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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만의 모국 방문

 

지난 10월 3주간 모국을 방문하고 돌아왔다. 만 10년 만의 고국방문으로 몇 가지 느낀 점이 있어 적어보려 한다. 사실은 누구나 알고 있는 내용들이다. 다만 그런 것들이 보는 관점에 따라 이렇게도 보이더라고 말해 보려는 것이다.


머무는 동안 교통은 주로 지하철을 이용했다. 지하철에 타면 교통안내를 한국어 영어 중국어 일본어로 한다. 그 중 한국어로 할 경우 예를 들면 “다음 정거장은 공덕역입니다. 내리실 문은 오른쪽입니다”라고 말한다. 


그런데 나같이 귀가 잘 들리지 않는 사람에게는 ‘공덕역’이라든가 ‘오른쪽’이라는 낱말은 슬쩍 지나가 듯 들리고 ‘입니다’ 소리만 명료하게 들린다. “다음 정거장은 고옹 더억 역. 내리실 문은 오오르은 쪽 문”이라고만 안내한다면 귀가 어두운 사람도 잘 들을 것 같단 생각이 들었다. 물론 전광판이 있으니 내릴 역에서 못 내리지는 않는다.


 한국사회에선 오늘도 필요 이상의 경어와 격식과 위계질서가 사람들을 어리둥절하게 하고 피곤하게 하고 부자연스럽게 만드는 경우가 많다. 중요한 것은 내용의 충실성과 마음의 진정성인데 그런 내용과 마음이 필요이상의 겉치레에 밀려나 그 가치가 왜소해지거나 심지어 소멸되어 버리기도 하는 것이다.


경복궁과 창경궁은 전에 여러 차례 구경했던 바 이번엔 종묘엘 찾아갔다. 젊은 여성 안내원이 아주 잘 설명해주었다. 하지만 나만 아니고 대부분 관광객들도 마찬가지일 터인데, 아무리 자세하게 설명을 들어도 구경을 끝내고 나올 땐 들은 얘긴 거의 다 까먹고 눈으로 본 것들에 대한 인상만 뇌리에 남게 마련이다.  


그런데 한국에선 대부분 고궁이나 고적 건물의 문 앞에 ‘들어가지 마시오’라는 팻말이 앞을 가로막고 있다. 그냥 겉만 보고 가라는 명령 같은 경고문이다. 그러니 구경을 하긴 했는데 머리에 남는 인상은 건물의 겉모양, 그것도 웅장한 지붕이 전부가 되고 만다. 그 건물 내부에 뭣이 있고 어떻게 생겼는지는 알 수 없다.


그렇게 겉만 보여주는 관광, 그래서 내부는 볼 수 없는 관광은 관광객들, 특히 외국인 관광객들에게 한국이라는 나라는 속을 가리고 숨기는 투명성이 부족한 나라, 권위가 겉으로 특히 겉의 상층부 쪽으로 쏠려있는 사회로 인식시키기에 안성마춤일 듯싶다. 그리고 한 국가사회의 구조와 풍토가 겉으로 드러내는 권위는 대단한데 속은 감추는 쪽으로 발전한다면, 그러고도 내부에 적폐가 쌓이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싶은 의문도 들게 한다.


평화시장에 가서 전태일 동상도 보고 겨울 내복도 쌌다. 을지로 중부시장에 들려 건어물도 샀다. 시장에 가기 전에 값을 흥정하라는 조언을 듣고 갔다. 상품에 가격표가 붙어 있지 않은 것이 아니다. 그러나 그것은 기준가격일 뿐 확정가격이 아니다. 진짜 값은 흥정으로 결정된다. 흥정이 가격으로 되지 않을 경우엔 양(量)으로 이뤄지기도 한다. 


물론 캐나다에서도 주택매매의 경우처럼 흥정이 값을 조율하는 경우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일상생활의 생활용품들은 붙어있는 가격표가 곧 매매가격이다. 그에 비해 한국에선 지금도 시장골목에서 흥정이 가격을 만드는 경우가 흔하다.


한국사회에서는 21세기인 오늘도 시민들의 삶이 돌아가는 사회현장, 특히 힘과 돈이 집중되어 있는 곳일수록 기준 너머에 있는 보이지 않는 제2 범칙, 곧 ‘흥정’이 통행한다. 심지어 힘의 칼자루를 쥔 자의 마음먹기 따라 농락되기도 하고, 널뛰기도 하고, 속도완급도 된다.


한국이 캐나다보다 잘 되어 있는 점도 많다. 모든 공공건물만이 아니고 지하철 안에서도 스마트폰을 얼마든지 즐길 수 있다. 어디나 와이파이 시설이 잘 되어 있어서다. 그리고 시골 어느 두메산골에도 자동차가 들어갈 수 있도록 도로와 교량시설이 잘 되어 있다. 


언론의 표현 자유도 무한정 허용되어 있고 시위의 자유도 얼마든지 누릴 수 있다. 한국은 그처럼 외양만은 아주 선진적이다. 그러나 그 포장 속에 담겨있는 내용 역시 겉포장만큼 잘 정비되어서 누구나 공정하고 공평하게 대우받고, 사회전반에 신용과 신뢰가 편만해지려면 아직은 넘어야 할 고비가 제법 남아 있는 나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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