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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물치 콧구멍

 
 

 봄꽃이 피어날 것만 같은 포근한 날씨가 이어지고 조용히 귀를 기울이면 만물이 꿈틀대는 소리가 들려오는 것도 같다. 아침 산책길에 수줍게 피어오르는 물안개가 아침햇살에 물드는 광경은 몽환적(夢幻的)인 분위기를 연출해준다. 일광절약시간제(Daylight Saving Time)가 시작됐다. 금쪽같은 1시간을 앞당긴 탓에 잃어버린 취침시간은 늦가을에 되찾을 수 있으니 오늘도 즐거운 마음으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키 큰 나무는 여전히 꼿꼿이 서서 그림자를 드리울 뿐인데, “Why should I care?” 젊음은 마음가짐의 자세이지 결코 나이 문제가 아님을 명심할 일이다. ‘무소불위의 역량과 성취도 안락을 얻지 못하였으며, 분투할수록 수렁에 빠진다는 역설(逆說)’을 중언부언하려드는 건 아니다. “내가 딱10년 만 젊었더라면…”하는 자조(自嘲)섞인 푸념일랑 담아내지 않으려고 애써 노력하는 우리들이었으면 얼마나 좋으련만. 


 ‘먹고살기 위해서’ 일하는 것이 아니라 ‘행복하기 위해’ 일하는 세상이면 좋겠다는 바람은 너나없이 동감을 하는 바이다. 그냥저냥 웃자며 말머리로 삼았다는 ‘삼식(三食)이 시리즈’에 *남편이 은퇴 후 집에서 세 끼니를 꼬박꼬박 챙겨먹으면 ‘삼식이 세 끼’ *집밖에서 세 끼닐 해결하면 ‘영식님’이고 *언감생심일지나 집에서 세 끼+간식까지 챙기려들면 ‘종간나(?) 세 끼’라고 이른다하네요. 아무렴 표현의 자유랍시고 웃는 얼굴에 면박을 줄 순 없고, 모래밭에 혀를 파묻고 싶었을 억하심정(抑何心情)은 만감(萬感)이 교차하지 않았을까싶다. 


 사람들이 마땅찮은 상대의 얼굴 모습에서 됨됨이를 판단하려드는 속성도 있어서일까마는 ‘소갈머리 좁기가 가물치 콧구멍’이라며 어깃장을 놓는 경우가 없진 않다. 뛰어난 적응력과 생명력, 공격성과 닥치는 대로 먹어치우는 왕성한 식성을 겸비한 민물고기 가물치(Snake Head)는 먹이사슬에서 천적(天敵)이 없고, 널리 퍼져 유해(有害)어종으로 지목받아 괴물이 되어버린 지 벌써 오래라고 한다. ‘가물치 콧구멍’은 차치하고라도 사람의 콧구멍이 작으면 마음씀씀이도 좁을 것이라 섣불리 예단(豫斷)하고 불편한 관계나 오해의 소지를 자초하는 일은 없어야 하겠다.


 “쓰레기통 뚜껑은 행여 먼지가 날아들까 염려되어 달려있다”는 너스레에 ‘콩이야! 팥이야!’끼어들 일은 아니다. 갓난아이 울음소릴 들어본 지 벌써 오래인 농촌지역은 적막강산이고 노인 인구 30%의 현재는 머잖아 ‘초고령사회’로 치닫는 대한민국 전체의 미래가 아닐는지. Heinz의 광고스크립트를 빌리면 “하인즈 제품이어야 해!”라고 할 수 있지만, 동화 속에서 엄마 토마토가 아기 토마토에게 “얘야 넌 자라서 무엇이 되고 싶니?” 물었더니 망설임 없이 “하인즈 케첩이 될래요!” 하더랍니다. 


 세상일은 맞물려 돌아가기 때문에 설령 여의주(如意珠)를 지녔다한들 뭔가를 바꾸는 것은 여의찮을 때가 많다. 정부는 “최소한의 인간적인 삶을 위한 버팀목”이라고 했지만, 한꺼번에 올리면 어떤 일이 발생할지는 예상할 수 있어야했다. 최저임금 인상으로 인한 소득분배의 효과가 기대에 미치지 못할 것이란 우려가 팽배하다. 빠듯하게 영위해가는 우리의 일상에서 물가인상은 줄을 잇고 업체들은 인건비와 원자재의 가격상승을 이유로 내세운다. “두 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을 수 없는 줄 알지만, 서민층의 소득증대가 물가상승으로 인해 “아랫돌 빼어내 윗돌 괴기”가 아니었으면 오죽일 것을…. 


 대저(大抵) 겨울과 봄이 티격태격하는 환절기 전후가 왠지 춥게 느껴지고, 해뜨기 직전이 가장 어둡다고 한다. 엄동설한(嚴冬雪寒)이 언제였던가 싶지만 우수, 경칩도 벌써 지났으니 사래긴 밭일에 추임새를 곁들여야 할 때다. 부럼을 깨트림은 피부병을 예방하기 위함이고, 귀밝이술(耳明酒)을 마시는 일은 말귀를 잘 알아들으라는 깊은 뜻이 담겨있다. ‘내 더위!’를 팔아치우려고 애쓰기보단 서로서로 두루 만사형통하시길 빌어주는 맘가짐으로 여느 해보다 추웠던 계절도 이겨내고 함초롬히 피어날 꽃님과도 눈인사로 반겨 맞이할 일이다. 

 

 


“悤悤六十一年光(바쁘게 지나온 예순 한 해) 
云是人間小劫桑 (사람들은 짧은 생애라고 말하지요) 
歲月縱令白髮短 (세월 흘러 흰머리는 짧아졌지만) 
風霜無奈丹心長 (온갖 풍상도 이 붉은 마음은 어쩌지 못해) 
聽貧已覺換凡骨 (가난을 받아들이니 평범한 이로 바뀐 듯) 
任病誰知得妙方 (병을 내버려두니 약방문(藥方文)을 뉘라서 알리) 
流水餘生君莫問 (흐르는 물 같은 여생일랑 그대여 묻지 마오) 
蟬聲萬樹?斜陽 (뭇나무에 매미소리 뉘엿뉘엿 지는 해를 따르리니)” 


[한용운(韓龍雲)의 <자필(自筆) 회갑 즉흥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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