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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부님 러시아에 가다(35)-세포들이 고백하러 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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죠반니노 과레스끼 지음

유니스 윤경남 옮김

 

 

 

(삽화: 죠반니노 과레스키)

 

 


모스크바로 가는 열차 안에는 승객이 별로 없었다. 돈 까밀로가 그의 칸막이 방에 자기 혼자만 앉아있음을 곧 알게 되었다. 빼뽀네는 돈 까밀로가 그 유명한 《레닌 어록》을 꺼내는 것을 보자, 진저리를 치면서 나가 버렸다.


그리고는 열차 복도의 맨 끝에 자리잡은 본부석에서 오리고프 동무와 페트로프나 동무 등이 어울려 잡담을 하고 있었다. 돈 까밀로는 레닌 어록으로 위장한 기도서를 치우고 공책을 꺼내 들었다.


‘목요일 오전 8시. 티피즈의 콜호즈. 스테반 보도니. 전쟁 묘지. 종부성사. 타반 동무, 오후 3시 기차로 출발.’


“목요일이라니? 이제 겨우 목요일이란 말인가?” 돈 까밀로는 자기가 소비에트 연방에 들어온 것이 불과 79시간 안팎이라는 것이 도저히 믿어지지 않았다. 또 다시 어둠이 내리 덮였다. 바람이 휩쓸고 지나간 평야의 단조로움을 깰 만한 집 한 채, 나무 한 그루 보이지 않았다. 


그저 끝없는 밀밭뿐이었다. 그 들판도 그의 마음의 눈엔 뜨거운 여름 햇빛 아래 싱싱하게 자라고 있는 온통 푸른 들판으로 그려졌다. 그러나 아무리 상상의 날개를 펴도, 지금 그의 마음을 따뜻하게 하기엔 충분하질 않았다. 


그는 또 그의 고향 마을 바싸의 겨울 풍경을 그려 보았다. 짙은 안개와 물에 잠긴 들판과 진흙탕 길들. 그곳에는 사람들의 따뜻한 마음을 갈라놓을 만큼 차가운 바람도 없었다. 


그 풍경 속에 한 농부가 터벅터벅 혼자 길을 걸어가고 있었지만, 그 농부가 세상과 인연을 끊고 사는 사람이라고 느낄 수는 없었다. 보이지 않는 생명의 실이 그를 그의 동료들과 늘 한데 묶어 놓고 있었기 때문이다. 


여기엔 그런 결속의 매체가 없었다. 사람도 벽 틈에 끼여 있는 벽돌 한 장만큼 필요한 존재이면서도, 얼마든지 교환이 가능한 국가 조직의 한 부분일 뿐이었다. 언제 어느 순간이든 그는 쓰레기 더미에 던져질 수 있는 존재이며 그런 다음엔 더 계속해서 살아나갈 이유가 없어졌다. 


다시 말해서 이곳에 사는 사람들은 고립되어 홀로 사는 존재였다. 돈 까밀로는 몸서리를 쳤다. 그때 어떤 생각이 번개같이 머리를 스쳤다. “도대체 이 뻔뻔한 빼뽀네란 작자는 지금 어디에 있는 것일까?”


열차 칸막이의 문이 삐걱 소리를 냈다. 타반 동무가 조심스럽게 얼굴을 디밀었다. “방해가 되나요?”하고 물었다. 


“들어와서 앉게나” 돈 까밀로가 대답했다.


타반이 맞은편 자리에 앉았다. 그는 주머니 속에서 마분지로 만든 두루마리를 꺼냈다. 잠시 주저하다가 그것을 그의 동료에게 보여주었다. “며칠이 지나면 이것들은 더 이상 고통 받지 않아도 되겠지요.” 그는 밀대 세 줄기가 들어 있는 컵을 가리키면서 설명을 했다.


그는 밀 세 줄기를 마분지 속에 감춰 두었던 것이다. “이것들은 한 쪽으로 뚫린 구멍으로만 숨을 쉬고 있는데요, 다른 쪽으로도 구멍을 뚫어놔야 하지 않을까요?”


“아니지요, 내 생각엔 그 정도면 아주 괜찮은걸. 중요한 건 너무 덥지 않게 하는 일이오.”


타반은 밀 줄기가 들어있는 두루마리를 의자 뒤에 기대어 세워 놓았다. “하지만 나중에…” 그가 말을 꺼냈다. 


“나중에? 어느 때를 말하는 거요?”


“제가 집에 돌아갔을 때 말입니다.”


돈 까밀로는 어깨를 풀썩하며 말했다. 


“동무, 내가 보기엔 그 밀대 세 줄기 옮겨 심는데 곤란한 일은 아무것도 없는데.”


“곤란한 일은 저의 어머니에게 있지요.” 


타반이 말했다.


“제가 어머니께 뭐라고 말해야 되나요? 이것은 ‘밀대 줄기’ 들일 뿐인데…”


그는 말을 멈추고 창 밖을 내다 보았다.


“천만 평방 마일이나 되는 이 땅에서 하필이면 그들은 특별히 그 곳에다만 이 밀을 심었을까요?”


그는 중얼거리면서 말했다.


돈 까밀로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동무, 만일 어떤 나라에 전쟁으로 죽은 자가 2천만 명이라고 합시다. 그렇다고 해서 적군이 그 땅에 5천만이나 10만 명 이상을 남겨뒀다고 법석 떨 것까진 없지 않소?”


“그건 제가 어머니께 말씀드릴 일이 못 되는데요.” 타반이 이의를 제기했다.


“나도 그걸 말씀 드리라는 건 아니요. 동무 어머님께서는 그 사진이 아들의 무덤 위에서 나무 십자가를 대신했던 것을 계속 생각하시도록 하면 되오. 동무가 그 무덤 앞에서 촛대를 들고 있던 일을 말씀 드리시오. 밀대 세 줄기에 관해서는 동무 마음이 내키는 대로 하시오. 동무가 그 밀대 줄기를 살려서 옮겨 심게 된다면, 그 씨가 동무의 동생에 대한 추억을 어떻게 해서든지 살아있게 해줄 것이오.”


타반은 우울한 기색으로 듣고 있었다. 돈 까밀로는 화제를 바꾸었다.


“동무,” 그가 말했다.


 “무엇 때문에 동무는 그런 감상적이고 부르조아적인 질문을 하게 되었소?”


“저도 그것을 의논해 보고 싶답니다.”


타반은 마분지 두루마리를 집어 들며 말했다. 그리고 밖으로 나가려고 했다. 나서기 전에, 그는 다시 창 밖을 내다 보았다.


“천만 평방 마일의 땅이라, 그런데 그들은 한 에이커의 땅을 골라내야만 했겠다…”


그는 되풀이 해서 말했다.


돈 까밀로는 혼자 오래 있지 못하게 되었다. 몇 분 후에 문이 살그머니 열리더니 제노아 출신의 바치까 동무가 들어섰다. 그는 돈 까밀로와 마주 앉았다. 고집덩어리에다 솔직한 사람이어서 단도직입적으로 말을 꺼냈다.


“동무, 지금까지 지나간 일을 곰곰이 생각해 보았는데요. 동무 말이 옳았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여기선 밍크나 나일론을 거래 할 곳이 못됩니다. 그리고 동무가 나를 비난할 때 내가 어리석은 말을 던졌던 일을 미안하게 생각합니다.”


“나도 동무에게 사과해야 할 일이 있소.” 돈 까밀로가 말했다.


“그 문제를 세포 조직 전체 앞에 내놓을 것이 아니라, 인간 대 인간으로 동무하고만 얘기했어야 했는데 말입니다. 실은 오리고프 동무도 동무가 무얼 하고 있는지 알고 있었소. 그래서 내가 먼저 그 일을 밝히고 싶었던 거요.”


바치까 동무는 입 안에서 중얼거리듯이 말했다. “그게 아무리 불법이긴 합니다만, 오리고프 동무는 밍크 목도리를 얻었잖습니까, 안 그래요?”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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