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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가곡의 밤

 

 조교 R양이 겨우 찾았다며 '2004년 한국예술가곡 대축제' 스케줄을 보여주었다. 주최는 아트그룹이라는 어느 낯선 단체이고, 후원은 '우리가곡의날 제정추진위원회' '한국예술가곡연합회'를 위시하여 모두 6개의 단체가 맡았다. 매주 금요일, 10회에 걸쳐 구기동 어느 화랑에서 최초의 예술가곡으로 불리는 [봉선화]로 시작해서 오늘에 이르기까지 무려 160여 곡을 들려준다는 것. 출연 성악가들은 내가 유학을 떠나기 전, 그러니까 1960년대에 한국 성악계를 휩쓸다시피 하였으나 지금은 은퇴한 성악가도 몇 있고 요사이 이름을 떨치기 시작하는 성악가들도 많았다.


 그래서 아내와 함께 5~6번을 넘게 매주 금요일만 되면 구기동 문화예술관으로 달려갔다. 음악회가 열리는 장소는 한 100명 들어갈까 말까 한 큰 강의실 정도의 홀이었다. 그러니 무대에 선 성악가와 청중과 거리는 앞줄에서는 불과 2미터, 뒷줄에서도 6미터를 넘지 않으니 우선 분위기가 아늑하여 청중과 성악가의 심리적 거리도 무척 가깝다는 느낌이 들었다.


 하루 프로그램 끝에 가서는 그날 출연한 성악가들이 모두 나와서 홍난파의 [고향의 봄] 같은 노래를 청중들과 함께 불러 분위기를 돋웠다. 그리고는 청중과 출연 성악가 모두 다른 방에 가서 떡 벌어지게 차려 놓은 밤참을 먹으며 얘기도 했다. 나는 한국에 온 후 4~5년 동안 음악회에 가본 것이 그리 많지 않아서 요사이 음악회 풍속도는 잘 알지 못한다. 그러나 내가 몇 번 가본 음악회 중에는 단연 이색적이고 무척 인정이 끌리는 그런 음악회였다.


 그런데 한가지 눈에 띄는 것은 지금 한창 활약을 하고 있는 소위 '젊은' 가수들이 노래를 부를 때는 예외 없이 앞에 놓인 악보를 들여다보며 노래를 부르는 것이었다. 한번은 4명의 성악가가  올라와서 청중들과 함께 노래하는데 악보를 서로 자기 앞에 두려고 조용히 밀고 당기는 희한한 장면까지 있었다. 악보를 놓치면 물 떠난 물고기. 아, 이 사람들은 악보의 도움 없이는 우리 가곡을 부르지 못하는구나! 이들에게 한국가곡은 한국 노래가 아니요, 저 어느 먼 나라의 신기한 노래에 지나지 않는가 보다.


 악보를 들여다 보며 노래를 부르는 것을 보니 한국가곡을 들을 때 느낄 수 있는 그윽한 정서는 메마른 화분에 물 빠져나가듯 어느 사이에 말라버렸다. 끝날 무렵에 청중들과 가수들이 다 같이 노래를 부를 때 함께 따라 부르고 싶은 마음조차 없을 정도였다. 음악이란 정서의 농축, 흥이 그 중심이다. 그런데 이 흥이 일어나질 않으니 낸들 어쩌랴.


 하루는 음악회가 끝나고 차를 마시는 시간에 옆에 앉은 이 음악회 감독을 맡은 C 여사에게 "노래하는 분들이 한국 악보를 꼭 봐야 하나요?" 하고 넌지시 물었더니 설마설마 걱정했던 답이 나오고 말았다. "요새 성악가들은 악보 없이는 한국가곡을 부르지 못합니다. [성불사의 밤]이나 [옛 동산에 올라] 같은 초기의 노래는 부를 줄 모르지요." 부를 줄 모른다는 말은 자주 부르지 않는다는 말이다. 옛날 성악가들이 그 노래를 부를 때처럼 깊이가 있고, 그 맛이 나질 않는다는 것이다.


 이 말을 듣는 내 머리에는 몇 가지 생각이 스쳐 갔다. 첫째는 이렇게 초등학교 학생 만화 보듯이 악보에 눈을 박고 노래를 부르는데 어찌 깊이가 있고 그 맛이 그대로 나겠느냐는 것이다. 둘째는 젊은 성악가라고 한국 노래를 왜 못 부를까마는 이들이 한국노래를 부르지 못하는 것은 우리 가곡은 제쳐놓고 외국 노래만 열심히 불러온 우리의 음악 풍토 때문이다. 맞는 말인지 모르지만, 우리나라 음악대학에서 학생들에게 한국가곡을 부르기를 장려하거나 부르는 법을 가르치는 대학은 거의 없다고 한다. 죽으나 사나 그놈의 꼬록께, 꼬록께 하는 외국말이지 우리말로 우리 노래를 불러서는 별 볼 일 없다는 것이다. 이처럼 기성 음악가들이 우리 노래를 부르지 않으니 음악교육인들 제대로 되겠는가.


 노래 부르는데 깊이가 없다든가 그 맛이 안 난다는 말은 무슨 말일까? 나 같은 문외한의 해석은 다음과 같다. 5, 60년 전 그 노래를 듣던 마음과 오늘날의 마음은 다르다. 마치 옛날에 즐겨 먹던 음식이 그때 그 맛이 나질 않을 때 우리는 음식이 달라져서 그런가, 아니면 그 음식을 먹는 내 입맛이 달라져서 그런가를 생각해 볼 때가 있는 것과 같다. 대중가요를 보면 대중가요가 유행하던 그때의 그 '고리타분'한 스타일로 부르지는 못하지만 요사이 신세대 가수들이 현대 감각에 자기 개성을 넣어 부르는 것을 들으면 더 감칠맛이 나지 않는가. 


 그러니 노래를 부르는 사람도 변했지만, 노래를 듣는 사람도 변한 것이다. 노래 맛이 안 나고 깊이가 없다는 것은 5, 60년 전 그때와 비교해서 깊이가 다르다는 말이요, 5,60년 전 그때의 노래 부르는 스타일과 달라서 맛이 없다는 말일 것이다.


 나의 음악에 대한 이해는 0점에 가깝다. 그러나 막연하게 우리 성악가들이 우리 노래를 부르지 못하는 것을 보면 은근히 부아가 나고 그럼 “이들 성악가가 외국 노래는 깊이가 있게 부를 수 있을까?” 하는 비아냥성 질문도 스스로 해본다. 우리가 얼마나 우리 가곡을 부르지 않으면 ‘우리 가곡의 날 제정 추진위원회’니 ‘국민 1인 1 애창 가곡 갖기 추진위원회’니 하는 기형적인 이름을 가진 모임이 생겼을까.


 우리나라 사람들이 한국가곡을 부르지 않아 이런 운동을 해야 한다는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마는 그중에 성악가 자신의 책임도 크다고 본다. 성악가 자신이 이렇게 한국가곡을 외면하는데 그 밑에서 노래를 듣고 배우는 어린 소년 소녀들이 한국노래를 부르고 싶겠는가?


 궁금증이 가시질 않아 학생들의 우리 가곡에 대한 이해를 알아보기로 했다. 즉 [애국가]를 위시하여 [봉선화], [보리밭] 등 우리 가곡 8곡과 동요 3곡, 모두 합해서 12곡을 늘어놓고 각 노래를 누가 작사, 작곡했는지, 그리고 그 노래를 혼자서 부를 수 있는지 없는지를 표시하게 되어있는 질문지를 돌렸다. 결과는 놀라웠다. 애국가를 안익태 작곡이라고 바로 적은 학생은 37명 중에 15명 밖에 되질 않았다. 애국가 작곡자를 ‘모른다’고 대답한 학생이 16명, 홍난파라고 적은 학생이 5명이나 있었고, 윤이상이라고 적은 학생도 한 사람 있었다. [봉선화], [보리밭], [어머니 마음] 같은 비교적 잘 알려진 노래들을 혼자 부를 수 있다고 표시한 학생은 없었다. 더욱더 놀라운 것은 [과수원 길]이나 [어머니 은혜], [고향의 봄] 같은 동요도 끝까지 부르지 못한다고 대답한 학생이 많았다는 것이다.


 그래도 궁금증이 꺼지질 않아서 이번에는 “당신이 좋아하는 노래, 한국 노래든, 외국 노래든, 예술가곡이든 동요든, 오페라 아리아든, 대중가요든, 옛날 노래든 현재 유행하고 있는 노래든 상관없다. 어떤 노래 장르(genre)도 좋으니 당신이 좋아하는 노래 제목 3곡을 적으라”고 해보았다. 스무 명 학생이 3곡씩 적으니 가능한 노래 숫자는 모두 60곡이다. 그 60곡 중에서 우리의 예술가곡은 하나도 없었고, 동요 [어머니 은혜] 1곡, 그 나머지는 모두 요새 유행하는 대중가요들이었다.


 이런 엉뚱한 생각도 해본다. 만일 국민 모두가 하루에 우리 시(詩)를 한 수를 읊고 우리노래 한 곡만 부른다면 온 나라 사람들의 마음도 더 순박해짐은 물론 나라 사랑도 배로 늘어나지 않을까 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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