라토를 '노래하는 기계'라며 무시하고 리카르도에게서 들은 거세의 비밀을 폭로하는 헨델이었지만, 그런 비난에 동요하지 않고 절망과 슬픔을 이기고 그를 존경하여 부르는 이 노래는 남자 구실을 못하는 파리넬리 자신이 울 수밖에 없는 참담한 심정을 대변한 것이리라. 

 

 

 

 


 파리넬리를 귀족 극장의 이층 한쪽 구석에서 몰래 지켜보던 헨델은 그의 노래에 숨막히는 전율을 느끼며 가발이 벗겨지는 것도 모른 채 거의 기절한다. 그리고 드디어 파리넬리와의 오랜 숙원 관계를 청산하기에 이른다. 관객들은 일제히 기립 박수를 보내며 파리넬리를 연호하며 흥분한다. 


 이 노래는 디지털 합성 없이 앞에서 소개한 에바 말라스-고들레브스카가 불렀는데 우리의 가슴을 절절히 파고드는 강렬한 감동의 노래로 기억된다. 그런데 이 곡은 18세기 한 때 금지된 적이 있는데 바르톨리의 '금지된 오페라(Opera Proibita)' CD앨범에도 삽입돼 있다.


 이제 스페인 궁정에서 오로지 국왕의 우울증 치료를 위해서만 노래하는 파리넬리. 이때 형 리카르도가 온 인생을 걸고 완성한 오페라 '오르페오'를 파리넬리에게 바치며, 결별 후 3년 만에 용서를 구하기 위해 찾아온다. 하지만 형을 인정하지 않는 파리넬리는 밤 사이 마굿간에서 자고 있는 리카르도의 머리 맡에서 악보집을 몰래 훔쳐 살펴보곤 그 아름다운 작곡에 감격해 하며 내심으로는 형을 용서한다. 

 

 

 


 다음날 아침에 악보가 없어진 사실을 안 리카르도는 마굿간의 말들을 모두 풀어놓는다. 이때 나오는 곡이 헨델이 손봐 주었던 실내악 '내 말을 믿지 못한다면'이다. 이 장면을 통해 파리넬리가 평생 동안 시달렸던 낙마의 환상이 깨어지고 이제 화해와 평안을 얻게 되리라는 암시를 주는 것 같다. 

 

 

 

 


 1740년 마드리드. 일식이 일어나던 날, 스페인 국왕 펠리페 5세(1683~1746)는 "세상이 무덤 속 같구나. 해를 다시 불러라, 파리넬리!"하고 명한다. 파리넬리는 포르포라 작곡 '폴리페모(Polifemo)' 오페라에 나오는 '높으신 지오베(Alto Giove)'를 부른다. 그의 곁에는 알렉산드라가 서 있다. 


 이때 어둠을 이용하여 형 리카르도가 용서를 빌기 위해 몰래 손목 혈관을 잘라 자살을 시도한다. 이 낌새를 알아차린 알렉산드라의 재빠른 조치로 파리넬리의 방으로 옮겨진 리카르도. 


 아침에 의식을 깬 리카르도가 동생 방으로 간다. 파리넬리와 알렉산드라가 침실에서 사랑을 나누고 있다. 파리넬리는 형을 알렉산드라에게 이끈다. 파리넬리는 여자의 문을 열지만 씨는 리카르도가 뿌린다. 

 

 

 


 자기의 죄를 속죄하고 동생과 화해한 리카르도는 이후 전쟁터로 떠나고 알렉산드라는 아이를 잉태한다. 파리넬리에게 있어 그 아이는 형의 아이가 아닌 자신의 아이였기에 마침내 괴로운 삶은 자유와 평안을 얻으면서 영화는 막을 내린다. 


 참고로 이 영화에 삽입된 음악은 리카르도 브로스키 작곡 4곡, 헨델 4곡, 하세 2곡, 포르포라 1곡 등 모두 11곡(OST에는 12곡)이다.

 

 

 

 

 


 체칠리아 바르톨리는 카스트라토들을 위해 써진 음악을 재현시키기 위해 나폴리 도서관 등을 드나들며 자료를 조사하는 동안, 이들의 희생이 없었다면 이런 레퍼토리가 생길 수 없었음을 깨닫고 아름다움과 잔혹함이 교차하는 카스트라토의 음악 세계를 현대에 충실하게 전하기 위해 '사크리피키움' 앨범을 만들었다고 한다. 


 앨범에 수록된 12곡은 카스트라토의 현란한 기교와 폭넓은 감정 영역이 바르톨리의 극적이고 열정적인 표현력과 무결점의 테크닉, 다양한 음역의 가창력에 의해 훌륭하게 제작된 것으로 평가된다. 일찍이 다른 가수가 시도해 보지 못한 영역을 탐구하고 도전하는 그녀는 이 앨범을 통해 '위대한 예술가'임을 다시 한 번 입증한 것이며 오늘날을 사는 우리들에게 주는 최상의 선물이라고 하겠다.


 그런데 앨범의 표지사진이 상당히 충격적이다. 고전 대리석 남자 누드 조각상 위에 바르톨리의 머리를 올려 놓았다. 역사적으로 보면 교황의 권력이 하늘보다 무서웠던 시절에 교회에서 여자가 노래하는 것을 금지했기 때문에 남자가 여성의 음역을 대신하기 위해 비극적인 카스트라토가 탄생했지만, 이젠 거꾸로 여자가 남역(男役)을 맡아서 '신에게 바치는 선물'로 노래하는 현대판 카스트라토(?)가 탄생했음을 알리는 것 같이 느꼈다면 지나친 비약일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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