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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수기-뿌리 뽑힌 나무(7)

 

(지난 호에 이어)

  실탄사격은 청년근위대 훈련의 하이라이트인데, 훈련 마지막 날에 진행한다. 이날은 위에서 간부들도 내려오고, 부모들은 맛있는 음식을 해 갖고 찾아온다. 여기저기 구호와 깃발이 나부끼고 우승자에게 걸어줄 꽃목걸이도 준비된 아주 성대한 행사다. 그래서 사격하는 날 아침은 밥은 두 배로 많고 반찬들도 더 잘 나온다. 온 산골짜기가 아침부터 총소리가 콩 볶듯이 들리고 매캐한 화약 연기가 온 골짜기에 퍼져 있었다. 정말 전쟁이 나면 이런 느낌이겠구나 싶었다. 나는 제발 전쟁이 일어나지 말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거의 천여 명에 가까운 인원이 하루에 다 실탄 사격을 하다보니 각 중대와 소대마다 사격 시간이 정해져 있었다. 소대장은 군관 출신인데 실탄 사격 날에는 몹시 긴장을 했다. 상관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사격 실적이 저조하면 책임 추궁이 뒤따르기 때문이다. 10명씩 한 조가 되어 사격을 하는데 실탄 3발을 얼른 장탄하고 보고한다. “소대장 동지! 김ㅇㅇ은 사격 준비를 끝마쳤습니다!” 이렇게 10명 전원이 다 준비를 마치면 소대장은 구령을 내린다.

 “사격수들은 사격 진지 앞으로 갔!”그러면 우리 는 바로 오른 주먹을 불끈 뒤고 힘차게 앞으로 내밀며 “미제 침략자들을 소멸하자! 소멸하자! 소멸하자!” 3창을 외치고 재빨리 사격진지로 달려가 엎드려 사격 자세를 취한다. 어떤 애들은 옆 사람의 총소리에 화들짝 놀라 허공에 대고 막 쏴 갈기거나 간혹 우는 애들도 있었다.

 총 3발을 다 쏘면 다시 보고 한다. “소대장 동지! 김ㅇㅇ는 사격을 끝마쳤습니다!” 10명이 모두 사격을 마치고 일어나면 나팔소리가 울린다. 신호수(점수판정원)가 나와도 좋다는 신호이다. 이때 대피소에 있던 판정원이 나타나 양손에 빨간 깃발을 들고 목표물을 확인한 후에 점수를 깃발로 알려 준다. 그래서 우리는 누가 몇 점을 맞았는지 신호를 보고 다 알 수가 있다. 한 사람 한 사람씩 확인하는데 내 순서를 기다리는 것이 몇 시간처럼 느껴졌다. 나는 여느 애들보다 좀 빨리 3발을 다 쏴 버렸는데 아쉽게도 27점을 맞았다. 25점 이상부터는 우등 사수이다.

 그날 대대에서 30점 맞은 애들이 3명 있었는데 그들의 목에 꽃다발을 걸어주고 방송차가 달려와 축하방송도 해주고 북소리, 나팔소리에 난리법석이었다. 군사 야영기간 정신적 긴장과 육체적 훈련으로 힘들었지만 취사병훈련만큼은 누구나 선호하였다. 밥을 배부르게 먹을 수가 있고 더운 날에 밖에서 땀 흘리며 훈련을 하지 않아도 되었다.

 밥을 먹는 시간에는 중대별로 전체 중대가 다 밥그릇 앞에 서면 “앉아! 식사 시작!”하는 소리와 함께 앉아서 밥을 먹기 시작한다. 남보다 빨리 먹는 건 괜찮지만 늦게 먹으면 손해다. 미처 다 먹기도 전에 “식사 끝! 전체 일어 섯!” 그러면 바로 숟가락 놓고 일어서 나가야 한다. 초반에 몇몇 애들이 밥을 늦게 먹어 항상 절반씩 남겨야 했는데 어느 순간부터 한 명도 늦게 먹는 아이가 없어졌다.

 청년근위대(군사야영소)훈련과 함께 나의 고등학교 시절은 그렇게 끝이 났으나 38식 자동 보총과의 인연은 그때부터 시작되었다. 우리는 이제부터 어른이 되었다며 자유로운 몸이 된 것에 서로 기뻐하였고 알 수 없는 미래에 대한 막연한 희망과 꿈에 부풀어 있었다.

 

8. 임수경과 평양축전

 1989년 여름, 이때의 북한 사람들은 누구나 다 임수경을 기억할 것이다. 1989년 7월 1-9일까지 평양에서는 13차 청년학생축전이 열렸다. 남한에서는 그 전 해에 88 서울 올림픽이 열렸는데, 당시 우리는 전혀 몰랐다. 13차 청년학생축전은 북한 역사상 가장 많은 외국대표단이 모인 국제행사였다.

 조선중앙방송이나 노동신문, 모든 매체들에서는 김일성과 김정일을 흠모하여 세계 여러 나라 각국에서 저명한 인사들과 청년들이 몰려들고 있다고 끊임없이 선전했다. 우리는 이러한 선전 내용을 사실이라 믿었다. 그때는 전기가 자주 끊기지 않아서 TV를 통해서 각양각색의 옷차림을 한 외국인들을 마음껏 볼 수가 있었다. 국방색 옷들과 인민 복으로 단체화 되어버린 북한사람들의 모습만 보다가 자유로운 복장과 몸짓과 다양한 언어를 쓰는 외국사람들이 신기했고 동경심에 가슴이 뛰었다.

 북한 사람들에게 있어 13차 청년학생 축전의 주인공은 바로 남한 대표로 서울에서 온 여대생 임수경이었다. 분단 사상 처음으로 민간인 신분으로 평양에 온 것이었다. 1989년 6월 30일 동부 베를린을 거쳐 그는 평양 순안 비행장에 도착하였다. 그는 도착성명에서 “조국의 북녘땅을 눈앞에 두고 지구를 6만여리 돌아온 구국의 강철대오 ‘전대협’ 대표”라고 소개했다.

 서울에서 온 앳된 여대생 임수경을 보려고 평양시민들은 그가 가는 곳마다 모여들었고,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TV 앞으로 몰려 들었다. 그리고 그의 손짓과 몸짓하나 말 한마디도 놓치지 않고 귀담아 듣고 TV를 뚫어지게 쳐다보며 그의 연설에 함께 울고 웃었다. 같은 핏줄을 가진 한민족인 서울여대생을 정말 TV 속에서 볼 수 있다니 정말 가슴이 뛰었고 당장 통일이 될 것만 같은 희망에 부풀었다.

 그런데 임수경을 보면 남조선 사람들은 모두 못살고 가난하고 거지가 많다고 들었는데 전혀 그런 것 같지도 않았다. TV에서 남한 대학생들이 데모하고 최루탄 가스를 쏘아 대는 경찰과 맞서 싸우는 모습들이 가끔 뉴스를 통해 나오는 데 그들의 피부와 패션, 헤어스타일, 신발, 부드러운 서울말까지도 너무 멋져 보였고, 가까이서 보고 싶고, 함께하고 싶었다. TV만 틀면 나오는 하얀 청바지에 파란 셔츠를 입은 그의 세련된 패션과 부드러운 말투, 맑고 고운 피부, 그의 자유로운 손동작 하나하나가 북한 인민들의 마음을 단숨에 사로잡았다.

 그는 대본도 없이 혼자 연설을 하였는데 그것이 정말 대단해 보였다. 북한 사람들은 그 누구도 연설문이 없이 연설하는 사람을 본 적이 없었다. 심지어 김일성이나 김정일도 연설문을 보면서 연설한다. 북한 사람들은 짧은 연설이나 토론을 해도 대본이 쓰여진 대로 한 자도 틀림없이 읽어야 하는데 임수경은 대본도 없이 연설할 수 있다는 것이 정말 놀라웠다.

 매일 정치적이기만 한 단조롭고 딱딱한 중앙통신 보도만 듣고 살아온 우리에게는 처음으로 경험하는 문화적 충격이었다. 금단의 땅 남한에 대한 인식을 바꾸게 한 인물이 바로 임수경이었다. 그는 정치적 발언은 하지 않고 거의 비슷한 얘기만 반복했다. “우리의 조국은 하나입니다. 남과 북이 통일하여 하나된 조국을 이루자. 분단의 아픔을 반드시 끝장내고 반드시 통일을 이뤄야 한다.” 등등 남한대학생들과 청년들의 염원과 바람을 전한다고 하면서 열변을 토했다. 며칠 동안 계속 그렇게 연설을 하다 보니 목소리가 갈리고 쉬어 버려서 나중에는 말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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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주씨 영문자서전 국제행사 출전권 취득 

(The Woman From The North)

아마존UK  2021작가 콘테스트’ 참가 자격 수여

 


▲‘The Woman From The North’ 표지

 

 김민주씨의 자서전 <뿌리 뽑힌 나무>를 영문으로 번역한 ‘The Woman From The North: Between Life and Death in North Korea’가 국제적 작가대회인 ‘아마존UK 2021년 작가 콘테스트’(Kindle storyteller contest)에 참가할 자격을 획득했다.

 이 콘테스트는 개인출판 서비스 시스템인 아마존 킨들 다이렉트 퍼블리싱(Kindle Direct Publishing)을 통해 영문으로 작품을 출판한 작가 중에서 우수작을 선발하며 최우수 작가에게는 유로화 2만 파운드가 주어진다.

 김씨는 이에 앞서 지난 5월에 국문 자서전 <뿌리 뽑힌 나무>를 발간해 국내외에 큰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구입 문의: https://www.bookk.co.kr/book/view/111237  

-알라딘, 교보문고, Yes 24 통해 온라인 주문

-정가 33달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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