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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예찬(靑春禮讚) 시리즈 (VI)-'유스’ (Youth) (2)


삶의 권태 속 생기를 찾아가는 과정이 
바로 '청춘' … 조수미의 엔딩곡 화제

 

 

 

 

 평온하다 못해 적막한 이 호텔에 아침이 시작된다. 남녀노소의 다양한 군상(群像)들이 풀장, 사우나장 등에 모인다. 영화 시작 약 15분 만에 비로소 타이틀 '유스(Youth)'가 뜬다. 


 프레드의 아름다운 딸이자 비서인 레나(레이철 바이스)가 창밖에 공중 부양하는 수도승(도르지 왕축)이 왔다고 하자 마사지를 받고있는 프레드는 절대 부양 못할 거라고 단정한다. 


 레나는 2주간 남편 줄리안과 함께 폴리네시아로 여행가기 전, 마사지, 사우나, 건강 체크 등 풀서비스를 준비해 놓았다고 말하고 떠난다. 프레드는 떠나는 딸에게 "이 나이에 건강 회복은 시간 낭비"라고 대꾸한다. 


 이미 자신들의 영역에서 일가를 이뤘고, 부와 여유까지 갖춘 주인공들이라 고급호텔에서 자칫 부를 과시하며 화려하고 잘난 체 하는 것으로 비칠 수도 있으나, 소렌티노 감독은 그 이면에 숨어있는 공허함과 쓸쓸함을 들추어내어 늙음과 젊음, 과거와 미래, 삶과 죽음, 결단과 배신 등 인생의 영원한 투쟁에 관한 이야기를 경쾌하고 아름답게 그려나간다. 

 

 

 


 프레드와 믹이 산책을 한다. 서로의 인생을 반추하면서 그들의 기억력이 감퇴하고 있으며 미래가 보이지 않음을 인정한다. 프레드가 60년 전 자기가 좋아했던 여학생 길다 블랙과 믹이 같이 잤냐는 물음에, 믹은 "문제는 그 여학생과 같이 잤는지조차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하자 프레드는 "자네 기억력도 이젠 맛이 갔군 그래."라며 "난 가족이 기억이 안 나. 얼굴이나 말하는 거라든지. 엄청나게 노력했지만 결과는 별로였어." 노인의 건망증을 건드리는 대목이다.


 투숙객들은 커다란 풀장 앞에서 일광욕을 즐기고, 매일 메뉴가 바뀌는 코스요리를 먹는다. 볼거리, 먹을거리가 넘쳐나는 호텔이지만 프레드가 느끼는 이 공간은 '권태•고독' 그 자체다. 은퇴를 선언하고 다시는 새로운 곡을 쓰거나 연주하지 않기로 결심한 그에게 삶은 신비한 경험의 대상이 아니라 관망의 대상이다.

 

 

 


 프레드가 스위스의 전원풍경을 보며 들판의 바람소리와 숲속 새들의 지저귐, 소의 울음과 워낭소리를 들으면서, 이른바 '숲의 교향곡'을 머리에 그리며 지휘한다. 아직 음악에 대한 열정이 솟는 듯 자연을 배경으로 절묘한 오케스트라를 연출하는 명장면이다.


 야외공연장. 레트로세츠 시스터 밴드가 'Reality'를 부른다. [註: 'Reality'의 원곡은 1980년 영국 가수 리처드 샌더슨(64)이 불렀는데, 같은 해, 당시 15세의 소피 마르소(51)가 데뷔했던 프랑스 영화 '라붐(La Boum)'에 삽입된 유명한 곡이다.]


 두 노인이 공연을 보다가 '소변이나 잘 나오길 바래자'며 헤어지고, 프레드가 방으로 돌아오니 폴리네시아로 휴가를 갔던 딸 레나가 돌아와 펑펑 울고 있다. 줄리안이 이혼을 요구했기 때문이란다. 레나는 믹의 아들 줄리안(에드 스토퍼드)과 결혼했다. 그러니까 프레드와 믹은 친구일 뿐만 아니라 사돈지간이다. 

 

 

 

 

 

 


 줄리안을 호텔로 소환하여 그 이유를 묻는 믹과 프레드. 줄리안은 팝스타인 팔로마 페이쓰(Paloma Faith•36, 영국의 실제 가수이자 배우)에 홀딱 빠졌는데, 그 대답이 가관이다 ― '잠자리에서 끝내주기 때문'.
 레나가 아버지에게 결과를 묻지만 대답을 회피하는 프레드. 결국 딸의 강경한 태도에 사실 그대로를 실토하자 충격으로 말문이 막히는 레나!

 

 

 


 장면은 남녀혼탕 사우나. 소렌티노 감독은 탐미주의 거장답게 젊은이의 탱탱한 가슴과 축 늘어지고 쭈그러진 늙은이의 가슴 등을 여과없이 보여준다. 이와 같이 손바닥에 넣을 만큼 작은 이미지들을 곳곳에 심어놓음으로써, 불연속성의 일상이 우리의 삶에서 순간적인 중요성을 가지는 일상이 될 수 있으며, 젊음이 있으면 늙음이 오고, 늙으면 죽음이 기다린다는 진리는 개인적 환경에 따라 달리 보일 뿐, 남들도 나의 것과 특별히 다를 것이 없다는 울림으로 다가온다.  부녀(父女)가 머드세러피를 받는 동안 레나가 아버지에게 말한다. 아버지의 애정 표시나 키스, 포옹 한 번 받은 적이 없었다는 레나는 엄마와 자식이 행복한지 고통 받는지 전혀 모르고 오로지 음악에만 집념한 프레드를 질타한다. 그리고 아버지는 스트라빈스키가 되고 싶어 했었지만 그의 천재성은 조금도 닮지 않았다며, 오로지 '조용해, 멜라니!'라는 말이 전부였다고 숨겨온 마음의 응어리를 쏟아낸다. 


 이어서, 엄마는 아버지의 모든 것을, 예컨대 동성애를 한 사실까지도 알고 있었지만, 아버지는 엄마의 고통을 눈곱만큼도 이해하기는커녕 10년 넘게 엄마에게 꽃 한 번 갖다 주지 않았다고 몰아붙인다. 


 겉으로는 존경 받는 명사의 삶의 이면에는 사랑과 배려의 등한시로 오만과 편견에 가득찬 이기주의자로 비치면서 가족의 가슴에 상처를 입히는 이중성을 엿보게 된다. 이 장면을 통해 오로지 레나만이 이 영화에서 독립적이고 직접적인 메시지를 전하고 있는 듯하다. [註: 이 장면은 '산딸기(Wild Strawberries•1957)'에서 며느리 마리안느가 시아버지인 노박사 이삭을 이기주의자라고 단정하는 고백 장면과 꼭 닮았다.]


 한낮의 호텔 풍경. 투숙객들이 모두 야외 풀장 주변에서 일광욕을 즐기고 있다. 항상 산소호흡기를 끌고 뒤따라 다니는 아내 안젤라(로레다나 카나타)와 함께 비대한 몸을 지팡이에 의지하여 걸어간 디에고 아르만도 마라도나(롤리 세라노)는 호텔 울타리 밖으로 몰려온 팬들에게 사인을 해준다. [註: 여기서 마라도나는 아르헨티나의 전설적인 축구선수 마라도나의 패러디다. 실제 그는 팔뚝에 체 게바라의 얼굴 문신을 하고 있지만 영화에서는 등 전체에 칼 막스 얼굴의 문신을 하고 있다.]


 또 벤치에서 어린 딸의 코 후비는 버릇을 나무라는 엄마에게 딸은 이래라 저래라 간섭하지 말라며 버럭 고함을 지른다. 


 이때 흘러나오는 곡이 이 영화의 음악감독으로 2008년 뮤지컬 'The Little Match Girl Passion'으로 퓰리처 음악상 및 2010년 그래미 최우수 실내악 퍼포먼스 상을 수상한 데이비드 랭(David Lang•60)이 작곡한 'Just (After Song of Songs)'. '그레이트 뷰티'의 첫 장면에 나오는 'I Lie'와 같이 특이한 보컬 앙상블로 기묘한 느낌을 주는 아방가르드 곡이다.


 장면은 하얀 테이블 클로스 톤의 식당 안. 레나가 들어와 프레드와 믹이 있는 테이블에 앉는다. 예의 말 한마디 안 하는 노부부가 보인다. 여자(하이디 마리아 글뢰스너)가 슬며시 일어나더니 식사를 하고 있는 남자(헬무트 푄바허)의 뺨을 매몰차게 후려갈긴 후 나가고, 남자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하던 식사를 계속한다. 뭐가 그리도 불만인지는 알 수가 없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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