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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강식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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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발의 여자 ‘제인 에어’(Barefoot Jane in Ayre)(8)

 

(지난 호에 이어)
라면이 끓기 시작했다. 라면 한 개 반을 나누어 먹었다. 국물까지 깨끗이 비웠다.


“아, 정말 맛있어요.”


그녀가 미소를 지었다. 


매사추셋 턴파이크에서 스프링 필드로 빠져 나왔다. 그녀가 가까운 쇼핑센터에 들릴 수 있는지 요청했기 때문이다. 그녀는 월마트가 있는 플라자 안으로 사라졌다가 한참 만에 돌아왔고, 완전히 바뀐 모습이었다. 


방금 쇼핑한 듯한 깨끗한 티셔츠, 하늘색 운동화, 검은 선글라스까지 끼고 나타나 나를 깜짝 놀라게 했다. 손에 여행용 손가방과 파우치를 들었고 어제 밤에 들고 왔던 가방은 보이지 않았다. 어제 밤에 맨발로 비틀거리며 달려온 제인 에어가 아니었다.


여자의 변신은 무죄라고 했던가! 머리를 올리고 헤어핀 리본으로 고정시킨 그녀는 따사로운 햇볕처럼 화사했다. 몸에 찰싹 달라붙는 검은색 쫄 바지위로 그녀의 풍만한 엉덩이 곡선이 아름다워보였다.


운전하는 내내 나는 어색함을 견디기 어려웠다. 묻고 싶은 말은 많지만 함부로 물어보기가 어려웠다. 그녀도 어딘지 모르게 불안해 하는 것 같으면서도 즐거워하는 모습을 볼 때 상반되는 느낌을 받았다. 


그럴 수도 있겠지. 그 무엇으로부터 도망가는 여자니까. , 나는 지금 위험에 빠진 여자를 도와주고 있는 거야. 스스로 대견하고 뿌듯한 마음도 들었다.


“그래, 어디로 갈 거예요?” 


그냥 물어 본 말이지만 바로 후회했다. 도망쳐 나온 여자가 자기가 가는 곳을 가르쳐 줄리가 없다. 다만 갈 곳이나 있었으면 다행이라는 생각이었다. 


“알바니에 저를 내려주시면 제가 알아서 갈게요.”


“갈 데는 있는 거요? 샌프란시스코에 가고 싶다고 하셨잖아요?”


“네, 친구가 거기에 있어요. 일단 아무데나 가서 생각해보아야 할거 같아요.”


창밖의 풍경에서 눈을 떼지 않는 그녀는 깊은 고민에 잠겼다.


“감사합니다. 아저씨. 정말 고마워요.”


알바니 트럭 휴게소에서 내린 그녀가 인사를 했다. 그냥 헤어지기가 아쉬운 사람처럼 나는 어색함을 감추지 못하고 할 말도 찾지 못했다. 그녀가 가방에서 무엇을 꺼내 나에게 건네주었다. 종이에 급하게 싼 둥그런 모양의 통이었다. 그리고 사람들 사이를 지나고 길을 건너 내 시야에서 사라졌다.


그녀는 그렇게 짧은 만남을 남겨두고 가버렸다. 그래도 인연이 있다면 언젠가 어디에선가 다시 만날 수도 있을까? 소설 속의 제인 에어는 방황하다가 로체스터에게 다시 돌아왔잖은가? ‘제인 에어’가 고아소녀의 사랑과 성공이야기라면 ‘폭풍의 언덕’은 고아소년과 주인집 딸과의 격렬한 사랑이야기를 그린 아름다운 명작이다.


저자 샬롯 브론테의 실제 인생은 그렇게 낭만적이지 못하고 어둡고 외롭고 불행한 삶을 살았다고 한다. 동생 에밀리는 30의 젊은 나이에 폐결핵으로 죽고 샬롯은 39번째 생일을 앞두고 임신한 채 죽었다. 명작은 고통과 불행 속에서 태어나는가 보다. 


트럭 운전 중에 에어(AYRE)에서 만난 커피숍의 그녀는 나에게 조그만 선물로 빨간색 커피머그만 남기고 사라졌다. 이름도 성도 알려주지 않았다. 그냥 내 기억 속에 슬픈 제인 에어로 남아있을 뿐이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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