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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전을 보면 멋이란 '옷차림새, 행동, 됨됨이 등이 세련된 상태와 아름다움' 혹은 '운치와 흥취'로 정의되어 있다. 영어로는 'elegance'란 단어가 우리가 말하는 멋과 가장 가까운 거리에 있는 말이지 싶다. 우리말이건 영어건 멋이 무엇인가를 몇 마디로 설명하기는 퍽 어렵다. 우리는 멋이란 말을 하루에 수십 번 넘게 하지마는 그 말의 정확한 뜻에 대해서는 잘 생각해 보질 않는다. 그러나 멋이 무엇을 가리키는지는 대충 의견을 같이 한다.


 이 세상에 남자로 태어나서 젊은 여성들에게서 "와! 참 멋있어요." 하는 칭찬을 들었을 때 기쁨으로 가슴이 터질 것 같은 희열을 경험해보지 못한 남성이 어디 있을까. 철학 교수 김태길의 말마따나 '멋있다'는 말은 우리 인생 최고의 찬사, 가장 듣고 싶어하는 말이다.


 나보고 이 세상에서 멋있게 살다간 사람을 꼽아 보라면 맨 먼저 떠오르는 사람은 조선 중기의 풍류객 백호(白湖) 임제다. 전라도 나주에서 오도(五道) 절도사를 지낸 청백리(淸白吏) 진의 아들로 태어난 백호는 벼슬에 초연하여 당파 싸움의 탁류에 휩쓸리지 않고 평생을 고고하게 살았다. 그의 멋 절정은 그가 평양감사에 임명되어 부임지 평양으로 가는 길에 개성 근처 장단에 있는 여류시인이요 기녀인 황진이의 무덤을 찾아가서 '청초 우거진 골에 자는다 누웠는다/홍안은 어디가고 백골만 묻혔는다/잔(盞) 잡고 권할 이 없으니 그를 설워하노라'는 절창을 남겼다는 사실에 있다.


 평양 감사로 부임한다는 자기의 사회적 지위도 잊고 미천한 기녀의 무덤 앞에 엎드려 잔에 술 부어 올리는 이 돌출적인 행동, 당시 시대 사조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이 행동이 멋의 절정이 아니겠는가. 미스 황의 무덤에 술잔 올리는 순간은 그는 평양 감사 임백호가 아니요 사나이 임백호였다.


 광해군 때 유몽인이 쓴 <어우야담>에는 또 하나 백호에 관한 재미있는 일화 한 토막이 실려 있다. 당시 평양에 콧대 높기로 유명해서 평양 감사도 범하지 못하고 있던 어느 기생을 백호가 하룻만에 그녀의 몸과 마음을 얻을 수 있는가 없는가. 평양 감사와 금 만냥 내기를 하여 백호가 이겼다는 기녀와의 연담(緣談)이다.


 내기에 이겨 만냥을 거머쥐고 된 행운은 고사하고 도대체 어떻게 했기에 그 콧대 높은 여자를 하룻밤 사이에 무장해제를 시켜버렸을까? 그 비법을 나도 한 수 배우고 싶은 생각도 들지마는 내 나이 72, 때가 좀 늦은 감이 없지 않다. 그 사건 이후 죽을 때까지 다른 여인과는 인연을 맺지 않았다는 지조(志操)의 사나이 임백호. 


 동인서인(東人西人)으로 갈라서서 서로 헐뜯고 싸우며 공명이나 얻으려는 벼슬아치들의 비열한 꼴을 비웃으며 강호에 방랑, 세상을 놀라게 하는 명문장에 거문고, 술과 친구를 사귀다가 39세의 나이로 이 세상을 마감한 사나이. 죽음에 이르러 "제왕도 일컫지 못한 나라에서 죽는 판에 슬퍼할 이유가 없으니 죽거든 절대로 곡은 하지 마라."는 유언을 남기고 눈을 감았다는 자주사상가 임백호.


 이렇게 보면 멋이란 잘 생긴 외모에다 유행따라 입는 옷이나 머리스타일 같은 겉으로 나타나는 외(外)적 요소 때문일 때도 있다. 그러나 백호처럼 세상명리를 뜬구름 보듯한 그의 고고하고 꼿꼿한 인생에 대한 자세와 격조 높은 시문, 거문고에서 퍼지는 향기 등의 내(內)적 요소 때문에 연유한 멋일 때가 더 많지 않을까.


 운동선수나 예술가가 갈고 닦던 일에 최선을 다하여 뛰어난 실력을 보이는 것도 멋있다. 그런데 살펴보면 멋의 근원은 어디까지나 보통이 아닌 비범(非凡)에서 나오는 것 같다. 수필가 피천득 교수의 말처럼 모자를 똑바로 쓰는 것보다 약간 삐딱하게 써야 멋이 있지 않은가. 개성 있는 화장을 하거나 개성 있는 음색으로 노래를 부르는 가수가 멋있다. 이렇게 보면 무엇이든 뛰어난 성취수준과 그에 따른 독특한 개성은 곧 멋의 필요충분조건이라 해도 틀린 말은 아닌 것 같다.


 얼핏 보면 멋있어 보이나 자세히 보면 멋이 없는 경우도 있다. 소설 <춘향전>의 주인공 이몽룡이 그렇다. 감옥에서 칼머리를 쓰고 있는 자기 애인을 한시라도 빨리 구하는 것이 그녀의 고통을 덜어주는 것. 그러나 그 생각은 않고 제 출세한 것 한 번 뽐내보고 싶은 허영에서 여기저기 다니며 수다를 떨다가 그 이튿날에 가서야 '암행어사 출두'를 외친 이 사나이는 얼핏 보면 멋있게 보이나 실상 지지리 못나고 용렬한 사내인 것이다.


 앞에서 말했듯이 대중과는 다르게 보이는 것이 멋의 출발점이라면 세상 사람은 누구나 멋을 가지고 태어났다고 볼 수 있다. 자기 자신 생긴 그대로 내보이면 그게 곧 멋일텐데 우리는 남에게 눈길을 보내다 보니 자기도 잃고 멋도 잃어 버린다. 멋은 곧 개성의 표현, 자기 생긴대로 사는 것은 자기를 되찾는 길임과 동시에 곧 멋을 만들어 내는 길이다. (2012.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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