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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mkang39
‘설마’의 역사 500년(11)-시들어 가는 조선 말기의 역사
samkang39

 

 
 
 1392년에 개국을 하여 519년이란 긴 역사를 지켜오다가 1910년 일본에게 병탄을 당한 이씨 조선. 어찌하여 반만년 지켜온 나라가 그 꼴이 되었는가? 그 말엽의 역사를 고찰해 보면 국가가 참으로 한심스럽게 나약하고 속으로 깊은 병이 들어 시들시들 해있었다는 것을 감지하게 된다.


 일본에게 먹힌 것이 하루 아침에 그렇게 된 것이 아니라 오랜 기간의 그릇된 국가관과 안이한 “설마 설마”의 상습적인 버릇이라는 것을 새삼 느끼게 한다.


 519년의 찬란한 문화, 연연히 이어진 왕조가 그렇게 아무런 저항도 못하고 차츰 무력하게 시들어 버려, 일본의 밥이 된 것을 생각하면 우리민족은 뼈에 새기는 고뇌와 주먹으로 가슴을 치는 개과천선의 역사적 반성이 있어야 할 것이다.


 온 국민이 있는 힘을 다하여 싸웠지만 불가항력으로 나라가 쓰러졌다면 후회를 할 이유가 없고 부끄러울 것이 없을 것이다. 깨끗한 승자와 패자의 게임이었다면 결과도 깨끗하기 때문이다. 


하나 이조 500년 말년의 역사는 그렇게 깨끗한 게임이 아니었다. 멍청한 임금, 바보스런 백성들, 그리고 나라를 매도한 신하들의 배신과 아첨과 사리사욕… 그러한 역사였다. 


자기의 나라 자기의 백성들을 팔아 먹고 자기의 영달이나 꿈꾸는 신하들이었으니 이 세상에 그러한 망측한 나라가 어디에 있단 말인가? 불사이군(不事二君)이라는 절체절명의 유교사상 속에서 그러한 자기의 욕심만을 추구하는 세도정치와 매국노들이 줄지어 나왔으니 나라가 썩고 또 썩어 있었다는 증거가 아닌가? 


 실로 나라가 썩기 시작한 것은 23대 순조 때부터였다. 17대 효종이 북벌정책을 수립한 이후 그 영향력은 약 140년 가량 지속되었기에 그 간에는 큰 외세의 침입이 없었다. 반면 내적인 당파싸움에 진력을 다 빼면서 죽이고 귀양 보내는 내홍의 역사였다. 그래도 외세의 침입이 없었으니 백성들은 태평성세를 누렸다고 볼 수 있다. 


17대 효종 이후 현종, 숙종, 경종, 영조 그리고 22대 정조에 이르기 까지는 당파싸움의 내홍이 절정을 이루었지만 외세의 침범에서는 비교적 다행스러웠다. 


 하나 서기 1800년, 23대 순조가 11살에 왕위에 오르면서 정순왕후(21대 영조의 둘째 부인)에 의한 수렴청정은 곧 천주교의 박해로 이어졌다. 


그리고 세도정치의 폐단으로 정치의 기강이 문란해 져서 민생이 도탄에 빠졌고 각종의 비리와 참언(讖言)이 유행하는 등 일대 사회적 혼란이 시작되었다. 조선의 사직이 이 때부터 내리막 길로 접어든 것이다. 


 정순왕후가 첫 번째로 천주교인 500여명을 살해한 것이 신유사옥, 그리고 순조가 친정을 하면서 두 번째로 박해를 한 것이 을해사옥이다. 전국적으로 수만 명이 목숨을 잃었다. 소위 오가작통법(五家作統法, 오늘날의 통반제도와 비슷한 행정제도)을 강화하여 전국적으로 천주교인들을 찾아서 잡아낸 것이다. 


이 때에 남인과 실학파 이가환, 권철신, 이승훈, 정약종, 정약용 등 국가의 많은 인재들이 희생되었다. 실학의 거두인 다산 정약용을 비롯하여 새로운 실학문명을 일으키던 선량들을 모두 처형함은 신문물의 역사적 전기를 꺾어버린 것이다.


 이 무렵을 틈타서 임금의 장인이 된 안동 김씨 김조순이 세도정치를 하기 시작하였다. 과거제도가 무너지고 매관매직으로 나라의 기강이 흐려지니 왕조사회가 위기에 도래하였다. 탐관오리와 농민들에 대한 수탈이 강화되니 민란이 일어나기 시작하였다. 마침내 1811년(순조 11년), 서북지방을 휩쓴 홍경래의 난이 일어났다. 그런가 하면 서북지방에서 전염병이 창궐하여 10만여 명이 목숨을 잃었다.


 안동 김씨의 세도정치의 균형을 잡으려고 세자빈을 풍양 조씨에게서 맞아 들였다. 하나 균형을 잡기는커녕 이제는 풍양 조씨의 세도가 기승을 부리게 되었다. 


이렇게 순조의 34년 치적은 성취한 것이 없이 잃어가는 모습으로 막을 내렸기에 나라는 마치 시들어 가는 풀잎처럼 비실비실 기력을 상실해 하향 길을 걷고 있었다.


1834년, 9살의 나이에 제 24대 헌종이 왕으로 즉위하였다. 그는 순조의 손자로 순조가 죽자 9세의 어린 나이로 임금이 되니 순조비 순원왕후의 9년간 수렴청정을 받았다. 


왕위 14년, 23세에 승하한 헌종 시대는 내우외환으로 조선사회의 붕괴조짐이 외적으로 드러나던 시기였다. 안으로는 순조 때부터 시작된 세도정치의 여파로 관리임명의 근간이 되는 과거제도와 국가재정의 기본이 되는 삼정(전정, 군정, 환곡)의 문란으로 정국이 혼란에 빠졌다. 


재위 14년 동안 9년에 걸쳐 수재가 발생하여 민생의 어려움이 그치지 않았다. 많은 농민들이 폐농을 하고 도시나 광산으로 몰려 들었고, 신분질서도 문란하여 봉건제도의 붕괴조짐이 발생하였으며, 괴질이 만연하여 많은 유랑민들이 희생되었다. 


1838년, 순조시대에서부터 시작된 천주교탄압은 헌종 때에도 계속 강화되었고 “기해박해”를 일으켰다. 이 때에 앙베르, 샤스탕, 모방 등 프랑스 신부와 유진길, 정하상 등 천주교 신자 다수가 처형 당했다. 


 1845년 헌종 11년, 영국군함 사마랑호가 제주도와 서해안을 불법 측량하고 돌아갔다. 조정에서는 청나라를 통하여 관동성에 있는 영국 당국에 항의를 하였다. 이것이 그 첫 번째로 서양의 외세가 우리 나라를 괴롭히기 시작한 사례였다.


1846년 헌종 12년 6월, 프랑스 제독 세실이 천주교 탄압을 구실로 군함 3척을 이끌고 충청도 외연도에 들어와 왕에게 국서를 전하고 가는 사건이 발생하여 한 때 조정을 긴장상태로 몰아 넣었다. 


이에 앞서 1846년 5월에는 조선 최초의 신부 김대건이 체포되어, 사교를 퍼뜨리고 국법을 어겼다는 죄목으로 7월에 새남터에서 효수형에 처해졌다. 조정에서는 이 사건에 대해 이듬해에 청나라를 통하여 프랑스에 답신을 보냈는데 이것이 우리나라가 서양에 보낸 최초의 외교문서인 것이다. 


1848년 헌종 14년, 이 때부터 많은 서양 함선들이 경상, 전라, 황해, 강원, 함경도에 나타나 통상을 요구하고 문호개방을 요구했다. 이로 말미암아 민심이 동요되었으나 외세에 경험이 없는 조정에서는 별다른 대책도 못 세우고, 국내적 세도정치에 몰입되어 권력장악에만 혈안이 되어 있었다.


 1849년 6월 6일, 헌종은 재위 14년 7개월을 마치고 23세의 청춘에 승하하였다. 안동 김씨와 풍양 조씨의 세도정치 사이에서 자기의 뜻은 펴지도 못하고 오락가락 하다가 왕위를 계승할 후사도 없이 세상을 떠났다. 


1849년 6월 9일, 헌종의 후손이 없으므로 대왕대비 순원왕후의 명으로 정조의 손자 19세의 농부 강화도령 범원이가 제25대 철종으로 즉위하였다. 철종은 학문과는 거리가 먼 농군으로서, 1844년(헌종 10년)에 형 회평군의 옥사로 인하여, 가족과 함께 강화도에 유배되어 있었다. 


나이는 어리고 농경생활을 하다가 갑자기 왕이 되었으므로 처음에는 대왕대비가 수렴청정을 하였다. 1851년 철종 2년에 김근문의 딸을 왕비로 맞으니 안동 김씨의 세도정치가 다시 득세를 하여 탐관오리 삼정의 문란이 계속되었다. 세도정치의 반발로 민심이 흉흉하더니 삼남에서 민란이 일어났다. 


1863년 12월 8일, 강화도령 철종은 재위 14년 만에 33세를 일기로 막을 내렸다. 실로 철종은 배운 것이 없을 뿐만 아니라 임금이 된 후 주색을 즐겼기에 일찍 하직한 것이라고 한다. 이렇게 나라의 꼴이 나날이 쇠약해지고 하향곡선을 그으면서 이조 500년의 종말은 점점 가까워 오고 있었다.


이제는 설마, 설마를 생각할 겨를도 없이 민심은 나라를 사랑해야 된다는 의식마저 희미해져 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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