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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도서에 대한 묵상

 

성경은 하나님의 영으로 기록되어 있기 때문에 읽을 때마다 다른 영적 감회를 느끼게 된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독자들의 신앙생활에 따라 성장되어가는 믿음의 척도에 의해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을 점진적으로 깨닫게 하시기 때문에 꿀맛 같은 단맛을 맛보게 되는 것이다. 반면에 믿음이 성장하지 않거나 오히려 퇴보한다면 이러한 영적 세상을 느낄 수가 없다.


피조물인 인간들이 창조주의 권능과 능력의 비밀을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는데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의 비밀까지 조금씩 깨닫게 되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 인간의 역사나 소설은 인간들이 만들었기 때문에 내용의 기억만이 요구될 뿐 성경에서와 같은 영감은 느낄 수가 없다.


하나님께서 천지만물을 만드시고 운행, 역사하시기 위해서 구약시대에는 사무엘 같은 선지자, 아론과 같은 제사장 그리고 다윗과 같은 왕을 택하셔서 이들에게 기름을 부어 함께 역사 하셨으나 신약시대에 와서는 독생자 예수님을 세상에 보내셔서 선지자, 제사장, 왕으로의 사역을 담당하게 하셨다. 


따라서 인간들의 선지자, 제사장, 왕은 육체적인 죽음으로 인해 바뀌지만 예수님은 영원한 제사장이요 하나님과 동등한 분으로 자신이 선지자이시며 영원한 천국의 왕으로 계실 분으로 지상에 재림시에는 천년 왕국과 장차 하늘나라의 영원한 왕으로써 하나님의 창조의 권능과 능력 그리고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 주시며 이 시간에도 인간들을 죄에서 구원하시기 위해 천국에서 지극히 크신 이의 보좌 우편에 앉으셔서 세상을 인도하시며 역사하고 계심을 본다.


하나님께서 일찍이 우상숭배 가문에서 아브라함을 불러 쓰시면서 유대민족을 세우시고 그의 후손 중에서도 산골짝에서 양이나 키우는 목동 다윗을 택하여 유대민족의 왕으로 세우시고 아들 솔로몬이 왕위를 계승하게 하셨다. 그 후 왕이 된 솔로몬이 직접 기록한 책이 전도서이다. 


전도서를 기록하게 된 동기는 하나님 없는 인생의 활동과 소망은 철저히 허무함을 일깨우기 위해서이며 또한 인생의 참 지혜가 창조주를 기억하고 하나님을 경외하고 명령을 지키기 위한 것이라고는 하지만 외형적으로는 허무주의와 염세주의 그리고 숙명론과 쾌락주의에 침착한 것이 사실이다. 그럼으로 솔로몬의 실패한 인생의 경험 등을 들려 줌으로써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만이 최선의 삶이라는 결론을 내리게 된 것은 천만 다행이라고 사료된다.


전도서를 살펴보면 핵심구절이 “전도자가 이르되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해 아래서 수고하는 모든 수고가 사람에게 무엇이 유익한가”(전1: 2-3). 또한 지혜가 많으면 번뇌도 많다고 하면서 세상에서 행하는 모든 일이 괴로운 것이니 하나님께서 인생들에게 주는 수고하게 한 것이라며 이것 또한 헛되다고 하였다(전1: 13-14 참고).


이는 한마디로 하나님의 천지창조의 권능과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극진한 사랑에 대해 한때 솔로몬이 노년에 오늘날의 우울증과 콤플렉스(COMPLEX)와 같은 증상에 시달리지 않았는가? 생각도 해보았다. 하나님께서 천지만물을 6일 동안 매일 창조 하시고는 그때마다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시고 마지막 제7일에는 안식 하시면서 인간 들에게도 쉼과 평안을 주시고 자연수목에서 과일과 열매를 맺게 하여 항상 먹을 것을 주심으로 항상 하나님을 경외하게 되고 이에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에 따라 지혜를 받고 지혜 속에 밝은 미래의 소망을 갖게 되고 자연의 아름다움 즉 아침에 떠오르는 붉은 해와 저녁에 지는 노을이 얼마나 장엄한 아름다움이며 예쁜 꽃을 볼 때마다 아름다운 기쁨을 느끼는데 솔로몬의 경우 무엇이 허무하며 헛된 일인가? 


우울과 콤플렉스에 대해 사전을 보니 우울은 슬프고 불행한 감정으로 인간들에게 나타나는 무기력감, 회의감, 피로감, 의욕저하 등의 일련의 증상을 말하며 콤플렉스는 정신분석학의 개념으로 사람의 마음속의 서로 다른 구조를 가진 힘의 존재로 복합감정을 나타낸다고 되어 있다. 아버지 다윗 왕으로부터 왕위를 이어 받은 솔로몬 왕이 한때는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의 아버지 다윗의 법도를 따라 행하면서 어느 날 신당에서 제사하며 분향하였으며 기브온 신당에서 일천 번 번제를 드렸더니 밤에 여호와께서 솔로몬의 꿈에 나타나셔서 내가 네게 무엇을 줄꼬 하니, 솔로몬이 대답하기를 누가 주의 이 많은 백성을 재판할 수 있사오리까 듣는 마음을 종에게 주사 주의 백성을 재판하여 선악을 분별하게 하옵소서 하니, 이는 자기의 장수나 부귀, 원수 갚는 일도 아닌 오직 송사를 듣고 분별하는 지혜를 구하매 하나님께서 마음에 들어 지혜뿐 아니라 부귀와 영광도 주노니 네 평생에 왕들 중에 너와 같은 자가 없다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다윗과 같이 내 길로 행하며 내 법도와 명령을 지키면 내가 또 네 날을 길게 하리라, 고도 하셨다(왕상3: 3-14 참조).


다윗 왕이 하나님의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 성전건축을 요구 하였으나 하나님께서는 전쟁으로 많은 피를 흘렸으므로 아들 솔로몬으로 하여금 성전 건축하도록 영광을 솔로몬에게 내리셨다. 솔로몬이 성전건축을 마치고 제단 앞에서 기도 하기를 “솔로몬이 여호와의 제단 앞에서 이스라엘의 온 회중과 마주서서 하늘을 향하여 손을 펴고 이르되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여 위로 하늘과 아래로 땅에 주와 같은 신이 없나이다. 주께서는 온 마음으로 주 앞에서 행하는 종들에게 언약을 지키시고 은혜를 베푸시나이다” (왕상8: 22-23) 라고 고백했던 솔로몬이 한때 허무주의와 염세주의 그리고 숙명론과 쾌락주의로 잠시라도 침착함으로써 일시적이나마 창조주 하나님을 떠나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고 하나님과 멀어진 것에 대해 나로써는 도저히 이해가 안 된다.


이는 하나님을 배반하고 우상을 숭배까지 한 큰 죄를 지은 죄인이라고 간주할 수도 있게 되었다. 그래서 금번 전도서를 묵상하면서 솔로몬이 노년에 풍요와 지혜 속에서 오늘날의 우울증과 콤플렉스를 갖게 된 것이 아닌가? 생각하게 되었다. 이것은 누구든지 성경을 읽을 때에 각자의 느낌이 있음으로 본인이 성경을 읽으며 오로지 느낀 자신의 견해이지 성경의 진리나 해석이 아님을 독자들께 이해를 구할 뿐이다.


결론적으로 하나님이 진실했던 믿는 자가 하나님과 멀어지며 하나님을 배반하는 경우를 모든 믿는 자들에게 깨닫게 한 것이 아닌가? 믿는 자들은 고난과 고통을 당할 때 하나님께 울며 부르짖어 기도 하지만 믿음이 부족 하거나 믿음에서 멀어지는 자들은 고난과 고통을 당할 때 불평하며 하나님을 비난한다. 반면에 모든 것이 풍족한 풍요로운 자들은 풍요 속에서 오만해져서 더욱 새로운 것을 바라는 욕망으로 믿음이 퇴보되어 죄를 짓게 된다고 한다.


솔로몬의 경우 하나님과 친밀한 대화를 통해 부귀, 권세, 명예, 영화 등 많은 은혜를 받고서도 이방여인들과의 음란행위를 자행하며 심지어 하나님이 제일 싫어 하시는 우상숭배까지 함으로써 하나님을 배반하고 큰 죄를 짓게 된 것에 대해 참으로 이해가 안 된다. 


오늘날의 믿는 자들은 옛날과 같이 하나님의 기적과 이적을 경험한 바도 없고 하나님과의 직접 대화조차 하지 못한 시대에서 성령의 도움으로 오직 성경 말씀에 따라 믿음을 지켜왔으므로 오늘날의 인간들의 믿음이 오히려 크다고 사료된다. 


이 순간 나는 히브리서에서 언급한 성경 말씀에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과 내세의 구원의 능력을 안 후에는 회개할 수가 없다는 내용이 생각난다. 금년도 전도서의 묵상은 오로지 나의 느낌임을 독자 여러분께 재차 양해주시기를 바라면서 마지막으로 우리 믿는 자들은 예수님이 크나큰 고난을 이기는 것처럼 그를 믿는 자들도 거룩한 삶을 위하여 하나님의 연단을 받아야 할 때가 올 것이다. 따라서 믿는 자들은 그리스도를 떠나지 말고 그리스도 안에서 소망을 굳게 지켜 구원을 받아야 할 것이다.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도 타락한 자들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하게 할 수 없나니 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박아 드러내 놓고 욕되게 함이라” (히6: 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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